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여론조사 결과가 의심스럽다면? ‘여론조사’

  •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kht@ksoi.org

    입력2007-03-12 10: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여론조사 결과가 의심스럽다면? ‘여론조사’

    ‘여론조사’ 프랭크 뉴포트 지음, 정기남 옮김, 안부근 감수 /384쪽/2만5000원

    여론조사를 보는 눈은 생각보다 곱지 않다. ‘배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진지한 표정으로 듣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는다. “여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반면 정치인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유리하면 ‘과학’이고 불리하면 ‘조작’이라고 한다. 일반인의 반응은 좀더 생생하다. 도대체 누가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또 기껏해야 몇백명, 많아야 1000명 정도로 전 국민을 대표하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무작위로 아무렇게나 골라 여론을 조사한다는 것도 좀처럼 납득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다른 어느 기사보다 눈길을 끈다. 왜 그럴까?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가 쓴 ‘여론조사(polling matters)’는 이러한 다양한 의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프랭크 뉴포트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여론조사의 상징, ‘Gallup USA’의 편집장이다.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강의를 해온 학자이자, 오랜 기간 현장에서 갤럽의 여론조사를 진두지휘해온 베테랑 조사전문가다. 1장에서 저자는 인간이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미 오랫동안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개별적 ‘여론조사’를 해왔음을 상기시킨다.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만나지 않고도 그의 생각을 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론조사 결과에 눈이 가는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현대적 의미의 여론조사는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남의 생각을 과학적으로 알아내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인간의 사회제도에서 개개인의 생각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개인의 생각이 다른 사람과 결합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모을 수 있으며, 다양한 배경과 경험의 결과를 모으면 막강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저자는 2장에서 여론조사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른바 ‘집단적 지혜(collective wisdom)’에 대한 설명이다. 사회는 항상 여러 사람에게서 모아진 지혜에서 더 유용한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중의 지혜인 ‘여론’을 모으는 데 여론조사가 왜 유용한지를 설명한다.

    3장에서는 여론이 사회체계 내에서 갖는 기능적 의미를 정의하고, 자신의 관점을 확대해 나간다.

    “사회가 발전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사람들의 견해를 가능한 한 자주, 체계적으로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원칙이 곧 상향식 접근방법임을 지적하고 ‘선거’라는 공식적 접근과 함께 여론조사가 어떻게 대중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여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완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많은 사람은 독창성과 고유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면밀한 조사를 하지 않고 개인적인 특성, 태도, 의견을 유형화하는 모든 노력이 부정확할 수 있다고 느낀다.”

    4장에서는 사람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알아보고 여론조사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한다.

    사실 대중여론에 대한 가장 근본적 관점은 엘리트 집단의 ‘대중’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서 출발한다. 5장과 6장에서는 지식인들이 공감할 만한 ‘대중과 그들의 여론에 대한 불안감’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 핵심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으냐의 문제와 과연 대중의 의견은 경청할 만한 것인가다.

    대중과 여론에 대한 불안감

    “일부 비평가들은 대중의 의견, 즉 이를 대변하는 여론조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다수의 횡포가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수결 원칙의 부정적 측면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엘리트 집단의 불안에 대해 조용히 충고한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우월감에서 벗어나 전향적으로 자신들의 탁월한 능력으로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의무’임을 지적하며 나아가 대중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7장과 8장은 좀더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론조사가 어떻게 전체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고, 왜 과학인지를 설명하는 장이다. ‘도대체 그 작은 수로 어떻게 수천, 수억명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느냐’는 여론조사에 대한 가장 고전적 이의 제기에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거대한 모집단을 일반화하기 위해 작은 표본을 사용하는 것이 여론조사에만 국한되는 게 아님을 알리고 싶어한다. 일례로 ‘혈액’ 샘플을 들었는데, 의사가 환자의 혈액형이나 백혈구수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 몸에 있는 혈액을 모두 채취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통계학의 표본추출 이론과 관련된 것이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대단히 전문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론조사의 기초원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여론조사의 유용성을 인정하기가 불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비록 기술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대목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9장은 여론조사가 어떤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내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질문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비판에 적절한 해명이 될 수 있겠다.

    “인간의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 어쩌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결국 조사내용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이끌어내는가 하는 좀더 복잡한 문제로 발전한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의 방식이다. 질문의 방식은 확실히 여론조사 결과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질문 방식에 따른 가변성은 일정 수준 통제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러한 가변성을 통해 대중의 생각을 더 명확히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여론조사가 단지 정책결정의 참고자료나 기업의 마케팅 결정을 내릴 때 사용된다면 적어도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요구되는 엄밀성이나 중립성의 중요성은 대폭 줄어든다.

    10장에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매체의 책무는 여론조사를 면밀하고 신중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여론조사의 본질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론조사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과학적 동기와 대중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 사이의 민감한 위치에 서 있다.”

    동일한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도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대중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저자는 여론조사의 특성과 언론보도의 특성 ‘차이’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설명하면서 여론을 전달하는 보도매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여론조사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시민의 통합된 경험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실제 투표라기보다는 여론조사다.”

    저자는 여론조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더 민주주의답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선거 때만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정치인의 행태를 꼬집으면서 권력의 최종주체인 대중의 지혜를 모아 정책결정에 반영하고 설득과 소통을 통해 정치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놀라움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꼭 들어맞고 유용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대선이 있는 해엔 어김없이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항상 개인기에 의지해 ‘그들’에게 여론조사에 대한 기초 개념부터 설명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올 해 ‘여론조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광경’을 목도하기 전에 이 책이 출간된 것이 무척 반갑다. 또다시 해묵은 논쟁을 하자고 덤비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뉴포트의 ‘여론조사’를 읽고 얘기하자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