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성 부도난 ‘IMF 정당’, 하루빨리 청산하는 게 남는 장사
- 경제 이슈를 ‘사회통합문제’로 확대해 ‘뉴딜 정책’ 실패
- 부동산정책? ‘세금 올리는 법’을 의원 입법하다니…
- 정당을 교회인 줄 착각한 그들…우리가 구원을 줄 수 있나?
- 합리적 제안 해도 ‘정치가 기업과 같냐’며 타박
- ‘용광로’ 버리고 ‘샐러드’ 추구해야 제대로 된 신당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이 잇따르며 2005년 3월, 총선 1년여 만에 과반수가 붕괴했고, 다시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 1∼2월, 의원들의 자발적 연쇄탈당이 이어지며 마침내 한나라당에 원내 1당(黨) 자리를 넘겼다. 그 사이 치러진 40차례의 각종 선거에서 전패했으니 이쯤 되면 ‘롤러코스터당’이라고 할 만하다. 2월14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남은 사람들도 당의 당면 과제를 ‘창조적 파괴를 통한 통합신당 창출’로 정했다. 적어도 열린우리당 ‘간판’이 사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당을 깨고 나간 사람은 나간 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왜?’라는 물음에 시원스럽게 답하지 못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기부정의 공감대만 있을 뿐, 실패에 대한 명확한 원인 분석은 건너뛴 채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반짝이는 합종연횡의 대안들만 주목받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추락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 대패 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나, 더 직접적으로는 최근 행해진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그 시기를 앞당겼다.
이런 점을 볼 때 비록 급진 성향의 임종인 의원에게 ‘1호 탈당’ 선수를 뺏기긴 했으나, 직전까지 김근태 전 당의장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한 이계안(李啓安·55) 의원이 1월23일 ‘선도 탈당’을 감행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현대자동차, 현대캐피탈 사장 출신으로 ‘공인된 시장주의자’이던 그가 3년 전 한나라당 대신 열린우리당행을 선택한 것만큼이나 파격적 행보라는 평가도 나왔다. 2004년 입당 당시 그는 ‘재계’ 몫으로 한나라당에서도 러브콜을 받았으나, ‘잘사는 나라 따뜻한 사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가슴에 와 닿아 열린우리당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그가 ‘시장주의자’이기 때문에 더욱 빨리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외환위기 시절 그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부사장, 현대차 사장 등을 거치면서 각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데 기여했다. 외국 기업을 제치고 기아차를 인수하는 데도 큰 공로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그는 ‘IMF 정당’에서 비롯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자신의 재계 시절 경험을 쏟아 붓겠다고 다짐한다. 그가 말하는 ‘열린우리당의 실패학, 통합신당의 성공조건’에 대해 들어봤다.
불신과 모순의 연속
▼ 기업가의 시각에서 열린우리당의 실패 원인을 찾는다면.
“조직 안에서는 물론 시장에서도 믿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서비스와 상품을 팔 무대인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삼국지의 고사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떠오르더군요. 기업에 28년, 정치계에 3년 있었는데 확연히 다른 점은 신뢰가 있고 없고였습니다.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다보면 그냥 맡기고 일을 시키거나 하잖습니까. 그런데 열린우리당에서는 당내에서도 그런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못했어요. 그러니 국민의 믿음을 얻기는 요원했죠.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더욱 뼈아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는 조직이 아니니까 그럴 수밖에요. 닛산은 늘 스스로 ‘기술의 닛산’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좋은 자동차는 이래야 한다’며 구매자를 가르치려 들었죠. 반면 도요타는 ‘마케팅의 도요타’로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늘 소비자의 눈높이를 의식했다는 겁니다. 지금 닛산은 문 닫기 직전인데 반해 도요타는 해가 갈수록 세계 최고의 자리를 더 굳건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 김근태 당의장 시절 비서실장을 하면서 당에 더 큰 실망감을 가졌겠습니다.
“저는 나라의 민주화에 일생을 바친 개인 김근태의 삶을 존경하지만, 제 삶과의 접점을 찾긴 어렵습니다. 저는 스스로 ‘양심적 산업화 세력’이라고 생각해요. 자라온 배경도, 생각하는 것도 당연히 다릅니다. 다만 제가 그 자리를 수락한 것은 재야 출신의 김근태 의원 비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 당의장의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의장은 기업의 CEO입니다. 자기 자신과 조직의 명운을 걸고 결단하고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당의장을 거들며 일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특히 당시는 5·31 지방선거 대패 이후 당이 자력갱생의 구심력을 잃은 엄중한 시절이었습니다.
김근태 의장께서 취임 때 한 말씀이 ‘오직 경제고 두 번째도 경제, 세 번째도 경제’였습니다. 저는 ‘조직을 바꿔야 산다’고 말했죠. 일하는 사람에게 책임지는 자리를 주자, 국민과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셨고, 그렇게 실행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직 인선에 들어가니 당의장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군요. 당헌당규상 원외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당의장의 의사결정권이 모두 n분의 1이었기 때문이죠. 근본적인 의사결정구조마저 모순의 연속이었던 겁니다.”
▼ 김 전 의장이 앞세운 ‘뉴딜 정책’의 실패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요.
“당의장은 원외뿐 아니라 원내와의 관계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과 원내 행정기구간 협조가 잘 안됐습니다. 뉴딜이 뭡니까.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갖고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투자를 촉진시키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공이 많아졌죠. 원내는 원내대로 김 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것 아닌가 우려했고요, 전선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니까 기업 기(氣) 살리기라는 당초 취지는 묻히고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의 ‘여기 좀 봐달라’는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경제 문제가 사회 제(諸)세력 간의 통합 문제로 변해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우려대로 ‘대권행보’로 오해를 살 만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 본인이 나서서 조직의 체질개선을 도모할 방법은 없었습니까.
“아시다시피 당에 경제계에서 온 자원이 무척 적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당에 뭔가를 제안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간부급 모 의원은 제가 발언만 하면 ‘정치가 기업과 같냐’고 타박을 줍디다. 기분상으로는 거의 ‘왕따’였죠. 마케팅에도 ‘critical mass(임계질량)’란 용어가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절대량이 돼야 정책이건 건의사항이건 논의가 붙고 이슈가 될 텐데, 아예 싹이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나온 정답은 ‘나 같은 사람을 더 모아야겠다’였습니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탈당’으로 결론내린 거고요.”
시장은 ‘청산’을 원했다
▼ 그럼에도 탈당한 것은 무책임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현대그룹 임원으로 있으면서 숱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참가하며 배운 바로 보건대 이 방법이 가장 낫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당은 사람 중심, 주식회사는 돈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다소 다른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든 돈이든 ‘자산’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러니 주식회사 구조조정 경험을 정당에 적용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부도 상태입니다. 회사가 부도나면 은행은 청산가치를 계산해서 청산할 것인지, 아니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 나갈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분석 결과 청산 가치가 ‘플러스’면 청산해야 합니다. 지금 열린우리당에 대한 제 생각도 ‘일찍 청산해야 차라리 몇 푼이라도 건지겠다’는 겁니다.
청산하기도 살리기도 애매한 때 은행에서 쓰는 제3의 방법은 뭐냐, 기업을 ‘배드 컴퍼니’와 ‘굿 컴퍼니’ 두 개로 쪼개는 겁니다. 배드 컴퍼니에는 온갖 부실을 다 털어넣고 굿 컴퍼니는 구조조정을 해가는 가운데 ‘고비를 넘기면 고배당을 받을 수 있다’며 실력 있는 외부 투자자를 유혹합니다. 그때 전제는 굿 컴퍼니가 투자자들이 보기에 상당한 미래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의 열린우리당에서 ‘굿 컴퍼니’를 추려내기가 쉬울까요? 추린다고 해도 투자자, 즉 국민이 굿 컴퍼니로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최근 이계안 의원은 탈당파 의원 7명과 함께 모임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요, 첫째는 흡수합병입니다. 우리가 주도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흡수하는 것으로, 지금의 열린우리당 사수파가 이렇게 말하고 있죠. 두 번째로는 피(被)흡수합병이 있는데 이를테면 민주당이 ‘정동영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을 빼면 열린우리당을 받겠다’고 했을 때 이것이 성사되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신설합병이 있죠.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간판으로 출범하는 겁니다. 정세균 당의장 등이 말하는 ‘통합신당’이 이에 해당합니다.
정리하면 열린우리당의 구조조정엔 모두 동의하는데, 방법론에서 이견이 있습니다. 성경에 ‘죽어야 부활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저는 일단 청산하는 게 가장 낫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탈당한 것도 일단 둑에 구멍이 작게라도 나면 그 다음부터 붕괴되기까지는 시간 문제라는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부도낸 경영자’
▼ 청산(탈당) 이후에는 신설합병(통합신당)에 참여하실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헤쳤다가 다시 모여’ 아닌가요.
“그러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저는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의 ‘여집합당’이 돼야 맞설 수 있다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적구성 등에서 열린우리당 지분이 49%가 넘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영권은 교체해야지요. 당을 이끄는 주류도 경제계 출신 인사들이 맡을 때가 됐습니다.”
▼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은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두 분은 미래의 ‘한나라당 여집합당’에서 봤을 때 자산일 수도 있고 부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기업이라면 부도를 초래한 경영책임자는 다시 경영에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 경제계 인사들이 신당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라면.
“광복 이후 1961년까지는 안타깝지만 일제에 봉사한 테크노크라트가 한국을 이끌었습니다. 1961년부터 1987년까지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세력이 다양한 분야의 사회지도층으로 부상했고요.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관료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민간주도 시대’라는 타이틀만 있었을 뿐 사실상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몰아간 것은 경제관료들이었어요. 이후부터 2002년까지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시니어그룹들이, 2002년을 기점으로는 흔한 말로 386세력과 NGO들이 실권을 잡게 됩니다.
최근 5년간 이들의 성적표는 근래 보기 드물게 초라했습니다. 2007년 대선 이후를 바라보면, 현재 시장의 요구는 나라를 이끌 신진세력을 경제계에서 찾아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명관, 진대제씨처럼 민간경쟁부문에서 선진 경영법을 익힌 분들이 있겠고, 또 골드만삭스 CEO에서 미국 재무장관으로 변신한 로버트 루빈씨 같은 경우도 참고할 만합니다. 또 386세대보다 어려도 젊은 나이에 큰 시스템을 운영해보고 기획해본 사람이라면 문호를 개방해야겠죠.”
업적에 따른 보상시스템 갖춰야
▼ 결국 그들을 끌어오는 게 관건 아닙니까. 그럴 만한 묘안이 있습니까.
“기업은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목표를 누가 능률적으로 달성했는지에 따라 보상을 합니다. 그러니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 거죠. 하지만 정당에서는 목표를 계량화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활동에 따른 보상체계가 없으니 경제계 인사들이 들어오길 망설일 수밖에요. 국회에서 예산심의, 입법활동 잘하면 다음번 공천에 유리할까요? 두더지처럼 지역을 훑으며 당원 경조사만 챙기는 게 더 유리할까요? 아무것도 현재로선 명확히 모릅니다. 앞으로 신당은 공천심사에 있어 평상시의 활동 고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원은 신도가 아니다
▼ 열린우리당도 늘 ‘시스템’의 우월성에 대해 큰소리쳤지만 실상은 반대였습니다.
“큰소리친 게 문제가 아니고 뭘 모르고 큰소리친 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를테면 교회와 정당을 혼동했다고 볼 수 있어요. 교회는 새로운 신도를 전도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데려온 신도가 십일조까지 내면 금상첨화죠. 열린우리당에서도 기간당원제를 만들어 상시적인 당 활동을 하면서 적지 않은 당비도 꼬박꼬박 자발적으로 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물론 일견 종교와 비슷한 면도 있죠. 교회는 목사가 설교를 담당하지만 행정적인 결정에서의 권리는 n분의 1, 즉 장로와 똑같습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역시 당원들에게 얼굴마담 노릇은 하지만 의사결정을 내릴 때 권리는 평당원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정당과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의 신도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라는 반대급부가 있으나 당에서 당원에게 주는 게 뭡니까. ‘당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제도의 성공적 정착은 누가 봐도 어렵습니다.”
▼ 신당이 열린우리당 색깔을 확실하게 뺄 수 있을까요.
“단지 대선을 앞두고 공학적인 구도를 짜는 데 천착해서는 안 됩니다. 신당의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보수 진보 중도 식의 기존 구도로는 한나라당의 여집합 세력이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는 현상을 막기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 현대, 기아, 대우가 예전에 포드 미쓰비시 마쓰다 자동차들을 정신없이 베끼다가 그 다음엔 조금씩 차별화했잖아요. 최근에는 현대차가 독자모델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It’s different’가 아니고 ‘It’s me’로 감동을 줘야 합니다.”
▼ 구체적 대안이 있습니까.
“큰 틀의 지향점 몇 개만 미리 못박아놓고 거기에 동의하는 분들은 다 수용해야죠. 당 CEO가 되는 사람이 자신의 판단과 가치대로 소신있게 운영토록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샐러드 정당’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샐러드 정당’ 구현에 실패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과도하게 ‘멜팅 폿(용광로)’이라는 옛날 개념을 쓰려 하다보니까 죽도 밥도 안 되고 어느 쪽에서도 호응을 못 얻었던 거죠. 건포도 정체성을 가진 의원이 팥이 되고, 당근인 줄 알았던 의원들이 고구마가 되어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합니다. 용광로에 들어가면 본디 자기 형체는 다 녹아버리지 않습니까. 과거 ‘용광로’를 지향했던 미국 사회도 최근에는 ‘샐러드’라고 불리는 이유를 새겨봐야 합니다.
적어도 집권을 염두에 둔다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용해야 합니다. 양상추 토마토 당근 등 샐러드의 내용물에 있어서는 각각 고유의 영양분을 간직하되, 그 위에 부어 먹는 드레싱에 따라 표출하는 맛이 달라질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드레싱 노릇을 하는 게 당대표, 또는 당의장이겠죠. 기존의 당을 놓고 보면 한나라당이 좀더 샐러드 정당 기능을 잘했다고 볼 수 있어요. 김용갑·김덕룡 의원과 원희룡·고진화 의원이 함께 있지만 당 대표의 리더십으로 지휘가 가능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인지도 모르겠어요.”
‘It’s me’ 정치가 필요
▼ 신당의 지향점은 어떠해야 할까요.
“우선 ‘세계화’가 들어가야 합니다. GATT, WTO체제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그 다음번 자유무역 단계인 FTA 체제를 선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는 ‘미래’입니다. 단 예전처럼 ‘우리는 미래세력’이라고 먼저 말한 다음 거기에 맞는 이념을 조합해 붙여놓는 방식이 아니고, 다른 당과 경쟁을 통해 시장으로부터 ‘미래세력’임을 공인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셋째는 ‘평화’입니다. 햇볕정책이냐 봉쇄정책이냐, 노예의 평화냐 원칙의 평화냐 하는 이념과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한 최선의 전술을 그때그때 차용하면 됩니다.
민주당 색깔을 더 가미하느냐 열린우리당 향기를 더 뿌려 넣느냐, 호남과 충남을 잡느냐 버리느냐 하는 기존 정치판의 패러다임을 과연 도외시할 수 있냐고 많은 이가 우려합니다. 그런데 그건 설사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되더라도 우선적 논의과제가 되어서는 명분도 감동도 없을 수밖에요.”
▼ 정당만 체질개선을 한다고 다 해결될까요. 열린우리당도 결국 청와대, 정부와의 관계설정 실패에서 큰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참여정부에서 가장 공들인 민생정책이라는 부동산정책 입안과정만 봐도 후회가 남습니다. 저 역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과 당 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아 정부측과 협상했지만, 세금 올리는 법을 의원입법으로 한 사례는 처음 봤어요.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그렇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세금 내리는 법을 발의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세금 올리는 법을 발의한다는 것은 난센스였죠.
또 그 법안조차 한나라당과 협상하면서 깎여 나갈 부분을 감안해서 정부가 원안을 만들어 우리당에 부탁한 것인데, 사학법 협상과 연계되면서 한나라당이 아예 협상 자체를 거부했고 그러다보니 원안이 통과되지 않았습니까. 결과적으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에 거친 조항이 있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 신당의 개혁 및 복지정책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외교안보 분야를 빼고 그나마 기존 정당간에 표방하는 노선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부분인데요.
“모두 국민과의 소통에서 열린우리당의 발목을 결정적으로 잡았던 단어들이죠. 개혁에 대해서는 지금 뭐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항상 추진 속도를 의식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할 듯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로 평가받던 싱가포르가 요즘 국가적 재도약을 위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Innovation(혁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개혁 피로증’이 늘상 화두로 떠오릅니다. 농업, 제조업, 지식기반사회가 엉켜 있는 사회구조 측면에서 보더라도 개혁의 수용도가 뒤처지는 분들, 거부하는 분들은 엄연히 상존합니다.
‘리비의 법칙’이 떠오릅니다.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영양분이 얼마나 넘치느냐가 아니라 필수영양소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는 이론이죠. 곧 소수라 하더라도 개혁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안고 갈 것인지에 대해 앞으로의 정당은 더 고민해야 할 겁니다. 예를 들어 사학법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덮어놓고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시장에서 보완 필요성이 요구되면 ‘개방형 이사 임명주체를 다원화하자’는 식의 대안으로 협상에 나설 수 있어야죠.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성장과 분배를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금 정부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은 복지를 강하게 내세워서라기보다 성장 자체가 없어진 데 대한 국민의 실망 때문 아닐까요.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이 개별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합니다.
다만 현 정부가 연평균 7% 경제성장률을 약속했는데 지금 5%대를 밑돌고 있지 않습니까. 7%와 5% 성장률을 5년간 누적시켜 비교해보면 국내총생산 증가액에서 170조원의 차이가 납니다. 재원이 없으면 분배고 복지고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 대(對)언론관계에서도 보완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본으로 돌아가면 되겠지요. 저는 정치권 및 정부와 긴장관계에 있는 언론이 우리더러 ‘잘한다’는 논조를 유지하면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봐요. 언론 얘기를 하자면 시민단체 얘기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언론에 대한 견제는 시민사회, 좀더 좁히자면 시민단체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신당에서는 예전처럼 ‘어떤 언론’ ‘다른 어떤 언론’ 하는 식으로 그룹핑을 하지 말아야죠.
‘탈당’ 넘어 ‘탈정치’까지 고민
다만 당에서는 시민단체들이 그 같은 기능을 잘 하도록 분위기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여당 생활하면서 쭉 보니까 NGO의 N이 ‘Non’이 아니고 ‘Now’로 바뀌었더군요. ‘Now Government Organization’이 된 겁니다. 비(非)정부기구가 현(現)정부기구로 바뀌었으니 체크 앤드 밸런스 기능이 잘될 리가 없지요.”
이 의원은 당장 어떤 급조된 신당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한나라당 영입설’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당분간은 CEO 모임이나 벤처기업인 모임 등을 열심히 다니며 ‘헤드헌팅’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경제계 인사들로의 ‘정당판 주류 교체’를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얼마 전에는 천정배, 최재천 등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 7명과 함께 ‘민생정치 준비모임’을 발족하기도 했다.
그는 “시장의 요청에 맞는 신당 창당 및 대선 승리라는 큰 목표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승리가 예전보다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한나라당은 상대당이 분열되면 그만큼 힘을 받는 게 아니라 같이 분열되는 습성이 있다”며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열린우리당에서는 ‘할인’ 요인이 많았지만, 당에 경제통이 워낙 드물다보니 초선임에도 관련 정책 입안을 할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여당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지도부의 만류를 물리치고 도전, ‘일반적인 재계 출신 인사들에 비해 파이터 근성을 갖췄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정치인 이계안’의 브랜드는 이렇듯 괜찮은 편이지만, 가끔 그는 탈당을 넘어 ‘탈(脫)정치’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집사람은 아직도 정치인이 ‘존경받는 직업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자주 합니다. 저 역시 정치를 접고 신학대학에 진학해 목회자로서 여생을 보내는 게 더 뜻 깊은 일이 아닌가 고민할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최근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만나 격려를 받고 개인적인 갈등은 잠시 접었다고 했다.
“신학교 이야기를 꺼내니 조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나라에 교회가 5만개 있고 목회자도 10만명이나 있으니 이쪽은 걱정 말고 하던 일 열심히 잘하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