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주주운동 목표는 ‘정상화된 사회’
- 朴정부 경제민주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 초이노믹스, 기대했지만 실패했다
- 내가 원하는 미래사회는 신상필벌 사회
김호기 저는 79학번인데 김 교수는 81학번이지요.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김상조 지금 내 모습을 아는 많은 분은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모범생이었어요. 대학교수가 될 때까지도 그랬어요. 농성도 교수가 되고 나서야 처음 해봤고요. 사회과학 가운데 경제학을 막연히 동경했는데, 그게 경제학과를 선택한 배경이에요.
케인스 경제학 공부한 이유
김호기 사회과학에서 경제학이 가장 건조한 학문 같아요. 경제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김상조 후회한 적은 없어요. 다른 사회과학도들은 경제학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것에 주력하는 천박한 학문이라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경제학이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파악하는 것을 훈련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편익과 비용, 수요와 공급이 그런 거지요. 절대적인 선과 악을 구분하기보다는 사물에 공존하는 양면을 보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이끌어내는 게 경제학이라고 생각해요. ‘경제학은 세상을 좋게 할 순 없지만 나빠지지 않게 할 순 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김호기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동기는 누가 있나요.
김상조 동기 중에 세속적인 면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적은 편이에요. 오히려 82학번 후배 가운데 유명한 친구가 많아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등이 있어요.
김호기 김 교수는 정운찬 전 총리의 제자로 널리 알려졌지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김상조 대학원에 입학해 고(故) 임원택 교수의 조교를 했어요. 교수님이 학교를 잘 나오시지 않아 그 방이 당시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의 휴게실이 됐어요. 정운찬 교수가 대학원생들을 찾아 그 방에 더러 오셨는데, 그때 알게 됐어요. 석사 1학기 때부터 정 교수께서 지도교수가 돼줬어요.
김호기 김 교수나 제가 학부와 대학원을 다닌 1980년대는 ‘열정의 시대’이자 ‘사회과학의 시대’였어요.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조순·정운찬 교수로 대표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과 김수행 교수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진보적 경제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 것으로 기억합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김상조 김수행 교수 아래에는 마르크스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는 각 분야에서 현실을 좀 더 치열하게 연구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어요. 저는 정치경제학적 문제의식을 갖고 화폐와 금융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현대 자본주의는 화폐자본주의라는 이해 아래에서 화폐 및 금융을 연구해온 셈이지요. 물론 정운찬 교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 부분도 있었고요.
소액주주운동은 중요한 혁신
김호기 김 교수 하면 소액주주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액주주운동은 진보적 시민운동이 일군 주요한 성과의 하나로 꼽혀왔어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김상조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경제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것이 1996년이에요. 저는 출범 때부터 함께한 것은 아니고, 1999년부터 합류했어요.
김호기 어떤 계기로 참여했습니까.
김상조 1994년에 비교적 일찍이 대학교수가 됐어요. 1995년 6월 선배 교수들의 권유로 민교협(민주화추진교수협의회) 총무국장이 됐어요. 당시 민교협을 이끌던 이들은 김상곤 한신대 교수(전 경기도 교육감)와 곽노현 방통대 교수(전 서울시 교육감)였는데, 민교협 실무를 맡으면서 우리 사회 진보적 지식인들을 만나게 됐고, 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어요.
이런 과정에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났어요. IMF(국제통화기금)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거시경제나 화폐경제를 전공한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1998년 제2기 노사정위원회 경제개혁소위의 공익책임전문위원을 맡아 일하기도 했어요. 각 경제 주체 대표들이 모여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의사결정에 도달하는지를 알게 된 소중한 경험입니다.
이때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다뤘는데, 김기원 방통대 교수와 민주노총·한국노총을 찾아가 지배구조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어요. 또 당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참여연대를 찾아가 이야기했는데, 이게 인연이 돼 참여연대 재벌감시단장을 맡게 됐고, 이어 경제민주화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후 1년간 영국에 안식년을 다녀온 다음 장하성 교수에 이어 책임자를 맡게 됐어요. 2006년 참여연대에서 독립해 현재는 경제개혁연대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15년째 같은 시민단체의 책임자를 맡고 있으니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장수이지 않을까 싶어요.
김상조 교수는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개인적으로 한국 시민운동에서 최고의 방법론적 혁신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두 가지 유형이었어요. 하나는 지식인들의 외침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조 같은 다수 대중의 외침이었어요. 이와 달리 소액주주운동은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상법이라는 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운동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법관들조차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어요. 더군다나 그 성과를 다수 소액주주의 참여를 통해 이끌어냈다는 데 주목해야 해요. 참여에 의해 성과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를 축적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중요한 혁신이었다고 감히 자평하고 싶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소액주주운동을 방법이 아니라 목적으로 이해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에요.
김호기 자본주의를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와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나눠볼 때,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은 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해왔습니다. 소액주주운동이 주주 자본주의를 공고화한 것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었어요.
김상조 주주를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됐지요. 그런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한 그 누구도 한국 사회를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처럼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소액주주운동은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 식으로 말하면 ‘일반민주주의’를 추구한 개혁운동으로 볼 수 있어요. 그것이 추구한 것은 ‘정상화된 사회’였어요. 소액주주운동이 얼마만큼 진보적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어요. 우리 사회에서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어느 부분까지 같이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담겼습니다.
김호기 현재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새로운 산업도, 새로운 시장도 없는 일종의 이중고에 직면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뉴 노멀 시대, 낡은 전략
김상조 한국 경제의 문제는 두 가지라고 봐요. 하나가 ‘환경’이라면 다른 하나는 ‘주체’예요. ‘새로운 산업도, 새로운 시장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환경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한국 경제는 10년마다 한 번씩 위기에 처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성장산업과 새로운 해외시장 발견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씩 점프해왔어요. 2008년 이후의 위기는 한국만의 위기도 아니고 아시아의 지역적 위기만도 아닌 글로벌 위기예요. 저성장의 불확실성 시대, 다시 말해 ‘뉴 노멀’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한국 경제 미래의 먹을거리 산업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물론 ICT(정보통신기술)나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 콘텐츠 산업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이 과거와 같은 성장의 엔진 구실을 할지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돼요. 새로운 성장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정직한 자화상이지요. 과거의 미국 시장, 중국 시장처럼 우리 제품을 받아줄 거대한 시장도 새로 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요. 불확실성이 자욱한 시대를 사는 셈이지요. 세계는 최근 G2의 시대로 넘어가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 문제처럼 새로운 G2 시대에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가중된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호기 주체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나요.
김상조 주체의 측면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전략을 지적할 수 있어요. 최근 ‘87년의 질곡’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보수든 진보든 각 진영이 구사하는 전략을 보면, 4반세기 전인 198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 불린 ‘87년 전략’을 지금도 그대로 구사해요. 보수는 재벌기업의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진보는 국가를 통해 경제 권력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는 방식을 고수해요. 보수와 진보의 기본적인 전략이 고착화한 상태로 4반세기를 살아왔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선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교착 상태이지요.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하는데, 둘 다 자백하는 게 가장 나쁜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셈이지요. 나만 변화하고 상대방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나만 뒤집어쓰는 경험이 그동안 너무 많았기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과거의 낡은 전략을 계속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환경은 새로운 산업도, 새로운 시장도 보이지 않는 뉴 노멀의 시대예요. 그런데 주체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낡은 전략을 계속 고수하는 상황이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더욱 강화한다고 봅니다.
일탈하는 사람 벌 줘야
김호기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했고, 이와 관련된 재벌개혁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어요. 하지만 최근 그 관심이 다소 시들해진 것처럼 보여요. 우리에게 경제민주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상조 경제민주화 열풍이 2012년 한국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군 것은 분명해요.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한테 속았다고, 특히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는 실패했다고 평가하는데, 저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보고 싶어요. 새로운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엄정하게 집행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라고 볼 수 있어요.
김호기 그런데 왜 ‘절반의 성공’이라는 겁니까.
김상조 경제민주화운동을 하다보니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자주 만나게 돼요. 경제개혁연대의 공식적인 보도자료에 내지 않는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마다 기업에 있는 사람들도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물론 기업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 그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행동을 취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2012년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는 것이지요. 작은 움직임이긴 하지만 삼성이 백혈병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사례의 하나예요.
이런 변화들은 재벌기업들이 세상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는, 새로운 모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벌기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겠지요.
김호기 김 교수가 보는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무엇인지요.
김상조 출발에서의 기회균등, 과정에서의 공정경쟁, 결과에서의 공평분배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기회균등, 공정경쟁, 공평분배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세 가지 상호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그것으로부터 일탈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게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경제민주화의 미니멈이에요. 그 미니멈을 만드는 게 뉴 노멀 시대의 경제민주화라고 생각합니다.
재벌개혁이 가장 쉽다
김호기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 우리 국민은 가장 먼저 재벌개혁을 떠올려요. 김 교수는 ‘재벌개혁 전도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국민은 재벌에 대해 이중적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여요. 한편으로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를 걱정하는 겁니다.
김상조 우리 사회가 상식적으로 설정한 규범을 가장 많이 일탈한 게 재벌이에요. 그것을 개혁하는 게 경제민주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에요. 다시 말해,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모든 게 아니고 단지 출발점이지요. 재벌개혁을 통해 공정한 시장을 만들면서 하도급,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해 다수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도달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 가운데 재벌개혁이 가장 쉽지 않나 생각해요. 재벌기업들도 이제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압박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호기 재벌 내부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말인가요.
김상조 이젠 ‘30대 재벌’이란 말이 의미가 없어졌어요. 재벌 내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돼왔어요. 4대 재벌인 삼성, 현대차, LG, SK와 그 친족 그룹을 포함하면 10여 개의 그룹만이 우리가 생각하는 재벌로서의 파워를 가졌어요. 나머지 그룹들은 사실상 둘 중 하나가 부실 징후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위험해요.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응징한 것처럼 국민은 재벌 문제가 뭔지, 어떻게 고치는지의 방법을 아는 셈이지요. 우리가 풀기 어려운 문제는 불특정 다수가 관련된 비정규직, 자영업자 문제 등이에요. 진짜 고민해야 하는 경제민주화의 본령입니다.
김호기 ‘3세 경영’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전근대적 형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김상조 재벌 총수 일가의 패밀리 기업집단 형태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폐쇄적인 가족 소유 구조가 3대 이상은 유지되기 어려워요. 현재 우리나라 재벌은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인데, 창업자와 2세까지는 슘페터적 기업가 정신이 있었어요. 물론 노조 탄압과 불법행위 능력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지만요.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재벌 3세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도전정신을 잃어버렸다는 점이에요. 3세들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왕국에서 황태자처럼 커왔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단절됐고 어려움에 부딪혀서 극복한 경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일감 몰아주기와 같이 안전하게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거예요. 나아가 대다수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없는 상태지요.
3세가 총수가 되는 시대가 곧 오는데, 그게 바로 우리나라 재벌이 봉착하게 될 가장 큰 위험요소라 할 수 있어요. 이것은 제가 재작년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 가서 한 얘기이기도 해요. 이제 3세들의 역할은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외부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이에요. 여기서 개인적인 역량을 평가받으면 CEO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배당을 받는 주주로 물러나는 것이지요. 머지않아 3세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봅니다.
김호기 박근혜 정부의 ‘초이노믹스’는 어떻게 봅니까. 실패한 것 아닌가요.
김상조 최경환 부총리가 지난해 부임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를 걸었어요. 최 부총리가 경제를 아는 정치 실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거의 실패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기업소득의 가계 환류를 위한 세법 개정에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세법을 만들었고 그 효과를 담보할 수도 없었어요. 또 법과 제도를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미끼로 해서 재벌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투자와 경제를 늘리는 운영을 했어요. 어젠다는 있었지만 실행은 구태의연한 셈이지요.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개혁을 내걸었지만, 최근 박근혜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역대 정부 모두가 빠져든 단기효과에 급급하면서 낙수효과에 의존하는, 실패의 길을 간다고 봐요. 출발은 창대했지만 결과는 과거로 가는 것입니다.
경제개혁을 주제로 대담하는 김호기 교수(왼쪽)와 김상조 교수.
김호기 문제의 핵심은 저성장인 듯합니다. 이 점에서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가 내건 ‘소득 주도 성장’에 눈길이 가요. 신동아 5월호 이 코너에서 만난 김광두 교수는 무척 비판적이었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김상조 2012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최근 문재인 대표의 대표 상품이 됐어요. 관건은 새로운 콘텐츠가 무엇이냐에 있는데, 솔직히 새로운 면이 별로 없어 보여요. 과거에 우리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혁신경제, 창조경제 등으로 표현한 어젠더와 다른 게 눈에 띄지 않아요.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 차원으로 보고 싶어요. 콘텐츠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아이템 이외에는 과거에 다 이야기된 것들을 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김호기 그래도 진보가 성장을 이야기한 것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이념을 넘어선 과제이기도 하고요.
김상조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제시하면 답이 없어요. 진보의 문제점은 하나의 만병통치약을 제시하는 함정을 반복하는 데 있습니다. 경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여전히 경제민주화도 중요하고, 복지국가도 중요해요. 창조경제와 혁신경제도 중요하고요. 경제민주화가 위의 성과를 아래로 보내는 ‘톱-다운’ 트랙이라면, 소득 주도 성장은 다수의 소득과 소비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를 위로 올리는 ‘바텀-업’ 트랙이에요. 불확실성의 저성장 시대에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 두 트랙을 선순환하는 어젠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김상조식 한국 경제의 대안은 무엇인지요.
김상조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는 먼 미래에 도달할 바람직한 사회상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자칭 타칭 진보경제학자이지만, 진보적이고 옳은 방향이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의 미래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해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많이 동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 질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해요.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일탈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의 본질도 바로 이것이고요. 제가 원하는 미래사회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지요.
김상조 對 장하준
김호기 정치학자와 사회학자가 아닌 경제학자가 사회운동에 관여해온 게 이채로워요. 운동으로서의 경제민주화의 핵심 정신은 무엇입니까.
김상조 경제민주화에는 공정의 의미도 있지만, 연대의 의미도 있어요. 시장에 의한 효율성 증가뿐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추구한다는 연대의 정신이 중요해요. 이 공정과 연대를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게 경제민주화이고, 한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에요.
김호기 김 교수는 1년 후배인 장하준 교수와 흔히 비교되곤 합니다.
김상조 공정만이 아니라 연대를 강조하는 저의 주장이 장 교수의 사회 대타협론으로 빠지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장 교수처럼 ‘이리로 오면 큰 이익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저리로 가면 큰 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탈하는 사람들에게 채찍을 가하는 역할도 필요해요. 저는 그 채찍의 역할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김호기 김 교수나 저나 어느새 50대 중반이에요. 버킷리스트가 있을 텐데, 첫 번째는 무엇인가요.
김상조 두 군데를 가보고 싶어요.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나온 평사리 최참판댁과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벌교예요. 벌교에서 꼬막을 한번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