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호

“갇치 눈디지보” 그 이질적 매력과 독성

한국 TV 종횡무진…‘포리테이너(외국인+연예인)’ 떴다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5-05-20 10:2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출연자가 흔하게 목격된다.
    • 이들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광고에도 곧잘 얼굴을 내비친다.
    • 이국적 외모로 눈길을 끄는 ‘포리테이너’(foreigner와 entertainer의 합성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갇치 눈디지보” 그 이질적 매력과 독성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들.

    종합편성채널 등장 이후 방송 출연자의 면모가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종편 4사에선 말주변이 출중한 의사, 변호사, 시사평론가가 자주 나온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선 미모의 탈북여성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끈다.

    최근 이에 필적할 만한 새로운 집단이 부각되고 있다. 바로 외국인 출연자다. 과거에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면 외국인들이 TV에 나와 어설픈 한국어로 장기자랑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회성 출연에 그쳤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엔터테이너(연예인)형 외국인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동대문 광고 보고 울었다”

    그 무렵 활동한 미국인 로버트 할리와 프랑스인 이다도시는 ‘외국인 방송인의 비조(鼻祖)’로 꼽힌다. 할리의 “안녕하셔예? 할린데예”라는 구수한 부산 사투리는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한 뚝배기 하실라예?”라는 광고 카피로도 명성을 얻었다. 이다도시의 수다스러운 말투는 한국 여느 아줌마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의 단골 감탄사 “울랄라”는 금세 유행어가 됐다. 사람들은 할리와 이다도시를 통해 ‘외국인도 개성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외국인들은 방송에서 다시 도약했다. KBS ‘미녀들의 수다’는 외국인들이 감초 역할에서 탈피해 프로그램 주인공으로 나선 최초 사례다. ‘미수다’에서 여러 국적의 젊은 외국인 여성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한국 문화와 다른 나라 문화를 비교했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 집단 토크쇼의 모태’가 됐다.



    출연자들 중 일본의 후지타 사유리, 중국의 손요, 우즈베키스탄의 자밀라 압둘레바, 이탈리아의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핀란드의 따루 살미넨, 영국의 에바 포피엘은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유리, 에바, 크리스티나(경기적십자 홍보대사) 같은 이들은 지금도 방송계에서 활동한다.

    호주인 샘 해밍턴은 2014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다. 병영 문화를 그린 MBC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친근한 입담과 외모로 스타덤에 올랐다.

    올해엔 상황이 또 달라지고 있다. 다수의 외국인이 대중적 인기를 끌고 CF에도 자주 나온다. 포리테이너(foreigner와 entertainer의 합성어)가 고착화했다. 외국인 방송인 인기몰이의 한가운데에는 JTBC ‘비정상회담’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남자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와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토론하는 ‘미수다’류의 집단 토크쇼다. 프로그램 포맷은 중국과 터키에도 수출됐다.

    이 프로그램의 외국인 출연자들은 타 프로그램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광고 출연이 줄을 잇는 점은 이들의 대중적 인기를 입증한다. 샘 오취리(가나),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 알베르토 몬디(이탈리아)는 제일모직의 모델이 됐다. 로빈 데이아나(프랑스)는 붕어빵 아자부 카페 광고를 찍었다. 미스터피자, 요플레, 퍼스트룩, 크리니크, 두타 등 여러 브랜드가 비정상회담 멤버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샘 오취리는 “동대문을 (흑인) 친구와 지나가는데 친구가 제가 출연한 (두타) 광고를 보고 막 울었다. 한국에서 흑인 사진이 내걸리는 걸 예상 못했는데 감동을 받아 울었다”고 했다.

    ‘한국어 파괴자’

    이들 외에도 중국계 캐나다인 헨리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 등 몇몇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훈남’ 프랑스인 파비앙은 MBC ‘나 혼자 산다’에 합류하면서 연예 프로그램의 ‘대세남’으로 떠올랐다. 일본인 모델 야노 시호는 남편 추성훈, 딸 사랑과 함께 TV에 자주 나오면서 대중에게 익숙한 인물이 됐다. 프랑스 출신 줄리엔 강과 일본인 후지이 미나는 tvN 드라마 ‘감자별’에 커플로 나왔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아이돌 가수 강남은 유쾌한 성격으로 어필한다. 강남은 SNS에 ‘빱삔수’(팥빙수), ‘갇치 눈디지보’(같이 눈 뒤집어), ‘아침부토 마신눈고 모곳수’(아침부터 맛있는 거 먹었어) 같은 글을 올렸다가 ‘한국어 파괴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EXO의 레이, 크로스진의 타쿠야, 유키스의 캐빈, GOT7의 잭슨, ZE·A의 케빈처럼 몇몇 외국인은 한국 아이돌그룹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O는 2010년대 최고 한류 뮤지션 중 하나이다보니 중국인 레이는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다.

    최근 뜨는 외국인 연예인들은 대체로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인 선교사의 후손인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한국어를 잘 하지만 방송과 거리를 둔 채 본업에 열중한다. 이와 대비되게, 외국인 연예인들은 방송으로 인한 유명세를 즐기면서 기꺼이 풀타임 직업으로 방송활동을 하려 한다.

    포리테이너의 이러한 득세는 우리 사회의 두 가지 긍정적 특성을 반영한다. 첫 번째 특성은 한국이 급속도로 국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57만 명으로, 대전광역시 전체 인구보다 많다. 201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국제화 추세에 따라 방송에 출연하는 외국인도 늘어났다.

    두 번째 특성은 ‘연예인(celebrity)’과 ‘일반인(ordinary person)’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가에선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의 활성화, 채널의 다양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SNS에선 평범한 인물을 전국적 인물로 띄우는 일이 다반사다. 이에 따라 일반인이 하루아침에 공인(公人)이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현상이 외국인에게까지 확산되는 셈이다.

    ‘비정상회담’ 멤버 대다수도 우연히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익힌 평범한 외국인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출연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연예인이 된 것이다. ‘단순히 반복적으로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호감을 얻는다’는 ‘단순노출효과이론’은 포리테이너에게 어김없이 적용된다.

    ‘저질스러운 고등학교’

    다른 한편으로, 포리테이너의 득세는 우리 사회의 두 가지 부정적 특성도 반영한다. 첫 번째 특성은 한국이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한국이라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판을 너무 의식한다. 가령 한국인은 외국에서 ‘김연아’와 ‘삼성전자’를 칭찬하면 자기 일처럼 즐거워한다. 나아가 외국인에게서 한국의 자랑거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2012년 10월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히트를 할 때 한국의 어느 기자는 미국 국무부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싸이를 아느냐?”고 질문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나는 모르지만 내 딸은 알 것”이라고 답했다.

    ‘비정상회담’과 ‘미수다’의 한국 문화 토론은 한국인의 이 같은 평판 중시 성향에 어필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외국인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의 우수성을 재확인하려는 ‘자아도취 심리’에 기댄다. 지금 TV에 자주 나오는 외국인 출연자들은 ‘한국인이 무슨 말을 듣기 좋아하는지 알아맞히기’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반면, 한국인은 외국인이 한국에 부정적인 말을 하면 자기 일처럼 부당하게 여긴다. 이런 말을 하면 방송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미수다’ 멤버였던 아키다 리에는 2010년 “독도가 어느 나라 소유인지 단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샀다. 일본인으로서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과해야 했다.

    미국인 스콧 버거슨은 10년 이상 한국에서 생활한 지한파다. 그는 2007년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에서 한국을 ‘저질스러운 고등학교’로 묘사했다. 사춘기 의식 상태가 사회를 지배해 입에 발린 칭찬을 들으면 어린애처럼 좋아하고 조금만 쓴소리를 들으면 금세 토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잊히고 말았다. 이런 점들을 보면 지금의 포리테이너는 한국인을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자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자국 문화를 칭찬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일본 방송가와 출판계에는 ‘외국인이 바라본 일본’이 단골 소재였다. ‘미수다’도 일본 TBS 프로그램이 원조다. 알다시피, 일본은 ‘자뻑 문화’에선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비정상회담’ 멤버인 일본인 타쿠야는 “일본인들이 김연아를 질투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지지를 얻었지만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했다.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도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토 영어 발음에 발끈”

    포리테이너의 득세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특성은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백인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다. TV에 출연한 대부분의 외국인은 외모가 출중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방송계의 외모 지상주의가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비정상회담’에서 잘 나타나듯, 우리 방송계는 국가적으론 미국·유럽, 인종적으론 백인 선호 경향성을 뚜렷이 나타낸다. 이 프로그램에선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러시아, 호주, 영국 같은 미국·유럽계 백인 출연자가 여럿 나온다. 반면 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아프리카계 유색인종 출연자는 매우 적다.

    그나마 아시아계 출연자는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 국민에 한정돼왔다. 제작진은 최근 이런 비판을 의식한 때문인지 네팔 출신 수잔 사키야를 합류시켰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은 백인이나 강대국 국민을 좋아하므로 이런 사람들 위주로 출연시켜야 시청률이 오른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터키인 에네스 카야는 이 프로그램의 간판 스타였으나 스캔들로 하차했다. 이 사건 역시 우리 사회의 백인 선호 경향과 맞닿아 있다. 유부남인 그는 한국 여성들과 사귀면서 이탈리아계 행세를 했다는데,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터키도 유로 국가지만 그는 ‘오리지널 유럽인’이 되려 한 것 같다. ‘유럽인 행세하기’는 아랍계가 한국 여성을 유혹할 때 쓰는 전형적 수법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외국인 출연 TV 프로그램들에서 백인 여성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탈북자의 경우엔 정반대로 탈북여성만 주로 방송에서 소비된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잘 살아 보세’, TV조선의 ‘남남북녀’ 프로그램은 모두 ‘한국남성 대 탈북여성’ 구도로 돼 있다.

    이렇게 TV에서 백인 여성과 탈북 남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진화생물학자들의 짝짓기 공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공식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보다 한 계급 위의 남성을 짝짓기 대상으로 선택하므로 최상위 계급 여성과 최하위 계급 남성이 짝짓기에서 소외된다는 것. 우리 방송계는 백인 여성을 최상위 계급 여성으로, 탈북 남성을 최하위 계급 남성으로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우리 방송계는 ‘영어’를 특별히 숭배한다. 그래서 다니엘 헤니, 줄리엔 강, 데니스 오, 리키 김은 한국인-백인 혼혈로서의 이국적 외모뿐만 아니라 유창한 영어로도 점수를 딴다. 연예계 뉴스도 이런 점을 반영해 “다니엘 헤니는 네이티브 영어 실력을 앞세워 외신기자들에게 능숙하게 한류를 설명” “류승주가 남편 리키 김의 본토 영어발음에 발끈” “영어 과외선생님으로 통하는 데니스 오는 세련된 스타일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라고 보도한다.

    ‘인류학’ 뜨는 이유

    이들 포리테이너는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을 저지른다. 에네스 카야의 바람기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비정상회담’의 또 다른 멤버인 중국인 장위안과 미국인 타일러는 비자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장위안은 유명세 덕에 중국어 교재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근무하던 어학원에 무단 결강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3’에 출연한 미국인 크리스 고라이트리는 여러 한국 여성과 성추문을 일으켰다. ‘미수다’ 멤버인 미국 여성 비앙카 모블리는 2013년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된 뒤 검찰의 출국금지 미갱신을 틈타 미국으로 달아났다.

    선진국에선 예외 없이 ‘인류학’이 발달해 있다. 선진국일수록 ‘제3세계 갑남을녀’에게로 눈길을 돌린다는 이야기다. 반면 우리 방송계는 백인, 힘센 나라 국민, 미인에게만 관심을 둔다. 포리테이너 현상의 어두운 일면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