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의 점 보기는 ‘반국가적 미신’으로 엄단
- 당 간부들, 승진보다 자리 지키는 데 더 큰 관심
- 탈북 앞두고 “올해 죽을 운 있나 없나” 물어와
- 자식 낳기 꺼려 “잘 생기는 달이 언제냐?”
- “김정일 건강 사주, 일흔둘까지는 문제없다”
평양에서 주로 당 간부들에게 점을 봐줬다는 탈북 무속인 장애순씨.
북한에서 교도관 생활을 했다는 김정희(34)씨는 “감옥에서 만난 점쟁이로부터 ‘몇 년 후 남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바 있다”면서 “1995년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점쟁이를 찾아가 미래를 점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했다.
“10리마다 점쟁이 집이 있어요. ‘용하다’고 입소문이 퍼지면 쉬쉬하면서 점 보러 가요. 북한의 점쟁이들은 한국처럼 간판을 내걸진 못합니다. 점을 본 사람도 봐준 사람도 주변 사람이 밀고하거나 인민보안성 단속에 걸리면 감옥에 갈 수 있거든요.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요. 결혼날짜도 길일을 택하고 싶어 해요. 북한 주민들은 음력으로 9일과 19일, 29일이 길일이라고 믿습니다.”
“정말 용하더라”
지난해 12월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북한에서 무속과 점성술이 유행해 이를 단속해야 할 관리들까지 무당과 점쟁이를 찾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한 내 종교자유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 ‘김일성 아버지 감사합니다(Thank You, Father Kim Il Sung)’에 따르면 1990년의 대기근을 계기로 북한에 무속 신앙과 점술이 크게 유행해 이제는 정부 관리와 군 보위부 관리까지 점을 보고 있어 당국이 점성술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민보안성에서 중좌로 근무하다가 탈북한 강철민(39)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2003년만 하더라도 평양시에만 점쟁이가 300여 명 살고 있었어요. 그들 중에는 주역 같은 철학이 아니라 영적 계시로 득감(得感)했다는 사람이 많아요. 고려의학(한의학)을 앞세워 체질분석을 하면서 사주팔자를 봐주는 사람도 있고요.
한번은 평양시 만경대 구역 태평에 유명한 점쟁이가 있다고 소문이 났어요. 일흔의 노파였는데 구역보안원이 이 노파를 단속하려고 사주팔자를 보러온 사람처럼 위장하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곧 질겁을 하고 나왔더라고요. 노파 점쟁이가 단속원을 한눈에 알아보고선 지난날의 불행을 줄줄 얘기하면서 장차 일어날 불행에 대해 예언했던 겁니다. 단속원이 뺑소니치듯이 돌아 나와서는 인민보안성 직원들에게 ‘정말 용하더라’고 귀띔해줬대요.”
누구나 자신의 앞날을 알고 싶어 하고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불행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마련이다. 미신행위가 금지되는 북한에서 주민들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무속인을 찾아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침 통일부 소속 ‘북한이탈주민 후원회’ 담당직원으로부터 탈북한 여성 무속인을 추천받았다. 평양시내에서 주로 당 간부를 상대로 점을 봐줬다는 장애순씨. 현재 서울 양천구에 살고 있다.
“당 간부들이 점을 보러 많이 찾아왔어요. 대체로 가진 것이 있거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점을 보거든요. 여기처럼 승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오로지 자리 지키는 게 큰 걱정입니다. 김정일 위원장 말 한마디면 하루아침에 자리가 날아갈 수 있거든요. 신을 받은 점쟁이라도 ‘관(官)’으로 풀어 해석해줍니다. ‘관’이 약하면 ‘이번 주에 조심하라’고 일러줘요. 주로 일주일치 신수를 보러 와요. ‘말조심하라’고 일러주는 주간에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조용하게 보내겠다고 합니다.”
김정일 전화 받다 뇌출혈로 쓰러져
북한에선 주민뿐만 아니라 당 간부에게도 건강이 가장 큰 이슈라고 했다.
“건강이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얼마나 오래살 수 있는지 묻는 간부가 많아요. 간부들은 남한이 잘산다는 걸 알고 있어요. 몇 년 전에 남한에 붙잡혀 있던 전쟁포로가 돌아왔을 때 북조선 사람들은 ‘포로로 한평생 살았는데 우리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놀라워했어요. ‘남한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잘 먹는구나’ 했어요. 북한에서는 포로로 잡히면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시키는데…(웃음).
북한 주민들은 인생을 건강에 맞춰 해석해요. 당 간부 중에는 김정일 위원장 전화를 받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도 있습니다. 간부들은 매일 긴장 속에 살잖아요. 북한에선 또 부부궁합을 건강으로 풀어요. 남한에서는 ‘결혼하면 잘살 수 있겠냐’고 묻지만 북한에서는 ‘한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궁합이 안 좋으면 서로 치이니까 건강이 안 좋아질 것이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 모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북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건강 보기’ 원리는 이렇다.
“1월부터 12월까지를 월화수목금토와 띠로 나열해요. 1월(木)은 범, 2월(金)은 토끼, 3월(土)은 용, 4월(月)은 뱀, 5월(火)은 말, 6월(水)은 양, 7월(木)은 원숭이, 8월(金)은 닭, 9월(土)은 개, 10월(月)은 돼지, 11월(火)은 쥐, 12월(水)은 소입니다. 태어난 해와 달만 봐도 건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닭띠면 8월의 뜨거운 금(金)에 해당되는데 음력 12월에 태어났다면 차가운 물(水)입니다. 달궈진 8월의 쇠(金)가 차가운 물(水)로 마무리하는 격이니까 성정(性情)이야 차갑고 냉랭하겠지만 체질적으로 기 순환이 잘 되고 건강합니다. 겨울 흙(土)에 물(水)이 많으면 땅이 얼어버리고 겨울나무(木)는 물(水)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또 ‘달이 밤에 뜨고 나무가 낮에 성장한다’는 자연의 원리로 풀이해요. 돼지띠(月)와 뱀(月)띠 4월생과 10월생은 달에 해당하니 밤에 태어나야 좋다고 봅니다.”
장씨가 본 김정일의 건강 사주는 이러했다.
“불(火)이 금(金)을 달구어 활활 타오르는 형국이라 열이 많고 성질이 급해요. 콩팥과 폐가 안 좋지만, 건강이 아무리 나빠도 잘 견딜 겁니다. 일흔둘까지는 거뜬하게 지나갈 겁니다. 어지간히 아파도 겉으로 표가 안 날 사람입니다. 죽더라도 갑자기 죽지, 서서히 조금씩 앓다가 가진 않습니다. 죽기 전날까지 쌩쌩할 거예요.”
당 간부보다 기술자 선호
장씨는 “북한의 점은 한국과 다르다”며 “북한에선 ‘나쁘다’ ‘좋다’의 흑백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름을 지을 때도 점을 풀어 짓는다”고 했다.
“수(水)가 부족하면 수(水)가 많은 사람을 만나 채우면 됩니다. 이름을 지을 때도 부족한 음양오행을 채워 넣도록 지어주려고 해요. 큰 나무 같은 사주로 태어났으면 물이 있는 한자를 넣고요. 호랑이 꿈을 꾸고 낳았다고 하면 수풀이 무성한 나무와 산을 나타내는 한자를 써요.”
북한의 신점 해석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북한에선 사주를 풀이할 때 ‘나쁘다’ ‘좋다’로 딱 잘라 말하지 않아요. 못 먹고 못 살아도 낙천적입니다. 남한에 와 보니 사주팔자에 ‘살(煞)’이 있으면 무조건 풀어줘야 한다고 겁주던데, 북한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살은 나쁜 게 아니거든요. 살려주면 대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역마살이 있다면 돌아다니는 직장을 찾으면 신나게 일할 수 있거든요.
한번은 원유공업부에 다닌다는 높은 양반이 자식 사주를 보러 왔어요. 태어난 시(時)에 역마살에 수옥살(囚獄煞)까지 있었어요. 남한 점쟁이는 이런 사주를 놓고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풀이할 텐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살’을 잘 살려주면 경찰이 되거나 간수가 될 수 있어요. 북한에선 ‘살’을 살릴 수 있는 것으로 봐요. 여기선 점쟁이가 돈 받고 살풀이를 해주지만. 돈과 연결되니 점쟁이들이 순수 해보이지 않아요.”
장씨가 ‘살’로 푸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주는 이렇다.
“‘관’은 2008년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해요. 생년월일시로 풀자면 재살(災煞)이 있어 남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모진 기운이 왕성하고, 공망살(空亡煞) 때문에 늘 허허롭고 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 수 있어요. 집착하는 귀문관살(鬼門關煞)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매진하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다 빼앗기는 겁살(劫煞)이 있어 액운을 피하기 힘들 거라고 봐요. 모든 것을 탕진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어요.”
장씨의 말에 따르면 요즘 북한의 당 간부들은 자식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자식 공부시키는 게 큰 걱정거리입니다. 또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면 안정적이겠는가’ 물어와요. 점쟁이들은 크게 말로 먹고 살 것인지, 글로 먹고 살 것인지, 손재주로 먹고 살 것인지, 연장으로 먹고 살 것인지… 틀로 봐 줘요.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관운이 있으면 ‘학교 선생이 되라’고 일러줘요. 손재주가 좋으면 ‘기술자가 되라’고 하고요. 연장으로 먹고 살아야 할 것 같으면 ‘금속을 손에 쥐는 일을 하라’고 일러줘요. 천문(天文)이 들어 공부를 잘하면서 손재주가 좋고 연장으로 먹고 산다면 ‘외과의사가 되라’고 해요. (북한에서는) 요즘은 중앙당 간부보다 큰 기술자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장씨는 북한에선 “관상을 크게 따진다”면서 “관상 보는 법은 남한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얼굴선이 곱고 매끄러워야 인생이 평탄하고 성격이 유순하다고 봐요. 특히 당에서 직원을 뽑을 때 하관이 넓으면 ‘고집이 세다’고 떨어뜨려요. 남자라도 피부가 두꺼우면 ‘음흉하다’는 평을 받아요. 남자나 여자 모두 광대뼈가 앞으로 나온 건 괜찮은데, 옆으로 나오면 나중에 배신할 상(相)으로 봅니다. 옆모습으로 봐서 이마가 뒤집어진 상은 여자일 경우 기가 세어 남자를 잡아먹는다고 봐요. 여자가 옹니면 ‘과부가 되거나 혼자 벌어먹을 팔자’라면서 며느리상으로 아주 싫어합니다.”
장씨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하기 직전 신점을 보러 온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죽을 운이 있느냐 없느냐’고 물어보지, ‘탈북을 하겠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탈북하다 붙들리면 죽을 수 있으니 죽을 운이 없으면 탈출에 성공할 거라고 보는 거예요. 부모를 떠나 멀리 타향에 갈 운이 있다고 하면 탈북을 결심하는 것 같아요. 한번은 당 간부가 아닌 사람이 ‘자식을 외국으로 내보내면 어떻겠냐’고 은근슬쩍 물어요. 북한에선 공무여권을 가진 경우라면 모를까 일반인은 외국에 나갈 일이 없거든요. 이 경우 백발백중 자식을 탈북시킬 마음이 있는 거죠. 우리는 딱 보면 압니다.”
북한의 무속인은 복채를 어느 정도나 받고 신점을 봐줄까.
“평양에선 3달러쯤 받고 봐줬어요. 평양시내에는 외화벌이를 하는 사람이 많아 달러로 거래하기도 해요. 시골에선 80~100원을 받고 봐준다고 들었어요. 요즘 북한 돈 800원이면 쌀 1kg입니다. 돈이 없으면 콩, 팥, 쌀 같은 곡물을 들고 오기도 해요.”
통일은 여성적 기운으로만 가능
북한에서는 점을 칠 때 일년 운수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신수 중심으로 본다고 한다.
“1995년 이후 장사에 손댄 사람이 많아졌는데, 먼길 다니는 장사꾼은 하루하루의 신수를 봐요. 통행증이 있어도 공무원한테 달러나 북한 돈을 뇌물로 뿌려야 무사히 다닐 수 있거든요. 그날의 신수는 돈과 연관되어 있어요. (신수가) 안 좋은 날에는 돈을 더 준비해야 하니까 돈 없으면 절대로 먼길을 떠나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의 무속인처럼 신당을 차리거나 굿을 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받은 신을 모신 신 단지를 부엌으로 연결되는 구석진 뒷방에 모셔놓는다고 한다.
2~3년 전부터 중국이나 한국에서 주역과 명리학 등 일명 사주 보는 책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데, 북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철학을 공부해 사주를 푸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배운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얘기가 많아 어지러워해요. 특히 도시의 당 간부 자식들은 비밀리에 남한 드라마를 비디오로 돌려보거든요. TV에서 번쩍번쩍한 걸 보니까 부러워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누구도 남한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요. 속으로는 남한의 실정에 대해 다 눈치를 채고 있으면서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자식을 안 낳으려고 해요. 찾아와서는 ‘자식이 잘 생기는 달’을 말해달라고 해요. 자식 낳아봐야 고생한다면서 아기 낳기를 꺼려요.
한번은 환갑 넘은 남자가 제게 ‘앞으로 20년 거뜬하겠소?’라고 물어온 적이 있어요. ‘오래 살아야 좋은 구경 한다’면서. 김정일 위원장을 ‘나쁘다’고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없어요. 북한 사람들, 김일성 수령님은 존경하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배운 사람들은 ‘북조선이 뭔가 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기운이 어디로 뻗느냐’고 묻는 당 간부도 있었어요. ‘북이냐 남이냐’고.
북은 금(金)이 많고 화(火)가 뻗쳤으니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형국인데, 이를 꺾으려면 토(土)와 수(水) 기운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목(木)의 기운으로 부딪치면 다 타버리는 꼴이 되어요. 목(木)은 관(官)이에요. 통일을 남북의 땅과 하늘의 기운으로 풀어보면, 관이 나서면 잘 안 될 것 같아요. 토와 수는 여성의 기질입니다. 부드러운 여성의 기운으로 북한에 접근할 때 통일이 이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