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호

상품광고 닮은 ‘이미지’로 대중을 공략하다

남북 최고통치자들의 ‘사진 정치’

  •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입력2015-05-20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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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연출
    • 전두환이 한복 입고 신년사 한 까닭
    • ‘로열박스’에는 박정희 사진만
    • 김정일 ‘이상적’, 김정은 ‘대중적’ 선호
    상품광고 닮은 ‘이미지’로 대중을 공략하다
    신문 잡지 방송 등 매스미디어가 정보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은 텍스트와 이미지다. 기술의 발전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주도권이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 지 오래다. 대통령 등 최고통치자와 직접적인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공중에게 영상 이미지는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 채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전두환 가족사진의 이면

    사진은 발명 이래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가장 믿을 만한 수단으로 인정받아왔으며, 거짓이나 기만의 의사를 갖지 않은 설득력 있는 매체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미지는 중립적이지 않다. 이미지는 현실의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고 무언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가 어떤 영상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시민의 인식은 장기적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관찰되는 대상 자체가 사진촬영 과정에서 권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를 정부가 장악한 독재국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정치인은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다. 정치인은 기자들이 취재한 것을 어떻게 지면에 실을지에 대해서는 통제할 수 없지만, 기자들이 정치적 이벤트를 촬영할 때 어떤 그림을 포착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 2004년 2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백악관은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오바마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한 장의 사진만 공개했다.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보여주는 기사와 동영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백악관이 직접 촬영한 한 장의 사진만을 보여줌으로써 중국 압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구체적인 논쟁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게다가 정치인과 관료, 언론 사이에는 다소 제도화한 공모 관계가 존재한다. 기자회견에서부터 주요 정책 발표, 집회 같은 ‘의사(擬似) 사건(pseudo-events)’을 계획하는 선거 캠페인의 경우에는 이 같은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촬영과정뿐 아니라 선택의 과정에서도 권력이 작용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왕 사진이 일선 학교에 일괄 전달됐는데 이는 군국주의 사상을 고취하려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 이후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의 대통령과 참모들은 대통령의 사진을 직접 선택해 언론사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관리했다( 전두환의 가족사진 1981년 1월 1일자 신문 1면에 실린 전두환 대통령의 가족사진. 권력기관에서 찍어 언론사에 사진을 제공하는 일제강점기부터의 관행이 이때까지 이어졌다). 북한은 현재까지도 중앙통제적 방식으로 최고통치자의 이미지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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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이미지의 중요성은 수없이 강조돼왔으며 사진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데도( 박근혜 커터 칼 상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눈물 흘리는 장면을 클로즈업한 화면을 광고에 사용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2006년 서울 신촌 유세 커터 칼 피습사건 때 생긴 상처를 클로즈업한 화면을 TV 광고를 통해 보여주며 시청자의 감성에 호소했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드문 편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미지 핸들러(image handlers), 이미지 컨설턴트(image consultants)의 존재와 역할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과 북한에서 이미지 정치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서구의 일부 학자들은 “매스미디어가 특정한 이미지를 고르고, 보여주고, 강조하고 또는 무시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학자 로버트 엔트먼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을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정의했다. 매스미디어의 프레이밍은 독립된 하나의 사건에 대해 언론인이 어떤 해석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 가치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고 또한 특정한 순간에 언론인의 ‘뉴스에 대한 감’에 기초하기에 주관성이 높이 개입되는 작업이다. 언론인들은 피할 수 없이 프레이밍을 하고, 이 과정에서 순수한 의미의 객관성으로부터 멀어지며, 의도하지 않은 편향성을 지니게 된다( 정주영 플래카드 정주영 후보를 부각하기 위한 선거 홍보용 현수막. 이렇듯 사진이 노골적인 편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사진은 객관적이지 않다!

    프레이밍은 이슈나 사건, 그리고 인물에 대한 텍스트적 설명뿐만 아니라 영상 이미지를 생산해 전파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사진의 경우, 사진가들은 이미지 안에 무엇을 포함시킬지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 사진이 지닌 비주얼 프레이밍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북한의 최고지도자 사진이 갖는 특징과 비교할 때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961년 5월부터 2014년까지 53년간 동아일보의 매년 1월치 신문에 게재된 최고통치자의 사진을 분석해보자. 같은 기간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사진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 대통령 사진은 744장, 북한의 김씨 3대 사진은 574장이다.

    한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보도 사진이 어떠한 비주얼 프레이밍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됐는지 살펴보기 위해 사진의 기술적 부분(포맷 프레이밍, format framing)과 사진이 주는 이미지에 대한 부분(캐릭터 이미지 프레이밍, character image framing)으로 나눠 살펴봤다.

    신문에서 사라진 노태우

    기록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미지의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 사진기자가 직접 대통령을 촬영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기자가 대통령에 대해 접근권을 갖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시민이 최고지도자에 대해 접근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에 대한 비주얼 프레이밍의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사진 출처(source, credit)가 있다.

    한국과 북한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라는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으며 통제를 통한 최고통치자의 이미지 관리 방식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특히 남북한 대치 상황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최고통치자의 사진은 중요한 보안 사항으로 분류돼 촬영 제한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에선 공무원들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동정을 독점적으로 촬영해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 민주화 이전 시대의 관행이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1988년 이후부터 제한적이나마 자율적으로 대통령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서울에 본사를 둔 10개의 신문사가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윤번제로 대통령의 제한적 일정을 하루에 1~2개씩 촬영해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2개의 통신사가 별도로 촬영함으로써 평균적인 사진 출처는 3군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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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1967년 김일성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는 시점부터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촬영하는 전담팀이 독점적으로 촬영해 동일한 사진을 각 매체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노동신문에 게재되는 ‘본사정치보도반’이라는 전담팀이 그것인데 이 팀에서 생산하는 기사와 사진은 노동당의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완벽한 통제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2월 16일 김정일 생일 축하 열병식 행사 때 북한은 AP 사진기자를 초청해 김정은의 사진을 직접 촬영해 전 세계로 전송하게 했다. 독점적 이미지 관리 방식의 변화인 듯하지만, 북한 사진기자들과 달리 외신기자들은 연단 아래에서 망원렌즈로만 김정은을 촬영할 수 있다). 남북한 최고통치자 모두 특별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기자단에게만 촬영 기회를 준다.

    그런데 강압과 독점으로 이미지를 관리하던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두환 시대까지 언론이 자발적으로 대통령의 사진을 게재하던 관행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을 지나면서 사라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의 관심 사항이 아닐 만큼 무시됐고 그러한 정서는 신문에서 대통령의 얼굴이 거의 사라진 사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 빠짐없이 신문 지면에 등장하던 대통령 사진이 노태우 대통령 이후부터는 나흘이나 닷새 정도 지난 후에 게재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것은 더 이상 대통령이 사회의 중심이 아니며 그만큼 사회의 제도화와 분권화가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추가 인원 없음’ 사진 비율

    게다가 신문사가 현재의 청와대 사진취재 통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09년 1월 청와대 사진기자단은 청와대가 대통령 사진을 직접 찍어 언론사에 배포하는 관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있고 매체별로 대통령 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각 매체의 편집기자들과 사진기자들이 대통령 사진에 대해 해석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신문 제작 과정에서 다음 날 신문에 들어갈 뉴스는 편집회의를 거쳐 논지와 편집 방향이 정해지지만 대통령 사진의 경우에는 기획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신문에서 대통령 사진의 게재 빈도와 사이즈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1면에 등장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어 기타 면에 게재되거나 지면의 상단이 아닌 하단에 게재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까지 대통령 사진이 1면에 등장하는 비율은 88.3%였지만 노태우 대통령 이후부터는 21.0%이다. 각국 지도자 사진이 신문 지면에서 어느 위치에 실리는지를 살펴보면 권력자의 위상과 언론의 자율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는 신문이 대통령의 사진을 많이 싣도록 직·간접적 압박을 가했고 신문들은 대통령의 사진을 관행적으로 많이 실었다. 신문의 1면 또는 주요 면에 대통령 사진이 들어가는 고정 지면이 있다는 의미로 사진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은 ‘로열박스’라는 자조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 신문과 방송에 최고통치자가 노출되는 빈도는 더욱 높은데,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사진을 월 평균 30장 이상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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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학 개론’ 등 북한의 언론학 교과서는 정치적 중요성이 큰 인물이나 활동 내용은 정치적 비중에 비례해 사진을 게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다보니 김일성 시대(27.07%)와 김일성 시대 이후(30.35%) 모두 사진의 크기가 해당 지면의 3분의 1에 달할 만큼 크다. 이러한 수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데 북한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최고통치자의 존재를 부각하는 관행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전체 기간 동안 대통령을 제외한 등장인물의 숫자가 2~5명인 사진이 30%가 조금 넘으며 가장 많았다. 다만 ‘추가 인원 없음’ 사진의 비율이 전두환 대통령 이전 시절에 무려 25.6%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는데 이것은 이른바 ‘마루 사진’이라고 하는 초상사진이 게재되던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관행이 반영된 결과다. 민주화 이후에는 초상사진이 신문 지면에서 거의 사라지면서 ‘추가 인원 없음’ 사진의 비율은 16.4%로 줄어든다. 민주화 이후 ‘추가 인원 없음’ 사진은 주로 연설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전두환 대통령 이전 시대의 대통령 사진은 소수의 인원 혹은 대통령 단독 사진이 더 많이 게재됐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보다 많은 인원과 함께 찍은 사진의 게재가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 · 단결의 중심,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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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등장인물의 숫자가 6~15명인 사진이 30%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다만 김일성 시대에는 ‘추가 인원 없음’ 사진이 16.9%를 차지했으나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에는 2.6%로 대폭 줄었는데 이것은 김정일, 김정은 시대가 되면서 북한 역시 초상화 게재 빈도가 줄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또는 최고지도자가 혼자 있는 사진보다는 나머지 등장인물이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남북한 사진은 유사하다. 대통령 혼자 있는 사진의 경우 아주 작은 크기로 사용될 뿐 지면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대통령 개인보다는 대통령이 처한 환경이나 맥락을 중시한다는 것이며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와 한국 정치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서양을 저(低)맥락, 동양을 고(高)맥락 사회로 분류했다. 현대의 동양인은 전체 맥락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미국 보도사진과 달리 한국의 대통령 사진에서 등장인물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특징이 반영된 현상으로 보인다.

    15인 이상의 등장인물이 있는 단체사진의 비율이 한국과 북한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담화 2010년 5월 2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6 · 25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배경으로 연설대로 다가가는 대통령의 모습은 기존의 대통령 사진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것은 수백 명의 집체 사진을 많이 게재하는 북한 신문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5장 중 1장꼴로 단체 사진이 게재된다는 것은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수령을 상정한 북한 정치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레벨(level)은 카메라 앵글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평 레벨(eye-level), 하이 레벨(high-level), 로 레벨(low-level)로 크게 나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전(74.4%)과 노태우 대통령 시대 이후(70.5%), 북한의 전체 시대(85.2%)에서 가장 두드러진 레벨은 아이 레벨이다.

    흔히 권위적이거나 독재적 성향을 가진 지도자의 경우 카메라가 피사체보다 아래에 위치하는 로 레벨의 사진을 많이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필자의 분석 결과 선입관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 레벨의 사진이 차지하는 비율은 양국 모두 70% 이상이었으며 로 레벨과 하이 레벨을 비교하더라도 로우 레벨의 비율이 낮았다. 이는 한국과 북한에서 모두 카메라가 최고통치자를 밑에서 위로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이런 사진이 독자에게는 낯설게 보일 수 있다 ( 군중과 대화하는 이명박 대통령(2012년 1월 5일). 카메라가 피사체보다 위에 위치한다고 해서 권력관계만을 반영한 결과라고 보긴 어렵다. 하이 레벨은 객관성이 강한 설명적인 사진이 되는 경향이 있어 상황과 맥락을 설명해야 하는 보도사진에서 자주 선택되는 촬영 방법이다).

    지면에 안 싣는 방법으로 ‘비판’

    사진 속 대통령의 표정을 긍정, 중립, 부정으로 분류해봤다. 긍정적인 표정은 웃거나 자신감 있는 모습, 부정적인 표정은 따분하거나 걱정스러운 표정 또는 피곤한 모습, 중립적인 표정은 심각하거나 무표정한 사진이다. 남북한 사진을 통틀어 표정의 측면에서 볼 때 부정적인 톤의 사진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 긍정 또는 중립의 톤으로 최고지도자가 묘사됐다. 이는 남북한에서 최고지도자 사진은 피사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기능을 할 뿐 적극적인 비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시각적 이미지가 지면에 표출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저널리즘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만약 지도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진 경우라면 언론은 직접적인 해석과 재현을 통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면에 싣지 않는 ‘배제’를 통해 견해를 드러낸다. 노태우 대통령의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언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배제됐음을 뜻한다. 이것은 한국 언론의 역대 대통령 취재기자들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자유로울 때가 한 번도 없었고, 대통령을 비판하고자 할 때는 야당이나 검찰 등을 취재원으로 한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의 경우 중립적인 얼굴 표정의 빈도가 점차 낮아지고 웃거나 자신감을 표출하는 긍정적 얼굴 표정의 사진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최고통치자가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대중적인 모습으로 매스미디어에 등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의 경우에도 중립적인 표정은 약간씩 줄고 긍정적인 표정이 조금씩 늘고 있다.

    ‘대중적 지도자’로 묘사된 김정은

    이미지 컨설턴트의 전략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캐릭터 이미지 프레이밍이라는 변수를 개발해 분석해봤다. 국내 전문가 조사를 통해 척도를 개발한 후 남북한 사진을 이 척도에 따라 분류했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이상적 지도자(71.6%) > 권위적 지도자(15.5%) > 대중적 지도자(11.0%) 순, 북한은 전체적으로 이상적 지도자(57.8%) > 대중적 지도자(30.7%) > 권위적 지도자(11.5%) 순이었다. 양국 모두 패배적 지도자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았다. 이는 매스미디어가 최고통치자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할 뿐 부정적 묘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표 참조).

    한국을 시대별로 나눠 살펴보면 전두환 대통령 시대까지는 이상적 지도자(63.9%) > 권위적 지도자(28.1%) > 대중적 지도자(8.0%) 순이었고 패배자의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 시대에는 이상적 지도자(77.6%) > 대중적 지도자(13.3%) > 권위적 지도자(5.7%) > 패배자(3.3%)의 순서였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권위적 지도자의 모습은 줄고 그 자리를 대중적 지도자의 모습이 보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적 지도자의 모습이 차지하는 비율은 변함없이 압도적으로 높다. 분석 결과 우리 사회에서 최고통치자의 시각적 준거와 시각화의 경향성은 주로 이상적 지도자라는 것이 확인됐다.

    북한에서도 전체적으로 이상적 지도자 이미지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지만 김일성 사후에는 이상적 지도자(52.2%)와 대중적 지도자(37.5%)의 빈도 차이가 15%포인트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는 대중적 지도자 이미지의 빈도(54.6%)가 이상적 지도자 이미지(40.2%)에 비해 14%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 김정은이 인민과 친밀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문, 잡지에 실리는 최고통치자의 사진은 보도사진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도사진과 달리 최고통치자의 사진은 기자들에 의해 소재와 주제, 표현법 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통치자의 사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기업이 자사의 조직을 소비자에게 드러내기 위해 홍보와 광고를 통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관리하고 평판을 형성해나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남북한 최고통치자 사진의 분석 결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 중 하나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이 종종 활용된다는 점이다. 남북한 모두 최고통치자 사진은 대체로 국가의 프레임이고 중앙집권적 프레임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복을 입은 채 신년사를 하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군인 출신이라는 정체성과는 다른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유신 말기와 군사 쿠데타로 특징되는 1977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정치적으로 독재체제에 가까운 기간 동안 오히려 대통령 사진의 게재 빈도가 높았다는 것도 신문에 대한 압박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신문이 김정일 건강이상설 이후 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진을 게재한 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

    ‘해석’보다 ‘기록’

    최고통치자를 포함한 정치인에게 어떤 사진은 유리하고 어떤 사진은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북한 신문에 실린 최고통치자 사진 중에서 사진 자체가 부정적인, 그래서 최고통치자의 이미지 형성에 불리한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최고통치자 사진은 프레이밍 경쟁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고통치자의 비주얼 프레이밍을 긍정과 부정의 틀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이상적-대중적-권위자-패배자의 프레이밍으로 최고통치자 이미지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있다.

    남북한 사진 모두 최고통치자 혼자 등장하기보다는 여러 사람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 이상적이고 엄숙한 모습이 대부분이라는 점 등 정치체제가 다른 한국과 북한의 최고통치자 사진에서 형식적 유사성이 나타난 것은 이미지에 대한 기호는 문화적 배경에 기초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북한 최고통치자 사진이 공히 하이 앵글이나 로 앵글을 통해 피사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눈높이 앵글이라는 객관적 앵글로 기록에 충실하려 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스포트라이트처럼 피사체의 부분만을 조명하는 경우와 극단적인 클로즈업 쇼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도 해석보다는 기록에 충실한 한국식 포토저널리즘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필자 변영욱은 북한 언론이 김일성, 김정일을 찍은 사진을 분석해 2007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008년 ‘김정일.JPG’(한울)를 펴냈다. 2015년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남북한 최고통치자의 보도사진 프레이밍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글은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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