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때로 다리에 통증이 있고 쥐가 난다면 종아리와 허벅지를 꼼꼼히 살펴보자. 만일 푸른 혈관이 살 밖으로 비치거나 구불구불 튀어나왔다면 하지정맥류를 의심해야 한다. 더욱이 온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부모에게 정맥류가 있다면 바로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하지정맥류 치료 전문병원인 SK성형외과 심영기 원장의 조언을 들어봤다.
다리 정맥이 망가져서 오는 심각한 질환이지만 워낙 흔하다보니 대개 방치하다가 혈관이 손가락만큼 커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 초기에는 다리가 붓거나 무거운 느낌만 들 뿐 통증이 심하지 않고 혈관도 그리 많이 튀어나오지 않아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맥류 치료 전문병원인 SK성형외과(02-515-1191, www.skvein.com) 심영기 원장은 하지정맥류에 대한 이렇듯 안일한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그는 “하지정맥류는 증상이 악화되면 허리 디스크, 무릎 관절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다리에 피가 흐르지 않아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뼈가 썩는 등 큰 위험을 초래하는 질환”이라고 경고한다.
2만5000회 이상의 정맥류 시술 기록(동양 최다)을 보유한 심 원장은 국내에 정맥류 수술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1993년부터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각 나라에서 유럽식 수술법을 연수받은 뒤 이를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해왔다. 일명 ‘심영기식 정맥류’ 수술법이 바로 그것. 심 원장은 이후 ‘정맥학회’를 만들어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 의사들에게 전달하고 치료법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심 원장은 하지정맥류 치료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베이징과 다롄에 SK성형외과 지원을 열기도 했다. 중국 정부도 그의 진료를 돕기 위해 외국인 의사 자격증을 줬다.
그가 도입한 정맥류 치료법 중 프랑스의 미용치료법인 초음파 유도 혈관 경화요법과 독일의 혈관 경화요법은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한 간단한 시술방법과 시술 후 자국이 남지 않는 장점 덕분에 환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주위에서 종아리에 푸른 혈관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람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맥류가 이처럼 흔한 것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 그리고 중력의 작용과 연관이 깊다. 정맥은 우리 몸에서 사용된 혈액을 심장과 폐로 운반하는 혈관인데, 정상적인 정맥은 심장을 향해 일자로 쭉 뻗어 있다. 발바닥에서 중력을 거스르며 심장으로 향하는 정맥혈은 힘이 부족하면 다시 아래로 역류한다. 우리 몸은 이를 막기 위해 사타구니와 무릎 뒤쪽에 일종의 자동밸브 기능을 하는 판막을 두고 있다.
문제는 장시간에 걸쳐 압력이 아래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면 이 판막이 망가진다는 점이다. 판막이 망가지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혈액과 위에서 밑으로 역류하는 혈액이 뒤엉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그 압력으로 인해 정맥은 부풀어오른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양의 혈액이 밀려들어오면 직선이던 혈관은 길이가 늘어나면서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변한다.
이렇듯 변형된 혈관은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일어서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중력 작용에 의해 300~800cc의 혈액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혈관의 압력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피가 고이는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발 안쪽에 피부염이 발생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피부가 썩어들어가기도 한다.
하지정맥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유전이다. 심 원장은 “부모 중에 하지정맥류 환자가 있을 경우 자식 대에 하지정맥류가 나타날 확률이 30% 정도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SK성형외과 내원 환자 8700명 중 약 27%가 ‘가족 중 하지정맥류 환자가 있다’고 답했다. 심 원장은 “사춘기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던 하지정맥류 유전인자가 성인이 된 후 정맥류를 악화시키는 환경과 만나면 비로소 발병한다”며 “여성은 직업적 요인과 임신, 남성은 직업 외에 군대 생활 등에 의해 발병하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한다.
초음파를 이용해 하지정맥류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심영기 원장.
초기 정맥류 잡는 혈관 경화요법
심 원장은 하지정맥류를 증상에 따라 7기로 분류한다. 이 중 1~6기는 정맥류의 진행단계에 따른 분류이고, 7기는 선천적으로 혈관에 기형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1, 2기는 초기 정맥류에 해당한다. 1기는 붉은빛을 띠는 모세혈관이 거미줄 모양으로 퍼져 있다고 해서 모세혈관 확장증이라고 한다. 이 시기의 혈관 굵기는 1~2mm로 냉면 굵기 정도이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바깥으로 불룩 솟아 있지는 않다. 2기로 진행되면서 비로소 피부 위로 꼬불꼬불한 파란 혈관이 드러나는데 망상정맥, 혹은 세정맥 확장증이 이에 속한다.
심 원장은 “1~2기의 치료는 혈관 경화요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혈관 경화요법은 망가진 혈관에 주사로 약물을 주입,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게 원리. 수술이 아닌 주사만으로 처치가 가능해 통증이나 흉터가 없고 외래에서 간단히 시술받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치료기간은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총 6회 시술로 말끔하게 치료된다. 첫 시술에서는 굵은 혈관에 주사를 놓고 그 다음부터는 나머지 미세한 혈관들을 제거하기 때문에 첫 번째 시술을 마치고 나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혈관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첫 시술만으로도 막힌 혈관이 80% 정도 제거되며 주사를 놓은 즉시 혈관이 오그라드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시술 후 곧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약물을 혈관에 넣어 혈관을 막으면 혈액순환에 지장이 생기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경화제로 말려버리는 혈관은 우리 몸에 더 이상 필요 없는 비정상 정맥으로 혈액순환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심 원장은 “경화요법을 받고 나면 혈전현상이라고 해서 핏덩어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라며 “혈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정기적인 내원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주사를 놓은 후에는 정맥류 전용 스타킹을 1∼3개월 착용해야 한다.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신으면 혈관이 더욱 빨리 정상으로 돌아간다. 정맥류 전용 스타킹은 여성들이 신는 일반 스타킹과는 달리, 발목부터 허벅지까지의 압력이 서서히 약해지도록 특수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맥 속의 피를 심장으로 되돌리는 데 효과가 있다. 또 다리를 일정한 압력으로 압박해주므로 혈관이 말라붙은 상태를 지속시켜 정맥의 정상화를 도와준다.
하지정맥류 중기에 해당하는 3~4기에는 다리에 통증이 생기고 혈관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면서 튀어나온 혈관도 굵어진다. 3기에 이르면 다리 정맥의 판막 손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혈관의 굵기는 3~4mm로 라면 굵기와 비슷한데, 4기를 지나면 4~6mm의 우동 굵기로까지 진행된다.
굵으면 레이저로, 초대형은 얼린다
4기에 이르면 다리가 무겁고 저리며 쉽게 쥐가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 환자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이는 다리에 피가 고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이때의 다리 무게는 정상보다 1~1.5kg 더 나간다. 따라서 한쪽 다리에만 정맥류가 생기면 무릎 관절염이 올 수 있고, 허리 디스크가 생길 우려도 커진다.
3∼4기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맥류가 생긴 근본 원인을 제거해 재발을 방지하고 원래의 정상적인 다리 모양을 되찾는 것. 심 원장은 레이저 수술과 혈관 내 레이저 치료법(EVLT)을 그 대안으로 내세운다.
레이저 수술은 메스 대신 레이저를 사용하는데 초음파를 이용해 레이저 도관을 정맥 안으로 넣은 후 레이저 광선으로 혈관 내막을 태워 정맥류의 원인이 된 역류현상을 해소한다. 시술 시간은 30분∼1시간.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입원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곧바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정맥류 환자의 치료 전과 치료 후.
하지만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시술 후 정맥이 개통되는 과정에서 정맥류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맥류 변화가 심한 환자의 경우, 무릎 이하 부위는 혈관 경화치료나 보행성 정맥류 절제술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옥의 티다.
하지정맥류 말기에 해당하는 5~6기에 이르면 다리 상태는 이미 미용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혈관이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중기에 비해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다. 5기 환자의 다리를 보면, 혈관은 손가락 굵기만큼 확장되고 다리 통증이나 부기(浮氣), 무거운 증상이 심해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하지정맥류 6기에 접어드는데, 혈액이 순환되지 못한 채 장기간 고이면서 피부염이 생긴다. 진물과 궤양은 물론 심한 경우 뼈와 살이 썩기도 한다.
말기 환자들은 30~40년 이상 하지정맥류를 방치해온 경우가 대부분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법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체념하는 것. 하지만 이 경우에도 레이저 시술과 기존의 수술법을 병행하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심 원장은 “늘어난 혈관을 절제하고 판막을 정상화한 후 레이저로 판막 아래 혈관을 작아지게 하면 아무리 오래된 정맥류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더욱 쉽고 간단한 치료법이 나와 각광을 받고 있다. SK성형외과는 지난해 11월 냉동수술요법을 시행하면서 흉터가 심하게 남던 기존 수술법의 한계를 극복했다. 기존의 수술법은 튀어나온 혈관 부위의 살을 먼저 절개해야 했기 때문에 신경의 손상도 컸고, 무엇보다도 피부에 절개선이 남아 평생 흉터가 된다는 문제가 있다. 심 원장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수술법을 도입했지만 그 역시 다리 위에 작은 점 모양의 흉터가 12~18개월 지속되는 불편함이 있다.
이에 반해 최근 도입된 냉동수술요법은 혈관 위에 직접 미세한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침 모양의 얇은 막대를 집어넣어 혈관을 순간적으로 얼려서 오그라뜨린 후 절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수술 시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굵게 확장된 혈관 속을 따라 시술이 이뤄지므로 시술 부위 이외의 조직이나 신경의 손상이 극히 적다. 기존의 수술법으로 시술할 경우 신경이 다칠 위험성이 10~15%에 이르지만 냉동요법을 실시한 이후에는 1% 이내로 줄어들었다. 심 원장은 “이 수술의 특장점은 무엇보다 미용적인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기존 수술의 한계였던 점 크기의 흉터 자국조차 남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정맥류, 이렇게 예방
하지만 어떤 질병이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정맥류는 유전에 의한 발병이 많은 만큼, 가족 중 하지정맥류 환자가 있다면 장시간 서 있거나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등 다리에 부담이 가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1~2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주고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면 혈액순환이 개선된다. 또 5분 정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발목 돌리기를 해주면 다리로 향하는 압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리를 심장보다 높은 곳에 두고 수면을 취하면서 낮 동안 다리로 쏠린 혈액이 다시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다.
하지정맥류가 생길 우려가 큰 직업군에 종사하거나 임신 중인 여성이라면 의사와 상담한 후 정맥류 전용 스타킹을 신어도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최근 유행하는 레깅스나 스키니진, 보정용 속옷 등 판막이 위치한 사타구니나 무릎 뒤편에까지 압박을 주는 옷 대신 다소 여유 있는 옷을 선택하는 것이 하지정맥류 예방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