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매혹적인 일상의 해결사, 경제학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3-12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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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적인 일상의 해결사, 경제학

    경제학이 실생활에 얼마나 유용하고 매력적인 학문인지 알려주는 책들.

    지난해 어린이용 경제서를 기획하면서 경제학원론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교보문고) 3판을 구입했다. 개념정리를 할 때 참고하려고 샀는데, 책을 다 만들고 난 요즘도 984쪽에 달하는 이 책을 가끔 뒤적인다. 이유는? 재미있으니까.

    “경제를 의미하는 economy라는 단어는 원래 ‘집안 살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정 살림살이와 경제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제1장 첫머리부터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뉴욕 아파트 값이 비싼 이유는?

    기회비용과 비교우위에서는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를 앞세워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해 준다. 우즈가 자기 집 잔디를 깎는 데 2시간이 걸리고, 2시간 동안 나이키 광고를 촬영하면 1만달러를 번다고 하자. 그리고 옆집에 사는 포레스트 검프는 우즈의 집 잔디를 4시간 걸려 깎을 수 있고, 4시간 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하면 20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하자. 우즈는 잔디 깎는 일에서 검프보다 절대우위다. 그러나 비교우위는 검프에게 있다. 왜냐하면 잔디 깎는 기회비용은 검프가 더 낮으니까.



    “경제학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 19세기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맨큐는 21세기에 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경제학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왜 뉴욕시에서는 아파트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왜 토요일 밤을 지내고 돌아오는 승객의 왕복 항공권은 더 싼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면 답할 수 있다. 둘째, 학생 시절 얼마만큼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취직을 한 뒤 얼마나 소비하고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지 등 수많은 경제적 결정을 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경제학을 공부하면 경제정책이 달성할 수 있는 것과 그 한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지지할지 반대할지 경제학적 근거를 갖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맨큐의 경제학’ 같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읽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제학 열풍’이라고 할 만큼 시중에 쉽게 풀어 쓴 경제학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경제학’을 쳐 넣으면 몇 쪽에 걸쳐 목록이 나온다. ‘서른살 경제학’ ‘여자 경제학’ ‘괴짜경제학’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경제학 비타민’ ‘인생은 경제학이다’ ‘롱테일 경제학’ ‘행동 경제학’ ‘직장인을 위한 생존 경제학’ ‘2040 경제학 스트레칭’ ‘푼돈의 경제학’ ‘스무 살 경제학’ ‘일상의 경제학’ ‘17살 경제학’ ‘마흔 살 경제학’ ‘관심의 경제학’…. ‘주식에 돈을 묻어라’ 같은 주식투자 책도 ‘5년 후 부자경제학’이라는 부제로 경제학 열풍에 슬쩍 올라탔다.

    세상에 부자경제학은 없다

    사실 베스트셀러인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박경철 지음, 리더스북)은 경제학 책이 아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실물자산 투자법에 대한 총론적인 강의를 하는 투자 지침서다.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투자를 위한 사이비 경제학”이라고 고백했다. 강의실에 가 보라. 부잣집 자식이나 가난뱅이 자식이나 똑같은 경제학 책으로 배운다. 세상에 부자경제학이란 없다. 그런데도 독자는 부자+경제학에 열광한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은 이 책에 대해 “부자 되는 투자법이 아니라 부자경제학이기에 더 많이 팔렸다”고 했다. 즉 부자 되기의 욕망에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아우라(좀더 객관화한 법칙성을 다룬다는 권위)를 입혔더니 대박이 났다는 얘기다. 김경훈 소장은 “한국인이 재테크라는 전술적 차원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부를 생각하기 시작”(‘경제학 열풍, 패드인가 트렌드인가’, ‘기획회의’ 2007.1.5)한 것도 이런 변화에 한몫했다고 본다. 이 책 이후 ‘재테크 경제학을 만나다’(김영호 지음, 원앤원북스), ‘주식투자에 돈을 묻어라-5년 후 부자경제학’(정종태 지음, 한경BP) 같은 책들이 나와서, 경제원리를 모른 채 투자에 나서는 것은 무분별한 투기나 다를 바 없다며 ‘경제학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사실 ‘부자경제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92년에 출간된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부자 되는 투자 지침’ 같은 것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거시경제학의 틀 안에서 ‘부자의 경제학’이 주도하는 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후 저자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돌베개)에서도 비슷한 논지를 이어가며 경제학을 강단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곽해선, 동아일보사)은 경제·경영 부문에서 소리 소문 없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1998년 초판이 나온 이래 매년 개정판을 내며(따끈따끈한 경제뉴스를 삽입하기 위해) 8판에 이르렀다. 누적 판매부수가 10만부를 훌쩍 넘는다. 경기, 물가, 금융, 주식·채권 환율, 국제수지, 무역 등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평이하게 풀어 쓴 경제학 원론 교과서 또는 호흡이 긴 경제용어 사전에 가깝다. 이 책이 이리도 생명력이 긴 이유는 경제기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올 때마다 교과서나 사전처럼 곁에 두고 참고하기 좋아서다.

    경제학 열풍, ‘선구안’이 중요하다

    요즘은 딱딱한 경제 원리에다 일상에서 뽑아낸 이야기로 당의정을 입힌 책이 점점 늘고 있다. ‘서른살 경제학’(유병률, 인물과 사상사), ‘여자 경제학’(유병률, 웅진지식하우스)이 대표적이며, ‘괴짜 경제학’(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브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경제학 콘서트’(팀 하포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등도 유사하다. ‘서른살 경제학’과 ‘여자 경제학’이 좀더 경제학 교과서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면, 뒤의 두 책은 에피소드를 앞세우고 경제 이론을 뒤로 숨기는 전략을 구사한다. ‘괴짜 경제학’은 목차만 봐서는 도대체 이게 무슨 책인가 싶을 만큼 엉뚱하다.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 마약 판매상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사는가? 완벽한 부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종잡을 수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퍼즐을 맞추듯 독자를 경제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스타벅스의 경영 전략’을 책머리에 놓은 ‘경제학 콘서트’의 서술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책들은 경제학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유용하고 매력적인 학문인지 알려준다. 막연하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해볼까 하는 학생들에게 맞춤한 진로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전문분야를 대중소설만큼이나 재미있게 서술한 저자의 글솜씨도 압권이다(그 점에서 ‘괴짜 경제학’이 ‘경제학콘서트’보다 한 수 위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제학 책으로는 ‘롱테일 경제학’(크리스 앤더슨 지음, 랜덤하우스)과 ‘행동 경제학’(도모노 노리오 지음, 지형)을 꼽을 수 있다. 그래프에서 판매곡선이 긴 꼬리처럼 내려가 밑바닥에 닿을 정도로 뻗어나가는 것을 가리키는 ‘롱테일’은 디지털 혁명으로 매스마켓이 수백만개의 틈새시장으로 세분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롱테일 현상은 아직 아마존(책), 아이튠스(음악), 넷플릭스(영화), 구글(검색) 등 온라인 문화산업에 국한되어 나타나지만, 그동안 기업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선택과 집중 원칙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도 있을 만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각광받고 있다.

    ‘행동 경제학’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린스턴 대학의 다니엘 카너먼 교수의 ‘프로스펙트 이론’ ‘휴리스틱과 바이어스에 과한 연구’ 등을 쉽게 풀어 쓴 책이다. 경제학 책의 색인에서 ‘감정’이라는 항목을 찾아보라. 있을 턱이 없다. 경제학은 이성적인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만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로버트 프랭크가 ‘미시경제학과 행동’이라는 책에서 경제학 세계에 감정을 도입했다. 이것이 행동 경제학의 시초다. ‘롱테일 경제학’이나 ‘행동경제학’ 모두 주류경제학의 세례를 흠뻑 받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 자, 경제학 책이 다 같은 경제학으로 보이는가? 제목에 속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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