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후원’ 권유 급증…“소득공제 기부영수증 발급”
- 서울·수도권 8개 지점, 통신판매원 200~300명 영업
- “월 7억~8억 수익, 지점 60~65% 주고 나머지로 본점 운영”
- ‘S사’ 등 유사 업체 3~4개 생겨… 확산일로
- 업체들 “후원 모금 아니다”, 서울시 “사기·횡령 여부 수사해야”
통신판매회사 H사가 입주한 건물, 원 안은 H사 텔레마케터.
전형적인 통신판매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빠른 말로 쉼 없이 설명을 이어간다.
“후원이다보니까 도와주신 금액만큼 연말에 소득공제 혜택 받아보시라고 기부영수증도 나갑니다.”
‘H사’라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물으니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공인된 기관이에요. 본사가 서울에 있는데 제주도에서 연평도까지 전국에 걸쳐 지자체와 다 연결이 돼 어디든 후원이 가능해요.”
대표이사 7차례나 교체
최근 후원을 권유하는 안내 전화가 크게 늘었다. 인터넷에도 후원 안내 전화를 받고 올린 문의 글이 점점 많아진다. ‘후원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떤 곳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포도송이(ssj8****)
H사 나눔교육이라면서 소외계층 친구들을 우선순위로 교육콘텐츠 등의 사회복지 사업을 하는데 후원해달라고 전화가 왔네요. 혹 이런 업체 아시는 분 있는지 알고 싶어서 글을 올려봐요. 요즘 이런저런 이상한 업체들이 많아서요.
#고베로니(kove****)
핸드폰으로 H사 후원담당 사회복지사라고 전화가 왔는데요. 뭔가 어설픈 듯한 말투가 사회복지사 같은 느낌이 일단 안 들고, 1대 1 연결 후원이라는데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구했냐고 하니까 데이터베이스를 받았다고 하네요. 근데 저는 이런 쪽에 (개인정보를) 준다고동의한 적 없거든요.
H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H사밥차를 운영하고 재능나눔에 기부금 영수증도 발행한다니 언뜻 보기엔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기관이나 단체인 것 같았다. 더욱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예술후원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정부가 공인한 기관처럼 홍보했다. 그런데 홈페이지 하단에는 ‘주식회사 H사’라고 돼 있다. 단체나 기관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의미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사회복지기관이나 단체와는 거리가 먼 주식회사로, 주 사업목적은 통신판매업·전화권유판매업이다. 2009년 설립해 두 차례 사명 변경을 거쳐 지난해 10월 지금의 ‘H사’로 사명을 바꾼 것으로 돼 있다. 그사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대표이사만 7차례 바뀌었다. 이 회사가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무료밥차’ 운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것으로 등록돼 있다.
주식회사도 후원금 모금을 할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장애아동 등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교육콘텐츠를 제공하고, 무료밥차를 운영하는 등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의를 의미 있는 일에 쓰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수익사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H사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본점을 두고, 구로동 일대와 송파구 방이동, 광진구 구의동, 안산시 단원구, 부천시 원미구, 고양시 일산 등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 8개 지점을 뒀다. 많을 때는 10여 개까지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과연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찾아가봤다.
기본급 150만+인센티브 ‘무제한’
첨단 IT업체가 모여 있는 서울 구로구 그 중심에 위치한 A타워에 H사 본점이 있다. 장애인단체와 같은 사무실을 쓴다. H사에서 모집한 후원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준다는 곳이 바로 이 협회다. 협회 홈페이지 하단을 보면 ‘H사 기부금 발급센터’라면서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안내한다.
본점 한 층 아래에 H사 지점 한 곳이 있다. 잠시 지켜보니 젊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가끔 젊은 남성들도 보였다. 2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통신판매원으로 근무 중인 듯했다. 전화 부스처럼 칸막이로 나뉜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하는 게 이들의 주 업무였다. 물론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아이들에게 교육 후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바로 옆 건물 9층, 그리고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K밸리 8층에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두 지점 모두 통신판매원으로 가득했다. 1개 지점에 20~30명이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구로구에 위치한 3개 지점에만 최소 60명에서 많게는 100명 가까운 통신판매원이 ‘후원 모금’을 내세워 전화 영업을 하는 셈이다. 다른 지점의 통신판매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 200~3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인력을 더 늘리기 위해서인지 지금도 여러 지점에서 상시적으로 통신판매원을 모집 중이다. 전문 인력업체를 통해서 뽑는 경우도 있고, 지점에서 직접 뽑기도 한다. 채용 정보에 따르면 주5일 근무에 월평균 수입은 150만~180만 원. 추가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돼 있다. 실제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소외계층 아이들이 교육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 안내 전화를 합니다.”
▼ 텔레마케팅 같은 거죠?
“네, 쉽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 급여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근속 개월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기본급은 평균 150만 원 정도고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에 차이가 있습니다.”
▼ 실적이라고 하면….
“후원 유치죠.”
▼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요.
“제한 없어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달라지니까요.”
“이건 해서는 안 될 일”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사업을 하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취재원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지점을 직접 운영해봤다는 B씨는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놨다.
“지금 한 달에 7억~8억 원씩 번다는데, 이 사업이 통신판매업계에서는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어요. 본점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60~65%를 지점에 수당으로 떼주고, 본점은 나머지 35~40%로 직원 월급 주고 사무실 운영하는 거죠. 기부금 영수증에 대해서는 (장애인단체에) 3% 정도 수수료를 준다고 들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인가요.
“과거 텔레마케팅(통신판매업) 조직이에요. (H사를 포함해) 이미 3개 조직이 운영되고, 또 다른 조직이 새로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돈이 되니 점점 늘어나는 거죠.”
▼ 조직들이 서로 다 연결돼 있습니까.
“안양 쪽에서 H사 지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S사’라고 별도 법인을 차렸죠. S사 본점 영업을 따로 하면서 아직까지 H사 지점으로도 남아 있어요. H사 본점으로 자금이체 되는 후원금에 대해 수당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거죠.”
▼ H사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됩니까.
“실질적으로 들어와서 교육받는 아이들은 거의 없어요. 후원금 받아서 지점 수당 내려가고 사이트 운영 비용 들어가고…. 제가 (지점)할 때는 노량진 학원 등에서 동영상 강의 같은 것을 월 임대해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했거든요. (프로그램이) 형편없었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대화가 끝날 무렵, B씨는 “직접 해보니까 이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털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H사와 비슷한 조직이 3~4개로 늘어났다면 그만큼 통신판매원 수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B씨의 말은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지난해 6월 안양에서 안산 단원구로 사무실을 옮긴 H사 안양지점을 찾아가봤다. 지점 사무실 주소지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바로 맞은편 골목길에 위치한 조그마한 건물. 외부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엘리베이터 입구 오른쪽에 S사와 또 다른 장애인단체 상호가 위 아래로 나란히 적힌 간판 하나가 붙었을 뿐이다. 그 어디에도 H사라는 표시는 찾을 수 없다.
‘찢겨진 공문’ 한 통
건물 3층에 올라가보니 여성 통신판매원 20여 명이 쉴 새 없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 소리가 출입문 틈을 타고 복도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안내 전화의 내용도 H사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S사의 영업 조직이라고 했다. B씨의 주장대로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회사가 만들어진 것은 2013년 7월. 본점 주소지는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에서 지난해 6월 시흥시 정왕동으로 이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실제 본점 사무실은 안양시에 그대로 둔 채 주소만 시흥시로 옮겨놓은 상태였다. 시흥시 본점 사무실은 문이 굳게 닫힌 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된 듯했다.
건물 관리인은 “(S사) 우편물은 다 이쪽 사무실로 오는데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사무실이 비어 있은지 꽤 오래됐는데, 가끔 누군가가 와서 사무실 앞에 쌓인 우편물만 처리하고 간다”고 전했다.
사무실 옆 비상구 계단 쪽에는 이 업체 앞으로 온 각종 우편물과 반송된 안내우편물 더미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사이에 절반으로 찢겨진 공문 한 통이 눈에 띄었다. 시흥시가 4월 통신판매업자 등 관내 특수거래업자 75개 업체를 대상으로 ‘의무규정 및 금지규정 준수여부’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한다고 보낸 것이었다. 통신판매업체인 S사도 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고 아무도 없으니 점검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혹시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피하기 위해 본점 주소지만 변경해놓은 건 아닐까. S사 측은 이에 대해 “안양에서는 평생교육원을 허가받기 어려워 시흥으로 주소를 옮긴 것”이라면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주소지를 바꿔놓겠다”고 말했다.
H사와 장애인단체가 함께 사용 중인 서울 구로구 사무실(왼쪽)과 시흥시로 본점 주소지만 옮겨 놓은 S사 사무실 앞에 쌓인 반송물, 찢겨져 버려진 공문(오른쪽 위).
H사와 S사의 영업 방식은 유사하다. 나눔교육을 내세워 후원을 받고, 그 대신 ‘나눔카드’ 및 소식지와 함께 장애인단체 명의로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현행법상 가능한 일일까.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식회사도 기부금품(금전이나 물품) 모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1000만 원 이상 모집할 경우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10억 원 이상일 경우에는 행정자치부에 등록해야 한다. 모금액과 집행 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에는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서 행자부나 지자체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특히 기부금품 모집에 필요한 관리 및 운영 등에 사용한 비용은 전체 모금액의 15%를 초과할 수 없다.
현재 H사는 매월 최소 1만 원에서 6만 원 정도까지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다. 기간은 후원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 최소 6개월 이상 후원하도록 권유받는다고 한다. 업체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후원회원 수는 5월 13일 현재 8만7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매월 1만 원씩만 후원한다고 해도 월 8억7000만 원, 연간 1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후발 업체인 S사의 후원모금 액수는 확인되지 않지만 최소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대일 가능성이 높다.
H사와 S사라는 회사가 관련 법률에 따라 정식으로 등록하고 그 기준에 맞춰 기부금품을 투명하게 모금하고 관리했다면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랬을지는 의문스럽다. 서울시와 시흥시 등 해당 지자체와 행자부에 확인한 결과, 두 업체는 아무 곳에도 등록돼 있지 않다. 법적으로 문제 될 소지가 큰 것이다.
그러나 H사 측은 “후원 모금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콘텐츠를 ‘후원 형식을 빌려서’ 팔았다”는 것이다(상자기사 참조). S사 측은 “후원자들에게 판매계약서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기부금품 모집에 관한 법률에는 ‘기부금품의 모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서신, 광고, 그 밖의 방법으로 기부금품의 출연을 타인에게 의뢰·권유 또는 요구하는 행위’. H사나 S사 측의 주장대로 후원금을 모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교육콘텐츠를 판매했다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H사 지점에서 독립한 S사 지점이 입주한 건물(왼쪽)과 영업 중인 통신판매원들.
“전화 권유는 100% 모금행위”
하지만 과연 그럴까. 관할 관청인 서울시와 행정자치부의 판단은 다르다. 서울시 담당자는 “전화를 해서 권유하는 것은 100% 모금행위”라며 “지자체나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모금을 했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금품 모집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보다, 통신판매업체라면 물건을 판 수수료나 세금을 떼서 자신들 수익으로 잡았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기나 횡령 여부에 대한 경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모집행위 여부도 중요하지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준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다”면서 “장애인단체가 금품이든 물품이든 실제 기부를 받지 않고 영수증을 끊어줬다면 조세포탈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단체 측은 이에 대해 “개인이 물품으로 후원하는 것에 대해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항변한다.
문제는 후원 물품(H사의 교육콘텐츠)을 기부받은 주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H사가 후원을 명목으로 판매한 교육콘텐츠를 지자체나 지역아동센터에서 소개받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곳도 다름 아닌 H사인 것이다. 더욱이 H사와 장애인단체는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다. S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H사가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장애인단체 측에 3% 정도의 수수료를 제공한다는 B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양측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H사 측은 “다만 1년에 1억 원 정도 장애인 문화예술 사업에 후원하는 게 있다”면서 “이 때문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예술후원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조직 역량과 문화예술 후원 운용체계, 후원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기준 점수를 넘어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선정 당시에는 회사의 운영 상태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했다”면서 “회사 운영이 투명하지 못하거나 불법적인 영업행위가 확인되면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 사각지대?
H사와 S사 등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는 통신판매업체들은 사실상 ‘후원’을 명목으로 자신들의 교육콘텐츠를 판매한다. 정상적인 기부금품 모집이 아니기 때문에 기부금품 모집 관련법의 규제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다. 행자부와 지자체의 기부금 모집 및 관리 담당자들은 “이런 유형의 통신판매영업 행위는 처음 접했다”고 말한다.
한 법률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후원’이라는 공익적인 명분을 내세워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에 대한 적용 법규가 없는 것 같다”면서 “기부금품 관련법을 보완하거나 별도 법을 만들어서 수익의 일정 기준 이상을 공익적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등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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