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허시명의 酒黨千里 ④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양조장 순례하며 한 잔씩, 酒神도 취하는 술판 한마당

  • 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2/4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상표를 보고 즐거워하는 술 학교 수강생들.

간혹 사정해서 양조장 안을 들여다볼라치면 첩자라도 된 기분이다. 술 빚는 과정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저쪽에서 먼저 터놓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많은 부분이 장막에 가려 있고 또 은밀하게 진행된다. 기업의 비밀이라 말하기 곤란한 것인지, 바빠서 그런 것인지, 귀찮아서 싫다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여튼 우리 양조장은 일반인들을 공장 안으로 끌어들이지도 않고, 끌어들일 필요성도 못 느끼는 실정이다.

히로씨와 함께 후쿠오카의 다른 양조장에 가보았다. 양조장 간판에는 옛날식 여과 방식을 쓰고 있다고 적혀 있다. 히로씨가 처음 찾아가는 곳인데도, 양조장을 지키던 여주인이 공장 안을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게 안내해줬다. 양조장의 초입에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다. 일반인들이 술을 시음하기도 하고 살 수도 있는 곳이다. 시음장에서 돌아서면 양조장이다. 양조장 문틀 위에는 주신(酒神) 마츠오(松尾)를 모신 작은 제단이 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여과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시소처럼 생긴 나무기둥을 천장 높은 대들보에 연결해놓았는데, 한쪽에는 장정 혼자서는 들 수 없는 커다란 돌덩어리들을 여럿 매달고 반대쪽엔 여과 틀로 압착하는 장비가 연결돼 있다. 지금은 전기와 엔진의 힘을 빌려 술을 짤 수 있을 텐데도 여전히 옛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기계로 짠 것과는 맛이 다르다는 게 이유다. 옛 방식을 보려고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일본 술의 기원, 백제인 ‘수수거리’

양조장에서 나오는 길에 히로씨에게 수수거리(須須許里)를 아냐고 물었다. 수수거리는 3세기경 일본에 건너가서 술을 빚었던 백제인이다. 일본 ‘고사기(古事記)’에도 나오는데, 일본 술의 기원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수수거리 때문에 ‘일본 술은 한국 술’이라는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과장된 논리다. 한반도의 술이 일본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은 나름의 술을 만들어왔다.



히로씨에게서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수수거리’라는 이름의 술을 자신의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1700여년 전의 백제인을 기려 술을 빚고 있다니 놀라웠다. 그의 양조장에서 수수거리 술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상표에는 ‘고주(古酒)’라 새겨져 있었다. 오래 숙성시킨 술이라는 뜻이다.

술 이름 옆에는 수수거리를 소개하는 안내문이 있었다. ‘고사기’ 내용도 인용되어 있고, 그를 기려 후쿠오카의 양조장들이 똑같은 이름으로 저마다 술을 빚고 있다고도 되어 있었다.

우리는 잊어버린 이름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수수거리 술 한 병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튿날 오후 히로씨와 헤어지려는데, 히로씨가 저녁에 후쿠오카양조협회에서 주관하는 ‘술의 학교’ 수료식이 있다고 했다. ‘술의 학교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히로씨는 기꺼이 동행을 허락했다. 술의 학교 프로그램은 2개월 코스로,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다. 제2기 수강생은 20명 남짓.

마지막 수업은 수강생들의 상표 디자인 발표회로 진행됐다. 일본 청주병은 우리 소주병처럼 크기나 모양이 거의 동일하다. 물론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술병을 쓰기도 한다. 일본 양조장의 특징 중 하나는 한 회사에서 한두 가지 제품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양조장이라도 열 가지 이상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보통 50가지는 만들어낸다.

수강생들이 디자인한 상표는 700ml 술병에 붙일 수 있는 크기였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서 디자인한 이유와 작명한 술 이름에 대해 설명했다. 강의가 끝나고 뒤풀이가 인근 레스토랑에서 이어졌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수강생들이 디자인한 상표들이 술병에 붙여져 전시돼 있었다. 수강생들이 이동하는 사이에 협회에서 준비해둔 것이다. 수강생들은 마치 자신이 술을 만들기나 한 것처럼 자신의 상표가 붙은 술병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면서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일본에선 개인이 술을 만드는 것이 불법이다. 후쿠오카양조협회가 술의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술 빚기 체험 과정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에선 개인이 술을 빚는 것은 자유롭다. 다만 그 술을 남에게 주거나 팔면 위법이다.

행사의 마지막 건배 구호는 “후쿠오카 사람은 후쿠오카 술로!”였다. 애향심에 호소하기는 우리나 그네들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역 농산물로 빚은 술은 지역특산품일 테니 영 어긋난 상술은 아닌 셈이다.

2/4
글: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목록 닫기

일본 ‘사이조 술 축제’ 속으로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