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폼이 달라지고, 임무도 선수에서 수석코치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유쾌한 헐크’였다. 잠시도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이지만 청바지에 가죽점퍼가 잘 어울리는 것도 웃음이 가져다준 선물처럼 느껴졌다.
홈런 뒤엔 빈볼
이 코치가 나타난 뒤 SK 훈련장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는 그라운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선수들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고, 쭈뼛거리는 선수들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처음엔 좀 어색해하던 선수들도 이젠 그와 눈이 마주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SK 김성근 감독이 그를 영입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코치 자신도 의욕이 넘치고 신이 난다. 몇 번이고 “한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말한다.
10년 만에 국내 그라운드에 돌아와서 그가 실감한 것은 선수들의 기량과 체격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현역 시절에는 자신도 ‘한 덩치’(175㎝, 84㎏) 했지만 지금 선수들과 비교하면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특히 새내기 왼손투수 김광현(19·안산공고 졸)의 기량에 놀랐다. “공도 빠르지만 무엇보다 공을 던질 때 손이 안 보인다. 마치 피칭머신에서 갑자기 공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해 신인왕과 MVP(최우수선수)를 석권한 ‘슈퍼 루키’ 류현진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만한 기량”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이 코치가 온 뒤 SK와이번스 선수단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그는 현역 때 누구보다 즐겁게 야구를 했다. 홈런을 치면 만세를 부르고 펄쩍펄쩍 뛰면서 베이스를 돌았다. 또한 포수 마스크 뒤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옛날에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설레발 떤다(설친다)고 싫어했어요. ‘지가 스타면 스타지…’ 하는 비아냥도 들었죠.”
쾌활한 성격 탓에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홈런을 친 다음 타석에선 걸핏하면 몸에 공을 맞곤 했다. 약이 오른 상대투수가 작정하고 빈볼을 던졌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2년간 삼성라이온스 사령탑을 맡은 김성근 감독은 그를 걱정해서 “앞으론 홈런 친 뒤에 만세를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두 달 후 이만수는 “야구가 재미없어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처럼 야구를 즐겁게 하는 선수였다.
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과 서투른 영어로 농담도 하고 하이파이브도 나눴다. 팬과도 유쾌하게 만나다보니, 경기 시작 전 선수단을 소개할 때면 감독 못지않게 큰 박수를 받았다. 어느 날인가는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를 하면서 카메라가 이 코치를 오랫동안 비췄다. 그리고 해설자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괴롭고 울적하면 야구장에 오라. 불펜에 리 코치가 있다. 그의 얼굴만 보면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빅 스마일’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는 자기 팀 ‘홍보대사’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해서 ‘앰버서더’로 불렸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시카고 지역신문에 그의 귀국 소식이 보도된 것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