
칼라일 펀드는 한미은행 인수 과정에서 편법을 눈감아준 금감위의 ‘특혜’ 덕분에 3년 뒤 씨티그룹에 매각해 7000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지난 2000년 제18차 금감위 의결사항 ‘J.P. 모건에 대한 한미은행 주식취득 승인안’에서 밝혀진 것이다. 금감위는 이 승인안에 담긴,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방식을 밝힌 투자구조 설명서에서, J.P.모건이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케이먼에 설립한 사모펀드와 칼라일의 합작법인이 한미은행의 인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당시 은행법상 은행 주식의 4% 이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금감위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국내 은행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융기관이거나 당해금융기관의 지주회사’로 제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라일과 J.P.모건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사모펀드’ 방식의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금감위는 그 동안 한미은행의 인수 주체가 ‘은행+사모펀드’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금감위 의사록을 보면 금감위 역시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금감위가 칼라일과 J.P.모건의 한미은행 인수를 승인하면서 작성한 투자구조 설명서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175쪽 표 참조).
컨소시엄에 참가한 ‘J.P.모건’은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세계 굴지의 은행지주회사 ‘J.P. Morgan & Co. Incorporated’가 아니라 이 지주회사가 출자해 만든 ‘J.P.Morgan CorsairⅡ’라는 자회사다. ‘코세어(Corsair)’라는 명칭은 19세기 중반 J.P.모건을 창업한 J.피어폰트 모건 가문이 소유했던 요트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J.P.Morgan CorsairⅡ’가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J.P.Morgan CorsairⅡ Offshore Capital Partners, L.P.’라는 긴 이름의 사모펀드를 만든 뒤 이 펀드가 칼라일 측과 합작, ‘KAI(Private)Limited’라는 투자회사를 세워 한미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투자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J.P.모건’이라는 말만 듣고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J.P.모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미은행을 인수한 주체는 금감위의 설명대로 ‘은행+사모펀드’ 또는 ‘은행 자회사+사모펀드’가 아니라 칼라일과 똑같은 사모펀드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칼라일이나 J.P.모건 측 관계자들 역시 한미은행을 인수한 주체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금감위만이 이들이 펀드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회사이며 단지 투자 손익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복잡한 투자구조를 갖췄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은행이니까 괜찮다”더니…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승인한 제18차 금감위 결정문.
‘신동아’가 입수한 ‘J.P. 모건에 대한 한미은행 주식 취득 승인안’은 금감위가 처음부터 J.P.모건 코세어가 출자한 사모펀드의 한미은행 인수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편법을 동원해 결과적으로 칼라일에 특혜를 주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금감위는 이 승인안에서 은행지주회사인 J.P.모건이 직접 한미은행 주식을 취득하지 않고 ‘코세어’가 주식을 취득한 경우 J.P.모건을 실질적 주식 취득 주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김&장과 법무법인 세종의 법적 해석을 인용하고 있다. 두 로펌은 금감위 승인 한 달 전쯤 보낸 의견서를 통해 약속이나 한 듯이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문제는 두 로펌 모두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당시 칼라일의 법률자문 파트너였다는 점이다. 또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던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칼라일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