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식을 먹고 있는 시골집 식구들. 표정은 제각각이나 평화로운 얼굴이다.
임락경(林洛京·63)씨는 하루 두 시간만 일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만나 삶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보고 느낀 건 미소였다.
미소(微笑)는 한자니까 우리말로 ‘웃음’이 더 어울리지 싶다. 임락경과 첫 만남에서 본 웃음은 ‘촌놈의 웃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10여 년 전. 정농회(正農會) 연수회 때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아남기 위해 농사를 연구하고 고민하던 때였다. 모두 다 떠나려고 하는 농촌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니 정농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두루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간 연수회 첫날, 자기소개 시간. 참석한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고 농사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이 하나 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자그마한 사람이 눈을 껌벅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두 시간이면 한 사람이 자기 먹을 거 마련할 수 있어요. 나머지는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거침 없이, 망설임 없이
당시 100여 명이나 되는 참석자의 인사말 중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 시간만 일하면 자기 한 몸 사는 데 문제가 없다니…. 소개가 끝나자 그에게 다가갔다.
“뭘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러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명함을 한 장 건넨다.
‘촌놈 임락경’
헉, 자기 호를 ‘촌놈’이라고 하다니. 명함을 받고 그를 다시 보니 그는 영락없는 촌놈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다 헙수룩한 옷차림. 그냥 시골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러나 그가 던진 한마디는 두고두고 내게 빛이 되었다. 첫 만남이 인상적이다보니 그를 알면 알수록 신비했다.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다. 형식과 허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까발리고,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이웃에게는 연민과 사랑을 가득 보냈다.
그는 자기 말 그대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그의 식구들이 어울려 사는 집을 일러 ‘시골집’이라 한다. 시골집에는 20명이 살고 있다. 장애인들과 함께 산다고 누구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고 대부분 농사지어 자급한다. 그가 하는 일은 조금 더 많은데, 정농회 회장에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학벌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그가 상지대(총장 김성훈) 초빙교수로 유기농업을 가르친다.
“웃기고도 돈 안 받아”
사실 이런 화려한 직책보다 그가 더 열성을 가지고 하는 일이 있다. 사람들 건강을 지켜내는 일이다. 이름하여 ‘임락경의 건강교실’. 두 달에 한 번꼴로 연다. 취재를 위해 그가 여는 건강교실에 참여했다. 강의를 들으며 짬짬이 인터뷰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이 없고 거침이 없다. 말투부터 그렇다. 나를 친동생 대하듯 말을 낮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