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묘한 곳에 원전단지 세운 일본
- 임계 사고 일어나도 갈 길은 간다
- 국익 위해 앞장선 일본 자치단체장
- “원전 폐로(廢爐)는 수조원을 땅에 묻는 것”
- 계속운전 : 한국은 요란, 일본은 조용
다카하마 원자력 본부. 오른쪽은 섬에 건설된 1호기와 2호기, 왼쪽에 보이는 것이 반도에 지은 3호기와 4호기다. 원자로 사이에 바다를 복개한 작업공간이 있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혼슈(本州), 규슈(九州), 홋카이도(北海道), 시코쿠(四國), 이렇게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섬마다 별도로 전력회사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개항기 때 일본에 진출한 서방 세력은 일본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방해하려고,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지역과 오사카(大阪)를 핵으로 한 간사이(關西)지역에 각각의 전력회사를 세우게 했다. 그로 인해 ‘본토’로 불리는 혼슈 지역에만 일곱 개의 전력회사가 생겨나, 일본은 도합 열 개의 전력회사를 갖게 되었다.
전력회사가 많으면 지역간 ‘전기 장벽’이 생겨난다. 전기 주파수에는 크게 50사이클과 60사이클이 있다. 한국은 60사이클의 전기만 생산하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간토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도쿄전력은 50사이클의 전기를 생산하나, 간사이전력은 60사이클의 전기를 생산한다. 따라서 도쿄에서 오래 살다 오사카로 이사한 사람은 50사이클을 60사이클로 바꿔주는 변환기가 있어야, 가전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간사이전력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2000여만 간사이 주민에게 전기를 공급한다. 일본에는 모두 54기의 원전이 있는데, 이 가운데 11기를 간사이전력이 운영한다. 간사이전력은 동해에 접한 후쿠이(福井)현의 다카하마(高浜)정에 4기, 오이(大飯)정에 4기, 미하마(美浜)정에 3기의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다.
섬과 반도 사이 바다 복개한 공간 활용
1월30일 기자는 다카하마 원전본부를 찾아갔다. 이 원전본부는 독특한 곳에 위치해 있다. 오른쪽으로는 해상국립공원인 와가사(若狹)만에, 왼쪽으로는 우치우라(內浦)만에 접한 작은 반도가, ‘산속의 깊은 계곡’ 같은 형태의 바다를 놓고 섬을 마주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폭이 5m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바다계곡’ 건너의 바위섬은 울창한 숲을 이고 있다.
이 바다계곡엔 트러스 다리가 걸려 있는데, 다리 앞에서 왼쪽으로 돌면 다카하마 원전본부의 입구가 나온다. 원전 진입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반도와 섬 사이의 간격이 넓어졌다. 바다계곡을 꼭짓점 삼아 V자 형태로 벌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바다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다카하마 원전본부는 V자 계곡의 양쪽, 그러니까 반도와 섬의 바위 해변을 깎아 만든 공간에 들어서 있다.
섬 쪽으로 1호기와 2호기가, 반도 쪽에 3호기와 4호기가 들어서 있고 그 바다 위를 복개해 마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도와 섬을 만든 암반이 ‘녹색’을 벗고 V자의 바다로 뛰어드는 공간을 깎아내 원전을 세우고, 그 사이의 바다는 원자로에서 나온 증기를 식혀 다시 물로 만들어주는 ‘냉각수의 통로’로, 그리고 그 위는 복개해 작업마당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공간 활용에 “세상에!”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요란한 한국, 조용한 일본
다카하마 원전을 찾아간 것은 한국보다 항상 앞서 나가는 일본인들의 원자력 정책을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이 비교적 조용하게 원자력 정책을 발전시켜왔다면 한국은 ‘외세(外勢)’에 휘둘려가면서 요란하게 원전 정책을 펼쳐왔다.
1971년과 1978년, 한국은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의 기공식과 가동식을 거창하게 열었다. 그리고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의 기공식도 대대적으로 열었는데 이 시기 한국 정부는 원자력을 한국의 미래 에너지원인 ‘제3의 불’로 보고, 적극적으로 친핵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로가 용융(熔融)되고,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에서 화재가 일어나면서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자력 분야에서 강력한 반핵운동이 터져 나온 것이다. 여기에 그린피스를 비롯한 외국 단체가 가세함으로써, 한국은 20여 년 동안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후보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표류했다. 2003년에는 또 다른 외생 변수에 의해 원자력 정책은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고향인 부안을 발전시키겠다”며 방폐장 유치에 나선 김종규 당시 전북 부안군수가 주민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계기였다.
김 군수 피습 사건 이후 원자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180도 표변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방폐장을 유치하겠다는 경쟁에 나섰다(2005년).
일본은 세계 유일의 핵 피폭(被爆) 국가이니 핵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조용히 움직였다. 일본인들은 ‘1940년대 중반 일본이 먼저 핵을 개발했다면 일본은 지금의 미국 이상으로 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섬에 갇혀 살아서인지 본심을 뜻하는 ‘혼네(本音)’는 감추고, 체면성 겉치레인 ‘다테마에(建前)’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핵을 갖고 싶다’는 혼네를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미군정이 끝난 직후 훗날 총리가 되는 나카소네(中曾根) 의원 등이 절치부심하며 원자력 관련 법안을 만듦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 일본의 10개 전력회사 가운데 하나인 일본원자력발전(주)이 후쿠이현 쓰루가(敦賀)시에 일본 최초의 원전인 ‘쓰루가 원전 1호기’(35만7000kW) 가동식을 ‘조용히’ 치렀다.
일본에서 배워온 특별교부금 지원
원자로를 갖게 된 피폭 국가 국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후 일본은 원자력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1992년 12월 롯카쇼무라(六ケ所村)에 방폐장을 완공하고, 2006년 3월에는 같은 곳에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재처리 공장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재처리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다섯 나라만 갖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5대 핵보유국 이외의 나라로서는 최초로 재처리 공장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시운전 중인 이 공장은 올해 7월부터 정식으로 가동에 들어가, 매년 플루토늄 8t(지난해 10월9일 북한이 실험한 것 같은 조악한 핵무기라면 무려 100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을 생산하게 된다.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지을 때 일본에서는 반핵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외부세력이 찾아와 약간의 반대운동을 했을 뿐이다. 그에 앞서 방폐장을 지으려 할 때 반핵운동이 터져 나왔지만 그 강도는 한국보다 훨씬 미약했다.
한국의 방폐장 후보지는 주민들의 반핵시위에 밀려 여러 곳을 떠돌다 경주로 결정되었지만, 일본은 롯카쇼무라를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한 후 단 한 번도 후보지를 바꾼 적이 없다. 롯카쇼무라 주민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대표적인 반핵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씨의 선동으로 반핵 단체들이 몰려와 몇 차례 시위를 벌였을 뿐이다.
이때 일본 정부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롯카쇼무라 주민의 결심을 촉구하기 위한 ‘당근’을 던지는 ‘재치’를 발휘했다. ‘전원(電源) 3법’이라는 특별법을 만들어 방폐장이 들어설 예정인 롯카쇼무라와 인근 지역에 423억엔(약 4200억원)의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 그로 인해 롯카쇼무라에서는 방폐장을 유치해 지역을 발전시키자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단체장에 당선돼, 어렵지 않게 방폐장을 짓게 되었다.
한국도 방폐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3000억원을 특별 지원하고 추가로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해주겠다고 했으나, 김 군수 피습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지역도 방폐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한국의 원전 정책은 요란하나 진척이 더디고, 일본은 ‘용각산’ 광고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가운데 실속을 채워나갔다.
플루토늄 추출 후 눈물 흘린 日 과학자
지금 고리 지역은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리 1호기 앞에 있는 원전탑. 박정희 대통령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일본인에게 플루토늄은 한 맺힌 존재다.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건설하기 훨씬 전인 1977년 일본핵연료변환회사(JCO)는 미국의 허락을 받아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東海村)에 시험용 재처리 공장을 지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원로 원자력인인 A씨는 이 곳을 방문해, 일본이 처음으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말이다.
“플루토늄 추출에 성공했다는 결과가 나온 후 제(祭)를 지내는 일본 연구진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군인도 아닌 순수 과학자인 그들이 왜 울겠는가? 플루토늄 추출이 확인되었을 때 그들의 뇌리에는 1945년 원폭 투하로 죽어간 친지와 동료, 힘들었던 젊은 시절과 패전한 조국의 비애 등이 되살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다테마에’에 감춰진 일본인의 ‘혼네’가 드러나는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다.”
그 후 도카이무라에는 우라늄을 농축하는 실험용 공장도 세워졌는데, 1999년 9월30일 우라늄 공장에서 ‘임계(臨界) 사고’가 발생했다. 임계란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핵폭탄은 100만분의 1초 이내에 핵분열이 일어나게 하며 폭발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공장에서 일어난 핵분열은 폭발 없이 강한 방사선만 발생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죽고 169명이 방사선을 쪼이게 되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잇는 초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인데, 일본 언론은 이 사건을 축소보도했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사회 문제가 되어, 원전 건설을 중단해 지금까지도 원전을 짓지 않고 있는 미국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도카이무라에서 발생한 임계 사고는 당시 막 건설에 들어간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 건설을 중단시킬 수도 있을 정도로 중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사고의 파장을 축소함으로써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또 원전을 계속 지어 세계 3위의 원전 보유국가가 되었다.
롯카쇼무라에 방폐장을 완공하고 재처리 공장 기공식을 가진 일본은 그 다음 장벽도 쉽게 넘었다. 바로 ‘정년’을 넘긴 원자로를 폐로(廢爐)하지 않고 계속운전 을 결정한 것. ‘정년 연장’을 도입함으로써 원자로를 새로 짓는 비용을 아끼려 한 것인데, 이러한 정책은 반핵단체들로부터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위험하다. 왜 위험한 원자로를 계속 운전하려고 하느냐”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일본의 원자력 정책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전을 지을 때 ‘설계수명’을 정했는데, 초기에는 설계수명을 30년으로 정했다(그 후로는 40년으로 하고 있다). 한국은 원전을 시운전한 때로부터 설계수명을 카운트하나, 일본은 시운전 기간은 빼고 상업운전을 시작한 때부터 설계수명을 계산한다. 이에 따라 1970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일본 최초 원전인 쓰루가 1호기가 2000년 설계수명 종료에 직면했다.
자동차를 험하게 쓴 사람은 주행거리가 10만㎞가 넘으면 폐차 처분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부품을 바꿔가며 잘 관리한 사람은 20만㎞가 넘어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원자로도 마찬가지여서 제때에 부속을 바꿔주고 깐깐하게 관리해왔다면 설계수명에 도달해도 당장 폐로할 이유가 없다. 이때의 설계수명 종료는 ‘이 원전을 계속사용할지’, ‘계속 사용한다면 언제까지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로는 매우 예민한 기계장치다. 원자로에는 수많은 감지장치가 있는데, 이 중 어느 하나가 이상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가동이 멈춘다. 원자로가 멈추면 기술자들이 투입돼 원인을 찾고 이상을 초래한 부품을 교체한다. 가동 중이던 원자로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정지하는 것을 ‘고장정지’라고 한다.
원자로는 1년~1년 6개월에 한 번씩 핵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가동을 정지한다. 이 정지는 예정된 ‘정기정지’에 해당하는데, 노련한 기술자가 많은 원전에서는 정기정지 기간에 집중적인 정비를 해 이상이 있을 것 같은 부품을 교체한다. 정기정지 때 정비를 잘하면 고장정지가 적어 다음 정기정지 때까지 계속해서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다. 이러한 원자로는 이용률이 높다고 표현한다.
정기정지 때마다 부품을 교체하다보면, 초대형 구조물인 원자로 용기와 두께가 60㎝에서 1m20㎝에 이르는 콘크리트 차폐 건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원자로는 최신 원자로와 다를 게 없다. 100만kW급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2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부품을 교체함으로써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는 원자로를 폐로하고 2조원 이상을 투자해 새로 원전을 짓는 것은 자원의 낭비다.
일본 정부는 2000년 쓰루가 1호기의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일본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10년 단위로 종합안전성평가를 하고 1년 단위로 정기검사를 해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10년간 계속운전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같은 검사를 해 문제가 없으면 다시 10년을 연장해 최장 60년까지 원자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현재 일본은 12기의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일본 자치단체장의 정치력
계속운전은 미국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미국은 절박함 때문에 원전 계속운전을 도입했다. 미국은 서방세계에 원자로 기술을 전파한 종주국이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자로 용융사고를 계기로 원자로 건설을 중단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력 소비가 급증하나 미국처럼 이미 산업화가 완료된 선진국에서는 전력 소비량이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원자로를 건설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았다.
미국은 전력 소비량의 증가율이 둔화된 상태에서 원자로 건설 중단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금방 전력 부족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르면서 산업구조와 생활수준이 고도화되자 전력이 달리게 되었다.
전기는 소비량이 100%에 달하는 순간 ‘퍽’하고 일시에 나가는데, 이를 ‘과부하가 걸렸다’고 한다. 초대형인 100만kW급 원자로 두 기가 동시에 정지할 수도 있으므로, 전기는 두 기의 원자로가 동시 정지해도 부족하지 않도록 20% 정도의 여유를 두고 생산하는 것이 좋다. 미국은 이 문제를 등한시했다.
그 결과 2001년 3월19일 캘리포니아 주에서, 2003년 8월14일에는 뉴욕을 비롯한 북동부 지역 전역에서 과부하로 전기가 일시에 나가버리는 ‘블랙아웃(Black Out)’이 일어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국은 전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원자로 건설 재개를 검토하게 되었다. 이때 새로운 위기가 닥쳐왔다. 2000년대가 되자 오래전에 건설한 원자로들이 줄줄이 허가 만료기한인 40년을 맞게 된 것.
수전이나 화전보다 발전량이 큰 원전을 허가기간이 끝났다고 폐로하면, 미국의 전력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절체절명의 이 위기를 미국은 원자력법에 ‘허가기한 갱신제도’를 삽입함으로써 넘겼다. 안전성이 확보된 원전은 20년을 더 가동할 수 있도록 한 것. 그에 따라 2000년 3월 칼버트 클리프스 원전1·2호기를 시작으로 총 48기의 원자로가 20년 추가운전 허가를 받았다. 현재는 여덟 기가 계속운전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심사를 받고 있다.
쓰루가 1호기는 미국 원전보다 10년 젊은 데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친핵 정책을 택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계속운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다카하마 원전 1호기는 2004년 일곱 번째로 계속운전을 허가받았고 이듬해에 다카하마 원전 2호기가 아홉 번째로 계속운전을 허가받았다.
30년이 지난 원전을 계속운전해도 되느냐는 전적으로 전문가들이 검사해서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회단체가 개입해 정치문제화함으로써 전문적인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다카하마 원전본부도 계속운전을 심사받기 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다카하마의 주민이 반대한다면 일본 정부는 기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도 정치적인 부담을 느껴 계속운전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자로를 폐로하면 이 원자로가 있음으로 해서 상당한 지방세를 받던 지방자치단체의 수입이 줄고 그에 따라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어든다. 주민도 섣불리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30년의 세월은 지역 주민과 원전을 경제적·문화적으로 엮이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지역 주민 가운데 일부는 원전 직원이나 협력업체 직원으로 채용되고, 원전본부는 지역 농산물을 사주는 중요한 소비처가 된다. 폐로는 이러한 시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카하마 원전의 후지오카 야스아키(藤岡康明) 부본부장은 이러한 때 후쿠이 현지사가 발 벗고 나섰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원전이 계속운전을 하게 된 데는 현지사의 정치력이 큰 몫을 했다. 현지사는 공무원과 시장·촌장, 원전 반대자와 찬성자들을 고루 모아 ‘후쿠이현 안전관리협의회’를 만들고 정부 관계자와 간사이 전력 관계자를 불러 계속운전에 대해 설명케 했다. 그리고 이 사안을 자유토론에 부쳤는데 자연스럽게 반대한다는 소리가 사라졌다. 그러자 현지사는 ‘후쿠이현에는 15개의 원전(간사이 전력 외의 것 4기)이 있지만 30년 동안 별문제가 없지 않았느냐. 잘못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지역 여론을 계속운전에 동의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다카하마 원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사원 2명씩을 설명조로 묶어서 이 지역에 있는 3200여 가구를 세 차례씩 방문해, 자료를 설명하게 했다. 현지사도 기초자치단체 의회를 찾아다니며 계속운전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지역에서는 계속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카하마 원전측은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할 때 지역주민에게 약간의 지원을 제공했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1호기의 터빈 건물과 주제어실을 보여주었다. 다카하마 원전 1호기의 시설은 우리나라 고리 1호기보다는 약간 낡아 보였다. 일본은 원전의 계속운전 문제도 ‘조용히’ 넘긴 것이다.
發周支法에 의한 지원
한국은 현재 원전 정비를 잘하는 나라로 꼽힌다. 그러나 고리 1호기는 가동 초기인 1979년에는 무려 13번이나 고장정지를 하는 등 정비에 문제가 있었다. 상업운전에 들어간 1978년부터 1990년 사이 고리 1호기의 연평균 고장정지 횟수는 6.6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술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2001년부터 2005년 사이의 고장정지 횟수는 연평균 0.4건으로 줄어들었다. 고장정지가 적으면 원전의 이용률은 높아진다. 2005년 세계 원전의 연평균 이용률은 79.5%이나, 고리 1호기는 85%를 기록했다. 1995년 이후 고리 1호기의 이용률은 항상 세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1996년 3월31일부터 1999년 9월5일까지 3년 6개월 사이에는 핵연료를 교체하기 위한 정기정지만 하고 단 한 번도 고장정지를 하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고리원전본부는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을 자신하는 눈치다. 한국은 원자력법 시행령 제42조 2의 제4항 등에 따라 안전성에 문제가 없으면 일본과 같은 절차를 거쳐 계속운전을 허가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성 검사는 과학기술부가 중심이 된 전문가 집단이 한다. 그런데 지역주민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면 정치 논리에 의해 계속원전을 허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고리 1호기에 이어 중수로인 월성 1호기도 설계수명 종료에 직면한다. 중수로는 작은 원자로 380개를 묶어놓은 것인데, 이 원자로는 작은 것이라 대부분 교체했다. 따라서 월성 1호기를 설계수명이 다했다고 폐로한다면, 쌩쌩한 원자로를 ‘그냥 버리는 것’이 된다.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이 허가되지 않으면 월성 1호기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정부는 방폐장 유치 경험을 토대로 지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근거 법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주지법)과 그 시행령. 이 법령에 따라 원전이 들어선 지역은 kW당 1원의 비율로 지원을 받는다. 1원 가운데 절반(50%)은 지역개발세로 자치단체가 가져가고, 나머지 50%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지방자치단체가 반씩 갈라서 원전 지역 주민을 위해 사용한다.
고리 1호기에서는 매년 44억원을 지원금으로 내놓고 있다. 22억원은 자치단체에 지역개발세로 내고 11억원은 한수원이, 나머지 11억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을 위해 사용한다. 고리 1호기가 폐로된다면 이 지역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발주지법은 신규 원전 건설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지원을 보장한다. 원전 건설을 허가한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땅값을 제외한 건설비용의 1.5%를 지급하는데, 단순한 허가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유치한 경우라면 0.5%를 추가해 2%를 지원한다. 현재 고리 지역에는 100만kW급인 신고리 1·2호기가 건설되고 있는데 이 원전은 자치단치에서 자발적으로 유치한 것으로 인정돼, 반경 5㎞ 안에 있는 부산시 기장군과 울산시 울주군은 도합 703억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40만kW급인 신고리 3·4호기를 지을 계획인데, 신고리 3·4호기는 용량이 커서 도합 1146억원이 지방자치단체에 지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을 영원히 못 따라잡는다?
그러나 고리 1·2·3·4호기는 발주지법이 제정되기 전에 건설되었으므로, 지자체는 고리 1·2·3·4호기 건설로 인한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발주지법 시행령 27조의 2의 ②항에 ‘계속운전을 하는 원전은 산자부 장관이 고시하는 가산금을 지역에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가산금이 얼마일지는 고시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신규 원전을 유치했을 때와 비슷한 비율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별도로 고리 1호기 주변에는 원자력의학원(구 원자력병원)의 분원인 동남의학원이 건설된다. 그러나 지금 고리 1호기 주변 지역은 이러한 지원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고리 1호기 주변 지역에서는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가 양성자가속기도 함께 유치했듯 중입자가속기를 지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기장군 장안읍 등에 있는 일부 사회단체는 고리 1호기의 폐로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폐로가 결정되면 고리 1호기 주변지역은 지원금과 가산금을 받지 못하고 한수원은 쌩쌩한 원자로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결과는 양쪽 모두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회피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 원자력계가 가야 할 중간 목표점은 일본처럼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재처리는 핵무기가 아니라 핵연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기로 한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으므로 핵무기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핵연료를 제조하기 위한 재처리는 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취득하려면 국내에서 원자력 문제를 놓고 되도록 분규가 일어나지 않고, 한국에 원자력 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축구시합에서 졌다고 해서 한국의 국력이 쇠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자력산업에서 뒤처지면 한국은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산업과 달리 원자력산업은 한국과 일본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이 앞서가고 있다. 핵 문제에 관해서는 요란한 선택 과정을 밟아온 한국은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