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문제와 관련, “단기적으로 평화적 해결에 주력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경우를 상정한 적극적인 군사적 대응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군사적 대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정부 산하기관 연구자에 의해 공개적으로 제시된 것은 처음.
-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KIDA) 군비통제연구실장이 미래전략연구원 및 비상기획위원회 간행물에 기고한 글을 발췌해 싣는다. [편집자]
하와이 진주만의 해군기지에서 수리중인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그린빌.[AP]
우선은 4차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부시 행정부로부터 원하는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향후 협상을 염두에 두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이번 성명이 대화의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북한도 원하는 조건이 성숙되면 대화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혀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북한이 오랫동안 원해온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수순이라는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은 그동안 단순히 방어적 목적뿐 아니라 내부통치, 외화획득, 대남 전략적 우세 등을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왔다. 이것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핵 포기의 대가로 대단히 많은 것을 원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2월10일 성명에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바에는 핵 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한국 정부의 대응 또한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6자회담의 재가동 등 ‘벼랑 끝 전술’에 대한 외교적 대응에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을 보유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핵무기가 갖고 있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고, 북핵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발생하는 군사적인 의미와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잡한 핵무기’ 주장의 허점
주지하다시피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보유하고 있다면 구체적인 수량과 위력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각국 정보 당국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위협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은 무책임한 낙관론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우선 ‘북한은 아직까지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므로 핵을 갖고 있다 해도 조잡한 수준이므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역사적 선례를 무시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실험 없이 핵폭탄을 만들어 보관했다는 사실이나 이스라엘이 핵실험 없이 방대한 핵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핵실험 유무는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다.
또한 아무리 조잡한 수준의 핵무기라 하더라도 살상력은 엄청나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역사상 가장 초보적인 우라늄탄 ‘리틀보이(Little Boy)’와 8월9일 나가사키를 강타한 최초의 플루토늄탄 ‘팻맨(Fatman)’은 수십만명을 죽이고 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조잡한 핵무기론’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핵무기 투발수단에 관한 논의에도 허점이 많다. 정보 당국에서는 ‘비행기 투하는 가능하나 미사일 탑재는 불가능하다’고 추정한다. 북한이 보유한 항공기 가운데 핵폭탄을 실을 수 있는 것은 구 소련이 제작한 IL-28 정도인데, 그런 항공기라면 영공을 넘어오는 순간 한국 전투기들이 요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같은 설명은 분명 설득력이 있지만 다수의 위장 항공기가 동시에 출격했을 경우 한 대도 남김없이 요격할 수 있느냐는 반문에는 대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사일에 탑재된 핵무기는 요격하기 어렵다. 북한이 핵폭발장치를 처음 제작한 것이 1992년 이전이라면 그 이후 소형화 및 미사일 탑재에 진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미사일 탑재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성능 화약과 티타늄처럼 가벼운 금속이 개발된 현 시점에서 핵무기의 경량화는 비교적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지리적으로 인접한 남한에 대한 위협수단으로 사용할 방법은 많다. 핵폭탄을 밀반입한 후 원격조정 방식으로 터뜨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투발수단의 유무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는 일이다.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정착할 경우 국제사회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국제정치적 측면을 생각해자.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비확산체제의 명분을 약화시켜 제2, 제3의 북한을 탄생시킬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된다.
1999년 6월 연평해전 당시 해군 고속정(오른쪽)과 북한 경비정의 충돌 장면.[국방부]
북핵의 기정사실화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더욱 부추겨 중국과 러시아를 긴장시키고 대만의 비핵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 이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수 없는 한국은 전략적 왜소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다른 측면인,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적 대치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전력 측면에서 볼 때 북핵은 야포, 미사일, 화생무기 등 기존의 기습공격력을 증강하는 것이 되며, 남북간 군사균형의 변형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안보전략과 주요 전투교리는 북한 핵무장을 가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북핵이 기정사실화하면 이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북한은 더욱 다양한 카드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저강도 도발의 기정사실화가 쉬워진다. 이와 같은 상황전개는 북한이 기습공격을 통해 백령도를 점령한 후 핵 위협으로 탈환을 저지할 경우를 가정해보면 분명해진다. 이 경우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혼란에 빠질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을 우려한 포기론과 탈환론이 맞서 결정과정이 표류할 가능성이 많으며, 결정과정이 길어질수록 도발의 기정사실화가 용이해진다. 반대로 한국의 대응수단은 제한적이므로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더라도 확전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대상이 바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상황에서 NLL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대응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자면, 마찬가지 원리에서 화생무기 테러도 용이해진다. 핵무기를 앞세워 대남 전략적 우세를 확고히 하면서 화생무기를 이용한 테러를 자행하는 경우 한국은 마땅한 대응수단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2001년 미국의 탄저균 사건에서 보듯 화생무기가 테러에 사용될 경우 그 위력도 재래식 무기에 비해 막대하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일단 피해를 보게 되면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군사적 균형이 붕괴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남한의 군사적 대응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북핵의 기정사실화는 대응방법과 관련해 한미 간의 이견을 심화시키고 한미동맹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민들이 핵을 가진 북한과의 전쟁을 기피하게 됨으로써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도 약화될 것이다. 반면 한국은 약화되는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북핵이 기정사실화할수록 대미 안보의존이 심화되고 자주국방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 한국의 안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의 선례
물론 현재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이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오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최대의 당면과제는 6자회담을 재개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결정적인 지렛대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은 북핵 문제의 독립변수라기보다는 종속변수인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회담 재개 및 평화적 핵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한국이 2, 3차 6자회담에서 효과적인 중재역할을 수행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한국으로서는 북핵 사태가 개선 또는 악화될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양쪽 시나리오에 대비한 유인책과 압박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개선 시나리오에서는 지금보다 더욱 구체적인 유인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의 일방적인 고백과 자진 핵 해체를 의미하는 리비아식보다는 우크라이나 방식, 즉 ‘넌-루거(Nunn-Lugar)’ 프로그램의 북한 적용을 제안해볼 만하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우크라이나 양자간 및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 삼자간의 복합적 합의구도에 의해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기로 구체적으로 합의했으며, 1993년 이래 약 7억달러의 자금을 제공받으면서 2000여개의 핵탄두를 모두 폐기하거나 러시아에 반납했다. 이후 원자력 안전과 첨단화에 박차를 가해 현재 서방형 원전 도입을 추진중이며, NATO와 협력하여 서방세계 편입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훌륭한 모델이 될 만하다.
반면 악화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제2의 대북정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재하는 국면이 전개될 경우 한국도 실질적 현금지원을 중단하고 북핵 문제 안보리 회부 지지, PSI 찬성, 경수로 공사 영구 중단, 미사일 방어계획 참여 등을 검토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유인책은 압박책과 병행해서 제시할 때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와 함께 한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할 수 있는 일종의 레드라인에 대해 미국과 사전에 합의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합의된 레드라인에 도달하기 전까지 미국은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인정할 공산이 크다. 이러한 합의는 미국의 대한(對韓) 불신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한미관계를 추스르는 데 유효할 것이다.
첨단무기 이용한 대량보복전략
길게 보면 북핵이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하면 한국으로서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더불어 생존하는 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싫든 좋든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위협이나 핵 사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대미 안보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북핵에 대한 독자적인 억제력을 추구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에 상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수는 없지만, 첨단 재래무기 개발을 통해 대북 억제력을 증강하는 일은 국제적 제약 없이 추진할 수 있다. 북핵이 기정사실화로 가닥을 잡을 경우 한국은 장기적 생존전략 차원에서 첨단 재래무기에 의한 비대칭 대량 보복전략(asymmetric massive retaliation stra- tegy)을 검토해볼 만하다. 핵전력이 아니면서도 유사시 북한의 지휘부, 정보중추, 통신시설, 전력시설, 산업중심지, 인구밀집지대 등을 초토화할 수 있는 전략무기들을 확보함으로써 비대칭 보복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적 전략무기로는 공격용 미사일, 조기경보기, 군사위성, 무인기, 정밀타격탄, 지하관통탄, 원자력추진 잠수함 등이 있다. 이런 새로운 전략과 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구 설치와 전문인력 배치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대량보복전력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의 ‘전략군’이나 특수작전부대를 창설할 수 있다.
아울러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한 비핵화공동선언이 북한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서 사문화한 이상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투입되는 장기적인 과제인 만큼 북핵 문제의 추이나 국제정치의 향방을 종합해 추진시기와 방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가핵안보청’과 ‘핵비상탐색팀’
사실 북한의 핵사용 또는 핵사용 위험은 한국에 있어 고강도의 군사적 및 비군사적 위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향방에 따라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비상대비체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부와 국민은 사회안정, 체제유지, 국가존립, 환경보전 등을 꾀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위기관리의 유형은 위협의 근원을 해소하는 방식에 따라서 ‘교섭적 위기관리’ ‘수습적 위기관리’ ‘적응적 위기관리’로 구분된다. ‘교섭적 위기관리’는 타국·국외집단의 고의적인 도발행위로 발생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와 협상을 전개하는 것이며, ‘수습적 위기관리’는 타국의 실수나 무의식적인 행위 또는 재난재해나 대형사고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적응적 위기관리’는 새로운 무기체계의 등장, 세력분포의 변화, 동맹관계의 변화 등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한 위기에 적응·타개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북핵으로 인한 위기는 이 세 가지 유형의 위기관리를 모두 포함한다.
한국의 경우 위기관리는 대통령, 국무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비상기획위원회 등과 같은 정부 차원의 기구와 위기상황에서 군사력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합동참모본부 차원에서 수행된다. 통상 위기에 대한 대처는 예방·대비·대응·복구 등의 단계를 거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속한 상황인식, 정책결정, 정책집행, 정책평가 등을 수행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우선 각 기구간의 유기적 협력관계 또는 명령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어야 하며, 정보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각 기구의 담당자들이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 이러한 전문성이 충분히 발휘되어 최고 결정권자에게 합리적인 대안들이 신속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와 연방재난관리청(FEMA), FBI, CIA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미국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관련한 위기 가능성은 비교적 최근의 사안이기 때문에 한국은 이에 대해 충분한 비상대비태세를 갖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국은 북핵을 독자적으로 예방하고 대응하는 능력에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황발생 후 신속히 수습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복구능력도 미흡한 상태다.
1992년 2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이 각각 내부절차를 거친 ‘비핵화공동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북핵 문제는 한국으로 하여금 비상대비체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한국으로서는 핵문제의 향방에 따라 새로운 기구의 신설이나 새로운 기능의 보강 등 필요한 조치를 예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관과 낙관의 조화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도 미국이 ‘외교적 노력의 지속’을 천명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국이 확실한 방향을 내비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한국정부가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돌입하는 경우 핵문제와 대북지원 분리 정책을 고수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때 한국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한미동맹의 장래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힘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은 기대를 갖고 노력해야 할 때다.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했다고 해서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이 ‘물 건너 간’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북한이 ‘조건만 성숙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대화 재개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 드라마틱한 연출을 빚어내는 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생존의 마술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타협을 연출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핵문제가 미해결 상태에서 시간만 흐를 경우 한국에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핵 보유를 선언한 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에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이는 북한에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거나 핵무기의 소형화 또는 성능 개선을 시도할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결국 훗날 북한이 통제불능의 핵 강국으로 등장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언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막연히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다. 위기가 고조될수록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비상대비체제를 다지는 것은 안보를 담당한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다.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앞서 제기한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