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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청부폭행, 性상납, 남자후배 윤간… 폭력과 섹스는 일상사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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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진회 서울 6만명, 전국 40만명 추산
  • ●‘얼짱’ ‘몸짱’ ‘공부짱’ 발탁
  • ●‘알 따먹기’ ‘터치’ ‘딸키’…
  • ●록카페서 대규모 연합 모임 “못할 것이 없다”
  • ●‘오토바이 따는 법’‘향수 훔치는 법’ 등 인터넷으로 전수
  • ●주민증 위조해주고 술 파는 파렴치한 어른들
  • ●경찰 단속하면 또 다른 조직 만든다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눈이 유난히 커 보이는 김선희(기사에서 언급되는 모든 학생의 이름은 가명이다.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선배나 친구들에게 보복당할 수 있어서다)양은 중학교 3학년이다. 어른들에겐 귀염성 있게 보이는데, 일진회 선배들과 친구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과 몸매가 통통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선희가 일진회 멤버가 된 뒤 선배 언니들로부터 자주 매를 맞은 것은 커다란 눈 때문이다. ‘노려본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가 생활지도부 교사에게 일진회 활동을 진술한 내용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만약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 이젠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선희는 어느날 친구들과 한강 둔치에 놀러갔다. 그곳에서 여중생 몇 명을 만났다. 이들은 선희에게 다짜고짜 “너 놀거냐?”고 물었다. 뱀처럼 매서운 눈매, 생전 못 들어본 욕설에 기가 죽어 마지못해 “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진회 멤버가 됐다.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방학, 선희에겐 무시무시한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터치’라고 불리는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집이 빈 한 선배의 집으로 선희와 친구 몇 명이 불려갔다. 그곳에서 한 언니로부터 따귀 세 대를 맞았다. “선배들에게 깍듯이 인사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 이렇게 맞는 매는 ‘감정빵(감정을 상하게 만들어 맞는 매)’이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워낙 험악해 아픈 줄도 몰랐다.



신고식은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선배들은 같이 온 친구들과 싸움을 하라고 했다. 마치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려내듯 싸움에서 이긴 학생이 또 다른 학생과 싸웠다. 얼떨결에 친구들과 싸운 선희는 언니들 표현으로 ‘짱’이 됐다. 선희에게 맞은 친구들은 구석에서 훌쩍거리며 울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선배들에게 돈 상납까지 해야 했다. 선희는 “맞고, 돈 모으고, 인사하고, 이런 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선배들이 요구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에게서 돈을 뜯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몇 번 하니까 요령이 생겼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한 친구는 망을 보고, 한 친구는 초등학생을 골목으로 유인했다. 겁에 질린 아이에게 “너 얼마 있어?” 하고 묻는다. 대답을 망설이면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고 윽박지른다. 그러면 대개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다. 선배가 요구하는 돈은 3만~4만원. 모자라면 매를 맞아야 한다.

“그럼, 몇 대 맞을래?”

시키는 대로 했지만, 선희는 자주 붙들려 가서 맞았다. 선배들을 노려본다는 이유에서다. 하루는 학교 근처 노래방으로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또 맞는구나’ 싶었다. 선생님께 털어놓을까도 했지만 그러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얘기해봤자 문제가 되는 학생 몇 명이 하루쯤 혼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선희는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 졸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고, 전학을 가도 보복은 피할 수 없다. 언니들은 서울 시내 거의 모든 학교에서 논다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았다. 소문이 퍼지면 선희는 숨을 곳이 없어진다. 하는 수 없이 노래방으로 갔다.

이미 한 선배가 20명이 들어갈 만한 방을 잡아놓았다. 2, 3학년 선배들 10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2학년 선배 하나가 “노래방 주인이 기웃거리면 그냥 노래 부르는 척해라”고 주의를 줬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3학년 선배 중에서도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언니가 일어나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평소에 인사를 잘 하지 않고,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해 불렀다. 무릎 꿇고, 손은 뒤로 하고 앉아라.”

그러더니 바닥에 침을 뱉고는 그 위에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선희의 교복이 침과 담뱃재로 얼룩졌다. 그래도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뜨면 더 맞는다.

“선희, 너, 잘못한 게 뭐야?”

“돈도 못 모으고, 인사도 안 하고…”

2학년 선배 하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맞는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3학년 선배가 말했다.

“그럼, 몇 대 맞을래?”

“…30대.”

그러자 2학년 선배들이 집단으로 선희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따귀를 때리다가 강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배까지 걷어찼다.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노래책, 마이크, 탬버린으로 맞은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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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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