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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총체적 고찰 ‘이장의’

  • 글: 정영근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yunjai@snut.ac.kr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총체적 고찰 ‘이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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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현실적으로 무명에 의해 더럽혀져 있기 때문에 물든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물든 마음은 그것 자체가 평안한 마음을 동요시키는 번뇌로 인간을 괴롭히고 수행을 방해한다.

‘이장의’에서는 물든 마음이 비롯되는 근원을 근본무명이라 한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근본무명은 진여(眞如)라는 절대적인 것이 세속의 것과는 차별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그것에 집착하려는 생각이다. 이처럼 진여에 집착하는 마음이 근본무명이기 때문에, 이는 진여의 밝음에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진여에 가장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장의’에서는 이를 마치 맨 아랫사람인 사미와 맨 윗사람인 화상의 자리가 가까운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처럼 근본무명은 진여에 집착하여 세속의 차별적인 지혜를 부정하므로, 세상의 차별상을 명백히 살핌으로써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원효가 ‘이장의’에서 근본무명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을 타파함으로써 열반에 고요히 머무르지 말고 세간에 나와서 현실적 상황에 맞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라는 데 있다.

중생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장애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의 근원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 ‘이장의’는 모든 장애가 노력에 따라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나 번뇌는 본질적이거나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청정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현실적으로 물들어 있다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누구나 장애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능력이 다르고 부딪히는 장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해당하는, 그리고 자신이 제거할 수 있는 장애를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이장의’에서는 범부와 이승, 그리고 보살 등 각각의 수준과 수행의 단계에 따라 장애의 종류와 제거 방법이 다름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어쨌든 자신과 존재를 사실 그대로 보게 된다면 그것에 대한 집착과 구속으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집착과 구속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욕망, 증오, 두려움 등을 정화할 수 있다.

또 세속과 진여가 다르다고 하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면 중생의 근기(根機)나 상황에 따라 알맞은 방식으로 그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천하에 두류(逗)한 어둠은 해가 출현해야만 사라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순도 높은 원광석

역자 은정희 선생은 ‘대승기신론 소별기’‘금강삼매경론’ ‘이장의’등 원효의 저술에 대한 역주 작업을 20년 넘게 계속해오고 있다. 원문을 충실히 직역하고 친절하게 주석을 다는 것 외에 인용문의 전거를 일일이 추적하여 밝히는 등 성실한 번역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동학 및 제자들과 수차례 원전을 강독한 다음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암호를 풀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원전의 번역임에도 정확도가 매우 높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은 수백편의 논문을 쓰는 것 못지않게 힘들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업이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여러 원효 연구가들이 은정희 선생의 번역을 깊이 신뢰하고 연구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아쉽다.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을 한 번 더 풀어서 번역하고 핵심을 요약 정리한 쉬운 해설을 덧붙였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교 전공자들의 가공과 제련을 통해서 멋진 제품으로 다듬어지기를 기다리는 순도 높은 원광석 같다. 원광석이 있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직접 땅을 파고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 흘리며 광석을 캐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더군다나 이것은 순도가 매우 높아서 조금만 가공하면 그대로 제품이 된다. 그러기에 이 원광석의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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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영근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yunjai@snu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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