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 1공장 들어오고, 40층 주상복합 들어서고…
- “기업인 고통은 경청(傾聽), 자금지원은 팍팍”
- 2010년 1인당 도민 소득 3만1000달러
- KTX로 서울과 30분, 청주공항까지 고속도로…
청주. 지난해 말 친구 아버님의 부고(訃告)를 듣고 달려간 적이 있다. 저녁에 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느라 청주의 그림자만 잠깐 보았을 뿐이다. 다만 저녁 무렵 고속버스가 청주 톨게이트를 지나 아담한 4차선 도로에 들어설 때 도로 양쪽에서 방문객을 맞아주던 나무들은 인상적이었다. 늘 그대로 머물러 있는 고향 같은 느낌.
청주를 다시 찾았다.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길에 택시 기사는 “청주시민의 40%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라며 “청주공단 등에 기업이 들어올 때마다 함께 들어온 직원들과 가족이 사실상 청주시민”이라고 말했다. 청주가 살기 좋은 곳이냐고 물었더니 “범죄도 없고 사람들도 순해 살기 좋다”며 “머지않아 대농단지에 40층이 넘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고, 하이닉스 1공장도 입주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기업을 유치하면 사람들이 함께 들어온다. 그 사람들 덕분에 병원도 생기고, 할인점도 들어선다. 그러면 의사, 간호사, 할인점 직원도 들어온다. 새로운 건물 공사가 시작되면 인부들도 들어온다. 이들이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유흥시설도 들어온다. 사람이 많아지면 복지시설도 생기고, 사회복지사들이 들어온다. 인구가 늘어나면 길거리가 지저분해진다. 그래서 그걸 치우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한국의 모든 지자체가 사활을 걸고 기업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이렇듯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고 연쇄적이기 때문이다. 충청북도도 마찬가지다.
경제특별도 선포식 현장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초대받아 식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농성을 벌이는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데 엉켜 예술의전당 출입구는 한때 몹시 혼잡했다. 농성 노동자의 출입을 저지하려는 전경들과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는 각 방송사 카메라들 때문에 행사장은 시작 전부터 왁자지껄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1층 700석과 2층 500석이 벌써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열기가 느껴졌다. 이윽고 선포식이 시작되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권오규 경제부총리, 그리고 경제 5단체장들이 충북의 경제특별도 선포식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펼쳐졌다. 이 영상을 준비하면서 충북도청 공무원들은 국내 경제관련 인사들을 만나 앞으로 충북이 무엇을 하려는지 설명했을 것이다. 알려야 소문이 퍼지고, 소문은 기업인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충북 내 기업의 노동자 대표와 기업인 대표, 농업인 대표, 시장 상인 대표와 공무원 대표가 나와 충북의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광경이었다. 상투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충북을 발전시키겠다고 서로 손을 맞잡은 것만큼은 더없이 보기 좋았다. 가식적이라도 손을 잡는 것, 요즘엔 이마저도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닌가. 요즘 지자체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파격적인 기업 지원
경제특별도는 경제자유구역과 다르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만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다. 정우택 충북지사에 따르면 “기업을 경영하기 좋다는 입소문이 돌아 기업인이 몰려들게 되면 한국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원래 실속 있는 파티는 은밀하게 ‘선수들’끼리 소문을 내면서 모이는 파티다.
경제특별도라는 입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충북도청은 4대 전략을 수립했다. 기업 하고 싶은 충북을 만들기 위해 ‘BUY 충북’이란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충북뉴딜플랜’을 구상했다. 또 도내 전지역이 고르게 발전하는 ‘균형발전’ 그리고 모든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4대 목표로 정했다.
‘BUY 충북’엔 전국 최고 수준의 기업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지방세(취득세, 등록세) 5년 면제는 물론, 특별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혀놓았다.
특별지원금은 이런 것이다. 예컨대 수도권에서 충북으로 기업을 옮길 경우 국비 지원 50억원을 포함해 최대 100억원을 기업에 지원한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충북으로 기업을 옮기거나, 이미 충북에 있는 기업이 공장을 증설하는 등 재투자를 할 경우 최대 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50억원 지원계획은 아직 어떤 지역에서도 실시하지 않은 획기적인 것이다.
충북도청에서 실시하는 새로운 기업 지원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9년까지 총 100억원을 조성해 ‘투자진흥기금’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투자촉진지구에 입주하는 기업에 용지매입비를 장기간 낮은 금리로 융자할 방침이다.
도청이 자금의 일부를 출연하고 농협 등 금융기관이 지원하는 은행협약자금 1200억원과 중소기업육성기금 180억원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사용할 계획. 최근 문을 연 기업애로지원센터나 옴부즈맨 제도는 기업인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를 즉시 해결하겠다는 의지이다.
기업인의 기(氣)를 살려주기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예컨대 모든 행사장의 주요 좌석을 기업인에게 우선 할당한다. 이날 경제특별도 선포식이 열린 예술의전당에도 주요 좌석엔 기업명과 기업인 이름을 등받이 위에 붙여놓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에 기업인들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도청이 선정한 예우 대상 기업인은 청주국제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청남대 휴양시설이나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훌륭한 기업으로 선정될 경우 공장이 있는 도로의 이름에 기업명칭을 붙여준다. 가령 유한양행이 있는 도로는 ‘유한로(路)’로 명명했다. 또 기업인의 여권 만료기간이 1년 미만이 되면 담당 공무원이 만료 예정일을 통보해주기도 한다. 마치 회사 직원처럼 밀착해서 기업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충북뉴딜플랜
경제특별도 2대 전략인 충북뉴딜플랜은 맞춤형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지역 건설업과 재래시장 등 서민기반 경제 분야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대형 건설 프로젝트로 예정됐거나 지금 시행 중인 것으로는 충북 세종시 관문개발, 오송 신도시 개발, 혁신기업도시 건설 등이 있다.
기업에 맞춤형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역산업과 밀착한 인적자원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성대학은 현장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청주과학대는 노인보건서비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충청대는 산학 일체형 실용화 기술인재를 육성하고, 대원과학대는 지역특화산업기술 인력을 양성한다. 충북도청 이경호 보도담당 사무관은 “기업에 제공하는 인센티브도 필요하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제공하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기업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맞춤형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3대 전략인 균형발전은 청주, 청원권 중심의 발전기반을 북부와 남부권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청주국제공항을 활성화하고, 오송역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오창과 오송을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육성할 계획도 있다. 이미 오창에는 업체가 많이 들어섰고, 곧 완공을 앞두고 있는 오송단지에도 기업들이 입주하기 위해 줄을 선 상황이다.
첨단산업단지와 기업도시의 이미지를 지닌 충주와 진천, 음성을 중심으로 증평과 괴산을 연계해 생명공학과 정보기술을 아우르는 산업클러스터로 개발할 예정이다. 진천과 음성의 경우는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개발한다.
제천은 충북, 강원, 경북의 풍부한 약초자원을 결집해 한방 가공, 의약품 제조업체, 전통의약산업센터를 세워 한방 산업클러스터로 키울 계획이다. 보은군에는 100만평 규모의 토지에 3400억원을 투자해 옥천과 영동을 연계하는 기능성 식품, 천연물 소재, 농축산 바이오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교통여건이 우수한 옥천엔 현대알루미늄을 중심으로 알루미늄 전문단지를 조성할 예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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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대 전략은 ‘삶의 질 향상’이다. 문화와 관광, 예술기반을 확충하고 주민 참여기회를 확대해 시민 누구라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행복한 지역사회를 구축하자는 게 목표다. 구체적으로는 주민 참여형 축제를 육성하고, 테마가 있는 체험형 관광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취약계층의 복지기반을 확충하고, 보건의료서비스 체계를 개선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인전문병원을 증설하고, 특수보육시설을 확대할 방침이다.
계획은 장황하지만 충북도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몇 가지로 명쾌하게 압축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해 2010년 충북의 미래를 바꾸겠다는 것인데, 우선 충북의 인구를 3만5000명 늘리겠다고 한다. 또 충북 도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10년 3만1000달러로 올려놓고, 3인 이상 제조업체 2000개를 새로 유치하겠다고 한다. 2010년까지 6만1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단지 4군데와 농공단지를 8군데 새로 확보하겠다고 한다.
야심 찬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충북도민의 1인당 소득을 3만1000달러로 높이겠다는 목표가 실현 가능할까. 이에 대해 정우택 도지사는 “인구를 늘리고, 재정지출을 증액하며, 수출 130억달러를 달성하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구는 기업유치와 서비스 산업 확대를 통해 늘려 나갈 계획이다. 재정지출 증액 목표는 2010년 6조2000억원, 투자유치를 통해서는 2조3000억원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지금은 꿈같은 소리로 들리지만 한 사람의 꿈이 1만명의 꿈으로, 다시 100만명의 꿈으로 확대된다면 그건 이미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충북도청을 취재하면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게 있다. 도청의 한 공무원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한 주부들을 위해 ‘여성 인턴제’를 제안한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육아 때문에 그만두어야 했던 주부들은 각자의 형편과 능력, 소질에 맞게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을 소개받았다.
이 제도가 반응이 좋다고 소문이 나자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들이 견학하기 위해 충북도청을 찾았고, 창의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로 채택돼 전국의 지자체로 확대됐다.
누구든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격려하는 문화야말로 혁신에 대한 리더의 의지나 빈틈없는 전략만큼 중요하다. 이젠 지방의 이름 없는 촌부나 공무원의 머릿속에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가 열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