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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酒黨千里 ④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양조장 순례하며 한 잔씩, 酒神도 취하는 술판 한마당

  • 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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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네 양조장은 극히 폐쇄적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는커녕 뭐 하나 들킬세라 문을 꼭꼭 걸어 잠근다. 반면 일본의 양조장은 개방적이다. 주조 과정부터 시음과 판매까지 한눈에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축제 분위기도 크게 다르다. 우리의 축제는 술 마시는 사람이 주인공이지만 일본의 축제는 술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사이조 카모츠루 양조장에서 술을 빚을 때 부르는 노동요를 선보이고 있다.

경주에선 해마다 술 축제가 열린다. 주당이라면 빠질 수 없는 행사다. 올해는 3월26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술판보다는 떡판이 더 크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양조장들의 판매부스가 도열해 있지만 술 관련 행사라곤 고작해야 전통주를 맛보고 이름을 알아맞히는 게임 정도뿐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 인사동에서도 막걸리 축제가 열리는데 상황은 비슷하다. 막걸리 축제의 주인공인 막걸리 제조업체의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제1회 우리 술 페스티벌을 인사동에서 개최했다. 또 전주 전통술 박물관에서도 전주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술 축제를 열었다. 하지만 두 행사 모두 너무 서둘러 치르는 통에 많은 양조장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좀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던 차에 일본에서 술 축제가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일본행을 감행했다. 지난 가을의 일이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에 내렸다. 한국에서 일본까지 가장 가까운 항로라 3시간쯤 걸렸고, 뱃삯도 7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먼 나라 일본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술 축제가 열리는 곳은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한 시간쯤 이동해야 하는 히로시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1945년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지점의 참상을 보여주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40km 떨어진 동히로시마의 사이조(西條) 마을이다. 동네는 그리 크지 않지만, 15년째 계속되는 술 축제 때문에 유명해졌다.



사이조로 가기 전에 후쿠오카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큰 동네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서운해서다. 더욱이 동행한 이가 후쿠오카의 한 양조장 주인을 잘 안다고 했다.

양조장 주인은 히로(40)씨다. 아버지는 와인 양조장, 할머니는 소주 양조장을, 자신은 청주 양조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집안에서 양조장을 처음 시작한 것은 무려 300년 전 일이라고 한다. 히로씨가 14대째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30분쯤 차로 이동하자 히로씨가 운영하는 와카타케야 양조장이 나왔다. 검은색 판자를 덧댄 외벽이 3층 높이쯤 돼 보였다. 양조장과 살림집이 2층에 함께 있고, 1층은 음식점이다.

히로씨는 필자를 공장의 발효실에서부터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코오지(일본의 쌀알누룩) 제조장까지 안내했다. 근처 산자락에 있는 아버지의 와인 양조장과 할머니의 소주 양조장도 보여줬다. 소주양조장 앞에는 관광버스가 한 대 와 있었고, 관광객들이 전시장에서 시음도 하고 술도 사고 있었다.

히로씨의 할머니는 올해 여든이 넘었는데, 젊은 시절 “우리 집안이 술 만드는 회사인데, 소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직접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집안에는 대대로 전해오는 말이 있다. “빚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빚을 많이 지라는 얘기가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 회사를 지키라는 뜻이란다. 그 말에서 14대째 양조장을 지켜낸 힘이 느껴졌다.

히로씨의 양조장을 살펴보면서 처음 든 느낌은 매우 개방적이라는 것. 양조장에는 일반인들이 들어와 관람할 수 있는 자그마한 전시장이 있다. 양조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며 이제는 임무가 끝난 발효통과 술병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든 술들이 전시돼 있다. 물론 술을 살 수도 있다.

시음은 주로 식당에서 이뤄진다. 식당은 그리 크지 않다. 주 고객은 밥해 먹기가 귀찮은 동네 사람이나 부근의 회사 사람들이다. 일반 식당과는 차이가 있다. 점심 때는 정해진 양만 팔고, 저녁 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 식당은 사람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양조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양조장은 어떠한가. 개방적인 곳이 별로 없다. 대형 주류회사들은 더러 견학코스를 만들어놓기도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이고, 작은 양조장은 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 작은 양조장들은 “매일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 보여줄 게 없고, 술을 만들 때는 청결 문제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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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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