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 리스트’가 온 나라를 뒤흔든다. 우리 정치와 재계의 천박한 수준과 민낯이 드러났다. 추문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지 국격(國格)은 치명상을 입었다. ‘사기’ 속 인물 하나가 떠올랐다. ‘정경유착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여불위다. 그의 행적과 최후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철학’은 전혀 달랐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 도박에 성공한 여불위.
여불위 : 아버지, 농사를 지으면 이윤이 얼마나 남겠습니까.
아버지 : 잘하면 10배쯤 되겠지.
여불위 : 보석 따위를 팔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 : 100배쯤 남지 않겠니.
여불위 : 누군가를 왕으로 세우면요?
아버지 : 그야 따질 수가 없지.
당시 여불위는 사업차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찾았다가 우연히 진나라에서 인질로 온 자초(子楚)를 발견한다. 자초의 신분을 확인한 순간 여불위는 엄청난 사업을 구상했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그도 상인)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당신을 키워주겠소”
여불위가 자초를 발견하고 어떤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확인되는 건 그가 자초를 ‘미리 차지해 둘 만한 기이한 물건’이란 뜻의 ‘기화가거(奇貨可居·‘기화’의 유래)’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지금 사두거나 투자하면 언젠가는 큰돈이 되거나 큰 역할을 해낼 투자 대상으로 본 것이다.
자초는 진나라의 다음 왕위 계승자인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20여 명에 말하는 아들 중 한 명이다.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인질 교환에 따라 조나라에 와 있었다. 자초의 서열은 중간 정도였고, 어머니 하희(夏姬)는 안국군의 총애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자초가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에도 진나라는 여러 차례 조나라를 침범했고, 그 때문에 조나라 왕은 몇 차례 자초를 죽이려 했지만 그때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엄연히 진나라 왕실의 핏줄인 자초는 자기 나라에서조차 외면당한 채 조나라 수도 한단을 떠도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여불위는 그런 자초에게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투자를 담보할 만한 유용한 정보 하나를 얻었다. 안국군, 즉 자초의 아버지가 총애하는 초나라 출신의 태자비 화양(華陽)부인에게 아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불위는 이 정보가 갖는 중요성을 직감했다.
안목 있는 장사꾼이라면 상품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진 이상 구체적인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여불위는 자초를 찾았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다.
여불위 : 내가 당신을 키워주겠소.
자 초 : 먼저 당신이 커야 내가 크지 않겠소?
여불위 : 잘 모르시는군요. 저는 당신이 커짐에 따라 커진답니다.
자초는 여불위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자리를 권하고 밀담을 나눴다. 여불위는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거론하며, 현재 안국군의 아들 20여 명 중 아무도 안국군의 눈에 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자초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며 희망을 주었다. 뜻하지 않은 후원자를 만난 자초는 계획이 성공하면 진나라 땅을 함께 나누겠노라 약속했다.
여불위는 차기 왕위 계승자인 안국군이 총애하는 화양부인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는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향했다. 이에 앞서 자초에게 500금에 달하는 충분한 ‘품위유지비’를 제공해 조나라의 유력 인사들과 두루 교제하도록 했다. 조나라 조야(朝野)에 자초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 의도였다.
“미모가 시들면 사랑도…”
귀한 패물 등을 갖고 함양에 들어온 여불위는 사람을 넣어 화양부인의 언니를 찾았다. 화양부인의 언니를 만난 여불위는 진귀한 패물을 화양부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자초의 근황을 알렸다. 그러면서 자초가 아버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늘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전했다. 또한 자초가 조나라의 유력자들은 물론 각 제후국에서 온 빈객들과 두루 사귀며 명성을 높이고 있다는 근황도 덧붙였다. 여불위는 화양부인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려 언니에게 “미모로 (남자를) 섬기던 사람은 그 미모가 시들면 (남자의) 사랑도 시드는 법”이라며 안국군의 사랑이 아직 건재한 지금 훗날을 위해 듬직한 양자를 들여야 할 것이라고 화양부인을 설득게 했다.
화양부인의 언니는 여불위의 패물과 말을 전했고, 화양부인은 전적으로 공감했다. 화양부인은 안국군이 한가한 틈을 타서 눈물을 흘리며 자식 없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자초 이야기를 꺼냈다. 화양부인을 총애하는 안국군인지라 자초를 양자로 삼겠다는 화양부인의 청을 들어줬고, 화양부인은 기쁨과 동시에 양아들 자초를 어떻게 하면 귀국시킬 수 있을지 근심에 싸였다. 안국군과 화양부인은 여불위에게 자초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는 한편 넉넉하게 물품까지 딸려 보냈다.
자초를 알리기 위해 함양을 찾은 여불위가 화양부인을 직접 만나지 않고, 대신 그의 언니를 이용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직접 물건을 갖고 가거나 소개하는 것보다 ‘구매자’가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을 통해 물건을 소개하는 쪽이 물건의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은 물론, 그 물건에 대해 신비감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고도의 상술이 숨어 있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상인은 그다지 신뢰받는 신분이 아니었다. 여불위는 이처럼 상인에 대한 선입관을 피해 가려는 노림수까지 염두에 뒀다. 이렇게 해서 자초는 진과 조, 두 나라는 물론 제후국 전체가 주목하는 요인(要人)이 됐다.
“죽을죄를 지으셨습니다”
다음 수순은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자초라는 상품을 선보이고 눈도장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자초를 한시라도 빨리 귀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다음 왕위 계승자인 안국군을 이용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소양왕의 반응이 냉랭했다.
여불위가 그 대안으로 선택한 타깃은 왕후다. 화양부인을 끌어들일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왕후를 찾아가지 않고 중간에 사람을 넣었다. 여불위가 찾은 중개인은 왕후의 동생 양천군(陽泉君). 여불위는 양천군을 찾아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자.
여불위 : 양천군께선 죽을죄를 지으셨는데 알고 계십니까.
양천군 :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니 무슨 말인가.
여불위 : 양천군께서는 왕후의 동생으로 높은 자리에 넘치는 녹봉, 그리고 구름같이 몰려드는 미인들을 원 없이 누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태자 안국군께서는 정말 암담한 신세라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양천군께선 대체 누구의 복을 누리고 계시며, 누구의 이익을 얻고 계시며, 누구의 권세에 의지하고 계시며, 누구의 돈을 쓰고 계시며, 누구의 권위로 뻐기고 다니십니까. 바로 지금 왕과 누이이신 왕후가 아닙니까. 모름지기 일이란 예측하면 성사되지만, 예측하지 못하면 쓸모없게 됩니다. 이는 아주 간단한 이치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연로하십니다. 조만간 태자께서 왕이 되시면 양천군께서 지금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놔두시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하루 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목숨까지 걱정해야 할 겁니다.
양천군 : (잔뜩 겁을 먹고는) 선생께서 제때 잘 이야기하셨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자초를 화양부인이 양아들로 삼은 사실과 안국군의 심경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 자초가 제후국들 사이에서 어떤 명성을 얻고 있는지 조나라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진나라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면서, 훗날을 위해 소양왕 앞에서 자초를 칭찬하고 그의 귀국을 요청하라고 일렀다. 그 일이 성사되면 나라도 없이 떠돌던 자초에게 나라가 생기고, 자식 없던 안국군 부부에게 자식이 생기니 모두가 양천군 당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죽을 때까지 지금과 같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회유했다.
허난성 낙양시 동쪽으로 20km쯤 떨어진 언사시(偃師市)에 남아 있는 여불위 무덤.
임신한 애첩 걸고 도박
여불위의 협박성 설득에 넋이 나간 양천군은 누이인 태후에게 달려가 공작을 벌였고, 태후는 다시 소양왕에게 공작을 벌였다. 소양왕은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져 조나라 사신이 오면 자초의 귀국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여불위는 이쯤에서 목표를 조나라 왕으로 돌렸다. 여불위는 조왕의 측근 실세들에 대한 로비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또 한 번 거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그동안 여불위가 들인 공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불위의 생각을 전해 들은 안국군과 화양부인은 물론 왕후까지 나서 로비 자금을 마련해줬다. 자초의 일이 이미 다수의 공동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자초의 미래에 따라 자신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관계로 확실하게 엮였다. 여불위는 한 사람의 관심사를 여러 사람의 관심사로 만들고, 이들 간에 이해관계를 엮는 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수였다.
진나라와 조나라 조정에 대한 로비를 성공적으로 마친 여불위는 자신의 상품을 재점검했다. 자초를 보다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불위는 이왕에 시작한 모험이라면 판을 좀 더 크게 벌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상품의 함량을 높이고 이윤 획득을 위한 공간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자초의 몸집을 더 불리되, 여불위가 더 쉽게 조종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여불위는 놀랍게도 임신 중이던 자신의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넘기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자초가 여불위의 첩에게 눈독을 들인 탓이 크긴 했지만, 자기 씨를 잉태한 첩을 다른 남자에게 넘긴다는 건 누가 봐도 인륜은 물론 일반의 상식과도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여불위는 천하를 놓고 도박을 한 것이다. 조희의 배 속에 든 아이까지 고려한 어마어마한 도박이었다.
자초에게 간 조희는 한 달 뒤 자초에게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알렸고, 얼마 후 사내아이(사실은 여불위의 아들)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진시황으로 불리는 영정(영政)이다. 천하를 건 여불위의 두 번째 도박이 성공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불위 자신도 이 아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이윤을 남겨줄지 알 수 없었다. 이 아이가 어떤 인물이 되고, 여불위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만약을 위해 들어둔 보험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쨌거나 지금 급한 것은 자초를 진나라로 귀국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안국군이 왕좌에 올라야만 가시권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격한 감정에 “내 아들아!”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영정은 벌써 세 살이 됐고, 여불위의 천하를 건 도박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위기가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진나라가 조나라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자초의 신변이 더욱 불안해진 것. 자초가 죽는 날에는 모든 것이 다 허사였다. 한껏 높아진 자초의 명성과 비중이 오히려 위험도를 높이고 있었다. 상품을 시장에 내보내기도 전에 시장에 변화가 발생했으니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여불위가 세운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여기서 여불위는 또 한 번 모험을 결심했다. 성을 지키는 장수를 매수해 조나라를 탈출하기로 한 것이다. 여불위는 “장사를 위해 조나라에 왔는데,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는 통에 불안해서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 그러고는 자초를 시종으로 분장시켜 조나라 수도 한단을 빠져나왔다. 뇌물을 먹은 장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여불위와 자초를 통과시켰다.
여불위는 진나라 장수 왕흘의 군영으로 가서 몸을 맡겼고, 왕흘은 소양왕에게 여불위와 자초를 안내했다. 자초의 느닷없는 출현에 소양왕은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반갑게 맞이한 다음 수레를 마련해 함양으로 보냈다.
자초가 마침내 귀국했다. 천하의 ‘기화’ 자초의 등장으로 시장은 요동쳤다. 여불위는 먼저 자초에게 초나라 복장을 입혀 화양부인을 만나게 했다. 초나라 출신인 화양부인의 심기를 고려한 세심한 안배였다. 고향 사람 복장을 하고 나타난 자초를 본 화양부인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내 아들아!”라고 외쳤다.
기원전 251년 가을, 연로한 소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안국군이 뒤를 이었다. 그가 효문왕(孝文王)이다. 화양부인은 왕후가 됐고, 자초는 태자로 책봉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나라는 한단에 남아 있던 조희와 영정(진시황)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효문왕(안국군)이 소양왕의 상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돌발 상황이 터졌다. 다음 수순에 따라 자초가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장양왕(莊襄王)이다. 이 기 막힌 현실 앞에 자초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타향에서 거지꼴로 전전하던 자신이 불과 몇 년 만에 초강국 진나라의 국왕이 되다니….
여불위는 승상이 돼 문신후에 봉해졌다. 낙양 땅 10만 호가 봉지로 따라왔다. 도박은 대박을 낳았다. 일생 최대의 투자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여불위는 그 뒤 진시황이 성인이 돼 친정을 시작하면서 권력에서 배제되고, 끝내는 진시황의 편지를 받아들고 자결했다. 하지만 이미 여불위가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린 뒤였다. 그리고 ‘친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돈으로 의리 산 성완종
여불위가 춘추전국시대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동원해 편찬한 ‘여씨춘추’ 판본.
여불위는 투자의 대상을 고를 줄 알았고, 투자 시기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변수가 발생하면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려해 제2, 제3의 투자 대상도 정확하게 골랐다. 만약을 위한 대비책 마련에도 소홀하지 않았으며, 위기는 과감하게 돌파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위기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로 전환되어 성공을 앞당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행운도 준비된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다. 천하를 건 여불위의 도박은 준비에서 판가름이 났다. 하지만 성완종은 오로지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고, 또 그것이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의리를 들먹였다. 돈으로 산 의리가 과연 진정한 의리일 수 있을까.
요컨대 두 사람의 처지와 목적, 그리고 최후는 비슷했는지 몰라도 그 과정이나 철학은 판이했다. 정치적 상황이 전혀 다른 오늘날이지만 적어도 여불위의 정치 도박에서는 배울 것도 적지 않아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의 칼날은 그가 ‘의리 없는 자’들이라고 지목했던 이들을 향해 서서히 죄어들어가고 있다.
진시황은 여불위의 자결로 전권을 장악하고 천하통일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한국 정치판은 성완종의 자결로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또한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 사건은 이처럼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르다. 카를 마르크스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