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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청부폭행, 性상납, 남자후배 윤간… 폭력과 섹스는 일상사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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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후 마치 생리하는 것처럼 배가 아프고 하혈이 있었다. 하혈은 6주 동안 계속됐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야 겨우 하혈이 그쳤다. 선희는 생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자궁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배를 맞은 것이 원인이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쳤지만,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았지만 학교생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이 조직적으로 선희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학생부 교사에게 일진회 활동 일부를 폭로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소문이 나면 ‘사실’이 됐다. 교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조용히 살아라. 나대면(나가서 비밀을 폭로하면) 까버린다’는 휴대전화 메시지가 수없이 들어왔다.

서울 17개 區 연합 결성

견디다 못한 선희는 한 달 동안 결석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교사의 도움으로 그간의 일이 드러났다. 선희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가해 학생들을 모두 만났다. 마음 같아선 모두 고소하고 싶었지만, 딸의 장래를 위해 용서해주기로 했다. 선희는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제 막 어린아이 티를 벗은 선희는 마치 남의 얘기하듯 지난 일을 털어놓지만 언제 어느 때 악몽 같은 기억이 선희를 옥죌지 모른다. 속으로 멍든 상처가 쉽게 지워질리 있겠는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정세영 교사는 5년 동안 일진회를 추적하면서 160개 학교에 다니는 1000여명의 학생들을 지도했다. 이들에게서 받은 진술서만 700여 쪽에 달한다. 그는 확보한 진술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학생들을 서울과 경기도 소재 학교로 찾아가 만나 붙잡고 설득했다.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접속해 일진회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성인 동영상을 올리고, 일탈을 모의하는 사이트를 발견하면 사이트를 운영하는 학생을 찾아가 ‘마스터’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사이트의 마스터가 되면 성인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일진 활동을 그만두라는 글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진회의 심각성은 돈과 폭력, 그리고 섹스의 문화가 선배로부터 후배들에게, 한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파급되면서 점점 강화·확장된다는 데 있다. 2000년 교육정보화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모든 학교에 인터넷망이 깔렸고, 학생들은 인터넷 이용방법뿐 아니라 홈페이지 만드는 기술까지 익히고 있다. 2003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일진을 대상으로 ‘서울연합’이란 홈페이지를 만든 조혜진(현재 중3)양처럼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학교 일진회 사이트를 만들었다.

새로운 기술은 일진회 학생들을 단결시키고, 못된 버릇을 전파하는 쪽으로 악용됐다.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 동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범죄수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주로 물건 훔치는 법과 훔칠 때 망보는 법을 공유했고, 남학생들은 싸움하는 법이나 오토바이 훔치는 법을 공유했다. 중학교 2학년 최동훈군의 말이다.

“오토바이 따는 열쇠를 ‘딸키’라고 불러요. 만능열쇠 같은 거죠. 선배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줘요. 만들기 쉬워요. 여자애들은 주로 큰 서점에서 향수 훔치는 법을 배워요. 훔칠 때는 후배들과 꼭 함께 훔친대요.”

폭력과 섹스는 동전의 앞뒤

정 교사는 일진회 학생수가 서울 6만명, 수도권까지 넓히면 20만명이고, 전국적으로는 4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우려스런 것은 이들이 연합을 결성한다는 사실이다. 서울연합은 2002년에 만들어졌다. 강동구·용산구·광진구 등 3개 구내 학교의 일진 연합으로 출발한 서울연합은 2003년 6개 구로 확장되고, 현재는 17개 구 일진 연합으로 확대됐다고 한다. 여학생 연합 역시 17개 구의 일진들이 모여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연합이 결성됐다는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아직 사회의 규범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어떤 일을 도모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이들은 모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디스코텍에 춤을 추러 간다. 때론 여관을 잡아놓고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이러면서 섹스가 시작된다. 일진이란 조직을 만든 주요한 이유도 이성교제 때문이다. 놀다 보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 폭력을 쓰고 후배를 시켜 돈을 빼앗는다. 학생들에게 폭력과 섹스는 동전의 앞뒤처럼 뗄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김세준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일진회에서 여학생을 사귀었다. 이성교제가 시작되면 선배와 후배들에게 신고식을 해야 한다. 이를 ‘깔식’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약혼식이다. 세준이도 노래방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8초 정도 키스를 한 것 같아요. 나쁜 짓은 안 했어요. 그뒤엔 홈페이지에 우리 관계를 알렸죠. ‘터치’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질투를 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세준이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착각한 여학생은 노골적으로 그 여학생을 해코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친하게 지내던 일진 남학생에게 청부 폭력을 부탁했고, 여자친구로 오인받은 여학생은 성폭행까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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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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