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세요? 어떤 욕망이 마음속에 꿈틀대죠?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창피한가요? 그래서 마음속에 꽁꽁 묶어둔 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죠?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쏟아내면 별것 아닌 거 있죠? 나만의 욕망이 아니란 걸 확인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기도 하죠. 이게 힘이 되어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되고요.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거부감 다음엔 중독성
천재 야옹양의 생활(blog.naver.com/oz29oz). 이곳은 남자친구와 함께 만드는 요리를 올려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야옹양의 블로그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과 사진이 있다. 야옹양의 포스트(글)를 읽다보면 잠자고 있던 요리 본능이 절로 깨어난다. 그는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를 책으로 엮은 ‘두근두근 연애요리’와 신혼부부를 위한 간편 요리를 담은 ‘국민요리책’을 발간한 유명 저자이기도 하다. 야옹양은 현재 주방기구 업체들로부터 제품을 협찬받아 다양한 요리법을 연구 중이다.
요리는 야옹양이 추천하는 것으로 만들면 되고, 그 다음은 음식을 먹으면서 나눌 화제가 필요한데…그래! 이규영의 연예영화 블로그에 들어가보자. 최근 연예가 소식이 잔뜩 들어있겠지. 이규영 연예영화블로그(leegy.egloos.com).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규영의 블로그는 전문기자 못지않은 정보 수집력 덕분에 연예계 사건사고를 남보다 앞서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연예 정보 블로그 중 유독 이규영의 블로그가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분석이 담긴 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규영 특유의 직설적인 말투 탓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던 사람들도 몇 번 방문하다보면 북마킹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또 하나부터 다섯 개까지 별점으로 분류되는 영화 리뷰도 내가 이 블로그를 자주 들락거리게 하는 요소다. 참, 주인장의 닉네임 ‘이규영’은 본명이 아니라 성인배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생활 곳곳에서 마주치는 흔한 소비의 대상 앞에서도, 나는 누군가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평가를 참고해야 직성이 풀린다. 블로그는 이미 나의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했다. 상품을 살 때는 물론이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 또는 대선 지지자를 결정할 때도 블로그는 조언자가 돼준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전원을 끄면 사라져버리는 한낱 ‘웹’을 통해 어떻게 생각과 소신을 정립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전부터 사람들은 책, 신문 혹은 주변의 지인을 통해 의사를 결정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가 혼합된 블로그를 참고해 생각을 정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사용자들의 반응을 미리 파악해보고 싶을 때, 나는 블로고스피어를 돌아본다. 블로그에는 언제나 새로운 뉴스가 있고, 때론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내가 몸담은 IT업계의 소식을 듣고 싶을 때, IT 관련 포스팅(글쓰기)을 작성하는 몇 군데의 블로그를 돌아보면 업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블루문도 몰라?
링블로그(www.ringblog.net), 일명 ‘그만의 아이디어’는 현재 웹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사안을 보여준다. IT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작성한 포스트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만님의 직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링블로그는 ‘매일경제’의 IT전문기자 명승은씨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다. 그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인터넷 관련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준다. 최근 모 포털업체가 그만님의 포스트를 무단으로 도용한 글을 내보낸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 블로거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환기되기도 했다.
IT업계의 핫이슈, 구글에 대한 최근 소식을 듣고 싶다면 팔글(www.palgle.com)에 들어가보자. 구글 애드센스, 블로거닷컴, 구글 어스와 맵 등 구글이 진행하는 서비스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코멘트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인터넷 컨설턴트이자 열혈 구글러인 이삼구씨의 블로그.
이씨는 ‘구글의 모든 것’이라는 모토 아래 구글과 관련한 소식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한다. 2006년 하반기에 애드센스 수익금액을 공개해 블로그의 수익모델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포털에 대한 집중 분석과 웹 서비스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하다면 이준영씨의 이구와수 블로그(i-guacu.com)에 가보자. 블루문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그는 웹 컨설팅 업체인 트레이스 존의 대표이사다. 그의 블로그는 이미 웹 관련 업무 종사자에겐 필수적인 북마크로 자리잡았다.
이준영씨는 웹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구아수 블로그 외에도 각기 주제를 달리하는 블로그를 여러 개 동시에 운영 중이다.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를 써내려간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blog.naver.com/kickthebaby)과 원희룡 의원, 문학평론가 이어령씨 등 각 분야 인사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인터뷰로그(interviewlog.com)도 운영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이슈가 터지고 그 이슈가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공중분해되는 스펙터클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런 이슈의 홍수 속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정확한 사리판단을 하기 위해 몇몇 블로그를 방문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도구이자 나의 의사를 결정짓도록 도와주는 것,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유이자 미디어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다. 블로그가 ‘1인 미디어’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코지토의 세상분해하기(mediamob. co.kr/agny77)는 다양한 시사 문제에 대해 명쾌하고 간결한 코멘트를 제공한다. 어느 신문의 사설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논리적인 주장으로 무장한 코지토의 글은 읽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코지토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대구지역의 문화잡지인 ‘문화신문 안’을 만들고 있다. 그는 각종 시사 이슈 외에도 크리스마스나 기독교, 프리메이슨 등 다양한 주제를 신비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종종 방문자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뉴스의 뒷얘기를 듣는다면 딱딱하게 느껴지는 시사뉴스를 친근하게 접하면서 색다른 사실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목적을 실현하는 데는 산하의 썸데이서울(www.mediamob.co.kr/sanha88)이 딱이다. SBS TV ‘긴급출동 SOS’의 김형민 PD가 운영하는 이 블로그엔 취재 뒷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하고 재미있는 글이 실려 있다.
산하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김 PD의 블로그는 방송을 만들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는 ‘썸데이서울’과 맛 집 소개를 담은 ‘마음이 배부른 식당’으로 나뉜다. 그는 허름한 칼국숫집을 소개하더라도 단순히 맛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주인의 마음까지 전하려 노력한다. 산하는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를 거부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차탈래 부인의 수다본능
2BSi-지식다큐(mediamob.co.kr /2bsicokr)는 사회분야에서 남다른 관찰력과 접근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로그다. 당신을 열 받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살다보면 아무리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을 지녔더라도 자신을 화나게 하는 몇 가지 유형의 인간을 만나게 마련이다. 2BSi 블로그를 운영하는 서형님은 거리로 직접 나가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택시기사, 분식점 주인, 노점상인 등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전하는 ‘나를 열 받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차탈래 부인의 수다본능(www.mediamob.co.kr/yeorim)을 읽고 있으면 여자만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사회현상을 관통하는 맛이 느껴진다. 차탈래 부인은 여자이자 어머니, 아내, 며느리, 딸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순간을 맛있는 문체로 담아낸다. ‘보노보노’라 부르는 남편과 조숙한 꼬마 숙녀 여림이와 함께 꾸려가는 행복한 일상이 블로그 곳곳에 듬뿍 묻어난다. 무뚝뚝한 남편과의 연애 이야기도 재밌지만 386세대, 부동산 광풍, 종교논쟁 등 갖가지 사회 이슈에 대한 30대 주부의 센스 넘치는 의견을 엿보는 것도 즐겁다. 차탈래 부인이 쓰고 있는 단편소설 ‘북경반점’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블로그에서는 손쉽게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설치와 관리가 편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과거 인기를 끌던 홈페이지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야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블로그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컴퓨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블로그의 기능을 활용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블로거는 다른 방문자들이 남긴 트랙백(자신의 글을 타인의 글에 참조형식으로 덧붙이는 것)과 리플(댓글)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RSS(새로운 정보가 생성될 때마다 이를 해당 블로그에 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해 관심 있는 블로그의 최근 소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도 있다. 메타 블로그(블로그를 모아놓은 곳)에 나의 RSS를 등록함으로써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늘릴 수도 있다. 또한 인기 블로거라면 자신의 블로그에 광고를 달아 수익을 얻기도 한다.
케이프타운에서…
그러나 급상승하는 블로그의 위상은 툴 자체가 가진 기술적인 부분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거대권력인 매스미디어를 위협할 만큼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는 블로그엔 수많은 블로거가 포진해 있다. 이들 블로거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블로그와 저널리즘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특정 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써야만 기사로 대접받던 시대가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블로그는 기존의 매체들이 쉽게 다룰 수 없는 세세한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방문자의 구미에 맞는 정보를 발 빠르게 전달해준다. 영화, 시사, IT와 같이 특정 주제로 운영되는 블로그들은 이미 올드미디어들이 갖는 신뢰도를 뛰어넘어 방문자의 의사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기존 매체가 놓친 부분을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블로그는 심샛별의 케이프타운에서(blog.daum.net/gniang)다. 심샛별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며 아프리카 소식을 생생하게 전한다. 본인은 자신을 평범한 전업주부일 뿐이라고 소개하지만, 그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남아공에 세워진 유일한 한국식 정자인 ‘성북정’의 붕괴 위험을 20만명에 달하는 네티즌에게 알려 복원사업의 물꼬를 텄다. 에이즈로 고통 받는 남아공 어린이를 위한 자선행사를 개최하는 등 미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MisterX의 드라마왕국(mediamob.co. kr/misterx)은 드라마라는 평범한 장르를 색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사랑하는 이탈리아인 MisterX는 이웃에 사는 한국인 친구 덕분에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완전히 중독된 상태. MisterX는 여러 드라마 장르 중에서도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같은 사극을 좋아한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드라마 블로그라니, 흥미는 있지만 언어가 달라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MisterX는 한국인도 종종 어렵게 느끼는 우리말을 유행어와 섞어 쓸 만큼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지녔다. 걱정 말고 방문해보자.
블로거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여 작성한 포스트는 보도자료에 근거한 홍보성 기사나 매체가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에 좌우되는 칼럼보다 때론 훨씬 공정하다. 이렇다보니 블로그에서 좋다고 소문이 나면 곧장 ‘대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일례로 일본의 독립영화인 ‘메종 드 히미코’는 블로그에서 난 입소문만으로도 관객동원에 성공해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어섰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는 유튜브와 구글 폭탄 등을 이용한 블로거들의 온라인 정치운동이 영향력을 발휘해 민주당이 압승하는 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출판계 틈새시장 ‘와이프-로거’
제닉스의 사고뭉치(xenix. egloos. com)를 보자. 자신의 직업을 탐정이라고 밝힌 제닉스는 본업 외에도 프로그래머와 전문 리뷰어, 음악 작곡 등 다양한 부업을 소화해내는 만능 재주꾼이다. MP3 플레이어에 대한 리뷰를 꾸준히 올린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기업으로부터 한 달에 4∼5건의 리뷰 의뢰를 받으며 수익을 올리는 전문 리뷰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얼리어댑터 제닉스는 IT제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꼼꼼하고 정확하게 제품을 분석하는 일뿐 아니라 사진 촬영과 리뷰 편집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만능 편집자다. 그가 좋다고 평가한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은 이런 전문적 식견과 노력이 네티즌에게 인정받은 결과다.
요한나의 네버랜드(blog.naver.com /tailwind39)는 주부 왕혜금씨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천연비누와 천연화장품을 주제로 운영하는 블로그다. 아토피 때문에 DIY에 관심을 갖게 된 왕씨는 블로그에 자신의 노하우와 제작 과정을 올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천연비누 강의 및 주문 제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왕혜금씨처럼 요리나 인테리어, DIY 등 주부의 관심 분야에서 알짜정보를 올려 두각을 나타내는 블로거들을 ‘와이프로거(wife-logger)’라고 부른다. 와이프로거의 콘텐츠는 출판계의 틈새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치샐러드’라는 블로그 운영자가 고안한 세탁볼. 유머감각이 넘쳐 누리꾼에게 인기다.
그러나 블로그는 다르다. 블로거들은 자신의 포스트에 달린 리플에 직접 답을 달며 리플을 남긴 방문객의 블로그를 되짚어 찾아간다.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불가능하던 실시간 의사소통은 블로그가 가진 독보적인 장점이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블로그끼리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타임’이 선정한 2006년 ‘올해의 인물’은 바로 ‘당신(You)’이다. 명성도, 돈도 없는 보통 사람인 당신이 어떻게 조지 부시, 앨 고어, 김정일 같은 인물들을 제치고 올해의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수많은 ‘당신’의 참여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UCC(User Created Contents)가 전세계적인 화두로 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명화 볼래, 여행기 볼래?
개방형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org),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YouTube.com) 혹은 무수한 개인 블로그처럼 네티즌의 참여로 이뤄지는 뉴미디어는 정보의 유통과정을 바꾸고 있다. 미디어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유통시켜 대중에겐 성역(聖域)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사용자가 직접 매체 지향적인 웹 서비스에 참여하면서 정보를 생산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는 점차 수평적 관계가 된다. 일부에게 집중되던 권력이 다수의 개인에게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 도입되기 시작한 블로그가 1000만개를 돌파한 지 오래다. 지금은 양적 성장기를 벗어나 옥석을 가리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블로그를 통한 저널리즘의 확산은 미디어적 권위를 갖는 스타 블로거들을 탄생시켰다. 요리의 전 과정을 사진에 담아 올리는 주부는 물론, 자신의 캐릭터로 그림일기를 올리는 일러스트레이터, IT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학생 등 다양한 분야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 방문자수가 1만명에 달하는 스타 블로거로 약진했다.
그중의 상당수는 블로그를 통해 실제의 생활에서도 전환기를 맞았다. 맛깔스러운 문장력을 자랑하는 주부 블로거는 출판의 기회를 얻었고, 그림일기로 큰 인기를 얻은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의 캐릭터를 상품화했으며, 대학생 블로거는 체계적인 블로깅 덕에 IT 관련분야에 취업했다.
인기 블로거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저마다 고유한 주제를 갖고 운영한다는 점과 그 주제와 관련한 분야에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선두주자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고급 콘텐츠를 원한다. 올드 미디어가 다양한 물건으로 사람의 시선을 잡는 백화점이라면, 블로그는 가짓수는 많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물건으로 채워진 소규모 상점이라 할 수 있다.
김치샐러드(www.kimchisalad.net)라는 블로그를 보자. 명화(名畵)에 대한 쉽고 독창적인 설명으로 눈길을 모은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의 주인공 김치샐러드는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을 예술의 소재로 활용하는 웹 아티스트다. 김치샐러드는 1만2000개의 녹차티백으로 만든 녹차인간과 이모티콘을 응용한 세탁볼, OTL맨 퍼포먼스 등으로 작년 한 해 화제를 뿌렸다. 한 사람의 재능 덕분에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들이 쉽게 풀린다는 점에서 그의 블로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 다이어리(paper.cyworld.nate. com/badtrip)도 맛깔나는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로그다. 싸이월드 페이퍼의 인기작가인 이창수씨는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점을 ‘원더랜드 여행기’와 ‘나쁜 여행’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이씨의 ‘자전거 다이어리’는 자전거 여행의 장점부터 꼭 준비해야 할 것까지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내용들이 담겨 있어 여행을 준비하는 방문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은밀한 즐거움
짬지닷컴 블로그(www.zzamziblog. com)는 성인용품점 ‘짬지닷컴’ 사장이 운영하는 성인 블로그다. 블로그 상단에 ‘정통부 관계자와 도를 닦는 사람들은 출입을 삼가달라’는 안내 문구를 걸어놨지만, 예상하는 것처럼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와는 거리가 먼 명랑 블로그다. 성인용품 쇼핑몰을 운영하며 겪고 느낀 점을 기발한 아이디어와 위트 넘치는 패러디에 담아 들려주는 짬지닷컴 블로그의 글은 성(性)을 금기시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옐로 저널리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레진의 생각이 없는 블로그(lezhin. egloos.com)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아우르는 연예계 뒷담화와 격식 차리지 않고 솔직하게 풀어놓는 영화 리뷰로 채워져 있다. 단, 종종 성인물 수준의 화보가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으니 공공장소나 회사에서보단 집에서 조용히 감상하길 권장하는 바다.
남성들이 ‘이규영 연예영화블로그’와 ‘생각이 없는 블로그’에 열광한다면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cool120p. egloos.com)는 여성들이 열광하는 블로그다. 쿄씨라는 묘령의 여인이 운영 중인 이 블로그에도 성에 대한 거침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노처녀 만담’이 있다. 이 뿐 아니라 명품 가방, 구두 등 쇼핑이야기가 담긴 ‘질렀거나 지르고 싶어 버닝’ 카테고리는 열혈 구독자를 확보한 인기 코너다. 또한 와인과 음식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쿄씨는 종종 맛집 리뷰를 풍부한 설명과 함께 올리며 성인 블로그에서 식도락 블로그로 완벽하게 위장하기도 한다.
때론 일상에서 벗어나 이상야릇한 상상의 세계에 빠지고 싶다면 멀더의 Occult연구소(www.occultist.co.kr /tt/58)를 추천한다.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뜻하는 ‘오컬트(occult)’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Occult연구소-미스터리 X파일’은 오컬트에 매료된 칼럼니스트 이한우씨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UFO, 귀신, 종교, 기(氣)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이한우씨의 블로그는 ‘영화 속 공포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고전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포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욕망, 욕망, 욕망
익종의 다이어리(ickjong.com)는 참으로 명랑한 블로그다. ‘철이 덜 든 한 남자의 그림일기’라는 부제를 단 카툰 다이어리인데,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주인공의 소소하지만 명랑한 일상을 보면 참았던 웃음이 키득키득 새어 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에피소드를 유쾌한 그림으로 담아낸 ‘익종의 다이어리’는 인터넷 카툰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건축학을 전공한 주인장은 최근 일러스트레이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조만간 그림일기를 엮어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인기 블로거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도 공론화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는다. 이들의 포스팅은 블로고스피어의 다른 블로거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일종의 연대를 형성한다. 이 연대는 네티즌의 생각이나 나아가 기업의 운영방식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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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는 블로거들은 단순한 인기 블로거나 스타 블로거가 아닌 알파 블로그로 불린다. 신제품의 출시를 앞둔 기업들은 기자와 블로거에게 동일한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심지어 고가의 제품을 블로거에게 제공하고 리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은 알파 블로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상점이 즐비한 거리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가게가 있게 마련이듯 블로고스피어에도 자꾸만 다시 찾게 되는 블로그들이 있다. 나는 이들 때문에 오늘도 제때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이들이 쏟아내는 욕망과 그 욕망을 보면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 나는 점차 이들에게 중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