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예술과 의학의 만남, ‘예술치료’의 세계

억압된 창조성 살려내 심리·정서적 갈등 치유

  • 글: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입력2005-03-24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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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음악, 무용, 원예, 문학 등 예술매체를 심리치료에 적용하는 건강관리법이 주목받고 있다.
    • 치매, 자폐증, 우울증,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적 갈등, 부부 성문제 등에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 서구에서는 예술치료가 이미 심리치료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예술과 의학의 만남, ‘예술치료’의 세계

    빈 종이상자를 몸에 걸고 악기 삼아 두드리는 사람들. 이런 음악치료 과정을 통해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다.

    40대 중반의 내성적인 주부 김모씨는 최근 우울증으로 예술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다섯 남매 중 맏아들인 두 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한 지 19년 됐다. 결혼 당시 사회적 기반을 닦지 못한 나이 어린 사윗감에 대한 우려와 장남이라는 조건 등을 이유로 친정의 반대가 심했지만 사랑만 믿고 결혼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제 김씨의 ‘사랑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의 빠듯한 벌이를 보충하기 위해 두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뷰티컨설턴트, 보험설계사 등을 하며 생활전선에 나섰다. 하지만 시집식구들은 수시로 김씨의 생활에 끼여들어 참견했고, 번갈아가며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게다가 남편은 현실감각이 뒤처지는 사람이라 툭하면 일을 벌였고, 그러면 수습하는 것은 대부분 김씨의 몫이었다. ‘누구를 원망할까. 다 내 탓인걸’ 하고 19년 동안 내면을 억누르고 살았던 김씨는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말았다.

    예술치료를 받으며 김씨는 그간 드러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고만 살았던 눈물과 분노를 조금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콜라주 작업을 동원한 치료 과정에서 김씨는 잡지 등을 찢어 붙이며 무수한 마이크를 만들었다. 특히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좁은 아파트에 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더욱 자신을 억눌렀던 김씨는 마이크들 앞에서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동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속시원하게 고함을 쳐댔다.

    남편의 외도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40대 후반 주부 이모씨 역시 예술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잡지에서 여러 명의 여자 사진과 립스틱, 권총을 오려낸 뒤 찢어 붙여 콜라주로 표현한 후 “남편에게 여자가 너무 많다”면서 한동안 눈물을 펑펑 쏟았다.

    “결혼해 사는 23년 동안 길거리를 오가는 모든 여자가 남편의 여자로 여겨질 만큼 남편은 무수히 바람을 피웠어요. 저는 늘 집에서 웃음을 잃은 채 지냈지요. 하지만 남편은 밖에서 여러 여자들에 둘러싸여 늘 웃으며 살았죠.”



    립스틱은 남편이 ‘집 밖의 여자’들에게 선물로 준 물품. 남편의 여성편력에 신물이 났다는 이씨는 권총이 있다면 남편을 쏴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움이 깊어 그렇게 표현했다고 털어놓았다.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북돋워 심신의 질병을 개선하고 극복하는 심리치료인 예술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 지식산업사회로 급변하면서 현대인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어렵다’고들 한다. 이런 불안과 혼란은 심리적인 위축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고, 방치하면 신체의 병으로 나타나거나 정신질환으로 악화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거꾸로 신체의 병이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심리상태의 개선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울증, 정신분열, 자폐증, 치매, 아동학대, 성폭행으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대인관계에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합니다. 매우 어려워하죠. 이럴 때 언어가 아닌 예술매체를 이용한 건강관리법인 표현예술치료가 큰 도움이 됩니다.”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김진숙 교수(예술치료학)는 “창작예술을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안녕과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예술인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의 오랜 관심사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던 것이 최근의 사회현상과 맞물리며 예술치료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것.

    비언어적인 예술로 표현

    예술치료는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 무용치료에서 독서치료, 원예치료 등으로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심리치료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되 치료의 수단을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예술매체로 확장한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창조성을 근원으로 합니다. 창조성이 발휘되는 자유로운 환경에 있지 못할 때 사람은 자기 내면의 욕구와 외부에서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예술활동을 통한 심리치료가 효과적인 것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통해 억압됐던 창조성이 발휘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의 정신세계가 현실세계 속에서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의 외면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심리나 정서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연루된 갈등 요소를 창작을 통해 조화롭게 해결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갈등을 완화하거나 정신구조를 재편성하는 것으로 치료가 이뤄집니다.”

    미술전문 심리치료사 이정호 부회장(표현예술심리치료협회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불안, 공포, 심한 공격성, 과잉행동, 위축, 언어장애 등의 심리적 원인은 대개 영유아기 때까지의 단계적인 퇴행을 통해 밝혀지기 때문에 비언어적 매개체를 사용하는 예술치료가 탁월한 치료효과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인격과 심리는 주로 태어난 지 3∼5년 사이에 형성되는데, 이 시기의 경험은 언어 이전의 차원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오감에 의해 받아들인 리듬, 색상, 이미지 등이기 때문에 언어를 이용한 심리치료엔 한계가 있다고 한다. 또한 언어는 증언이 될 수 있는 분명한 기호이기 때문에 자기 내면에 억압된 부정적인 것들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저항이 뒤따른다. 특히 언어발달이 충분치 않은 유아, 언어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유로운 사춘기 이전의 아동들,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와 언어의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놀이나 미술, 음악 등 감각적 매체를 사용해 치료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미술치료는 노이로제, 우울증, 불안, 강박증은 물론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임종을 앞둔 불치병 환자의 심리치료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건강한 가치관의 결여와 과도한 스트레스로 특별한 이유 없이 무력증을 앓는 사람, 부모의 불화나 이혼으로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아동 등을 치료하는 데도 좋다.

    그리고 칠하고 찢고 오리고

    미술치료에는 색종이, 한지, 모조지, 골판지, 잡지 등 여러 종류의 종이와 크레파스, 물감, 색연필, 매직, 지점토, 찰흙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살펴보자.

    ‘놀이’ 과정에서는 환자가 자신과 가깝게 느껴지는 세 개의 장난감(인형 1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1개, 무생물 모양 장난감 1개)을 가지고 옆집으로 놀러 가게 하는 등 다양한 ‘놀이’를 한다. 그러다 마무리 단계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와 세 개의 장난감 중 하나가 되어 자신을 소개하게 하는 것.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내면이 원하는 것을 깨달으며 남을 이해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지점토와 그림’ 과정은 20분 정도 지점토를 만지며 놀게 한 뒤 자기를 대변하는 물건 등을 떠올리며 형상화해 색칠하도록 한다. 지점토라는 편한 재료를 통해 자기 내면의 모습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이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과정은 종이에 크레파스나 파스텔로 자기 이름을 쓰거나 이름을 상징하는 그림과 배경을 그리게 하는 것이다. 이름을 대하는 태도나 상징화를 통해 자아 개념을 엿볼 수 있다.

    ‘현재와 미래’ 과정은 종이를 반으로 접거나 줄을 그어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그린 후 제목을 붙이는 방법. 현재의 자기 모습과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콜라주’ 과정은 다양한 종이와 잡지 등을 찢어서 원하는 대로 붙이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구체화해 찢고 오리는 과정에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고 해방감을 느끼며 스스로 새로운 자기 모습을 만들어가는 효과가 있다.

    ‘신체 본뜨기’ 과정은 두 명씩 짝지어 편한 자세로 종이 위에 누워 서로 본을 떠주고 원하는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신체 각 부분의 느낌을 색이나 특정한 이미지 또는 기호를 사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내면과 겉모습이 어떤지 깨닫고, 구성원 각자의 에너지를 느껴보게 해 자아의식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술치료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이정호씨는 동티모르 파병 후 귀환한 장병들에게 행해졌던 미술치료를 예로 들었다.

    “평화유지군으로 동티모르에 파병됐다가 귀환한 장병들은 현지에서 피습, 사고, 홍수 등으로 동료를 잃는 등 충격적인 경험을 한 직후라 ‘외상후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시급했죠. 처음 부대를 방문했을 때 장병들은 ‘귀찮게 무슨 교육을 한다는 거냐’는 식으로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미술치료를 받으며 평소 드러내지 않았던 깊은 속내를 차츰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은 계급 대신 별칭을 부르고, 어린아이처럼 색색의 크레파스로 미술작업을 하다 보니 편안한 미소를 짓게 됐다. 특히 ‘현재와 미래’ 과정에서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훨씬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유치원을 운영해보겠다’ ‘작은 구멍가게를 열겠다’ ‘고향 밭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넓은 마당에 동물농장을 만들어보겠다’ ‘호프집을 차리겠다’는 등 다양한 미래가 표현됐다.

    예술과 의학의 만남, ‘예술치료’의 세계

    미술 교사들이 병원 호스피스실에서 환자에게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250여명의 대원이 함께 전지 12장을 붙인 종이에 원을 그리고 만다라(모든 법을 원만하게 갖춰 결함이 없는 것을 뜻하는 불교용어)를 꾸미기도 했는데, 이 작업을 가장 재미있어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거대한 원 위를 뛰어다니다 원 안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를 택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게 했지요. 손바닥, 발바닥 찍기에서부터 애인이나 친구 이름 쓰기까지. 갑자기 웃옷을 걷어올리더니 힘껏 내민 배에 물감을 칠하고는 바닥에 엎드린 채 배로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있었어요. 저마다 상징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그 에너지가 굉장했습니다.”

    미술치료는 이라크에서도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자이툰 부대에 표현예술 1급 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군목이 있었는데, 그가 현지 주민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했다는 것. 처음엔 이라크 국기만 그리던 주민들이 나중에는 태극기도 그렸고, 젊은 처녀들 중에는 한국 군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부 성문제 치료효과 커

    미술치료는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용이 된다. 이윤수비뇨기과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부부의 성상담을 하는 조문순씨는 “막히고 꼬인 부부의 감춰진 성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미술치료가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불감증 부부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모형 그림에 ‘내가 생각하는 배우자의 성감대’와 ‘나의 성감대’를 사인펜으로 표시해뒀다가 나중에 서로 비교해보면서 대화를 나누게 합니다. 차이가 많이 날수록 그동안 서로 상대의 욕구를 잘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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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직 남편과 이혼한 40대 초반 여성이 자신의 내면 심리를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섹스 트러블을 겪는 부부에게는 가장 추억에 남을 섹스 명장면이나 배우자에게 느끼는 섹스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표현케 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잡지 등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찾아 스케치북 등에 오려 붙인 후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특히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들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남편의 일방적인 행동, 아내의 쌀쌀맞은 태도, 변태적인 성행위 요구 등 수용할 수 없었던 배우자의 행동이나 태도로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워스트 섹스’로 표현함으로써 억눌린 감정을 풀고 부부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부부가 자신들이 그린 작품을 놓고 성에 대한 상대의 생각을 파악하면서 서로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면 심리적인 갈등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음악치료도 미술치료만큼이나 뛰어난 효과를 낸다. 음악치료는 자폐아 치료에 특히 좋다. 윤태원 한국음악치료연구소장은 “자폐아들은 감정표현이나 반응이 무감각하고 사람을 잘 쳐다보지 않으며 이상한 발음을 의미 없이 반복하거나 항상 같은 길로만 가는 등의 행동 특성을 보인다”면서 “이런 부적응 및 반복 행동을 없애는 데 음악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폐아에게 악기와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고, 악기 연주를 통해 대근육과 소근육 운동을 유도하며,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언어능력을 향상시키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고

    음악치료는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나 조용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음악을 들은 후 그림을 그리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억눌렸던 자아가 해방되는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원시부족들은 질병의 원인을 마귀가 들었거나 신이 노해서 생긴 것으로 간주하고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고치려 했는데, 여기에서 음악치료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다윗이 사울왕의 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하프의 일종인 ‘라이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윤 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흥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두려움을 갖기도 하지만 전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노래도 못하고 악기도 못 다루는데 어떻게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이가 많지만, 음악치료에서 음악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훌륭하게 연주하고 못하고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예술과 의학의 만남, ‘예술치료’의 세계

    이라크 아이들이 미술치료 과정에서 그린 그림들.

    “발달장애자나 알코올중독자, 신체능력이 퇴화된 노인, 그리고 스트레스 상태인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음악치료의 적용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요즘 ‘삼팔선’ ‘사오정’이란 말이 유행하죠. 40대에 스트레스를 받고 자아가 많이 손상된 사람도 사실 젊었을 때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음악치료를 통해 이런 건강한 모습들을 끄집어낸다면 심리적인 건강을 되찾을 수 있죠.”

    일반인들도 종종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하면 화가 치밀고 적개심이 끓어오르면서 뭔가를 때려부수고 싶은 감정이 생긴다. 이때는 타악기를 두드리거나 ‘윌리엄텔 서곡’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편안한 마음을 갖고 싶을 때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들으면 눈 주위의 근육이 부드러워지며 굳었던 표정이 풀린다.

    또 빈 종이상자를 몸에 걸고 악기 삼아 두드리거나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춤추고 노래하며 연극을 하는 오페라적인 예술치료를 통해 무의식 형태로 남아 있는 정서를 표출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질병 치료뿐 아니라 창의성 계발이나 기업체의 신제품 개발 등에 음악치료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머리가 경직되거나 새로운 것을 구상해야할 때 난타 식으로 정신없이 악기를 두드리다 보면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른바 ‘알파파’ 상태가 된다는 것. 사람들은 2초에 8∼12사이클인 파장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가장 잘 떠오른다고 한다.

    자연과의 만남, 원예치료

    “치매로 경기도 성남시의 한 노인복지관에 입소한 80세 할아버지는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하고 치료사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 보였죠. 하지만 원예치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많이 웃게 되었고 물건에 대한 욕심도 생겼어요. 과정이 끝난 뒤에도 자신이 심은 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계속 관심을 나타내더군요. 나중엔 부인에게 선물했다며 좋아했어요.”

    한국원예치료협회 김수연 연구원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노인복지관의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원예치료를 실시한 결과 우울증이 감소하고 자아존중감이 증가했으며 언어 소통이나 자아개념 및 주체성, 충동적 욕구 적응력, 대인관계능력, 인지 및 문제해결 능력, 숙련도와 직업 적응력 등에서 향상을 보였다고 했다.

    원예치료는 식물을 심고 재배하며 가꾸는 과정을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활동을 말한다. 히아신스 같은 꽃이나 무순 등의 수경재배, 꽃바구니같이 꽃을 이용한 장식품 만들기, 실내에서 허브 같은 관엽식물 기르기 등이 포함된다.

    1789년 미국의 벤자민 로쉬 교수는 정신병 환자들이 들에서 일하면서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것이 정신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한 주립병원에서는 원예활동 및 농경작업을 정신치료의 중요한 과목으로 비중 있게 다뤘고, 수용소 정신병원에서도 환자들을 위한 그늘진 산책로, 조용한 숲길, 훤히 트인 목초지 등 공원 같은 시설을 조성하도록 했다.

    “주거환경 내 녹색식물은 혈압, 맥박, 심전도, 눈의 피로 등으로 나타나는 ‘테크노’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정신생리적으로도 식물을 보면 뇌파의 알파파가 증가하고 델타파는 감소합니다. 특히 입원한 환자에게 창 밖의 식물을 보게 하면 치료나 정신적 안정에 매우 효과적이죠. 특히 재활의학 환자의 경우 자연스럽게 근육의 힘을 향상시킴으로써 물리치료나 작업치료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면에 원예치료를 응용할 수 있다는 김 연구원은 한 중학교 특수학급 청소년들이 원예치료 프로그램에 1년간 참가한 후 달라진 사례를 소개했다.

    “초등학교 때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등 너무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정상적으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특수학급에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예치료를 받은 후 많이 웃고 많이 말하며 친구들에게 엄마 자랑을 하는 등 성격이 무척 활달해졌어요.”

    미술·음악·원예치료가 표현활동을 통해 이뤄지는 치료라면 최근 떠오르고 있는 독서치료는 소설이나 시 등을 읽거나 들은 후 토론, 역할놀이, 창의적인 문제해결 등의 계획된 활동을 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돕는 치료법을 말한다.

    한국독서치료학회 김현희 회장은 임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부적응을 보이는 일반인과 아동에게도 독서치료는 무척 효과적이라고 한다. 주로 문학작품을 사용한다.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아이를 치료할 때 독서치료와 병행하면 효과적이에요. 독서치료사가 충동을 조절하고 사회적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적절한 내용의 책을 선택해 아이에게 읽히거나 들려주면서 건전한 사회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책을 읽은 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쓰도록 하는 것도 좋다. 자신에게 상처가 됐던 과거의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그때 느낀 감정과 지금의 느낌을 표현하게 하면 치료효과가 커진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죽으면, 아픈 것이 나을까요?’라는 책이 있어요. 주인공인 다섯 살 난 아이는 두 살 난 동생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말문을 닫아버리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자신이 만들어낸 토끼 가족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그들 중 하나가 어떻게 아프다 죽게 됐는지, 그 죽음이 다른 가족에게 어떤 의미를 줬는지에 대해 말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고 슬픔을 극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거죠.”

    국가공인제 도입해야

    이와 같은 표현예술치료는 초기엔 심리치료의 보조수단으로 쓰였지만 이젠 하나의 독립된 치료 영역으로 발전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종교 및 교육기관 등이 운영하는 상담센터에서 표현예술치료를 시행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동국대 사회교육원,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원광대 예술치료연구센터, 명지대 예술치료센터 등 관련 교육기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인증할 만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고 교육시설도 미비해 충분히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치료를 시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 표현예술치료가 심리치료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 만큼 국가공인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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