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견 내용 보도 안 되자 폭로막은 참모 질책”
- “경향신문 사장에게 전화해 폭로 인터뷰 추진”
- “참모는 ‘재판 때 명단 공개’ 권유…메모 진실일 것”
- “반기문 장관 시절부터 潘 형제 관리”
자살 하루 전인 4월 8일 기자회견을 하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이런 ‘납량특집 비유’를 상상하면서,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 인사 A씨를 기다렸다. 며칠 전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 설득한 끝에 그를 이 자리에 불러낼 수 있었다. 수년 전 기자와 취재원으로 스치듯 만난 인연도 어느 정도 작용한 듯하다.
“인맥 관리에 돈 많이 써”
약속시각보다 20분쯤 지나 A씨가 왔다. 그는 성 전 회장과 15년 이상 친교를 맺으며 대소사(大小事)를 도왔다고 한다. 특히 그는 성 전 회장 자살 당일과 전날의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성완종 메모’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증언으로 들렸다. 다음은 A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성 전 회장에겐 두 차례 인생의 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2000년 충청포럼 창립과 2003년 경남기업 인수가 그겁니다. 전자는 성완종을 충청 출신 정·관·재·학·언론계 인맥의 구심점으로, 후자는 그를 연매출 2조 원대 대기업의 오너로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먼저 충청포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2000년 누군가 ‘자민련을 뛰어넘는 충청권의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보자’고 성 전 회장에게 건의해 발족했죠.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발기인과 이사 4~5명이 있었고 운영위원도 30명 정도 됐죠. 회원은 500~550명. 이 모임을 통해 충청 출신 사회지도층은 서로 다 통하게…. 예를 들어 언론계의 경우 유력 신문·방송사의 부장, 부국장, 국장급이 주로 참여했어요. 당시 부여 출신 황우석 서울대 교수도 어디서 들었는지 연락해 왔어요. ‘저도 끼워주면 영광이겠다’라면서요. ‘운영위원 하실래요?’ 물으니 ‘그러면 더 좋고요’라고 해 운영위원이 됐어요. 처음엔 무정파·무당파를 지향해 정치인을 되도록 배제했죠. 그러나 몇 년 지나니 정치인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이때부터 좀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괜찮으실 거다…”
▼ ‘포럼’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유명인사를 초빙해 강연 듣고 토론도 했죠.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지만 스케일은 컸어요. 4강 대사 모두 초빙했고 장관들도 불렀고….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강연할 땐 여러 언론이 보도했죠. 성 전 회장이 아주 만족해했어요. 회원들끼리 1년에 5번 정도 만났나?”
▼ 비용은 어떻게….
“롯데호텔 같은 특급호텔에서 주로 행사하고 식사했는데 경비가 꽤 들었을 거예요. 성 전 회장이 거의 다 부담했어요. 그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라 학연(學緣)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지연(地緣)을 쌓는 데 엄청 공을 들인 거죠.”
성 전 회장은 충청 지연을 바탕으로 정치권으로도 인맥을 넓혔다. 이러한 인맥은 그가 국회의원으로, 대기업 회장으로 승승장구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올 들어 검찰의 자원비리 수사로 자신은 구속되고 기업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철석같이 믿던 현 정권 인맥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적어도 그가 느끼기로는.
그는 배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4월 9일 서울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부근에서 목을 매 자살하기 전 메모와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돈을 줬다는 여권 실세들의 이름과 금액을 남겼다. 자살 당일과 전날 상황에 대해 A씨에게 물어봤다.
▼ 4월 9일 언제쯤 성 전 회장 소식을 접했습니까.
“제 집이 북한산 기슭 평창동에 있어요. 오전에 TV를 틀었는데 성 전 회장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유서를 쓰고 집에서 나갔다고. 깜짝 놀랐죠. 그의 보좌진에게 전화해 ‘지금 어디 있냐’고 했더니 ‘국민대 옆 주차장’이라고 해요. 내가 ‘당신이 포인트를 제대로 잡았다. 나도 거기가 의심된다’고 했어요. 그 주차장은 북한산 등산로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어요. 성 전 회장이 그 등산로 코스를 좋아했어요. 그는 평소 주중 하루 정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혼자 등산을 하곤 했죠. 자비를 들여 주차장 포장공사도 해줘서 주변에선 성 전 회장에게 고마워하죠. 바로 집에서 나와 그 주차장 쪽으로 갔죠.”
9일 오전 성 전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자 그의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 서울 평창동 부근에서 신호가 특정돼 수색에 나섰다.
▼ 국민대 옆 주차장 부근에서 누구를 만났나요.
“경남기업의 박준호 전 상무와 이용기 팀장(※비서실장인데 A씨는 ‘팀장’으로 지칭), 그리고 성 전 회장 아들이요. 오전 11시 30분쯤 됐을 거예요. 선 채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까지 식사를 못했다고 해요. 제가 칼국숫집으로 데려갔어요. 이 팀장은 칼국수 그릇을 거의 다 비우던데 아들은 국물 한 모금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전혀 못 먹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겐 ‘많이 드세요’라고 해요. ‘아버지 별일 없을 거다. 괜찮으실 거다’라고 위로했어요.
그러나 저는 속으로, 유서를 남긴 것으로 봐선 돌아가셨을 것으로 판단했어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분이고, 정확하고 치밀한 분이고, 치열하게 세상을 사신 분이라서…. 아마 검찰 쪽인 것 같던데, 이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오더라고요. 오후 2시 정도까지 함께 있는 동안 보좌진으로부터 전날 상황을 들을 수 있었어요. 칼국숫집에선 아니고, 서서 이야기하면서 들었어요.”
▼ 뭐라고 말하던가요.
“제게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회장님이 기자회견장에서 회장님 돈 받으신 분들을 거명하겠다고 하셔서 저희가 말렸다’는 거예요.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날 기자회견 때 터뜨리려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좌진이 ‘여권 실세를 건드리면 회사가 무사하지 못한다. 정 거명하시려면 재판 때 하시라’고 거의 결사적으로 막았다는 거예요. 성 전 회장은 홍보(팀) 쪽에서 써준 기자회견문을 보고 회견을 했어요. 돈 준 내용은 회견문엔 없었고 본인이 직접 말하려 했는데 보좌진의 만류로 접었다는 거죠.”
“명단 공개 말렸다”
성 전 회장은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40여 분 동안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MB 정부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일 수 있겠습니까?”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200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허태열 의원(박근혜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의 소개로 박근혜 후보를 만나 뵙게 됐습니다. 이후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동아일보’ 기자는 허태열 부분이 돈 이야기를 암시한다고 직감했다. 이 기자는 회견을 마친 뒤 성 전 회장에게 “경선자금 이야기인가?”라고 물었다. 성 전 회장은 “추후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한 뒤 입을 닫았다.
성 전 회장 측은 이 기자에게 “허태열 부분이 너무 민감해 이 부분을 빼자고 회장 비서실에 말했더니 ‘절대 못 뺀다’는 답이 왔다. 회장의 확고한 뜻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원래 이 기자회견장에서 리스트 내용 전반을 폭로하려 했지만 측근이 강력하게 만류하자 허태열 부분 정도로 수위를 크게 낮춰 말한 것으로 짐작된다.
성 전 회장은 이날 오후 8시 30분경 서울 모처에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만나 냉면을 먹으며 “세상이 야박하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고는 서울 모 호텔에서 박 전 상무, 이 비서실장과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 내용이 공개된 적은 없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이 자리에서 성 전 회장은 참석자를 속된 말로 ‘박살 냈다’고 한다. 자살 당일 북한산 주차장 부근에서 내가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했다.
“속된 말로 박살 냈다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성 전 회장이 참석자를 강하게 질책했다고 해요. 이날 저녁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이 거의 보도되지 않거나 간략하게 보도됐다고 해요. 성 전 회장이 방송사 이름을 일일이 대며 어떻게 보도됐는지 거론하더래요. ‘내일 조간신문이 어떻게 쓸지 모르겠지만, 너희 말대로 했더니 기사가 안 나오지 않느냐, 돈 준 거 폭로 안 하니 언론에서 안 실어주지 않느냐, 왜 못하게 했느냐’라고 나무랐다는 거죠.”
▼ 보좌진이 “재판 때 하시라”며 말린 것 때문에 질책을 받았다면,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에 대한 정보를 성 전 회장과 공유했다는 건가요.
“그랬겠죠. 누구에게 얼마 줬는지 다 알고 있겠지. 장부 갖다놓고 돈 받은 사람별로 일일이 더하기 작업까지 했는지는 모르지만.”
▼ 그런 정황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 내용의 신뢰성을 높인다고 봅니까.
“저는 그렇게 보죠.”
박 전 상무와 이 비서실장은 자료 파기 등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검찰조사에서 거의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성 전 회장의 정치권 로비와 관련한 내용을 아는 듯하다. 이어지는 A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1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5월 8일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 사장에게 전화한 것으로 들었어요. 이것이 계기가 돼 이후 이 신문과의 인터뷰가 성사된 것으로 압니다.(※이 내용은 A씨가 성 전 회장의 측근들로부터 들은 내용이 아니라 충청 출신의 언론계 고위 인사들로부터 들은 내용이라고 한다). 경향신문 사장이 충청포럼엔 안 나왔지만 충청 출신이고 성 전 회장과 아는 사이죠. 성 전 회장이 중앙일간지 사주나 CEO 중에 동향 출신으로 아는 사람은 경향 사장이 유일해요. 한겨레 쪽엔 충청포럼 출신이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그리 없고. 성 전 회장으로선, 신문사 사주나 CEO급에게 이야기를 해놔야 자기 인터뷰 기사가 위에서 ‘커트’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겠죠. 또 경향 정도면 박근혜 정부와 대립적이니,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 자신의 말이 기사화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겠지만, 말한 대로 실어줄 것이라고 믿었겠죠.”
성 전 회장과 이 부장 간 인터뷰 녹취록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이 보도는 하시더라도 보안을 지켜서 사장님하고 상의하셔서 오늘 하지 말고 내일자로 해주시든지 그렇게 해주시고요”라면서 경향신문 사장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경향신문 편집국의 한 간부는 “성 전 회장이 우리 신문사 사장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사장이 이번 특종 인터뷰를 주선한 것으로 들었다. 2012년 현 사장이 연임될 때 이모 부장(당시 정치부장)이 사장 공모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보직사퇴 의사를 사내 게시판에 밝힌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이 껄끄러운 관계인 줄 알았는데, 사장이 그런 이 부장을 성 전 회장에게 연결해줬다’는 이야기가 사내에서 돌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이러한 인터뷰 경위가 사실인지에 대한 문자메시지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A씨와 대화하다 문득 ‘성 전 회장이 원래 결심대로 기자회견장에서 리스트를 폭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아마 그는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성 전 회장의 메모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름과 금액을, 어떤 사람은 이름만 적어놓았는데요.
“그 메모를 자살 후 검찰에 제공할 용도로 작성했다면 훨씬 체계적으로 썼겠죠. 그보다는 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내용, 꼭 말해야 할 내용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쓴 것 같아요. 측근에게 ‘더해봐라’ 해서 나온 수치 같은 건 잊어버릴 수 있으니 적은 것 같고, 기억할 수 있거나 소액인 경우는 안 적은 것 같고.”
“무상급식 폐지, 정말 싫어하죠”
▼ 메모 내용이 진실하다고 봅니까.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믿어요.”
▼ 메모에 비(菲)친박계로는 유일하게 홍준표 경남지사가 포함돼 있는데요.
“무상급식 폐지 건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요. 뉴스에 자주 나온, 아이들 무상급식 폐지, 이런 거 성 전 회장이 정말 싫어하죠. 성 전 회장은 특히 어린 학생들을 위해 바르게 산 부분이 많아요. 그의 어머니가 하숙 칠 때 하숙생들에게 반찬도 정성껏 해주고 하숙비도 조금 받고 안 주면 안 받고 그랬대요. 성 전 회장 역시 나이 마흔에 서산장학재단을 만들어요. 지금까지 2만 명 이상의 학생에게 175억 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줬어요. 제가 한번은 ‘소수의 학생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자 ‘내가 배고프게 자라서 잘 아는데, 없는 애들한테는 100만~200만 원이라도 정말 큰돈’이라고 하더라고요.”
성완종 게이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한테도 불똥이 튀었다. 성 전 회장은 경향 인터뷰에서 “(이완구 총리가) 회장님을 견제할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반기문을 거기다 의식해가지고 계속 그렇게 나왔잖아요. 내가 반기문을 대통령 만들어야 되겠다고 한 게 아니라, 지난번에도 얼마나 떠들었습니까. 그거 가지고. 내가 반기문하고 가까운 건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 있는 것도 사실이고, 우리 (충청)포럼 창립 멤버인 것도 사실이고. 그런 요인이 제일 큰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완구 전 총리는 “성 전 회장의 오해”라고 반박했다. A씨에게 반 총장과 성 전 회장의 관계에 대해 물어봤다.
▼ 반기문 총장이 충청포럼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나요.
“반 총장이 충청포럼 운영위원이었다는 건 잘못 알려진 내용이고요. 그가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2004년 1월~2006년 11월) 두 번 정도 참석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번은 강연자로 왔고, 한 번은 국회 고위직에 오른 정치인을 축하하는 자리에 왔어요.”
“일정 빡빡한데 시간 비워”
▼ 반 총장은 누구 소개로 모임에 온 것인지….
“성 전 회장과 친하니까. 또 모임 멤버들 면면이 자기 공직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겠죠.”
A씨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69) 전 경남기업 상임고문도 충청포럼 모임에 데려왔다고 한다. A씨는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누군가 했는데 알고 보니 반기상 씨였다”고 말했다. 반기상 씨는 최근까지 경남기업 상임고문으로 7년 가까이 재임했다. 성 전 회장의 또 다른 지인 B씨는 “성 전 회장이 대권 포석으로 반 총장 동생을 데리고 있었다. 반 총장 동생을 볼모로 삼아 마치 ‘내 손 안에 반기문이 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여권에 비쳤다”고 말했다(‘신동아’ 2015년 5월호 89쪽 참조).
JTBC에 따르면 성 전 회장과 반 총장 측은 금전거래로도 얽혔다. 경남기업은 자사 소유 초고층빌딩인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의 매각 주관사로 콜리어스 인터내셔널 뉴욕지점을 선정하면서 6억 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는데 콜리어스 내 해당 업무 전담자가 반 총장의 조카이자 반기상 씨의 아들인 반주현(37) 씨라고 한다. 그런데 반주현 씨가 경남기업에 전달했다는 카타르 투자청의 랜드마크 72 매입 의향 공문이 위조 문서라는 게 JTBC 측 취재 내용이다.
반 총장이 2006년 12월 유엔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도 반 총장과 성 전 회장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한국에 올 때면 성 전 회장을 만났고 성 전 회장은 그 자리에 다수의 충청포럼 멤버를 대동해 세(勢)를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A씨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동석할 분들 딱딱 찍어”
▼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뒤 반 총장과 성 전 회장이 만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두 분이 신라호텔 같은 특급호텔에서 만나는 자리에 3번 동석한 적 있어요. 반 총장이 워낙 유명한 분이라 한국을 방문할 때 일정이 빡빡한 것으로 아는데, 꼭 성 전 회장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는 것으로 압니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것 같아요.”
▼ 이와 관련해 충청포럼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 그건, 반 총장이 충청포럼 모임에 참석하는 건 아니고요. 성 전 회장이 반 총장을 개인적으로 만나러 갈 때 충청포럼 운영위원들 중에서 반 총장과의 자리에 동석할 분들을 딱딱 찍어요. 그분들을 대동해 반 총장을 만나는 거죠.”
▼ 지난해 11월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반기문 총장의 측근들이 찾아와 반 총장의 야권 대선 후보 출마 문제를 타진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그 측근이 성 전 회장으로 알려졌죠.
“권 상임고문이 말한 측근이 성 전 회장인가 궁금했어요. 성 전 회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 물어봤죠. 그런데 성 전 회장은 신중한 사람이어서 먼저 줄 서고 그러지 않아요. 이번 경향 인터뷰에서도 ‘제가 먼저 줬겠습니까?’라고 말하잖아요. 건성으로 한 말을 확대해 전한 건 아닌지….”
A씨는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성 전 회장에게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반기문 대망론’이 성완종 몰락을 격발한 방아쇠였다는 얘기였다. 일부 인사들은 반 총장이 ‘공인 중의 공인’ 신분에 걸맞게 친인척과 주변을 잘 단속해온 것인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