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KBS ‘TV 책을 말하다’도 특정 책을 띄워주는 방식이다. 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TV 프로그램인 데다 권위까지 있어 행운의 주인공들은 표지에 ‘TV 책을 말하다 선정도서’ 라벨을 붙이곤 한다.
원작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이 또한 로또 당첨이다. 단 여기에는 약간의 위험이 있다. 드라마 시청률이 낮으면 책도 따라 죽는다. 최근 박경리의 1962년작 ‘김약국의 딸들’이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고, 같은 저자의 소설 ‘토지’와 최인호의 ‘해신’도 최고의 시청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물론 원작소설의 힘이 시청률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다.
책 관련 방송에서 선정한 도서가 로또복권이라면, 어떤 연유로든 방송에 살짝 비쳐 뜨는 건 즉석복권이다. 지난해에는 화제의 드라마 SBS ‘발리에서 생긴 일’ 덕분에 일시적으로 ‘그람시’ 특수가 일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주고받은 책이 이탈리아 공산주의 사상가인 그람시의 ‘옥중수고’였던 것. “어쩌다 그람시가 발리까지 갔느냐”는 개탄도 나왔지만 개정판 출간 이후 4년 넘게 하루 평균 5권도 안 팔리던 이 책의 매출이 한때 6배까지 올랐다고 한다. 물론 아주 일시적으로.
“어쩌다 그람시가 발리까지 갔냐”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책이 일종의 소품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방송과 출판의 진정한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요즘은 방송 콘텐츠가 통째로 책이 되는 일이 많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좋다. ‘책으로 보는 생로병사의 비밀’은 지난해 12월 출간 이후 석 달 사이 9쇄나 찍었다. ‘잘먹고 잘사는 법’ ‘색 색을 먹자’ ‘환경의 역습’ 등 건강·환경 아이템뿐만 아니라 교양과 오락을 버무린 프로그램 ‘스펀지’까지 책으로 나와 연일 화제다.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가 낯설게 느껴지듯이, 방송 프로듀서들도 자신이 만든 방송이 책으로 엮이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스펀지’의 한 제작PD는 “만들 때 보고, 편집하면서 보고, 방송될 때 또 보았는데도 책으로 다시 보니까 새롭다”고 했다. 그 낯설음은 방송 언어와 출판 언어가 다른 데서 나온다. 방송작가가 쓴 원고나 출연자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는다고 책이 되는 건 아니다. 출판이라는 ‘판’에 맞게 콘텐츠를 재구성하고 편집해서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방송을 끼면 된다”는 식으로 책을 만들면 프로그램의 이름만 빌린 어설픈 출판물이 되고 만다. 영상과 활자의 행복한 만남은 출판인의 자존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