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큼 절을 짓고 불경을 번역했으니 내 공이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어떤 보상을 받겠는가?”
그러자 달마선사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무공덕(無功德), 오히려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양 무제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달마선사는 “불식(不識·알 수 없다 또는 당신과 나를 구별할 수 없다)”이라고 답했다. 부처의 마음에는 공덕에 대한 대가를 바라거나 서로를 구별하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달마선사는 이 한마디로 설파했다. 이후 달마선사는 소림사로 들어가 9년의 면벽좌선(面壁坐禪) 끝에 선종을 창시했고, 그의 선법은 곧 부처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단의 하나로 널리 전파됐다. 이로써 그는 부처의 28대 제자가 됐다.
이처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고자 노력한 달마선사를 화폭에 담은 달마도가 돈을 받고 팔리는 상품으로 둔갑했다. 인터넷 홈쇼핑과 신문 광고를 통해 팔려 나가는 달마도는 수맥(水脈)을 차단한다거나 좋은 기(氣)가 나온다는 선전에 힘입어 또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노력 없이 무턱대고 행운을 바라는 사람들의 허영과 영합한 ‘상업 달마도’는 고유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일개 부적 신세로 전락했다.
가짜 ‘禪화가’들
하지만 혼탁한 달마도 시장과는 먼 거리에서 달마선사의 마음 자체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선(禪)화가도 있다. 석주(石舟) 이종철(李鍾喆·64·대한불교원효종문화원장, 선화미술원장) 화백도 그 한 사람이다. 원효종 승려인 이 화백은 지난 20여 년간 큰 행사가 있거나 우환이 있을 때마다 초대형 달마도를 그려 행사를 축하하거나 사람들을 위로했다. 20여 년간 그에게 무료로 달마도를 받아간 사람만 수만명, 그는 “달마도를 그리며 보시한 숫자를 헤아리는 행위 자체가 달마를 욕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마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부처님께 다가가 있는지가 핵심”이라는 것.
대전시 동구 용전동에 있는 그의 화실 석주선원미술원(dalmado7173@ hanmail.net, 선화사랑모임방) 벽 전체에 그려진 백팔(해탈) 달마도는 어느 하나도 같은 표정이 없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섭게도 보이고, 장난기 넘치게도 보이는 달마도들. 진짜 표정을 알아내기 어려운 ‘모나리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달마의 얼굴에서 활달하게 뻗은 선은 끊기지 않고 내려가 장삼이 되고 몸통을 이룬다. 화폭에 드러난 극도의 생략과 절제는 보는 이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여유를 심어준다. 달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되묻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상업 달마도를 그리는 ‘가짜’ 선화가들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팔아먹을 게 없어서 달마를 팔아먹습니까. 달마선사가 알면 까무러칠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달마가 누구입니까. 무상무심, 무공덕, 불식의 경지를 설파하고 간 불교계의 큰 어른이자, 선종의 초조입니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에요. 특히 우리 조상들이 그린 달마도는 예술적 가치가 높고 구도(求道)의 혼이 담겨 있어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신라의 솔거로부터 조선시대 연담 김명국, 김홍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달마도는 일본의 박물관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보지도 못한 달마선사를, 그것도 붕어빵 찍어내듯이 똑같은 모양으로 그려 팔아먹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달마도에서 달마 이외의 것을 바라는 데서 생긴 일입니다.”
상업 달마도를 비판하는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날 그가 그린 달마도의 달마선사는 잔뜩 골이 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