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북한 개혁·개방, 한미 FTA로 견인해야

北 ‘회생 비용’ 연 30억 달러, 南 경제개방 없이는 감당 못해

  •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mjcho@kiep.go.kr

    입력2007-03-08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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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자회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테이블 사이에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면? 김일성대 교수 출신으로 1994년 탈북한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분석을 소개한다. 10년간 7~8%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북한을 중진국 대열에 올려놓으려면 한국 경제성장의 모멘텀이 필수적이고, 한국의 개방흐름이 북한의 대외개방을 견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 경제의 독자회생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부의 지원과 투자가 없는 한 회생은 요원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의 지원과 투자를 바라면서도 외부에서 요구하는 지원 및 투자조건을 원만하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 북한 경제의 회생과 급속한 성장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대북지원과 개발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둘째, 북한 경제시스템이 외부의 지원과 투자를 받아 효율적으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하고, 셋째, 좀더 많은 세계의 자원과 자본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매력 있는 개방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넷째, 앞의 모든 조건을 이루기 위해 북한이 평화적 대외정책을 꾸준히 구사해야 한다.

    누가 북한을 감당하는가

    최근 한국은 북한 경제에 대한 기여국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대북 무역분야 2위, 인도적 지원 1위, 투자분야 2위, 인적교류 1위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지위에 올라섰다. 매년 20만~40만t의 식량이 제공되고 40~50만t 이상의 비료가 공급되는 것이 정례화, 보편화했고 최근에는 대규모 경공업 원자재 지원도 기획되고 있다. 이는 북한 대외경제규모의 30%를 넘는 수준이다.

    특히 과거 경수로 지원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은 북한의 경수로 발전소 건설비용의 50% 이상을 담당했고 200만kW의 전력송전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의 핵 폐기 대가로 담당하게 될 전력지원과 경수로 건설비용 등 에너지 지원규모만 해도 약 11조원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받는 경제적 혜택은 가히 결정적 수준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여전히 빈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아(飢餓)는 지속되고 산업가동률은 30% 미만으로 극히 저조하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이 지금까지 해온 정도의 지원과 투자로는 북한 경제가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와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지금까지 진행돼온 지원과 투자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우선은 북한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측면 때문에도 비판적인 견해가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기에 최근 한국의 저조한 경제 성장률과 국민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의 저하로 대북지원의 명분은 약해지고 부담의식은 강해지는 추세다. 북한 경제의 재건과 성장을 위해서는 지원과 투자의 절대량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실은 가능성이 줄어드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은 하나다. 북한의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전제로, 이러한 상황이 왔을 때를 대비해 한국의 경제력을 결정적으로 키워내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가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이뤄내 북한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는 실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며 그 주된 담당자는 한국일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 경제의 재건과 성장은 국제적 협력과 지원 아래 이루어지겠지만, 그중에서도 통일과 통합, 통포(統胞) 이념을 강조하는 한국의 기여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게 불가피한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국제경제시장에서의 영향력 증대야말로 북한 경제 재건지원의 핵심적인 기반이 된다.

    거꾸로 북한체제의 조기붕괴 시나리오를 상정해보자. 이 경우 막대한 난민과 경제적 불안이 조성돼 자칫 한국 경제의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통일 이후 독일이 겪은 어려움을 반추해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구 동독은 동구권 최고의 경제수준을 자랑했고, 서독은 서구 최고의 경제수준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두 경제가 통합하는 과정에 독일 국민은 적잖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북한의 경제수준이 구 동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의 기초적 경제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체제 조기붕괴는 차라리 재앙에 가깝다.

    ‘흐름’을 타려면

    이러한 상황은 경제적인 의미뿐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해야 한다는 당위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국제경제 차원에서 추진되는 다양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화와 지역 블록화 이슈다. 한국 경제는 국제 경제의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성공해야 성장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경제에서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이슈들을 외면하고서는 현재 우리가 이루어놓은 성과마저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국제 경제의 이슈들은 모두 자국의 경제 성장을 목표로 국제 거래의 효율화를 지향하는 방향성 위에서 창출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켜진 빨간불을 끄고 살아남기 위해 모색 중인 대응방안 가운데 하나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이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가능한 방안을 찾아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형성된 자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제가 확장되면서 국내에 생산기반을 둔 공산품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성장 전략은 효용을 잃었다. 많은 공산품이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후발개도국의 거센 추격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다. 노동집약적 생산공정을 대담하게 중국으로 이전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국내 생산기반의 공동화(空洞化)와 실업증대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나았다.

    이 때문에 제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택한 전략이 IT와 부품·소재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금융, 물류, 통신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육성에 집중해 산업구조를 선진화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의 서비스업은 외형상 양적인 증가를 거듭해왔지만, 산업 및 고용구조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취약하고 1인당 부가가치 창출도는 영세·저생산성 구조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금융, 법률, 디자인, 회계, 엔지니어링 등 제조업과 전·후방 연관관계가 높은 지식기반 서비스의 비중이 낮아 제조업 경쟁력 기반확보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영세적 구조와 저생산성이 산업구조 고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다시 말해 향후 한국 경제 성장의 관건은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육성을 통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선순환구조 구축에 있다. 한미 FTA 추진은 국내 생산활동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능동적 개방화’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남북이 동시에 안고 있는 과제

    북한 경제가 개혁되지 않으면 자원배분의 왜곡을 막을 수 없고, 전반적 생산의 효율화를 이룰 수 없으며, 경제정책의 합리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초기에 외부에서 아무리 많은 자본이 한꺼번에 지원된다고 해도 내부에서 비효율이 지속된다면 성과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해외자본의 지속적인 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현재의 제도와 기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시장경제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북한 경제의 재건과 성장은 막대한 자본과 자원, 기술과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가능한 사업이다. 그러나 현재는 복잡한 이념적, 정치적 요소에 의해 자본이동이 사실상 억제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현실에서, 굳이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 투자나 교류를 할 나라는 없다. 결국 누가 더 개방적이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북한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자본 유치의 열쇠인 셈이다.

    경험적 모델로서 한국의 성장경험은 북한에 있어 귀중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 1960년대 초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경제규모와 소득수준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은 개도국의 모범적 경제발전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의 경제규모는 250배, 1인당 소득은 150배가량 증가했다. 1960년대 최빈농업국가이던 한국은 현재 소득수준, 산업구조, 대외개방, 사회복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베트남의 경험도 북한에 교과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이모이’ 정책을 추진한 베트남은 1970년대 후반 연평균 0.2%에 머물던 경제성장률이 1986년부터 점차 상승해 1992~97년에는 8~9%대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베트남의 농업부문은 1987년까지만 하더라도 생산량의 정체, 식량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88년 4월부터 본격 추진된 농업개혁조치로 생산이 크게 증가했다. 1981~88년에는 1인당 식량생산량이 연평균 294㎏에 불과했지만 1989~92년에는 330㎏으로 증가했고, 이러한 식량 생산 증가에 힘입어 1989년부터 쌀 수출이 허용됨에 따라 현재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무역량의 경우 1980년대에는 북한과 비슷한 50억달러 미만이었지만, 지금은 10배가 넘는 600억달러에 가깝다.

    한편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구 사회주의 체제전환국들도 개혁을 통해 1인당 국민총생산액을 체제전환 초기에 비해 200% 이상씩 높였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개혁과 개방이 이들 체제전환국에 가져다준 경제적 효과는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북한이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체제전환 수준의 개혁을 진행하는 동시에 한국도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국제경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한 남과 북의 개혁·개방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개방 10년 후 北 GNP 800억달러 예상

    특히 한국은 북한이 본받을 만한 개혁과 개방모델을 끊임없이 창조해 자신도 성장하고 북한도 이끄는 선구자적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미 FTA는 고무적인 도전인 동시에 기회다. 한미 FTA의 중요성은, 협정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끊임없이 개혁하고 개방하여 경쟁을 통해 당당히 성공적인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의지를 북한에 보여주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거꾸로 북한에 비해 수십 배의 경제규모를 일궈낸 한국도 기회를 잃고 타이밍을 놓치면 경제난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북한에 준다는 점에서도 한미 FTA는 중요하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해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는 실로 크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한국의 대북전략물자수출통제 규제가 폐지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자료에 따르면 이 경우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생산 유발효과는 1925조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7390억원, 수입 유발효과는 2610억원, 추가적인 대북반출액은 연간 약 24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비용절감형 FDI(외국인 직접투자)가 북한으로 이전될 경우 대북 총반출액은 2004년 대비 811.6% 증가하고, 대북 협력사업 반출액은 2119%, 산업총생산은 2394%, 소비자 후생증대효과는 1.8%, 사회 후생효과는 1.6% 증가한다는 계산이다.

    북한이 체제전환을 전제로 개혁·개방을 추진할 경우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및 투자는 늘어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경제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는 시나리오를 최적안으로 설정하고 지원 및 투자규모를 설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10년 후 북한의 국민총생산 규모는 800억~110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4000~5000달러에 이르게 된다. 북한의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6자회담과 FTA협상

    세계 경제가 아무리 글로벌화한다 해도 국가 간 관계에서 정치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적대시하는 동안에는 정상적인 경제관계가 불가능하다. 특히 세계투자를 주도하는 선진국 그룹과 정치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은 투자유치에 있어 결정적 요소 중 하나다.

    북한이 빈곤의 덫에서 탈출하려면 5~10년 동안 매년 7~8%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해야 한다. 이러한 성장기조를 유지하려면 매년 외부에서 30억~50억달러 이상의 투자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북미관계가 정상화할 경우 미국이 북한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예상금액은 연간 최소 2억달러 수준이다. 일본은 8억달러, 유럽은 2억달러 이상을 지원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미국은 원조총액에 있어 세계 최대의 지원국이다. 2003년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국가 가운데 10위에 해당하는 인도네시아가 매년 2억달러 수준의 경제지원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대북투자를 합하면 30억~50억달러라는 수치는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거꾸로 세계 최대 투자국들과 대치하는 동안에는 북한 경제의 성장동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한국 또한 세계경제체제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주춤거릴 경우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마저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6자회담과 한미 FTA 협상이라는 전혀 별개의 두 테이블이 한반도의 미래에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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