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인 김병주 전 칼라일 아시아 회장.
실사는 3개월 동안 진행됐고 실사 비용으로만 2500만달러(약 275억원)가 지출됐다. 법률자문에는 신&김(세종)과 김&장 등이 참여했다.
실사 작업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금융감독위원회가 김병주 회장에게 “칼라일이 은행이냐?”고 물어왔다. 물론 김 회장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금감위는 “그렇다면 이 거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그러나 김 회장은 1월 말까지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이치방크는 사모펀드인 도이치 캐피털을 칼라일에 소개한 바 있다.
“결국 우리는 한미은행이 필요한 4억5000만달러 중 도이치방크를 5000만~1억 달러 규모로 참여시키기로 했죠.”
김 회장은 칼라일 지분 90%와 도이치방크 지분 10%로 구성된 인수 방안을 들고 금감위를 찾아갔다. 그러나 금감위는 “은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도이치방크가 대주주로서의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도이치방크 측은 프랑크푸르트 본사와 협의했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미쳤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도이치방크가 우리와 거의 동등한 지분을 갖는 것처럼 보이려고 복잡한 구조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러나 금감위는 지분을 50 대 50으로 하라고 통보했다. 도이치방크 지분을 49.9%로 하되 인수합병(M&A)이나 유상증자 등에 거부권을 갖는 절충안도 제시됐다. 그러나 이 무렵 도이치방크는 한미은행 인수협상에 대한 관심을 이미 잃어가고 있었다.
보통 이쯤 되면 타월을 던지게 마련이지만 김병주 회장은 달랐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법령을 개정하거나 법규 적용을 면제받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장인인 박태준 총리를 찾아갔다. 박 총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인용했다. 금융산업에 필요하다면 외국인이라는 게 무슨 문제냐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여기서 모멘텀을 얻어 재경부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을 상대로도 로비를 벌였다.
이헌재의 약속과 이용근의 번복
“나는 한국 경제의 트로이카 3명(김 회장은 이들을 ‘짜르’라고 표현했다-편집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동일인 주식 보유한도를 면제해주거나 관계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보여줬습니다.”
김 회장은 이 시점에 칼라일 단독으로도 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학계와 산업계 대표로 구성되는 금감위의 감독기구(Super- visory Council)도 이 방안을 승인했다. 이 기구가 승인하면 금감위원장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이(rubber-stamped) 이 결정을 따르게 마련이다.
김 회장과 참모들은 용기백배했다. 그러나 이내 (2000년 1월) 개각이 단행되어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이용근씨로 교체됐다. 신임 금감위원장은 취임 초기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일엔 일절 손대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이용근 위원장은 감독기구의 승인에 대해 매우 이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회장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J.P.모건의 준(準)전략적 은행투자 전문 펀드인 ‘코세어’에 접근했다. 도이치방크 자리에 ‘코세어’를 끌어들이면 금감위를 안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코세어’가 금융기관이며 ‘4%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금감위에 설득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