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내 전화를 받았던 직원이 손님을 맞는다. 어제, 그 직원이 전화로 “심수관 14대를 만나실 건가요, 15대를 만나실 건가요?” 하고 묻기에, 잠시 머뭇거리다 14대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두분 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투로 보아 부자(父子)가 한꺼번에 인터뷰에 응하는 일은 없을 성싶었다.
전시대를 보니 작품의 값을 매기는 것도 일본식이다. 3750엔, 5450엔… 하는 식으로 값이 매겨져 있다. 한국 같으면 3500원 아니면 4000원으로 끊어서 값을 정했을 텐데, 뒷자리 수가 ‘정성스럽게’ 따라붙는다. 도대체 50엔의 가치는 뭐고, 왜, 누가 정하는 것일까. 살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으며 다가서는 일본의 상술과 투박간명(?)한 한국식 판매술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느낀다.
심수관씨가 나타났다. 예의 활짝 웃는 얼굴, 개량한복과 도복의 중간쯤 되는 옷차림이다. 작가 시바는 ‘큰 키’라고 묘사했으나 정작 키는 나보다 크지 않다. 생각해보니 시바는 참으로 매운 고추처럼 작은 체구를 가졌다.
대북 강경파 아베 신조가 조선 핏줄?
안채 접견실로 안내한다. 시바가 취재했던 그 방이라고 한다. 밖에서 한국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새 관광객 일행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서 멀지 않은 이부스키(指宿)에 다녀가신 뒤로 한국 손님들이 늘었어요. 우리집에도 다녀가셨죠.”
지난해 12월18일 가고시마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이야기였다. 그때 노 대통령이 여기까지 다녀갔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이 자리가 노 대통령 앉으신 자리이고 (당신이 앉은) 그 자리에 권양숙 여사가 앉았지요. 경호원들이 많이 왔고 경비가 상당히 삼엄했습니다.”
천황이나 황족이 다녀간 자리, 총리를 지낸 정치인들이 스쳐간 자리를 소중히 여기며 반드시 나무를 심고 기록에 남기는 일본 사람들의 습관을 생각한다.
‘일본에는 인격과 대칭되는 ‘물격(物格)’이 있다.’
서울대 인문학 분야 교수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다. 물건과 장소를 중시하고 신격화하며 길이 모시고 보전하는 전통을 말한다. 이는 필시 샤머니즘이나 일본 신도(神道)와도 관계가 있을 터. 어쨌든 욘사마 붐으로 남이섬과 춘천의 준상이네 집이 일본 관광객으로 붐비는 것도 그런 ‘물격’의 연장선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미 일본인 사쓰마 사람이 된 심수관씨가 ‘권 여사 자리에 당신이 앉아 있다’고 강조하자 새삼 물격을 생각하게 된다.
마주 앉은 심씨의 머리 너머로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默而識之(묵이식지)’.
1970년대 일본 총리를 지냈고, 노벨평화상을 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친히 써준 것이라 한다.
“말로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있어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의미랍니다.”
심씨는 자랑삼아 말했다. 도자기와 인간의 대화, 예술품과 보는 이의 마음의 회로가 ‘묵이식지’라는 뜻일까.
이어지는 심씨의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사토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 ‘당신네는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길래 400년 가까이 됐다고 했더니, ‘우리집은 그 후에 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는 모르지만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山口)에 정착했다는 얘기였지요.”
사토는 1960년대에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이다. 그렇다면 조선 핏줄이 일본 총리를 두 사람이나 배출했다는 말이 된다. 일본의 우익인사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증거를 대라! 또 그 한반도 출신 타령인가’, 그런 식이겠지.
문득 생각해보니 요즘 총리 후보로 손꼽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로 1980년대 후반 외무대신을 지냈다. 그 아베 신조가 요즘 ‘타도 북한!’의 선봉장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가장 분개하는 강경파이며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자민당 선두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그에게 한반도의 핏줄이 얽혀 있다는 것은 아이러한 일이다.
북한의 납치와 일본의 납치
북한의 납치와 피랍도공 마을에 대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그 하나. ‘아사히신문’의 ‘나의 관점’이라는 칼럼에 이런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북한의 납치행위가 반인도적인,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국가범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도 400년 전 가고시마의 도공 70명을 납치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시바 료타로도 납치라고 단정해서 기록하지 않았는가. 일본도 숱하게 납치나 강제연행 같은 일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라는 외교문제와 납치범죄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알 만도 하다고 본다. 지금 일본인의 대응은 감정적이고, 외교와 범죄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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