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요동치는 축구계 권력 판도

非축구인 16년 장기집권에 축구인 ‘역성(易姓) 혁명’ 수순 밟기?

  • 글: 양종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yjongk@donga.com

    입력2005-03-24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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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치는 축구계 권력 판도
    올초 한국 축구계엔 한 차례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제50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국축구연구소(이사장·허승표)와 축구지도자협의회(공동회장·김호 차경복 박종환) 등 ‘축구 야당’이 “이번엔 바꿔보자”며 들고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정 회장의 대항마를 찾지 못해 회장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1993년부터 12년간 장기 집권한 정몽준 회장을 상대로 “이젠 물러나야 할 때”라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일은 2002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로 입지가 공고해져 있던 정몽준 회장 체제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결국 정몽준 회장은 지난 1월18일 대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선에 성공한 뒤 취임사에서 “4년 뒤엔 축구협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축구계는 크게는 2개, 작게는 3개 계파로 나뉜다.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을 지지하는 파와 이에 반대하는 파, 여기에 정 회장과 함께 축구협회에 와서 축구계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출신 인사들도 하나의 계파로 추가할 수 있다. 현대 출신은 정몽준 회장이 떠나는 순간 함께 따라갈 사람들이지만, 지난 12년간 국내는 물론 국제 축구계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놓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협회를 떠나도 축구계에서 언제든 힘을 행사할 수 있는 파워 그룹이다.

    축구인들만 놓고 보면 정 회장을 밀며 ‘축구협회의 요직을 장악해 힘을 과시하는 그룹’과 정 회장을 반대하거나 반대했다는 이유로 ‘협회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며 빙빙 돌고 있는 파’로 나뉜다. 정 회장을 지지하는 이른바 ‘축구 여당’의 중심엔 조중연 축구협회 부회장이 있고, 정 회장을 반대하는 축구 야당의 핵심엔 허승표 전 축구협회 부회장이 버티고 있다. 한마디로 축구인들이 정 회장을 축으로 둘로 나뉜 셈이다.

    축구 여당은 “정 회장을 중심으로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등 한국 축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축구 야당은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 회장 때문에 한국 축구의 구조가 완전히 뒤틀렸다”고 비난한다.



    정몽준 회장, 진짜 떠날까?

    정 회장의 취임사 중 일부다.

    “저는 4년 뒤 임기를 마치면 물러날 것입니다. 누가 차기 축구협회장이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어떤 분이 차기 회장이 되면 좋을지, 여기서 잠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제가 처음 축구협회장이 될 때입니다. 축구협회의 대의원들이 찾아오셔서 ‘축구를 좋아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좋아한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축구회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저 자신이 축구를 좋아해서 수락했습니다. 그때는 축구협회장 경선이니 이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으며 아마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사양했을 것입니다. …(중략)

    축구는 누구나 좋아하는 운동입니다. 그렇기에 축구협회장은 기본적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국민들로부터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 맡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역대 축구협회장을 보면 여운형 (2대), 신익희 선생(7대), 일제하인 1925년에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하신 하경덕 박사(5,6대), 윤보선 대통령(9대), 장택상 총리(12대), 한국일보 창업자인 장기영 부총리(19, 21, 23대)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축구협회장은 축구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이해는 되지만 문화계, 언론계, 경제계 등의 분야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분을 모시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축구선수 출신도 회장이 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50여 국가 가운데 축구인이 회장을 맡고 있는 나라는 10개국쯤 됩니다.”

    떠난다고 선언은 했지만 결코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정 회장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협회 내부에서도 “회장 자리를 축구 야당 쪽에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축구 야당측도 “취임사 전체 맥락을 보면 끝까지 축구계에서 힘을 행사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정 회장은 4년 전 회장 선거 때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니지만 ‘마지막 회장 도전’이라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또 4년을 연임하게 됐다. 물론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공식적인 취임사에서 분명히 마지막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떠날 것”이라는 게 협회 내부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면 정 회장의 뜻은 짐작할 수 있다. 후계자를 심어 수렴청정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 또 최소한 축구 야당에는 ‘정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축구협회장을 떠나도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직을 유지하며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계속 뛸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정 회장과 축구는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그는 1993년 처음 축구협회를 맡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월드컵 공동개최를 성사시켰다. 월드컵 유치 경쟁 당시에는 일본 단일 개최가 유력했지만 정 회장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FIFA 위원들을 설득해 결국 공동 개최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2002 월드컵 때는 명장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꿈에 그리던 사상 첫 본선 16강을 넘어 4강 신화를 이룩했다. 월드컵은 700만 붉은 물결의 길거리 응원을 낳는 등 개인주의가 팽배하던 한국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했다.

    19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정 회장은 국제 축구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부패한 제프 블래터 회장의 반대세력인 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과 당시 장 루피넨 사무총장 등과 연대, 2002 월드컵 직전 열린 FIFA 총회에서 블래터 재선에 반대하는 등 국제 축구계 개혁에도 동참했다.

    축구 열풍 덕분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그는 지금도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 회장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비판이 만만치 않다.

    “한 번으로 족하다. 축구 발전에만 전념해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앞으로도 축구와 정치를 연계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후계자 1순위’ 조중연

    그렇다면 정 회장이 점찍어둔 차기 축구협회장은 누구일까. 정 회장이 “축구인은 물론 문화계, 언론계, 경제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회장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혀 어느 누구에게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제 막 제50대 회장 임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차기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협회 안팎에선 현재 축구협회 구도상 조 부회장이 정 회장의 뜻을 가장 잘 이어갈 후계자라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조 부회장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조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축구협회 외부에서는 “한국 축구를 망치고 있는 주인공”이란 비난을 받지만,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탁월한 행정력으로 협회를 이끄는 인물”로 일컬어진다.

    조 부회장은 탁월한 행정가다. 정 회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조 부회장은 반드시 추진한다. 협회의 한 직원은 “조 부회장은 어떤 일이든 끝까지 밀어붙여 성과를 낸다. 일부에서 조 부회장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런 추진력 때문에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조중연 해병대 라인 ‘인의 장막’

    최근 조 부회장이 이뤄낸 실적들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경기도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NFC) 건립.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일본 등이 확보한 축구 트레이닝 센터를 우리나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정 회장은 조 부회장에게 이를 지시했고, 결국 만들어 냈다. 조 부회장은 파주시를 설득해 부지를 확보한 뒤 재경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국회의원 90명의 동의를 얻은 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파주 NFC 관련법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3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여기에다 축구협회 자금, 국민체육진흥공단 지원금 등으로 120억원을 조성해 축구의 요람을 탄생시켰다.

    월드컵 본선 16강에 진출할 경우 선수들에게 군복무 면제 혜택을 주게 된 것도 조 부회장의 노력 덕분이다. 여론을 의식한 정 회장이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자 조 부회장은 국회의원 147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마침내 국회의원들이 결의문을 작성, 국방부에 제출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대립했지만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방장관에 지시, 대통령령으로 군복무 면제 혜택을 줬다. 월드컵 16강 진출시 군복무가 면제되는 혜택은 한시법이 아닌 영구법으로 보장하고 있어 앞으로도 월드컵 16강 이상에 진출하면 병역 대상 출전 선수들은 모두 군 면제를 받게 된다.

    또 하나의 사례는 1996년에 경찰청팀을 창설한 것이다. 선수들은 이곳에서 훈련을 계속하면서 군복무를 마칠 수 있다. 조 부회장은 “프로 선수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연간 3억5000만원을 경찰청팀에 지원하도록 했다. 또 최근엔 광주 상무 엔트리를 25명에서 50명으로 늘려 군 입대 때문에 축구선수 생활을 중단하는 유망주가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조 부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축구협회의 한 중견 직원은 “정 회장의 뜻을 받들어 업무를 추진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결국 그게 자신의 입신과 연결되고 있어 문제”라고 꼬집었다.

    요동치는 축구계 권력 판도

    2005년 1월18일 대한축구협회에서 열린 정기 대의원총회를 주재하고 있는 정몽준 협회장. 정 회장은 이날 만장일치로 회장에 재선됐다.

    협회에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회피하고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는 비난도 따른다. 2003년 말부터 한국대표팀이 오만과 베트남에 연패하고 지난해엔 몰디브와 비기자 팬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이때 조 부회장(당시 전무)은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을 경질하는 수순을 밟았다. 또한 김진국 기술위원장을 조영증 당시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바꿨고, 그래도 비판이 잦아들지 않자 곧장 이회택 부회장 책임론을 내세워 비난의 화살을 비켜갔다. 차범근(1998 프랑스 월드컵), 허정무(2000 아시안컵), 박항서(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감독도 ‘쿠엘류 사태’와 비슷하게 경질된 케이스. 협회 한 직원의 이야기다.

    “쿠엘류 사태 전까지만 해도 조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었다. 장점과 단점을 다 갖고 있지만 업무 추진 능력은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쿠엘류 사태를 보고는 ‘너무한다’는 말이 여지저기서 터져나왔다.”

    해병대 라인으로 ‘인의 장막’을 쳐놓은 것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이회택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 노흥섭 전무이사, 조영중 파주 NFC 센터장 등이 모두 해병대 출신. 이에 대해 협회 한 간부는 “업무 능력과 업무 추진의 효율성을 고려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일 뿐, 의도적으로 해병대 출신들을 뽑은 것은 아니다”고 반박한다.

    조 부회장의 이런 면 때문에 협회 직원이나 축구인 중에는 이회택 부회장을 선호하는 이가 많다. 이 부회장은 특유의 털털하고 온화한 성격 때문에 여러 사람의 신임을 얻고 있다. 게다가 권력욕을 내비치지 않아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협회에선 조 부회장이 현대중공업 출신인 가삼현 국장과 연대해 국제부를 대외협력국으로 만들고 세력을 넓히자 일부 견제세력이 힘을 모아 이회택 부회장이 맡은 기술위원회를 기술국으로 확장시키는 상황도 빚어졌다. 협회 내부에서 미묘한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

    많은 축구인은 “조 부회장의 빈틈없는 행정력과 전체 축구인을 두루 끌어들이는 이 부회장의 인덕을 결합하면 축구협회를 훌륭하게 이끌어갈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김우중 회장 시절 국제담당 부회장을 맡았던 허승표 전 부회장은 1993년 정몽준 회장이 축구협회장 직을 맡자마자 협회를 떠났다. 김창기 부회장이 정 회장과 경선을 시도하다 김우중 회장의 중재로 후보를 사퇴, 정 회장이 단독 후보로 결정되자 떠날 결심을 한 것. 그후 허 전 부회장은 일반 축구팬들에게서 잊혀졌다. 하지만 축구계에서 그는 여전히 ‘대부’격이다.



    허 전 부회장은 LG그룹 공동 창업주인 고(故) 허만정씨의 7남으로 기업체 홍보영상과 공중파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하는 ㈜미디아트의 회장을 거쳐 현재 이동통신 장비회사인 ㈜인텍웨이브 회장을 맡고 있다.

    허 전 부회장은 보성고, 연세대, 서울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프로팀 코벤트리에서 뛴 뒤 영국축구협회 코치 자격증을 땄다. 최순영 회장 시절 협회 국제담당 이사(1980~89), 김우중 회장 시절 국제담당 부회장(1991~92)을 역임했다. 당시 협회 최고의 국제통으로 꼽혔다. 그는 1992년 기술위원장 자격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축구계 ‘야인’ 김호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당시 기술위원들은 김호, 고재욱 감독에게 각각 3표씩을 던져 동점을 기록했다.

    허 전 부회장은 1997년 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정몽준 회장에게 패한 바 있다. 이 선거에서 25명의 대의원 중 단 3명만이 그에게 표를 줬다. 당시 그는 ‘축축모(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의 모임)’의 한 축을 형성해 ‘반(反) 정몽준’파의 선봉에 섰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축구인의 힘을 모으다 보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던 것.

    허 전 부회장의 한 측근은 “정 회장이 너무 독선적으로 협회를 이끌고, 축구보다는 사리사욕을 위해 일하기에 반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협회장 경선 패배 이후 허 전 부회장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축구인들 모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축구 관련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협회 일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축구선수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서울사커클럽’이나 ‘장수조기회’ 등에서 친목으로 축구를 즐기는 정도였다. 허 전 부회장은 LG그룹에서 분가한 GS홀딩스 허창수 회장의 작은아버지로, 허 회장이 안양LG(현 FC서울) 발전에 기여하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허 전 부회장의 뜻에 따라 FC서울은 유소년 축구에 투자하는 등 선진국형 클럽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조용히 지내온 허 전 부회장의 행보가 최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를 지지하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거센 축구 개혁 바람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판단, 지지세력과 함께 조만간 수면 위로 등장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무렵 한국축구연구소를 창립한 것도 지나칠 수 없는 대목.

    허 전 부회장의 핵심 인맥으로는 ‘영원한 야당’을 자임하는 신문선 SBS 해설위원과 박병주 전 FC서울 고문,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 남대식 관동대 감독 등이 있다. 한국축구연구소를 창립하면서 축구계 온건파의 주축인 이용수 세종대 교수(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끌어안았다. 1997년엔 정몽준 회장에 대해 일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면 이번엔 축구계 현안을 차분히 분석하고 한국 축구의 발전 방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실질적인 대안세력이 되겠다는 의도가 감지된다.



    그의 약점은 축구계를 너무 오래 떠나 있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것. 한국축구연구소를 만든 것도 인맥을 강화하면서 축구팬들에게 서서히 다가가기 위함이다.

    축구 기자 출신으로 축구연구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덕기씨의 말이다.

    “축구는 축구인들의 것인데 지금은 정몽준 회장 개인의 것이 돼버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선거가 끝난 뒤 정 회장은 ‘반대파의 목소리를 듣고 기꺼이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을 보라. 집행부를 구성할 때 축구연구소와 지도자협의회에 잠깐이라도 기웃거린 사람은 다 내보냈다. 또 연구소와 협의회 명단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은 일절 협회 관련 일을 못하도록 했다.”

    실제로 이용수 교수, 최은택 한양대 명예교수, 박종환 대구FC 감독, 최길수씨, 이세연씨 등이 이사에서 밀려났다. 이 교수와 박 감독은 본인들이 안 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연구소에 잠시 얼굴을 내비쳤기 때문에 이사진에서 밀려났다는 게 연구소측의 주장이다. 이들의 빈 자리는 김기복 경찰청 감독, 정규풍 전 수원삼성 스카우터, 이차만 부산시축구협회장, 김재한, 이종한, 최태열, 김주성, 홍명보씨 등이 채웠다.

    다음은 신문선 SBS 해설위원의 증언.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국제심판으로 명성이 높은 김영주씨가 2002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 판정 논란이 제기됐을 때 한 인터뷰에서 심판 행정에 대해 협회가 개선해야 할 부분을 원론적으로 언급했다. 그러자 곧바로 조중연 당시 전무의 공격을 받았다. 조 전무는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다시는 운동장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후 김영주 심판은 쓸쓸히 은퇴해야 했다. 축구인으로 쌓아온 명예를 한순간에 잃고 만 것이다.”

    또 다른 정치인의 등장 변수

    축구계는 4년 뒤의 정치적 변수도 고려해야 할 판이다. 올초 열린 제50대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때 모 국회의원이 후보로 나선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 의원이 실제 회장 후보로 나서진 않았지만 입후보를 고려한 것은 사실이다. 열린우리당은 축구인, 특히 한국축구연구소와 축구지도자협의회가 분위기만 띄우면 이 의원을 후보로 내세울 태세였다.

    2002년 대선 후보로 나선 정몽준 회장의 사례에서 보듯 축구협회 수장은 정치인에게 입맛 당기는 자리다. 지난 축구협회 회장 선거 때도 정치권, 특히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선 악연’이 있는 정 회장에 대한 탄압으로 비칠까봐 전면에 나서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대선을 노리는 지역구 의원이라면 충분히 욕심낼 만한 자리가 축구협회장이다. 4년 뒤 정몽준 회장이 물러난다면 정치권에서도 후보를 낼 것이다. 단 2007년 대선이 있기 때문에 집권한 당에서 후보를 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23일에 치러진 제35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체육계에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이연택 전 회장이 정치인 김정길 회장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다. 12, 13대 의원을 지낸 김 회장은 열린우리당 부산지역 창단준비위원장, 상임중앙위원을 거쳤다. 정치인들이 임기 4년에 일정액의 활동비만 지급받는 무보수 명예직인 대한체육회장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시아 경기대회와 올림픽 등 다양한 국제 행사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대한체육회장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닌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를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냐가 변수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협회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당시 이연택 전 회장의 승산이 높다는 일부 체육인들의 분석이 나오자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체육 단체를 맡고 있는 회장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사장들이다. 그들은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을 무시할 수 없다. 김정길 회장이 압승할 것이다. 두고봐라.”

    정치인 개입은 반드시 막을 것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김정길 회장은 총 45표 중 29표를 획득, 16표에 그친 이연택 전 회장을 여유 있게 제치고 당선됐다.

    물론 ‘정치인’ 정몽준 회장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도 변수다. 현재로서는 정 회장이 다른 정치권 인사에게 협회를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이 워낙 변화무쌍하다 보니 4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 못한다.

    허승표 전 부회장은 “차라리 조중연 부회장을 회장으로 앉히더라도 정치인들의 개입은 막을 것이다. 지금까지 정 회장이 망쳐놓은 것도 모자라 또 정치인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하고 고개를 저었다. 축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 선거 때도 열린우리당측에서 ‘축구인들이 밀어주면 정몽준 회장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정치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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