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내내 영어에 싫증만 내다가 중학교 마지막 영어수업시간에 뜻밖의 책을 만났다. 영어선생님이 추천한 안현필씨의 ‘영어실력기초’였다. 그 책 중간 중간에 있는 ‘잔소리 코너’ 덕분에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끝까지 보는 데 1년 가까이 걸리긴 했지만, 영어가 점점 좋아졌다.
대학에 들어가 말로만 듣던 토익(TOEIC)을 처음 치렀다. 결과는 210점. 한심한 성적이었지만 그보다 못한 이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스피치 콘테스트를 참관하게 됐다. 영어를 너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연사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웠다. ‘분명 저 친구들은 외국에서 오래 살았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한 연사가 “외국에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자신감을 갖고 영어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전공인 경제학은 적성에 잘 맞질 않았기에 영어 하나라도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선 많은 사람이 보는 토익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꺼운 ‘Vocabulary’ 책을 공부하기도 하고, 문법의 모든 사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700쪽이 넘는 두꺼운 문법책을 독파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AFN을 2년 동안 봤더니 귀가 뚫렸다고 하기에 무작정 TV만 보기도 했고, 말 한마디 못하면서 원어민 강사의 회화수업을 듣곤 했다. 그러면서 영어 실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절망감만 더욱 커갔다.
영어가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게 더 큰 장애물이었다. 군 제대 후에도 토익 점수는 제자리걸음이었고, 회화학원은 3단계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절망의 끝에서 시작과 포기를 반복하다 3학년 겨울방학 때 ‘졸업하면 뭘 해먹고 살지?’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1억 연봉 세일즈맨 만들기’라는 책을 보게 됐고, 순간 그 자리에서 ‘10년내 연봉 1억 세일즈맨’이라는 인생목표를 세웠다. 아르바이트로 잠시나마 세일즈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 분야에는 자신이 있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영업을 해야 그 목표를 이루기가 쉽겠다는 생각에 그간 공부하던 토익은 집어치우고 영어회화 공부에 집중하면서 일본어도 같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앎과 깨달음의 차이
하지만 과연 내 머리로 이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잘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일본어는커녕 아직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데다 졸업까지는 1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호주 7개월, 일본 3개월 일정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내 일생일대 최대의 결심이자 도박이었다.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니 부모님이 허락은 해주셨는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만 ‘지방대 나와서 취직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어학연수라도 갔다 오면 처지가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어학연수를 결심하고 나서 ‘왜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같은 실수를 더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인터넷에 나와 있는 영어 고수들의 이야기와 책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학습법은 실천해보고, 효과가 있을 것 같으면 꾸준히 그 학습법대로 공부했다. 그 무렵 ‘신동아’에 처음 소개된 정인석 선생의 발성훈련법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없어졌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