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알지? 청바지만 입어도 근사한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이 얼마 전 ‘아이폰’이라는 휴대전화를 새로 개발했다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넋을 잃고 봤어. 너도 꼭 봐라, 얘. 너한테 꼭 필요할 것 같더라.”
한낱 제품설명회가 얼마나 재미있기에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게다가 애플의 아이폰은 한국에선 사용할 수도 없는 휴대전화라고 하던데. 자신에게 쓸모도 없을 전자제품 설명회를 넋을 잃고 봤다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게이츠 vs 잡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연설을 잘한다는 말은 전부터 듣던 터였다. 그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졸업생에게 축사를 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떠돌 때 슬쩍 본 기억도 났다. 군더더기 없는 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짧은 침묵,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는 표정 등은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친구가 재미있다고 하고, 배우는 데는 누구 못지않게 부지런한 나인데,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에게 한 수 배워볼까?
IT업계엔 스티브 잡스말고도 또 한 사람의 거물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다. 그도 신제품이 출시될 때면 직접 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두 거물의 연설법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해서 맥 빠질지 모르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와 매킨토시에서 지원하는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부터 비교해보자. 제품이 곧 최고경영자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것일 테니.
마이크로소프트는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청중을 앞에 놓고 연설할 때 사람들은 으레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자료를 만들기 쉽고, 다양한 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프레젠테이션 전문가들은 이 프로그램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MS의 프레젠테이션 마법사로는 청중이 요점을 기억하지 못하고, 좋은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고 비난한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들이 MS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것이란 악성 루머도 나돈다. 나도 써봤지만 MS 프로그램으로는 다양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글머리 기호, 큰 표제 제목, 상투적인 배경과 클립아트 그림은 자칫 청중이 프레젠테이션에 식상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매킨토시 컴퓨터를 사용하면 좀 다르다. 매킨토시 프로그래머들은 ‘매끄럽고(sleek), 단순하며(simple),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user friendly)’ 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명쾌하고 멋져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각사의 대표선수들이 일합(一合)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자. 먼저 사진(233쪽)에서 보는 것처럼 빌 게이츠의 프레젠테이션은 텍스트가 많다. 텍스트가 많으면 아무래도 뉴스 앵커처럼 주르륵 읽게 된다. 프레젠테이션을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기대를 갖게 하라!
경영분야 작가이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한 세스 고딘은 그의 저서 ‘실패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파워포인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그림 파일을 만들고 싶다면 회의를 취소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나을 것이다. 파워포인트는 보고서 작성용이지 프레젠테이션용이 아니다. 의사소통이란 당신이 왜 기분이 좋은지 혹은 슬픈지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당신이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면 보고서에 그런 것을 담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