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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뒤바뀐 ‘총풍(銃風) 사건’의 진실

“DJ 정부 공안기관도 고문으로 사건 조작했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9년 만에 뒤바뀐 ‘총풍(銃風)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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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사법부는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한 사실이 확인된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총풍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이 ‘안기부의 고문 후에 작성된 진술서를 토대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법원에 의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9년 만에 뒤바뀐 ‘총풍(銃風) 사건’의 진실

안기부 조사에서 고문받은 장석중씨의 다리를 찍은 것.

1월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숨진 도예종씨 등 8명에 대한 재심에서 “진술자들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들이 만든 조서는 영장도 없이 장기간 구금당한 끝에 작성된 것이어서 신빙성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후 과거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이러한 판결에 힘입은 듯 1월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을 판결한 법관 492명의 이름을 공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같은 날 대법원이 1972년부터 1987년 사이에 있었던 공안사건 판결 가운데 224건을 재심 예상 판결로 분류해놓았는데, 이 가운데 63%인 141건이 ‘간첩사건’인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었다.

최근 사법부는 고문이나 장기 구금 등 불법 수사로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해 상당한 액수의 배상을 부과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수지킴 사건에 대해서는 유가족에게 42억원을 배상하라고 했고,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유가족에게는 18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때문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유가족들은 100억원대의 배상금을 받을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의 공안사건 수사가 고문과 장기 구금을 수반했다면 6·29선언을 계기로 출범한 노태우 정부 이후의 공안사건 수사에서는 이런 관행이 사라졌어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장성 출신이라 ‘군사정부’를 이끈 것으로 본다면 적어도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엔 이런 관행이 확실히 사라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면 민주화 이후의 정부에서 반복된 불법 수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래야 공정하게 과거사를 밝히는 것이고, 진실로 화해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장석중, 오정은씨 경우

1월19일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유승종)는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인 1998년 말 핫이슈로 떠올랐던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 관련자인 장석중·오정은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판결의 일부를 깨고 “정부는 원고인 장씨와 오씨에게 추가로 2억1000만원과 2억40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8년은 ‘북풍(北風)’과 관련해 많은 사건이 터져나온 해였다. 가장 먼저 터진 것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전 해외공작실장 이대성씨가 작성한 ‘이대성 파일 사건’. 이 파일은 이 전 실장이 만들었으나, 사건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은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씨다.

제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2월7일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은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대성 실장에게 윤홍준씨 기자회견을 지시했다. 이에 이 실장이 부하 직원을 시켜 윤씨에게 2만달러를 건넸고, 윤씨는 대선 직전 세 차례나 “김대중 후보는 1971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15대 대통령선거 때까지 북한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수령해왔고, 국민회의 조직국장 조만진이 조선족인 허동웅을 통해 대북접촉을 해왔으며, 김대중 후보가 이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아태평화재단이 북한측 자금으로 설립됐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12월18일 치러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선거 개입공작을 지시한 안기부가 궁지에 몰리게 됐다. 1998년 2월12일 윤씨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윤씨에게 돈을 건넨 해외공작실 직원들도 구속됐다.

이에 이 전 실장은 국민회의 관련 인사들이 대북접촉을 한 사실을 담은 자료를 모아 자신 등을 수사하면 이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뜻으로 정대철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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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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