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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길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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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향 제주도에서 ‘길 만드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끊어진 길은 잇고 사라진 길은 찾아내며 1년 넘게 제주도를 누볐다. 7개 코스가 완성될 무렵 펴낸 책이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이다. 제주 올레길 안내책자로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친 사람들은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서귀포에서 보낸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십자매(저자의 절친한 여성 동지들)들의 넘치는 애정과 수다에 정신을 팔다, 이제 본격적인 올레길인가 보다 하면 갑자기 ‘산티아고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간다. 마치 자동차로 가면 10분 거리지만 2시간 넘게 숲길을 걸어가는 이의 ‘미련스러움’을 보는 것 같다. 빙 둘러 가지만 보고 느끼는 것은 풍성하다. 그리고 책 속의 모든 내용은 결국 ‘올레길’로 통한다.

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동안 ‘느릿느릿 걷기’가 신념이 됐다, 그에 따르면, 한 달치 여장을 꾸려 넣은 무거운 배낭으로는 빠르게 걷는 게 애시당초 무리고, 느리게 걷지 않고는 풍경에 집중할 수도, 생각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래서 순례자는 ‘빠름’보다 ‘느림’을 추구한다. 얼마나 빨리 여정을 끝내느냐보다는 이 길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존경이 바쳐진다.

이런 깨달음을 제주도로 옮겨놓으니 어느새 ‘간세다리’ 예찬론자가 된다. ‘간세다리’는 저자의 어릴 적 별명이자, 게으름 피운다는 뜻이다. “간세 부리면서 걸어라!” 이 말쯤은 알아들어야 올레꾼이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을 답사한 김화성 기자(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에 따르면, 지리산 둘레길이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 길이라면 제주 올레길은 엄마와 딸이 도란도란 걷는 길이란다. 누구랑 걸으면 어떻고 혼자 걸으면 어떠랴.

800km를 걷는다고? 네가 미쳤구나



제주 올레길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산티아고 길’에도 한국 여행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요 근래 산티아고 여행에 관한 책도 국내서, 번역서 합쳐서 10여 권이나 출간됐다. 그 길을 걷고 나면 모두 시인이 되고 명상가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여행서의 진수는 독일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은행나무, 2007)이다. 2006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2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유럽에서 야고보 길(국내에는 산티아고 길로 통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예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하여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야고보 길로 알려져 있다) 순례여행의 붐을 일으킨 책이다.유럽인들이 순례 여행을 시작하는 피레네 산맥 부근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생장피드포르의 이름 모를 카페에 앉아 하페는 도대체 자신이 왜 이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되새김질한다. 몇 달째 그의 몸은 휴식을 원했지만 주인은 이를 모른 체했고, 결국 담낭이 터져버렸고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는 인생에 ‘작전타임’을 부를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점으로 달려가 여행 책자 코너에서 첫 번째로 걸려든 책이 ‘기쁨의 야고보 길’이었다. 그는 그 책을 발견하던 순간의 느낌을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초콜릿은 경우에 따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위스키는 사실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늘 그렇지만, 겨우 길 따위가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이 오만불손한 책에 반감을 느끼며 집어 들었다가 그날로 다 읽은 뒤 그는 순례 여행을 결심한다. 한 층도 걸으려 하지 않던 자칭 ‘카우치 포테이토’인 그가 11kg의 배낭을 메고 매일 20~30km씩 한 달 이상 걷는 순례 여행을 하겠다고 나서자, 한 친구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이고, 이젠 네가 아주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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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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