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신임 대법관은 본인 명의로 농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주소 허위 기재를 통한 위장전입 방식을 동원했음을 시인했다.
1989년 8월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인 양승태 대법관은 등기를 하면서 ‘안성군 일죽면 송천리’로 주소를 허위로 기재해 일죽면 농지를 취득했다(위). 아래는 양 대법관이 취득한 일죽면 농지.
지난 2월22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25일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임명된 양승태(梁承泰·57) 신임 대법관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인근 주택 등의 재산 내역을 신고했다. 그러나 ‘현재 보유 재산’만 신고하도록 한 공직자재산공개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양 대법관은 1989~93년 부동산 거래과정에서 위법 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본인은 “내 명의로 이뤄진 거래지만 실제론 사별한 아내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1989년 8월1일 양 대법관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533번지 밭 982㎡를 취득했다. 4년 후인 1993년 10월12일 양 대법관은 이 밭을 J씨에게 팔았다. 3년 뒤인 1996년 6월19일 J씨는 명의신탁해지 방식으로 이 땅의 소유권을 K씨에게 이전했다.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533번지의 소유권 변천 기록을 담은 ‘폐쇄 등기부 등본’은 1989년 8월1일자로 이 땅이 ‘양승태’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됐다고 밝히면서, 소유자의 인적사항을 ‘양승태 4801OO-OOOOOOO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OO번지’로 기록하고 있다.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OO번지’는 ‘양승태’의 주소다. 등기부등본엔 해당 부동산 소유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이면서 동시에 실거주지인 주소를 기록해야 한다.
주소 허위 기재해 등기
등기부 등본의 ‘양승태’는 양승태 대법관과 동일인물로 확인됐는데, 문제는 등기부 등본에 기록된 ‘양승태’의 주소가 주민등록상 주소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1989년 8월1일 당시 양 대법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였다(당시는 양 대법관이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였으므로 그의 실제 거주지는 제주도였다).
이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송천리 농지를 취득한 이후인 1993년 10월12일 양 대법관측은 ‘등기명의인 표시정정’을 하면서 자신의 주소를 ‘송천리 OO번지’에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로 변경했다. 정정 사유는 ‘신청착오’로 돼 있다. 양 대법관측은 송천리 533번지 밭을 취득해 등기를 하면서 ‘착오’로 자신의 주소를 ‘송천리 OO번지’로 오기했다는 것이다.
거액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자신의 소유권을 명시해두는 등기부 등본에다 ‘착오’로 엉뚱한 주소지를 적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양 대법관측은 ‘등기명의인 표시정정’을 통해 자신의 주소를 원래대로 바꾼 1993년 10월12일 당일 송천리 533번지 땅을 J씨에게 매각했다. 이날 양 대법관으로부터 땅을 산 J씨의 주소 또한 ‘송천리 OO번지’로 돼 있었다. 양 대법관측이 1989년 땅을 취득할 때 등기부 등본에 실수로 잘못 적었다는 주소가 4년 뒤 그 땅을 산 사람의 주소와 일치하는 것이다.
송천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땅의 거래과정을 지켜봤다”면서 미스터리를 해소해줬다.
그는 “J씨는 부동산중개업자다. 송천리 OO번지는 J씨의 주소지였다. 양승태씨는 서울에 주소지를 둔 외지인이어서 농지인 송천리 533번지를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양씨측은 J씨의 주소를 자신의 주소인 것처럼 해 송천리 533번지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했다”고 말했다. 부동산중개업자인 J씨로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외지인에게 그 정도 편의는 봐준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등기부 등본상엔 J씨가 1993년에 이 땅을 산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1996년 J씨는 명의신탁해지 형식으로 소유권을 강모씨(주소·송천리 OOO번지)에게 넘겼고, 강씨는 다음해인 1997년 양승태씨처럼 ‘등기명의인 표시변경’ 방식으로 자신의 주소를 송천리 OOO번지에서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으로 바꿨다.
이 주민은 “서울 사람(서울 강남구에 사는 양승태 대법관)이 송천리 533번지 밭을 사서 다른 서울 사람(서울 서초구에 사는 강모씨)에게 그 밭을 판 것이 사안의 본질인데, 주소를 현지인인 것처럼 허위 기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승태 대법관은 인터뷰에서 부동산업자의 도움으로 실제 주소가 아닌 허위 주소를 등기소에 제출해 송천리 533번지를 취득한 사실을 인정했다.
양승태 대법관이 송천리 533번지 농지를 취득한 1989년 8월은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지 소재지 소재 시군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만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양 대법관측은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 등기 신청 관련 서류에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이 아닌 농지 인근 주소지로 허위 기재한 것이다. 이후 송천리 533번지 농지를 팔 때가 되자 ‘신청착오’였다며 실제 주소로 등기부등본을 정정한 것이다.
최영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부인이나 이헌재 전 부총리의 부인은 농지 부근으로 주민등록상 주소를 옮겨놓은 뒤 농지를 매입하는 ‘위장전입’ 방식을 동원했다.
그러나 양 대법관측의 경우엔 자신의 주민등록을 농지 부근으로 옮겨놓지도 않은 채 부동산중개업자를 끼고 주소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위장전입’ 방식을 사용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위장전입’ 한 한 동사무소 동장에 대해 200만원의 벌금형을 판결해 구청에 의해 퇴직처분되도록 했다. 그에 앞서 대법원은 2001년엔 ‘유권자 위장전입’이 당락에 영향을 줬다는 등의 이유로 서울 동대문을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무효를 선고하기도 했다.
다음은 양승태 대법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사별한 아내가 알아서 한 일”
-1989년 8월 송천리 533번지가 본인 명의로 등기된 사실이 있습니까.
“내 이름으로 등기했습니다.”
-등기를 낼 때 양 대법관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서울인데, 등기부엔 송천리 OO번지로 돼 있습니다. 일죽면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 등기를 할 때 일죽면에 거주하는 것처럼 주소를 허위로 기재한 것인가요?
“네. 등기를 낼 때 실제 주소와 다르게 써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년 뒤 이 땅을 산 J씨는 실제로는 땅 매매를 알선한 부동산중개업자로, 1989년 양 대법관이 이 땅을 살 때 J씨의 주소를 사용해 등기하도록 J씨가 편의를 봐줬나요.
“그 땅은 내 이름으로 돼 있지만 아내가 친지 소개를 받아 거래에 나서서 산 것입니다. 등기를 할 때 실제 주소와 다르게 기재하는 과정에서 J씨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팔 때도 내가 J씨에게 ‘당신 소개로 이 땅을 사게 됐으니 당신이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J씨가 나서서 그 땅을 팔아줬던 것입니다.”
-땅은 본인 명의로 돼 있는데 거래는 부인이 다 알아서 한 것인가요?
“그때는 돈을 모아 땅을 사는 것을 요즘처럼 나쁘게 보는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사별한 아내가 재산을 좀 늘려볼 요량으로 사둔 것입니다. 나는 당시 제주도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사는 데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거래를 도덕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생각과도 맞지 않아 그때 아내와 다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팔아 거의 이익을 남기지도 못했으며 땅을 판 돈은 아내의 암 치료비 등으로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 땅 판 돈마저 없었으면 치료비를 대느라 법관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어야 할 겁니다. 고인을 들먹이며 변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법원을 보는 시각도 안 좋게 될 것 같고…. 30년 법관 노릇하면서 딱 한번 집안 단속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재산신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송천리 땅 거래 때는 재산이 4억∼5억원쯤 됐는데, 그 사이 이사도 다니고 해서 지금은 성남 분당 가는 길의 주택과 재혼한 아내의 재산 등 14억원 정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