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여권 핵심인사가 털어놓은 ‘노무현 人事’ 뒷이야기

“고영구씨는 나와 껄끄러운 사인데…” “정상명만큼은 내 뜻대로…”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3-23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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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수석, ‘서동만 하극상’ 보고서 올려
    • 노무현, 정상명 신임 각별해 법무차관 임명 직접 지시
    • 최기문, 경질 전 경무관 인사로 청와대와 갈등
    • ‘한나라에 문건 준 경제관료들’ 내사(內査)
    • 영·호남은 ‘필수과목’, 타 지역은 ‘선택과목’
    여권 핵심인사가 털어놓은 ‘노무현 人事’ 뒷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여권 고위 관계자 Q씨는 최근 사석에서 기자에게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최근까지 정부 고위직 인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그간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도 많고, 특정인사 발탁·경질의 구체적 사유를 밝히고 있어 관심을 끈다.

    Q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고영구씨의 국가정보원장 임명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200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Q씨를 비롯한 노무현 당시 당선자 측근들이 고영구씨를 국가정보원장으로 천거하자 노 당선자는 즉석에서 “나와는 껄끄러운 사이인데…”라고 답했다는 것. Q씨는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는 개인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참모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고씨가 그대로 국정원장에 발탁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고 원장은 1990년대 초 민주당에 함께 몸담은 적이 있는데 그때 당내 문제로 의견충돌을 빚어 관계가 소원했다고 한다. 1997년 대선 때는 고 원장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원했는데, 이 또한 노 대통령과는 다른 길이었다. 고영구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의 진보적 변호사여서 그의 국정원장 임명에 대해 일부 언론과 야당에선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적어도 임명 초기에 노 대통령은 고 원장과 그리 코드가 잘 통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극상’이냐, ‘정실인사’냐

    서동만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경질은 그 이유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Q씨는 “서 실장의 경질도 노 대통령-고 원장의 소원한 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동만 실장은 고 원장이 노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국정원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원 간부 인사에서 개혁적인 인물의 과감한 기용을 주장하는 서 실장과 온건한 노선을 택한 고 원장이 갈등을 빚었으며, 급기야 회의석상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Q씨는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이 이를 ‘하극상’이라고 판단했으며, 서동만 실장의 경질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결국 경질 요청을 수락했는데, 서 실장은 이런 청와대의 움직임을 미리 알았으며 자신의 경질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청와대측과 상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Q씨의 이런 주장은 서 실장이 밝힌 본인의 경질 배경과 사실관계에서 거의 일치한다(82쪽 서동만 인터뷰 기사 참조). 다만 서 실장은 고 원장의 인사 스타일을 ‘정실인사’라고 주장한 반면 Q씨는 “고 원장의 인사 스타일엔 문제가 없는데 서 실장이 하극상을 일으켰다”며 같은 사안에 대해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강철, 정무수석은 낙점 못 받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대검 중수부의 여야 대선자금 수사 등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도 특별했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자신의 주변을 너무 심하게 뒤진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노 대통령과 검찰은 긴장 관계로 비쳐져 왔는데, 이런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는 검찰 간부가 있다고 한다.

    Q씨는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장관 인선은 직접 챙겼다. 차관 인선은 대부분 참모들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대통령이 차관에 임명하라고 직접 지시해 그렇게 된 경우가 있다. 정상명 당시 법무부 차관(현 대구고검장)이 바로 그다”고 말했다.

    Q씨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법무부 차관 인선만큼은 내 뜻대로 했으면 합니다. 정상명씨를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했으면 합니다”라고까지 했다는 것. 정상명씨의 성품과 자질에 대해 단순한 사시 동기(17회) 이상의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최근 검찰총장 인선에선 사시 15, 16, 17회가 모두 물망에 올랐으나 15회인 김종빈씨가 내정됐다.

    ‘무관의 실세’로 통하던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은 2004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추천을 받기도 했으나, 노 대통령은 적임이 아니라고 봤다고 한다.

    Q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에서 특정지역 차별, 편가르기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경북 출신인 허준영씨의 경찰청장 임명이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는 것. 인수위 시절 이광재 현 의원, 신계륜 현 의원 등 당선자 측근 4명이 청와대 치안비서관 후보 명단을 당선자에게 올렸다. 그런데 네 그룹 중 세 그룹이 허준영 당시 강원지방경찰청장을 천거해 그가 치안비서관이 됐다고 한다. 허씨는 이후 단기간에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경찰청장에 올랐다.

    허 청장 전임인 최기문 경찰청장이 임기를 불과 수개월 앞둔 지난해 말 중도 사임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와의 불화설 등 설왕설래가 많았다. Q씨는 “1, 2월 경찰 간부 인사가 완료돼야 이사 등을 끝내고 3월부터 정상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임 경찰청장 임명을 앞당겨 신임 청장이 인사를 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최 전 청장의 사임은 ‘계절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는 설명. 그러나 Q씨는 “일부 자리가 빈 경무관 인사를 최기문 청장이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청와대와 불편해진 점은 사실”이라고 밝혀 청와대와의 불화설이 근거 없이 나온 얘기가 아님을 시사했다.

    김광림 재경차관, ‘親한나라’로 분류

    보수 성향 관료들이 대거 포진된 경제부처의 경우 ‘탕평인사’가 특히 빛을 발했다는 게 Q씨의 평가다. Q씨는 그 예로 “노 대통령 취임과 함께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발탁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광림 차관(경북 안동)과 최경수 조달청장(경북 성주)은, 인수위 시절 당선자의 일부 측근 그룹에 의해 ‘친(親)한나라당 성향’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런 오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을 요직에 발탁했다”고 말했다.

    Q씨에 따르면 대선 직후 여권 일각에선 “경제부처의 OOO은 2002년 ‘이회창 대세론’이 한창일 때 경제정책 관련 당정회의 문건을 통째로 이회창 후보 진영에 넘겨준 전력이 있다”는 식으로 경제관료들의 성향을 내사하기도 했다는 것. Q씨는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으며 경제부처 인사 때는 더욱 철저하게 진보·보수의 정치색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인사 때마다 참여정부를 더욱 고민에 빠뜨린 것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출신지역 문제였다고 한다. 동서화합, 균형발전을 기치로 내건 정권인 만큼 특정지역을 편애한다는 오해는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는 것. 특히 영남·호남 출신자들의 지역안배에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Q씨의 설명이다. 최근 인사에서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경찰청장에는 TK 출신, 검찰총장엔 호남 출신, 국세청장엔 PK 출신이 임명됐다. 강원도 출신인 고영구 국정원장을 더하면, 4대 사정기관의 기관장은 거의 완벽하게 지역안배가 된 형세다. Q씨는 “이들 4명 중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취임 초, 호남 일부에서 ‘호남인사 소외론’이 제기되면서 ‘기계적 지역안배’를 불사하는 인사 경향이 두드러지게 됐다고 한다. Q씨는 “우리끼리 얘기로 ‘선택과목’ ‘필수과목’이라고 부르는데, 필수과목은 영남과 호남을 지칭한다”고 말했다. 대체로 ‘영남 3, 호남 3, 기타지역 4’의 비율이 된다는 것. 그는 “영남 출신자 중엔 승진 대상자가 많아 어렵지 않은데, 호남 출신자 중엔 DJ 정권 때 승진한 사람이 많아 승진시켜주고 싶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울 때가 간혹 있었다. 매우 예외적인 일이긴 하지만, 일부 부처에선 ‘호남 TO’를 정해놓고 호남 출신 관료끼리 승진 경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권력 실세에 의한 인사청탁은 크게 줄었다는 게 Q씨의 주장. 경찰 인사의 경우 최기문 전 청장이나 허준영 청장에게 경찰관 승진·보직이동 인사 청탁이 들어가 성사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Q씨는 “경찰의 총경 이상 간부 인사의 경우 청와대가 경찰청장에게 대상자를 내려보내는 하향식이 아니라, 경찰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해 그 안을 청와대로 올리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청와대가 이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인사권을 존중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진대제, 인정 안 통하는 미국 스타일

    검찰이나 경찰 총수의 인사권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는 상황에서 이들 사정기관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기란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Q씨는 “검찰은 이미 여권의 통제권에서 벗어났다. 검사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들을 ‘졸’로 본다”고 반박했다.

    검찰총장이 전국 검찰조직의 수사상황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그런 검찰총장을 청와대가 지휘한 것이 과거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들의 수사행위를 일일이 통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논리다. DJ 정부 시절 신승남 검찰총장이 울산지검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부당하게 축소시킨 혐의로 곤욕을 치른 것도 후임 검찰수뇌부에 교훈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대검의 한 검사도 “검찰총장은 직속기관인 대검 중수부는 몰라도 지방검찰청의 검사들이 벌이는 권력형 비리 수사에 대해 ‘축소하라’거나 ‘확대하라’고 지시하긴 어렵다. 실제로 서울지검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비리 의혹을, 대구지검이 같은 당 배기선 의원의 U-대회 비리 관련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어디서 어떤 검사가 어떤 수사를 벌이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청와대가 전보다 검찰권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 등 여당 배려 차원의 인사 또한 전임 정권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한다. Q씨는 “군인공제회 경영진 인사를 국방부 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안다. 그 때문에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정권을 잡았는데 이런 자리 한 두 개도 못 챙겨주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Q씨가 전하는 또 다른 사례.

    “정부가 사실상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한 언론사의 사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고위 간부직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아무런 ‘하명’이 없자 적잖이 당황했다. 결국 대통령측과 잘 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언론사 사장을 찾아가 ‘인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듣고는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됐다고 하더라.”

    그는 “가령 KT는 정보통신부와 특수한 관계에 있지만 아무리 여권 실세라도 KT 측에 인사청탁이 먹히지 않는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도 관행적 인정(人情)이 안 통하는 미국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문성근의 ‘이창동 장관 만들기’

    야당과 일부 언론은 노무현 정부의 인사를 코드 인사로 규정하면서 그 근거로 청와대와 정부 부처 요직에 소위 386운동권 출신자나 급진적 진보 성향 인사를 대규모로 배치한 점, 대통령 측근 인사나 고교 동문을 정부 요직에 발탁하거나 공기업에 대거 내려보낸 점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Q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 비율은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낮다. 대통령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측근 인사들을 곁에 두고 함께 일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정부에 들어온 386 운동권 등 측근도 따지고 보면 수십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은 실무형으로 전환됐다. 중요한 사실은 국정 전반은 공무원 조직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그룹이 맡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93만명 공무원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지역차별 배제, 청탁 배제, 정치성 배제, 각 기관의 인사권 독립성 강화, 능력·실적 위주 인사 시스템 도입 등 인사개혁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감독 이창동씨의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 임명 등 일부 인사는 지지세력에 대한 배려 성격이 강했다는 게 Q씨의 설명이다. 대선 때 명계남씨와 함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를 이끈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문씨는 이창동 감독에게 몇 번이나 장관직을 맡으라고 권유했으나 이 감독은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대타’로 거론되어온 L 전 의원에게 거의 장관직이 돌아가는 듯했으나 막판 극적으로 문씨가 “이 감독 설득에 성공했다”고 알려옴으로써 이 감독이 장관직을 맡게 됐다고 한다.

    L 전 의원은 이후 모 공기업 사장으로 가는 듯하다가 좌절됐고, 17대 총선 때는 당선이 유력한 서울 강북의 한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한 뒤 다른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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