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동파는 자신을 ‘창해일속(滄海一粟·푸른 바다의 좁쌀 한 톨)’에 비유했다. 무한한 우주에서 무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빗댄 말이다. 하지만 그의 ‘적벽부’는 천년의 세월을 넘어 천하의 명문으로 남았고, 그의 요리 또한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게 집주인 전수천(全壽千·58)씨의 설명이다. 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전씨는 동네 한쪽에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설치해놓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전씨에게 미술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 속에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역전 드라마’다. 진정한 예술가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 그의 집안은 무척 가난했다. 그에게 허용된 정규교육의 기회는 중학교까지였다. 초·중학교 시절 각종 사생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미술에 소질을 보였지만 미술은 고사하고 고교 진학조차 접어야 했다. 농사일을 도우며 5년 만에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전씨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다. 피 튀는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걸고 2년간 모은 돈으로 1973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전씨는 도쿄 무사시노대 유화과에 이어 와코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81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명문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미술대학원을 마쳤다.
전씨의 작품세계는 그림에서 조각, 그리고 설치미술로 확장됐다. 작품의 기본적인 테마는 ‘일상 속의 인간’이다. 또한 리얼리티를 지향한다.
전수천씨의 요리솜씨를 지켜보는 화가 신수희씨(맨 왼쪽) 와 전씨의 부인 한미경씨의 친구들. 전씨는 한씨(48·아래 사진)와 4년 전 늦깎이 결혼을 했다.
그의 1980년대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을 빌려서 사는 소라게’를 그린 유화 시리즈다. 풍요로우나 어지럽던 당시 세태를 소라게에 빗대 신랄하게 꼬집은 것. 그런 까닭에 작품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매우 음산하다. “상당히 진지한 사고로 세상을 보는 작업이었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전씨의 예술성은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설치미술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공인받기에 이른다.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각종 산업폐기물과 TV 모니터, 네온 등과 우리네 서민들의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신라 토우를 대비해 과거와 현재, 물질과 정신,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강조한 이 작품으로 그는 한국인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난 지 22년 만이었다. 그는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를 맡고 있고, 국내외를 오가며 여전히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나는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내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을 보며 산다. 작업을 하면서 욕망의 불덩어리를 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리얼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br>-전수천의 ‘작가노트’ 중에서-
전씨가 ‘자신 있게’ 준비한 요리는 ‘동파육 요리’다. 그 옛날 소동파가 유배지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에서 가장 흔하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많은 이에게 권하기 위해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돼지고기를 오랜 시간 삶고, 튀기고, 조리는 것. 먼저 대파와 양파, 생강, 통후추, 설탕, 소금을 돼지고기와 함께 넣고 1시간 반 정도 푹 삶는다. 압력밥솥을 이용할 경우 4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삶은 돼지고기에 녹말가루를 묻혀 고기 색깔이 갈색이 날 때까지 기름에 튀긴다. 이 과정은 취향에 따라 생략해도 된다.
그 다음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마늘과 파, 생강, 마른고추, 설탕, 간장, 유자청, 청주, 조미술(미림) 등을 넣어 10분 정도 끓인 후 마늘과 마른고추, 생강을 건져낸다. 여기에 돼지고기를 넣고 맛이 충분히 밸 때까지 조리면 된다.
이 정도 익히면 아무리 질긴 돼지고기라 해도 칼을 대면 부서질 정도로 흐물흐물해진다. 이 고기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야채는 청경채. 청경채를 살짝 데쳐 4등분한 뒤 고기를 싸 먹으면 매콤달콤한 육질과 채소가 어우러러져 기 막힌 맛이 난다.
전씨가 자신이 만든 요리로 ‘중년 여성들의 점심식사’를 서빙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소설가 신경숙씨, 가운데 앉은 이가 부인 한미경씨, 그 오른쪽이 화가 신수희씨.
그는 올해도 ‘암트랙 2005 프로젝트’라 이름붙이고 또다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건 바로 그가 꿈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을 찾아서, 그것이 우리들에게 왜 중요한지를 발굴해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