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모르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름하여 ‘머리 얹은 날’이다.
늦게 입문했지만 뭔가 보여주리라 단단히 결심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한 대로만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쳐보는 드라이버샷은 두 번의 헛스윙과 함께 OB를 내고 말았다. 왕초보를 데리고 가서 머리를 얹어준 고마운 은인은 홀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내 공을 찾아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다.
산신령과 용왕님이 내 공을 좋아하시는 건지, 쳤다 하면 공이 심심산골 숲속으로 꺾여 들어가거나 호수 속으로 퐁당퐁당 빠졌다. 공에 무슨 자석이 달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치다 보니 이날 하루 동안 잃어버린 공이 무려 22개. 캐디에게 물었다.
“이거 기록 아닙니까?”
그러자 대답이 걸작이다.
“아뇨, 저는 46개까지 잃어버린 손님도 봤는데요, 뭘.”
분명 위로 삼아 해준 말일 텐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골프 스코어는 이제 90대 중반이다. 학창시절에야 100점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초보 골퍼의 첫 목표는 100을 깨는 것 아니겠는가. 100을 깨는 데 6개월이 걸렸으니 나름대로 성공적인 경력이다. 문제는 이게 완전히 깨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컨디션에 따라 지금도 100을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슨 조화인지.
이 글을 읽을 여러 골프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바로 이것이다. 골프라는 운동은 도대체 왜 이렇게 기량이 쉽게 늘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어서 사람을 일희일비하게 만드는가 말이다.
연습장에서 환상의 실력이 마구 발휘되어 ‘오늘은 동반자 다 죽이겠다!’고 벼르고 나가면 반드시 뒤땅과 탑볼이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가 하면 전반에 공이 너무 잘 맞아 ‘야! 오늘은 드디어 80대에 안착한다’고 기고만장하고 있으면 후반에는 꼭 ‘양파’가 나와서 결국 90대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많다.
골프는 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일까. 공이 워낙 작아서일까? 아니면 골프채가 너무 길어서일까.
내게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골프 라이벌이 있다.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출신인 이왕표 선수다. 연습장에서 함께 연습하고 필드에도 같이 나간다.
거구에다 힘이 좋은 이 선수의 드라이빙 거리는 평균 300m. 그런 까닭에 세컨드샷은 언제나 나보다 100m쯤 앞에서 준비한다. 세컨드샷에서 A 클럽을 잡은 그가 5번 클럽을 잡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하다는 것은 불문가지. 저만치서 “왕공, 빨리 오시오” 하고 웃으며 성큼성큼 그린 바로 앞까지 나가곤 한다. 늘 겪는 일인데도 약이 바짝 오른다. 멀리 산 중턱에 서 있는 그를 보면 얄밉기까지 하다. 얼굴에 수염까지 기른 터라 골프장에 온 산적같다.
골프가 요물인 것이, 이렇듯 탁월한 드라이브 실력을 자랑하는 이왕표 선수도 늘 나를 이기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느새 보기 플레이어 대열에 들어섰고 나는 아직도 90대에서 헤매는 중이므로 이 선수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무조건 내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드라이버는 장타인 반면 OB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게도 얼마든지 역전의 기회가 오는 것이다. 신체조건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그게 언제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운동이 또 있을까.
물론 잘 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골프가 재미있다는 것, 골프가 이처럼 많은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 또한 그 ‘반전의 가능성’ 때문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만 해도 변덕스럽기 이를 데 없는 성적에 화가 나 당장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소리를 질렀다가도, 다음날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내일 골프 치러 갈래?” 하고 물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음 그래, 어디로 가는데?” 하게 된다. 머릿속에서는 혹시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을 들어 승리를 맛보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골프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는 방송에서 해외로 나가는 아마추어 골퍼들을 향해 “왜 아까운 외화를 써가며 외국으로 나가십니까, 국내에도 골프장이 많은데” 하며 탓하곤 했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과하고 싶을 정도로 현실을 잘 모르는 말이기도 했다. 태국에 가서 그린피 2만원, 캐디피 7500원, 캐디 팁 6000원을 내고 나자 분명히 깨달았다. 카트를 타고 페어웨이까지 마구 돌아다니다가 내 공이 떨어진 지점에 카트를 세우고 개인 캐디가 뽑아준 아이언을 들고 세컨드샷을 하다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화, 대중화 하지만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골프를 미루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즐겼으면 하는 것은 나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골프를 치는 데 필요한 각종 비용을 인하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다닌다. 요금을 내리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보라고 하면 이내 말문이 막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골프 애호가들이라면 내 맘을 이해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