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총회 ‘감동 연설’ 후 페이스북 친구 최대치
- “北 김정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될 수도”
- 유엔 70년 ‘개혁’ 화두… “일본 · 인도 상임이사국 난망”
- “반기문 대망론? 성공적 임기 완료가 우선”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개(anybodies)’가 아닙니다. 남북 이산가족이 수백만 명입니다. 그들(북한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그 분단의 고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겨우 수백 km 떨어진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오 대사는 이어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참상을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설명한 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먼 훗날 오늘 우리가 한 일(안보리의 북한 인권 논의)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은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거론해서 망신 주기’
연설 이후 오 대사에게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800명이던 페이스북 친구가 최대 허용치인 5000명을 채울 정도로 SNS에서 인기 상한가를 쳤고, 북한과 관련한 강연 요청도 쇄도한다. 최근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다는 그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e메일로 인터뷰했다. 먼저 연설 당시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룬 의미부터 물었다.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인권 상황이 나빠서 유엔 총회나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된 국가는 10개국 이내고, 유엔 안보리에까지 상정된 경우는 3개국밖에 없다. 즉,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이 평화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안보리가 결정을 하면 북한의 인권침해 책임자가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있다.”
▼ 유엔 인권이사회는 3월, 북한의 잇단 고위간부 처형을 국제법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북한 정치범 수용소 즉각 해제와 외국인 납치 문제 해결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그 의미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는 지난 10년간 북한 인권 문제를 토의하고 결의안을 채택해왔는데, 강제적인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name and shame(거론해서 망신 주기)’이라는 국제적 압박 효과를 기대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북한이 총회 결의안에 민감하게 반응해 ‘결의안 내용을 완화해주면 북한인권보고관 같은 국제사회의 인권 분야 인사들을 북한에 초청할 수도 있다’고 한 것과 같은 효과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처럼 강제적인 조치도 취할 수 있지만, 거부권을 가진 중국, 러시아 등을 감안할 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어떤가.
“대체로 과거 북한 정권보다 더 불안정하게 보는 것 같다. 북한 내부의 인권 탄압이 더욱 심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적으로 심각한 인권침해는 예외 없이 정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즉, 비민주적인 체제에서 소수의 집단이 독재로 정권을 유지하려면 저항의 목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국민을 탄압하고 공포에 의한 통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제정치는 모든 국민이 서로에게 모르는 사이(strangers)로 남도록 노력한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내가 안보리 연설에서 북한 주민은 남(anybodies)이 아니라고 한 것과 반대 개념이다.”
“남은 위협은 북핵뿐”
▼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망은?
“전문가마다 달리 전망한다. 주민 탄압에 의존해서 유지되는 정권이 결국 붕괴하는 경우가 많지만, 탄압의 정도가 심할수록 빨리 붕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북한이 과거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 최근 미국 중심의 이란 핵협상이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북핵 6자회담 재개에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이란 핵 문제는 북한의 그것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낳게 한 1차 북핵 문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핵물질의 무기화를 막기 위한 협상이다. 이란 핵 문제가 해결되면, 지구상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핵뿐이다. 따라서 해결 압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 바람직한 북핵 문제 해법은?
“제재를 계속하면서 북한의 개방을 도모하는 것 외에 특별한 해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엔 제재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있는데, 제재가 계속되면 반드시 누적된 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세계에선 아무리 폐쇄된 국가도 국제사회와 단절되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란이 핵협상에 응하게 된 데에도 제재의 효과가 컸다. 북한에 대해서도 제재와 대화라는 두 트랙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추가 제재를 할까.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10년 가까이 계속되면서 일종의 공식이 생겼다.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면 그때마다 제재의 수위를 높인다는 것이다. 도발 수위에 따라 추가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 얼마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됐다.
“현재 북한은 핵 문제로 유엔 제재를 받고 있고 인권 문제로 결의안 대상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않고 한반도 상황 및 주변 상황이 악화되지 않아야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어야 반 총장을 초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반 총장의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다른 나라의 유엔 대사들도 반 총장이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 가장 열심히 일하는 총장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반 총장은 조용한 스타일이면서도 각국 정상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 외유내강의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다.”
3월 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2015 세계교육포럼 설명회 및 글로벌시민교육 세미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오준 대사.
“‘潘 대망론’ 도움 안 돼”
▼ 반 총장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는데.
“‘성완종 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성 전 회장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반 총장이 그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다.”
▼ 성 전 회장이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기여했다는 보도도 있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에 대해 가끔씩 회고하는데, 성 전 회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엔 사무총장을 193개 회원국이 번갈아 배출할 경우 산술적으로 193년 만에 한 번 차례가 돌아온다. 그렇게 어려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우리로서는 반 총장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그에게 더 도움 되는 일은 없다고 본다.”
▼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유엔 개혁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는데 유엔 분위기는 어떤가.
“유엔은 2차대전 전후 체제에서 창설됐기 때문에 평화와 안전을 책임지는 안보리에 가장 큰 권한을 부여했고, 승전 5개국에 상임이사국으로서의 특권을 줬다. 70년이 지난 오늘날엔 세계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안보리의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강대국들에 또다시 상임이사국이라는 특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상임증설 반대그룹은 상임진출 희망그룹(일본·독일·인도·브라질)과 대립해 있고, 다른 유엔 회원국들은 그 중간에서 다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미국이 일본과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은 일본과 인도만이 상임이사국이 된다면 별문제가 없다고 보고 이들 국가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5~6개국이 포함돼야 하는데,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패키지’가 합의되기는 어렵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상임증설 반대그룹은 상임이사국을 늘리지 않는 안보리 개혁을 주장하기 때문에 상임증설 자체에 대한 합의도 어려운 상황이다.”
▼ 우리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보다 중국에 동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미관계에 악영향은 없을까.
“우리는 상임이사국을 늘리지 않으면서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난 20여 년간 견지해왔다. 특별히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만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이런 우리의 일관된 태도를 미국이나 일본도 잘 알기에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
“日, 행동으로 해결해야”
▼ 최근 중 · 일 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는 분위기다. 외교전에서 우리가 일본에 밀리는 건 아닌가.
“과거 역사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퇴행적 태도를 비판하는 데에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협력이라든지 한·중·일 3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분야에서는 협력이 계속돼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유엔과 같은 국제 무대에서 유사한 입장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의 관계는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일 · 중 관계가 개선된다고 해서 특별히 우리에게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아베 총리는 유엔 총회 및 미국 의회 연설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평가는 어땠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유엔에서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에 관한 사안으로 다뤄져왔다.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의 보고서나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등의 견해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공식 사과, 피해자 배상 등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지난 20년간 몇 차례에 걸쳐 나왔다. 또 최근 미국 등 10개국의 역사학자 187명이 식민통치와 전시 만행의 과거사 문제를 일본 정부가 말과 행동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건설한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그런 시설에서 강제 노동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산업혁명 시설로만 미화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