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메일 대화의 주인공 최영록(왼쪽)·최한울 부자.
나는 마음이 부푼다. 가벼운 흥분까지 인다. 약속을 하자. 편지를 받으면 늦어도 2~3일 내에 ‘답멜’을 보내자. 메일을 보낸 후 ‘답멜’을 받을 때까지 그만큼의 설렘이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도 읽었지? 여우가 왕자를 4시에 만나기로 하면 3시부터 스쳐가는 발걸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런 설렘은 이성 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친구 간에, 부자간에, 형제 간에, 다른 모든 관계 속에도 늘 이런 떨림이 있어야 한다. 네가 흔쾌히 응해줘서 무척 고맙다. 일주일 전만 해도 사는 게 악몽 같았으나 이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환한 세상이 우리 앞에 전개되는 느낌이다.
나는 여기 이 마당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을 것이다. 언젠가 편지에 쓴 것처럼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를’ 고스란히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너는 발전하고 전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마라.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過猶不及: 猶는 오히려 유, 도리어 유로 읽는다)와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 나고드는 출입을 꼭 부모에게나 주변에 알리라는 뜻이다)을 오늘의 화두로 던진다.
〈 아들 〉 2006-05-22 “내 최고의 야망은 아버지”
오늘 ‘싸이’(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편집자주)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석 달간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은 참 글을 잘 쓴다.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할 줄 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해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그런 면에서 난 ‘꽝’이다. 내가 써놓은 글을 보면 종잡을 수가 없다. 하긴, 글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지. 한 사람의 글에는 그 사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깊어져야겠지. 아직은 깊이 있는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냥 느낀 점만 마구 갈겨놓은,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 창피한 글입니다. 하지만 제 진심은 아시겠죠? 요즘엔 어떤 책을 봐도 끝까지 보기 힘들고 금세 졸리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기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깊이 있는 글이라니.
‘백수의 월요병’(아버지 최영록씨가 2005년에 펴낸 수필집-편집자주)만 보면 아버진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책 낼 때 출판사 사람들이 깊이 있는 글을 뺐다고 그러셨죠. 이제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메일, 그동안 쓰신 칼럼 등을 보면 아버지의 글이 꽤 깊이 있다는 걸 저도 알겠더라고요. 제 글의 목표는 아버집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야망 중 현재 최고의 야망은 아버지네요. 그러고보니 평론가나 칼럼니스트가 가장 가까운 꿈이네요. 대체 뭐가 뭔지. 이 버릇부터 고쳐야겠습니다. 잘나가고 있다가 옆길로 팍 튀어버리는 버릇.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자꾸 책 밖으로 나가려는 눈을 고정시키고 책을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