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공백 메우기’로 기초 다지고 ‘문제 만들기’로 도약하라

  •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 kparkmath@hotmail.com

    입력2007-03-09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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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인 1982년 겨울방학으로 기억된다. 나는 매일같이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집을 나서 83번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수험생이 새벽 별빛 아래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6시가 되면 도서관이 개장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 지정석이랄 수 있는 구석 자리에 가방을 풀었다.

    머리가 맑을 때 어제 정면 대결을 벌이다 물러선 수학 문제를 다시 풀어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수학의 정석’을 꺼내들었다. 고등학교 수학에서 문제로 나올 만한 모든 유형을 다루었다는 책. 이 책만 마스터하면 되겠지 하는 도전의식으로 집요하게 문제를 풀어댔다. 풀리는 문제에서는 지적 희열을 맛보며, 어떻게 공략해도 해결의 단서가 보이지 않는 문제에서는 좌절을 느끼며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그려졌다. 그래도 ‘풀고 또 풀고’를 반복했다.

    새벽 수학공부가 체질이 된 덕인지, 그해 학력고사 문제가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인지, 어쨌든 대입 수학시험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만점을 받았다.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조금 더 ‘잘’ 공부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조건 장고(長考)’가 미덕?

    어느 수학 참고서에나 적혀 있는 수학공부와 관련된 첫 번째 조언은 ‘문제를 풀 때 가능하면 답과 풀이를 보지 말고 혼자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이다. 물론 지당한 이야기다. 필자 역시 얼마간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문제를 우직하게 푸는 습관을 가지려 했다.



    그런데 공부에서는 늘 시간 대비 효과를 따져야 하므로 이런 태도는 상황에 따라 비효과적일 수도 있다. 대학교 수학을 공부한다든지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경우는 한 문제에 매달려 푸는 동안 거쳐간 다양한 사고(思考)의 궤적을 통해 궁극적으로 수학문제를 푸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에 어느 정도 정해진 유형과 난이도의 문제를 푸는 수능이나 내신을 대비할 때는 풀다가 적당한 순간에 힌트와 해답을 찾아보는 실리를 추구할 필요도 있다. 필자가 고지식하게 한 문제를 오래 잡고 있으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고의 우회로를 경험했던 것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은 되었겠지만, 투자한 시간과 실력의 상승이라는 두 변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때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문제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답과 풀이를 보며 익히면 문제 유형이 달라질 경우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 문제에 대해 장고(長考)하는 것과 사고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효소 차원에서 힌트와 답을 민첩하게 활용하는 것 사이의 조화는 본인이 판단해 익혀가야 한다.

    부모가 수학에 ‘호의’ 베풀어야

    아이를 키우면서 반가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사소한 것까지 부모를 닮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부모가 먼저 수학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의 생각과 관심은 신기하게도 아이에게 전파되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부모의 식견은 부지불식간에 자녀에게 스며든다.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게임이나 퍼즐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수학실력 향상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부모로부터 받는 수학의 첫인상부터 별로 좋지 않다.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면 대입과 더불어 수학에 대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넌 부모가 대부분이다. 좀 배웠다는 분조차 “예전에 아무리 많이 공부했어도 사칙연산이나 약간의 통계적 지식을 제외하고는 수학은 써먹을 데가 없더라”고 자녀들에게 푸념하는 경우도 많다.

    뒤늦게 갑자기 수학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중·고교 수학은 물론이거니와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만 해도 부모들이 쩔쩔매는 응용문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녀와 수학을 매개로 대화할 소재를 찾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뉴스에 지진파 발생이나 산성비 문제가 나왔을 때, 리히터 규모나 산성도(pH)가 고등학교 ‘수학I’에서 배우는 로그(logarithm)로 나타낸 값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 로그의 어려운 성질과 복잡한 계산은 교과서를 통해 익힐 것이므로 부모는 수학에 대한 교양서를 통해 로그가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피상적으로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녀와 수학에 대해 공감적 이해를 나누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수학과 친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수학 용어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이다. 수학 내용은 용어를 통해 전개되므로 용어는 수학적 사고의 시발점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한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때에도 용어를 동원하므로 수학 용어는 학습의 종착점이기도 한다.

    가령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 ‘마름모’가 식물의 이름 ‘마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마름은 연못이나 늪에서 자라는 일년초로, 그 모양이 네 변의 길이가 같은 마름모와 비슷하다.

    원뿔의 옆선인 ‘모선’도 의미를 함께 익히면 좋다. 공간에서 축을 중심으로 모선(母線, generating line)을 회전시키면 원뿔이 생성되기 때문에 조어할 때 ‘어미 모(母)’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수학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처음 그 용어를 만든 사람이 어떤 사고를 했는지 이면의 아이디어를 더듬어가며 공부한다면 수학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예전에는 ‘제곱’을 ‘자승(自乘)’이라고 읽었다. ‘스스로 자(自)’와 ‘곱할 승(乘)’을 한글로 옮기면 제 스스로 곱한다는 ‘제곱’이 되므로, ‘자승’과 ‘제곱’은 같은 뜻이다. 영어로는 제곱을 square라고 하는데, square의 더 잘 알려진 뜻은 정사각형이다. 정사각형의 넓이는 한 변의 제곱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정사각형과 제곱은 상통하는 바가 있다.

    계산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세제곱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세제곱을 뜻하는 cube는 정육면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육면체의 부피는 한 모서리의 길이를 세 번 곱한 값이므로 정육면체와 세제곱이 동일한 영어 단어 cube로 표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수학 용어를 익힐 때 한자와 영어를 병기(倂記)하면 한자와 영어 단어까지 공부하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창의력’이 교육의 화두로 등장하다보니 수학의 기초 계산 기능은 다소 경시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창의력은 내용과 근거가 빈약하면서 그저 기발하기만 한 돈키호테식 발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창의력을 신장하려면 사고의 기본 재료가 되는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정확하고 신속한 계산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것은 우리 아이와 관련된 뼈아픈 경험에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많은 아이가 일찍부터 비슷한 수학 계산 문제를 수십, 수백개씩 반복하여 풀게 하는 학습지를 접하고 그로 인해 수학 공부에 싫증을 내는 사례를 보아왔기에 내 아이는 그런 연습을 따로 시키지 않았다. 어차피 학년이 올라가면 계산 속도가 붙고 정확도도 높아질 텐데 굳이 반복 연습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보면 집중적으로 연습하지 않고는 계산 속도가 저절로 빨라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시험은 주어진 시간에 비교적 많은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속도검사(speed test)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계산이 느리면 치명적이다. 명색이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수학 계산이 느려 고전했다면 웃을 일이겠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느린 계산 속도가 시험에서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고등사고능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수학적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빨리 풀어내야 하는 시험에서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한 복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수준 높은 문제를 풀 때 중간 중간에 필요한 사소한 계산은 거의 자동화되어 즉각적으로 풀어야 문제의 해결 계획을 세우고 이를 수행하는 메타적인 사고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다분히 한국적 상황에서 기인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구권 국가에서는 수학 수업과 시험에서 계산기 사용을 허용한다.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SAT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중심으로 수학, 과학,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테스트에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고 검사를 시행했지만 다른 국가의 학생들은 계산기를 사용했다(2000년과 2003년의 PISA 수학 검사에서 우리나라 15세 학생들은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핀란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현재 나는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에서 계산이 느려 속을 태우던 우리 아이를 보고 미국 교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지’ 경탄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수학 기초 기능을 기르는 것은 어느 국가에서나 강조하고 있지만,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를 비롯한 공학적 도구에 맡기는 것이 국제적인 동향이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우리의 시험 상황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교육적으로 보일지라도 반복 계산 연습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해의 공백기를 찾아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녀의 성적은 수학에서 판가름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에서 개인 차가 크게 나타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수학의 위계성에서 비롯된다.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과는 한 단원의 학습이 미진하더라도 새로운 단원을 열심히 하면 만회할 수 있지만, 수학은 이전 내용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그 다음 내용을 제대로 습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 때 배우는 이차방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전 단원에서 배우는 인수분해를 마스터해야 한다. 또한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과정에 나오는 일차방정식, 연립일차방정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차방정식을 풀 리 만무하다. 이처럼 이차방정식을 위해 선행돼야 할 지식은 여러 가지다. 아래 학년 내용을 전제로 하는 이차방정식은 당연히 위 학년으로도 연결되어 고등학교 과정의 삼차방정식, 연립이차방정식, 분수방정식과 무리방정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어느 학년에서 한 번 생긴 수학 학습 결손은 이후 학습에 계속적인 방해 요소로 작용하므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수학의 특정 단원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원인이 그 단원에 있는지 아니면 이전 단원에서 파생된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혹시라도 이전 학년에 이해했어야 할 개념이나 계산 능력이 부족하다면 과감하게 이해의 부족이 시작된 학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완해줘야 한다. 기초 공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수학에서 선수 개념의 결손이 있다면 그 위는 사상누각이 된다.

    기초적인 수준의 문제를 제외하고 교과서에 제시된 공식에 그대로 대입만 하면 되는 ‘착한’ 문제는 거의 없다.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해결 방법은 문제마다 각양각색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에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바로 전 문제에서 위력을 발휘한 방법을 그 다음 문제에 적용해보지만 식은 점차 복잡해지기만 할 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 역시 이런 좌절의 경험을 수없이 겪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문제의 해법은 대개 문제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우선 문제를 반복해 읽어보자. 문제에서 구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주어진 조건과 자료를 점검해보고, 문제에 포함된 개념의 정의를 되짚어본다. 문제의 정보를 표나 그림으로 정리하고, 기하 문제라면 기호를 붙이면서 보조선을 그어본다.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빠른 시간 안에 수식을 세워 답을 유도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공법으로 풀 수 없을 때에는 문제를 단순화해 쉬운 문제로 바꾸어보기도 하고, 일반적인 경우를 공략하기 어렵다면 특정 값을 대입한 특수한 경우를 고려할 수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식을 세웠다면 문제에서 주어진 정보를 모두 이용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하는데, 치사(?)하게도 어떤 문제는 과잉 정보를 주거나 문제의 해결과 무관한 정보를 주니 유의해야 한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문제는 여러 개의 보조 문제로 쪼개어 각개격파해볼 만하다. 이런 방법론을 따르다보면 웬만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풀고 난 후에 복기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일단 답을 구했으니 그 문제에 더 집착할 이유는 없지만, 실력을 한층 높이기 위해서는 문제를 푼 과정을 반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신이 푼 방법보다 더 경제적이고 우아한 풀이 방법은 없는지, 이 문제의 풀이를 일반화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보고, 문제의 조건을 바꾸어서 풀어보기도 한다.

    내가 쓰던 ‘필살기’ 중의 하나는 ‘문제 만들기(problem posing)’다. 출제자가 됐다고 가정하고 방금 푼 문제와 같은 유형의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의 구조를 꿰뚫어보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 내용을 한 수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된다.

    수능과 논술을 대비하는 학생들이 가장 빈번하게 듣는 조언 중의 하나는 출제자의 의도를 신속하게 간파하라는 것인데,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출제자가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무엇을 묻기 위해 출제했는지 파악하기 쉬워진다.

    응용문제가 더 쉬울 수 있다

    요즘 통합논술 바람이 불면서 무미건조한 수학뿐 아니라 수학과 일상생활을 연결 짓고 수학의 안목에서 여러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연습을 위해서는 수학에 대한 교양서적이나 수학사(數學史)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대학별 수리논술에서 통합교과적인 문제를 출제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수능시험의 수리 영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수학 외적 연결성을 묻는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서양 12음계의 주파수를 계산하는 수학과 음악의 퓨전, 우리나라의 고전 ‘이수신편’에 나오는 ‘난법가’의 상황을 연립방정식으로 해결하는 수학과 국어의 통합이 시도된 적이 있다.

    수학 문제가 상황(context)과 더불어 진술되면 일단 어렵게 느껴지지만, 문제에 맥락이 덧입혀지면 더 쉬워질 수도 있다. 필자에게도 응용문제 콤플렉스가 있었다. 중학교 때에는 ‘소금물 농도’ 문제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소금물 농도 문제에서 인생의 쓴맛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소금물에 물을 첨가하여 희석시키는 경우, 소금을 더 넣거나 용액을 증발시켜 농도를 높이는 경우, 특정한 농도에서 시작하여 원하는 농도를 만들기 위한 용액과 소금 양의 변화, 거꾸로 미지의 농도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농도를 만드는 경우 등등 문제가 어떻게나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지 ‘소금물’ 글자만 보면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는 소금물 농도 문제를 정복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유형의 문제를 놓고 분석해보았다. 처음에는 문제에 주어진 조건과 물어보는 방식에 따라 매번 다른 풀이 방법이 등장하는 것 같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농도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이용하여 방정식을 세우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별다른 비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없어 매번 걸림목이 되는 개념이나 문제가 있다면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모두 펼쳐놓고 공략해보라. 문제마다 다른 풀이 방법이 동원되는 것 같지만, 집중 공략을 하다보면 그 풀이 방법을 관통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교육에서 자주 거론되는 방법 중 하나가 토론 학습이다. 흔히 수학은 토론과 무관한 교과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개진하면서 토론을 벌일 수 있다. 이런 토론 과정을 통해 최근 수학 교과에서 강조되는 의사소통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중심으로 자녀와 대화를 나누어보자.

    토론학습의 생활화

    오만한 회사에는 사장인 오만한씨와 2명의 임원, 1명의 운전기사, 3명의 팀장, 4명의 작업반장, 그리고 10명의 직공이 있다. 최근 일손이 부족해 한 사람의 직공을 더 채용하려고 한다.

    노동해 : 저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월급 수준이 꽤 높다고 들었거든요.

    오만한 : 우리 회사의 월급 수준은 꽤 높은 편이지. 1인당 평균 월급이 200만원이나 되니까. 물론 수습 기간에는 70만원을 받지만, 월급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오르지.

    근무를 시작한 지 며칠 후 노동해는 사장을 찾아갔다.

    노동해 : 당신은 나를 속였어요. 다른 직공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월급이 100만원이 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평균 월급이 200만원이라는 거지요?

    오만한 : 나는 매달 1000만원을, 2명의 임원은 각각 350만원, 3명의 팀장은 각각 240만원, 운전기사는 180만원, 4명의 작업반장은 각각 150만원, 10명의 직공은 각각 100만원씩을 받지. 따라서 매월 지급되는 월급의 총액은 4200만원이야. 이것을 우리 회사의 총 인원인 21명으로 나누면 200만원이 되지. 이제 이해가 되나?

    노동해 : 물론 이해하죠. 그것은 단지 계산상의 평균일 뿐이죠. 어쨌든 당신은 나를 속였어요.

    오만한 : 천만에! 자넨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군. 물론 높은 월급부터 낮은 월급으로 쭉 배열하고 중앙에 위치하는 150만원을 택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평균이 아니고 중앙값이라는 거야!

    노동해 : 그럼 변변치 못한 우리의 월급 100만원은요?

    오만한 : 그건 최빈값이라고 하지. 즉, 가장 많은 사람이 받는 월급을 말하지. 모든 오해는 자네가 평균, 중앙값, 최빈값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걸세.


    위의 상황에서는 평균, 중앙값, 최빈값 중 반드시 어떤 값이 대표값이 돼야 한다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평균(mean)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대표값이지만 극단적인 값이 포함된 경우에는 그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다. 위의 상황에서 임금이 200만원 이상인 사람은 6명이고, 그 이하는 15명이지만 평균이 200만원이 된 것은 사장의 월급 1000만원이 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값들과 동떨어진 이탈값(outlier)이 있는 경우는 대안으로 중앙값을 대표값으로 고려할 수 있다. 중앙값(median)은 여러 값을 크기 순서로 늘어놓았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값이다. 21명의 임금을 크기 순서로 배열했을 때 정중앙인 11번째에 위치하는 값은 작업반장의 임금인 150만원이다.

    최빈값(mode)은 말 그대로 가장(最) 빈번하게(頻) 나타나는 값을 말한다. 위의 상황에서 1000만원이 1회, 350만원이 2회, 240만원이 3회, 180만원이 1회, 150만원이 4회, 100만원이 10회 나타났으므로 빈도가 가장 높은 100만원이 최빈값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에 대해 A, B, C, D, 네 개의 디자인을 놓고 선호도를 조사할 때, 사람들이 선택한 번호들에 대해서는 평균도 중앙값도 의미가 없다. 이런 경우는 가장 많은 사람이 선호한 최빈값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하다.

    평균, 중앙값, 최빈값이라는 세 가지 대표값을 교과서적으로 그 정의를 익혀도 좋지만, 부모와 자녀가 이런 지문을 놓고 토론해도 좋을 것이다. 다음 상황도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근검이네 가족은 주말을 맞아 외식을 했다. 그 레스토랑은 주말에 음식값의 10%를 할인해주며, 10%의 봉사료를 부과한다. 음식값을 계산할 때 할인을 받고 봉사료를 부과하는 순서에 대해 근검이 엄마와 아빠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엄마 : 음식값을 계산할 때 할인을 먼저 받는 것이 유리해요. 10% 할인을 받은 다음에 10%의 봉사료를 붙이면 원래 음식값에 봉사료를 부과할 때보다 봉사료가 적어지니까요.

    아빠 : 그렇지 않아요. 10%의 봉사료를 먼저 붙이면 음식값이 높아진 후에 10% 할인을 받으므로, 할인받는 금액이 늘어나지요. 그러니 봉사료를 부과한 후 할인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해요.


    위의 상황을 제시하고 자녀에게 어떤 쪽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고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말해보게 하자. 사실 위의 대화에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실제 두 경우에 지급하는 금액은 같기에 엄마와 아빠의 의견은 모두 맞지 않다.

    구체적인 금액을 가지고 계산해보자. 만일 음식값이 1만원이라고 할 때 10%를 할인받으면 9000원이고, 여기에 10% 봉사료를 부과하면 9900원이 된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 1만원에 봉사료 10%를 붙이면 11000원이고 10%에 해당하는 1100원을 할인하면 9900원이 된다. 즉 최종적으로 내는 금액은 할인을 받고 봉사료를 부과하는 순서에 영향받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해시킨 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음식값이 1만원일 때 할인하고 봉사료를 부과하는 순서와 관계없이 9900원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 이유가 할인율과 봉사료의 비율이 10%로 같기 때문인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보자. 예를 들어 할인율이 20%이고 봉사료가 10%라고 가정해보자.

    우선 할인→봉사료의 순서라면 20%를 먼저 할인하므로 음식값에 0.8을 곱하고, 여기에 10%의 봉사료를 부과하므로 1.1을 곱하면 된다.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음식값×0.8)×1.1이 된다. 봉사료→할인의 순서인 경우는 음식값에 10%의 봉사료를 부과하므로 1.1을 곱하고 여기에 20%를 할인하므로 0.8을 곱해 마지막에 지급하는 금액은 (음식값×1.1)×0.8이다. 두 식이 같아지는 이유는 교환법칙과 결합법칙을 적용해보면 자명하며, 결과적으로 할인율과 봉사료의 비율이 다르더라도 순서는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위의 상황을 놓고 자녀와 수학에 대해 토론해보자. 이런 실감나는 상황을 매개로 수학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기회를 갖는다면 자녀의 수학적 관심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모든 교과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논리이지만 수학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수학이 이용되는 게임을 하다보면 특별히 수학공부를 한다는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체득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스도쿠(sudoku)라는 숫자 퍼즐이 인기다. 스도쿠는 가로와 세로 각각 9칸씩 총 81칸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이 주어지고, 가로줄과 세로줄에 1부터 9까지의 수를 중복되지 않게 적어 넣어야 하며, 가로와 세로 3줄로 이뤄진 작은 정사각형 안에도 1부터 9까지의 수를 중복되지 않게 배치해야 한다. 일면 단순해 보이지만 푸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지능형 게임이다. 스도쿠 퍼즐을 푸는 데 본격적인 수학적 계산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 가능한 수들을 생각하고, 여러 경우를 따지는 체계적인 연습을 하게 된다. 이는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수학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과연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는지이다. 수학 교과에 대한 선행학습은 점차 그 도를 더해, 요즘 1∼2년 앞서 배우는 것은 선행 학습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가 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교육과정을 제정하고, 또 그 교육과정에 근거해 교과서를 집필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학습자의 인지 발달 수준이다. 각 연령대의 학습자는 나름의 고유한 사고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교과서에 학년별로 제시된 내용은 정상적인 인지 발달 과정을 고려하여 선정된다. 따라서 원론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자신의 연령에 부합하는 내용을 제 학년에 학습하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수학의 경우는, 선행학습을 하며 피상적으로만 알고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아이가 막상 제 학년에 그 내용을 접할 때에는 이미 아는 것으로 간주해 대충 넘어갈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에 어설프게 배우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엔 학습을 소홀히하는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선행학습 딜레마

    상위 학년의 내용을 일찍 가르치면 다소간의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학부모는 그쪽으로 마음이 끌리기 쉽다. 다른 집 아이가 선행학습을 해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부모는 거의 없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 중 상당수는 중학교의 방정식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또 중학교의 기하 문제 중에는 고등학교의 해석기하적인 접근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싸움터에서 해당 학년의 수학적 지식만 이용하는 것은 칼만 가지고 싸우는 것에, 선행을 통해 익힌 상위 학년의 지식을 동원하는 것은 칼뿐 아니라 총까지 들고 싸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당장의 싸움에서는 총까지 동원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그렇지만 자연스러운 학습 속도를 따라 가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면 총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때는 누가 더 유리할까. 아마도 칼이라는 원시적인 무기로 버티면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한 경우가 유리할 것이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일찍이 강력한 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잠시 우위에 서는 것 같지만, 남들도 동일한 무기를 가지게 되면 별 소용이 없어진다.

    학습자에게는 개인차가 있으므로 선행학습이 무조건 비교육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선행학습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또 그런 지적 도전을 즐기는 학습자도 있다. 예컨대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거나 수학경시대회를 대비하는 수학 영재 수준의 학생이라면 지적 도전의식을 고취하는 선행학습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습자에게는 과도한 선행학습에 따른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비유컨대 선행학습은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것과 같다. 예고편은 영화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데, 예고편이 과도하면 정작 본 영화를 볼 때의 감흥은 줄어든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학습자의 능력을 감안해 적절한 시기에 배우도록 하는 ‘적기 교육’이 해답이라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박경미 교수의 수학 득도기(得道記)
    박경미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석사(수학)·박사(수학교육학)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책임연구원

    미국 버클리대 연구원, OECD PISA 수학 전문위원

    現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수학 학습이 몇 년에 끝나는 단거리 경주라면 수학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갖고도 짧은 기간 전력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 학습은 초등학교부터 따지면 적어도 10년에서 12년을 공부해야 하는 장거리 경주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장애물이 많아지는 경기다.

    따라서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하며, 스스로 뛰겠다는 동기와 의지가 뚜렷하여 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여유까지 갖춘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단지 상급학교 진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교과이니 중요하다는 식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수학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경험함으로써 수학을 왜 학습해야 하는지 그 의의와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장거리 경주를 위한 기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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