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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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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없인 못 살아!” 개미 사회의 냉혹한 ‘카스트 제도’
그런데 막 짝짓기를 끝내고 새로 일가(一家)를 창시해야 하는 아마존개미 여왕은 노예를 어떻게 구할까. 토포프는 속이 보이는 투명한 통을 여러 개 준비한 다음, 각 통에 불개미 여왕 한 마리에 일개미와 번데기 15마리씩을 넣었다. 그런 다음 막 짝짓기를 끝낸 아마존개미 여왕을 굴 근처에 풀어놨다. 그러자 아마존개미 여왕은 금세 굴 입구를 찾아내어 들어갔다. 일개미들이 그 무단 침입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했지만, 여왕개미는 무지막지하게 밀쳐내면서 불개미 여왕에게로 향했다. 침입자는 불개미 여왕을 움켜쥐고는 25분 동안 머리, 가슴, 배를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물어뜯으면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을 핥아먹었다. 그동안 일개미들은 계속 달려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불개미 여왕이 숨을 거두자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불개미 일꾼들은 유순하게 침입자에게 다가가 몸단장을 시키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새 여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포프는 일개미들이 그렇게 쉽게 굴복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침입자가 불개미 여왕을 살해하면서 체액을 핥아먹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일개미들이 그 체액에 든 화학물질을 감지해 자기 여왕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토포프 연구진은 불개미 여왕을 얼려 죽인 뒤 해동시켜놓았다. 아마존개미 여왕은 상대가 죽은 줄 모르고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그러면서 체액을 핥았고 결국 일개미들은 그 침입자를 여왕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불개미 여왕을 아예 다른 곳으로 치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침입한 아마존개미 여왕은 일개미들의 공격에 시달리다 죽고 말았다.

저항하는 노예 개미도 있다

토포프가 연구한 불개미는 한 집에 여러 여왕개미가 살기도 한다. 그래서 토포프는 여왕개미가 여럿 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각 통에 여왕개미를 2마리에서 25마리까지 넣고 살펴보았다. 아마존개미 여왕은 침입하여 불개미 여왕 한 마리를 살해했다. 그렇게 일단 여왕의 자리를 획득하자, 서두르지 않고 남은 여왕들을 한 마리씩 찾아내 죽였다. 불개미 여왕을 다 죽이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개미 여왕 주위에 강한 일개미들이 버티고 있으면 오히려 공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아마존개미 침입자는 여왕 자리를 찬탈하고 나면 알을 낳아 자기 자손들과 노예로 이뤄진 군체를 형성한다.

노예 획득이 반드시 이렇게 유혈 정복을 통해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프레드 레이그니어와 에드워드 윌슨은 아세테이트의 일종인 화학물질을 이용해 상대방을 정복하는 불개미류를 발견했다. 그 종은 노예획득을 위한 공격을 하면서 저항하는 개미들에게 화학물질을 뿌린다. 화학물질은 같은 종의 공격자를 더 많이 끌어들이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저항하는 개미들을 혼란 상태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원래 아세테이트는 개미들이 경고 신호를 보낼 때 쓰는 아주 강력하고 효과가 오래 가는 ‘불온선전’ 물질이다.



한편 호리가슴개미류에 속한 미국의 한 종은 마치 멀리서 온 친척인 양 숙주로 기생할 종의 군체를 찾아가서는 그냥 눌러앉는다. 남의 나라 여왕 옆에 빌붙어서 그 나라 국민을 제 종인 양 부리는 셈. 아시아와 유럽에 사는 이빨개미류의 한 종도 같은 방식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종은 진화 과정에서 일개미 계급을 잃었다. 즉 일개미를 낳지 못한다. 일개미가 있어야 유혈 정복에 나설 텐데 그렇지 못하니 빌붙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노예제라고 부르기가 애매할 수도 있다.

개미 노예제 진화의 수수께끼

개미의 노예제는 노예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을 받지 않는 종부터 노예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극단적인 종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개미의 노예제는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개미의 노예제는 기생체와 숙주가 상호 작용을 하면서 기생 관계가 유지되는 사회적 기생이다. 개미의 기생 양상은 1909년 이탈리아 개미학자 카를로 에메리가 말한 규칙에 잘 들어맞는 듯하다. 그는 기생하는 개미 종이 숙주가 되는 개미 종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척 관계라고 했다. 실제 개미의 노예제는 주로 가까운 종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그것은 노예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알려줄 단서가 될 수 있다.

찰스 다윈은 노예제가 단순한 포식 관계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어떤 종의 개미가 비슷한 종을 공격해 알이나 애벌레, 번데기를 약탈해서 먹기 위해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일부가 가까스로 먹이 신세를 피해서 깨어났다. 깨어난 일개미들은 갓 깨어난 오리 새끼가 처음 본 사람을 자기 어미인 양 졸졸 따라다니듯, 주위에 있는 여왕개미, 일개미, 알 등을 자기 동족으로 착각하고 열심히 봉사했을 것이다. 그 일개미들의 봉사를 받는 쪽이 그들을 먹이로 먹는 쪽보다 더 강했다면, 포식에서 노예제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다윈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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