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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배고픔, 성추행, 인종차별… 누가 프랑스를 선진국이라 하는가”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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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장미정씨가 대서양 감옥에서 보낸 악몽의 2년

수감중이던 장미정씨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

프랑스의 교도소는 두 사람이 한 방을 쓴다. 양쪽에 침대가 하나씩 있고, 작은 세면대와 거울, 변기가 전부다. 그나마 화장실은 칸막이가 없어서 천으로 가려놓았다. 가로 세로 2.5m쯤 될까. 창문 밖으로는 도로가 보였지만, 그나마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교도관이 와서 창가에서 물러나라고 꾸짖는다.

밤에는 달이 떴다. 별도 보였다. 서울에 뜨는 달이나 파리에 뜨는 달이나 다를 리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같은 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이전의 삶이라는 게 있었던가. 눈물이 났다.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에 못을 박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아팠다. 우울증이 몰려왔다. 밤에도 한숨 자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구치소의 아침은 오전 7시에 시작한다. 8시까지 일을 하러 작업장에 가려면 서둘러 씻고 아침식사를 마쳐야 한다. 작업은 오후 4시에 끝난다. 작업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CD 케이스에 종이를 끼우고 포장하는 단순한 일. 수감자들은 그걸 목숨 걸고 한다. 몇 박스를 작업했는지에 따라 돈을 주기 때문이다. 첫날 내 파트너가 됐던 수감자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밤에도 방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 구치소는 불도 끄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한 달에 100~120유로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억지로 잠을 청해봐야 잠이 올 리 없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는데, 며칠을 먹다보니 자꾸 손을 대게 되고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중독되는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 주는 수면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먹으면 잠깐 동안 기분이 붕 뜬다. 공연히 옆에 있는 친구가 예뻐 보일 정도로 심신이 풀어진다. 그 잠깐의 기분을 잊지 못해 자꾸 수면제를 찾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0.5mg을 먹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안 듣는다. 그러면 1mg으로 늘리고, 다시 2mg으로….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7.5mg까지 늘어났다. 어떤 친구는 한번에 100mg을 먹는다고 했다. 안 죽는 게 기적일 정도다. 무엇보다도 구치소측의 잘못이 크다. 수감자들이 말썽을 부리면 귀찮으니까 수면제라도 먹여서 재운다. 본인이 원치 않아도 약을 주는 사람이 약과 물을 들고 온다. 그 앞에서 약을 삼켜야 한다.



VIP룸의 비밀

내가 머무는 3층에 한국 사람은 없었다. 방을 같이 쓰던 태국인 수감자는 프랑스에 온 지 3년 가까이 되어 프랑스 말이 꽤 늘었다고 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나도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우울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

그 뒤로는 낮이고 밤이고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첫 달에 월급을 95유로, 둘째 달에는 100유로 남짓, 셋째 달에는 200유로를 탔다. 다들 “역시 한국 사람은 일을 무섭게 한다”며 웃었다. 금세 작업반 부반장이 됐다. 한 층에서 일하는 사람 20~30명이 같은 작업반을 이루는데, 프랑스 말을 전혀 못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일을 다 하면 세어서 표에 적어 교도관에게 내는 게 전부였다.

3층의 한 방에는 ‘VIP’라는 팻말이 붙은 방이 있었다. 감옥에 웬 VIP룸인가 싶었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통 크기의 방 두 개를 터서 만든 그 방은 3층의 유일한 프랑스인과 유일한 일본인 수감자가 쓰고 있었다. 다른 방과 달리 칸막이 있는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방 배정은 물론 구치소측이 한다. 일본대사관 직원이 하루에 한 번씩 면회를 왔다. 다른 수감자들은 면회실에 가야 면회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인 수감자는 방에서 대사관 직원을 만났다.

묘한 것이, 프랑스 교도관들은 일본 사람한테는 꼼짝 못했다. 영어도 잘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에게는 “하이!” 하고 일본어로 대답한다. 일본인 수감자는 원래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심심했던지 작업실에 왔다. 그런데 교도관이 내가 쓰던 작업기계를 일본인 수감자에게 쓰라고 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작업기계는 어느 정도 숙련된 사람만이 쓰는 게 원칙이었다. 교도관이 지정한 일본인 수감자의 파트너는 반장이었다. 교도관은 일본인에게 의자까지 갖다주며 한껏 친절하게 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일본인 수감자는 하루 만에 일을 그만뒀다.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원래 기계를 차지했지만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생긴 걸로 따지자면 일본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있다면 일본이 한국보다 강국이라는 것뿐이었다. 교도관이 조금만 서운하게 대하면 하루에 한 번씩 면회를 오는 대사관 직원에게 바로 얘기할 테니까. 프렌 구치소에 있는 3개월 동안 모두 세 번 대사관 직원의 면회를 받은 한국인 수감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VIP룸’에 얽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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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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