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이 변수로 작용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했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깊이 못 들어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상세한 것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남긴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참여정부 초기에 그런 일(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일)은 없다”라며 부인했다. 이런 반응은 양측 사이에 모종의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는 느낌을 준다.
2006년 봄 정부와 여당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특사 자격으로 대통령 전용열차인 ‘경복호’를 타고 북한을 방문하는 문제를 집중 논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은 가능성이 있으며, 또 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그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내비치는 동시에 대북송금 특검을 허락한 ‘참여정부’에 섭섭하다는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2월9일 청와대는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특사로 활동했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형 집행만 면제해주고,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복권(復權)은 해주지 않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애초 청와대에서 거론된 특별사면 대상에는 박 전 장관이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김 전 대통령이 MBC 라디오와 인터뷰한 것이 알려진 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과연 김 전 대통령에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능력이 있는 것일까. 그가 남북한과 러시아의 3자 정상회담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한반도 문제 정보통들은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흘린 남북한과 러시아 3자 정상회담이 가능한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자는 2005년 10월11일자 ‘주간동아’에 노무현 정부가 러시아를 무대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어 이 문제를 다시 추적해봤다.
‘러시아 매개 남북정상회담’ 흘린 DJ
한-러 관계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최근 러시아에 파견돼 있는 국가정보원 요원을 비롯한 우리측 관계자들이 바쁘게 러시아측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극동 러시아를 무대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열거나 러시아를 매개로 한 남북관계 개선 작업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문제는 누가 특사로 나서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이냐인데, 이에 대해서는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정부에서 활약한 사람들이 투입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러시아를 매개로 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려면 먼저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2월8일 시작된 제5차 3단계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인데, 소식통들은 “이 회담이 열리게 된 데는 러시아가 큰 역할을 했다. 회담이 시작된 이상 북핵 문제는 대화로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