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호

‘대안 부재론’ 안주(安住) ‘승리 방정식’ 안 보인다

2012 문재인 vs 2015 문재인

  • 장은숙 | 정치평론가, ‘아름다운 선택, 2017년’ 저자

    입력2015-05-21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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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정부 심판론 등으로 정권교체 열망이 컸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은 48%의 지지를 얻었지만 패배했다. 2년여 뒤 제1 야당 대표로 재등장했지만 ‘질 수 없는 게임’이라던 4·29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2012년에 제기된 문제점과 한계를 여전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권 장악-총선 승리-대선 승리’라는 그의 대권 로드맵은 실현될까.
    ‘대안 부재론’ 안주(安住) ‘승리 방정식’ 안 보인다

    48%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대표는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고 차기 대권을 잡을 수 있을까.

    #1 이완구 총리 사퇴 후, 노무현 정부 시절 2차례에 걸친 성완종의 사면·복권 문제가 화제로 등장했다. 17대 대선 후 이명박 정부에서 ‘끼워넣기’를 했다는 둥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성완종 회장 사면·복권에 직접 개입했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법무부 소관이죠. 그걸 묻기 전에 친박 측근들이 돈 받은 게 우선 조사돼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뭐 잘못했는데?’ ‘너나 잘해’라는 식의 표정과 말투로 느껴지는 그의 동문서답은 이후에도 한참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를 두고 ‘발뺌하고 변명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식’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당당한 사람이었는데 문 대표는 변명으로 일관한다”(이진복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노 전 대통령과 견주어 문 대표를 비판하는 건 꽤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여러 보수 패널이 이 모듈을 가지고 문재인을 공격했다. 빌미를 준 것이다.



    이 장면은 계란 투척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은 세 차례 계란 투척을 당했다. 그중에서도 농민대회에서 얼굴에 계란을 맞고도 끝까지 연설을 이어간 장면은 많은 국민에게 ‘당당한 노무현’으로 어필했다. 그는 “정치인은 (이렇게) 좀 맞아줘야 민심을 달랜다”는 나름의 담대함을 기반으로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문재인을 내 친구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노무현이 없었다면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을 문재인에게 겹쳐지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노무현도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버스 창문으로 날아든 계란 세례엔 적잖이 당황했다. 문재인은 그런 곤혹스러움을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의 그 당당하던 얼굴이 아닐까.

    문 대표가 광주 방문 때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는 데 대한 논란도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광주공항에서 천정배 의원 지지자 20여 명이 항의시위를 한 건 사실이며 문 대표가 VIP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 장면이 또 한 번 노무현과 대비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 패턴에서 사람과 역량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이미지 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고 있다. 18대 대선에서도 그랬지만 그 후에도 마찬가지다.

    #2 ‘서울의 광주’라 불리는 관악구는 4·29 재·보궐선거의 최대 격전지였다. 선거 직전 금요일인 4월 24일 저녁 문재인 대표는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그 지역 중심부인 신림사거리 식당가를 돌면서 이른바 ‘불금우락’(불타는 금요일 동무와 함께(友樂))의 전략적 선거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다음은 어느 식당의 풍경이다.

    식당에 들어선 정태호 후보가 먼저 외친다.

    “문재인 대표 오셨습니다. 여러분! 인사들 나누시죠!”

    문재인이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한다. 어떤 이는 족발이나 수육 등을 쌈에 싸서 드시라 권하기도 한다. 문 대표가 이를 넙죽 받아먹자 좋아라 서로 웃는다. 인사가 대충 끝나자 다시 정태호 후보가 외친다.

    “자! 문 대표님과 사진 찍으실 분은 밖으로 나오세요!”

    배우 문재인이 주인공이고 정태호는 감독 노릇을 했는지 코디 노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면에서 관악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정태호는 없었다.

    독단적 판단과 행동

    #3 4·29 재보선 광주 서구을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압승을 거두자 바로 호남 신당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화들짝 놀란 문 대표가 선거 후 일주일도 안 된 5월 4일 광주 서구을을 방문, 노인정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개혁과 혁신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낙선 인사차 간 것치고는 꽤 요란했다. 시큰둥한 광주 민심은 차치하고, 이 일로 새정치민주연합 내부가 시끄러웠다.

    “대표가 광주 간다는 얘기를 최고위원들에게도 한마디 한 적이 없고 그냥 혼자 결정하고 가서 저렇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익숙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완구 총리임명안 국회 동의 여부를 앞두고 문 대표는 난데없이 ‘여론조사 결정론’을 꺼냈다가 뭇매를 맞았다. 선거로 구성한 입법기관이 버젓이 있는데, 주어진 임무를 다할 생각은 않고 난데없이 여론에 기대는 건 도대체 무슨 발상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진원지를 찾는 이들도 생겨났다. 문재인이 친노(親노무현) 브레인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배우가 아니냐는 의구심은 4·29 재보선 이후에도 2012년 대선의 데자뷰처럼 야권 내에 확산됐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5월 7일 라디오에 출연, 아예 문재인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패’를 다 까보였다.

    “대선에서 실패한 정무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문 대표를 보좌하고 있다면, 문 대표가 당 대표로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대표가 확실하게 당의 공조직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패배 이후 낙선 인사차 광주를 간다고 한 것은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최고위원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고, 문제 제기를 하려 했을 때는 이미 기자들한테 일정이 알려져 거둬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매우 중요한 시기엔 대표의 행보 하나하나가 상당한 충격과 메시지를 줄 수 있으니 최고 의결기관이자 논의기관인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나가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문 대표의 행보가) 알려지고 있다. 이런 식의 의사결정 구조라면 계속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비판일까, 비난일까. 전 최고위원이 누워서 침 뱉기를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내용을 차분하게 살펴보면 한 가지는 확실해진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깊어지는 중이란 사실이다.

    4·29 재보선에서 4대 0으로 완패하고 천정배의 등장으로 호남정치 부활론이 제기되면서 문 대표의 입지가 급격하게 흔들리는 듯하지만 호남이 단독으로 떨어져 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5월 6일 동교동으로 이희호 여사를 찾아간 천정배의 입에서 바로 ‘당을 만들 생각은 없다’는 말이 나왔다. 천정배는 무슨 말을 들었던 것일까. 일부가 흘러나왔다.

    “최근 (천 의원이) DJ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감사하긴 하지만 내 남편 이름이 정쟁에 오르내리지 않게 해달라. 특히 묘역 참배에서 그런 말과 동교동계를 거론하는 건 옳지 않다. 정치 지도자는 책임질 때 책임지는 게 필요한데, 국민은 야권 분열도 바라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질적 브레인이었던 이 여사의 발언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을 흔드는 동교동계 일각과 ‘뉴DJ’를 언급한 천정배에게 모두 자제하고 야권 단합에 힘쓸 것을 주문한 것으로 읽혔다. 그래서 문재인은 여전히 야권의 제1위 차기 대선 후보로 일컬어진다. 그의 입지는 순전히 ‘대안 부재론’에서 나왔다. 본인도 ‘나 말고 대안을 내놓아보라’고 대놓고 말하며 당 대표가 됐다. 재보선 패배 후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수준의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살짝 나돌다가 멈칫한 이유도 ‘여전히 대안이 없다’로 압축된다.

    ‘플러스 알파’는 어디에?

    5월 5일 어린이날, 미묘한 뉴스 하나가 정치판 화제에 올랐다. 총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던 손학규가 전셋집을 문 대표의 집 근처로 옮긴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선 ‘문재인 일선 후퇴-손학규의 대선 가도 등장’이란 추측까지 내놓았다. 이는 비판 수준이 아니라 비난이었다. 문 대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도 섞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미 ‘당 대표-총선 승리-대선 승리’라는 3단계 정치 일정표를 이마에 새긴 지 오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는 친노세력의 전략적 접근법이며 공식이다. 이를 깨는 건 허용되지 않는 시점이다.

    문제는 바로 ‘문재인’이란 인물의 한계다.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하지만,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이전까지 문재인 단독으로는 지지율이 20%대를 넘지 못했다. 엎치락뒤치락 했으나 2012년 10월경 문재인과 안철수의 지지율은 둘 다 22~26%선을 오갔다.

    그러나 단일화를 통해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8%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이 수치가 문 대표의 순 지지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속에는 안철수의 표도 있고 심지어 작고한 김근태의 표, 김대중·노무현의 표가 모두 뒤섞여 있다. 순수한 문재인 표는 여전히 20% 초반이다.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된 이후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30%대에 육박하며 1위에 오른 바 있다. 그런데 그 이상 올라갈 수 있을까. 이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지만 지금으로선 한계를 극복할 만한 ‘플러스 알파(+α)’가 보이지 않는다.

    ‘위버섹슈얼’ 이미지는 패착

    개인의 캐릭터 분석은 평가 기준의 전부는 아니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계량화는 쉽지 않으나 현상으로는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인물 중심의 대통령선거에서는 특히 그렇다.

    ‘위버섹슈얼(ubersexual)’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추구한 캐릭터다. 부드러운 듯 거친 남자, 거친 듯 부드럽게 상대를 대할 줄 아는 남자는 매력이 있다. 위버(uber)는 ‘~의 위에’ ‘~를 초월한’이란 뜻이다. 가부장적이고 마초(macho)적 남성과는 다른 스타일의 남성적 매력 요소가 다분히 있다.

    그러나 그는 여성 후보들(박근혜, 이정희) 사이에 끼여 이 캐릭터의 정치적 파워 유지에 실패했다.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남성적 마초와 여성적 취향의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어느 쪽에도 가깝게 다가서지 못했다. 특전사 출신을 강조하며 마초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정작 속살을 드러낸 그는 마초가 아니었고 대선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에게 오히려 남성성을 빼앗긴 듯한 장면도 연출됐다.

    애매한 캐릭터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한국 사회와 다수의 유권자는 정치적 리더라면 보여줘야 하는 ‘일정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갈구한다. 18대 대선에서도 누군가 강력하게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이, 애매한 여성성을 가진 남성을 지지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정치 지도자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건 정치인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민주적이고 잘 소통하는 지도자를 바라는 한편으로는 강한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 사회엔 강하게 존재한다.

    대선이 끝난 뒤엔 어땠을까. 한번 이미지 설정에 실패한 상태에서(수권 능력을 갖춘 유능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문재인은 그 후에도 연속적으로 자신의 결함 많은 성적 정체성을 드러낸 바 있다. 활동할 때나 안 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남성성의 극단인 마초와는 전혀 다른 여성적 요소가 가미된 문재인의 행동 패턴은 한국 사회에서 ‘비겁함’ ‘머뭇댐’ ‘기가 약함’ 심지어 ‘좀생이’ 이미지로 평가됐다. 18대 대선과 그 후 일련의 시기 동안 벌어진, 문재인이란 인물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평가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대안 부재론’ 안주(安住) ‘승리 방정식’ 안 보인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한 지 2년여 만인 2월 8일 당 대표로 선출되며 대권 재도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런 문재인은 아니다’

    그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18대 대선에 나선 것부터 비난을 받았다. 배수진을 치지 않고 나왔다는 점에서 선거 전에 이미 패배를 감지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에서 ‘통 큰 형님론’을 내세웠지만, ‘꼼수’ 논란이 제기되면서 오히려 통이 작은 걸로 평가된 것도 비판거리였다. 결코 성공한 단일화가 아니란 건 문재인 측도 알고 있었다.

    대선 패배 후 대선 결과를 수용한다고 했으면서도 대선 불복 이슈에 슬그머니 기댄 채 1년 이상을 보낸 것도 민심의 외면을 불렀다. 안철수와 민주당의 제3지대 통합이란 형식으로 탄생한 ‘새정치민주연합’이 2014년 두 차례 선거에서 패배하고 안철수-김한길 체제가 물러난 상태에서 전개된 일련의 당 재건 과정에서도 문재인은 지도자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 박영선 비대위 체제에서 이상돈 영입에 동의해놓고 논란이 일자 슬쩍 빠진 것은 ‘비겁하다’는 인식을 낳았다.

    세월호 사태에 편승해 근 1년 세월을 보내면서 벌어진 이런 일들은 그가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2·8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화려하게 등장했다. 박지원과 박빙 승부를 벌이며 호남과 친노의 갈등을 예고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재인에 대한 기대가 약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안 부재론’을 앞세워 당 대표가 된 후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정당 지지율도 높아가던 시점에 마치 깨진 쪽박에서 물 새듯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완구 총리후보 임명동의안 국회 의결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정론’을 들고 나왔고, 이 총리후보가 내정됐는데도 호남을 순회하면서 ‘호남 총리론’ 운운하며 뒷북을 치자 호남에서도 비판이 터져나왔다.

    4·29 재보선은 문재인으로서는 최상의 선거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유서가 친박(親박근혜) 핵심 인사들을 거론했기에 정권의 부도덕성을 겨냥하는 선거 전략은 유효하게 먹힐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호남 민심은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문재인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흔적이 역력했다. 동교동계 지원 없이 광주에서 선거를 이길 수 있는 동력이 문재인 개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서울 관악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악을은 원적, 본적이 호남인 주민이 60%가 넘는 곳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운 정태호 후보는 호남표를 흡수할 위력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호남을 대표하는 당이 아니었다. 또한 정권 타도를 외치는 거대 담론은 ‘개발 후진론’을 들고 나와 지역적 이슈로 접근한 새누리당의 전략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문재인이 2년여 전에 얻은 48%의 지지율은 이번 선거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호남을 잃은 제1 야당’이라는 치명적 약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일 대안론’에 대한 누적된 의구심, 친노 독주에 대한 반감으로 당이 내부적으로 와해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봐야 한다. 이는 결국 문재인의 정치 역량 문제로 귀결된다.

    야권 지지자들에겐 재보궐선거보다도 대선에서의 승리 방정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 점이 지난 대선과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문재인에게 드러난 문제의 차이일 수 있다. 그때는 안철수와의 단일화 이후 막연하게나마 이명박 정권을 단죄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 수 있는 정권교체의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선 ‘(이런) 문재인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문재인은 지금 야권에서도 회의적인 대안으로 평가되고, 사회적으로도 뭔가 부족한(그것이 몇 %이건 간에) 부실한 대안으로 정의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그 출발점은 ‘불신’이다. 그의 캐릭터는 한국 사회가 기대하는 남성성과 대선 후보의 조화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강성으로 향하는 그의 정치가 4·29 재보선에서 1차 민심에 의해 평가받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말로만 강한 게 아니라 진짜 ‘정치적으로 강함’이 뭔가를 묻는 질문 같은 것이다. 정권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한다고 해서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이기도 하다. 그것은 여전히 강경 대응 위주의 정치적 세몰이로 일관하는 야당의 행태에 국민이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부실한 매듭질

    좀 더 들어가보면, 문재인의 한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사람들은 문재인이 변호사 출신인데도 ‘지적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지도자감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무현 정권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행정적 경험을 강점으로 본다. 그러나 성완종 사면 논란에서 보듯, 2012년 대선 때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에서 보듯 국가 행정에서도 그의 태도는 맺고 끊는 매듭질이 분명하지 않았다.

    정치인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정치인으론 보지 않는다. 초선 의원에 불과하고, 노무현 사후 사회의 요구에 의해 대선 가도에 등장했지만 안철수와의 단일화에서 그의 탐욕을 봤고, 여러 사안을 결정할 때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제1 야당을 강력하게 이끌 정치 지도자는 아니란 인식이 커졌다.

    하지만 그가 버틸 수 있는 게 오히려 이런 허점 때문이라는 역설도 나온다. 당 대표가 된 후 이렇다 할 허니문 기간도 못 가진 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4·29 선거판이 만들어졌다. 그는 당 대표로서 자기 정치를 설계할 시간 여유도 없이 선거에 내몰렸고 패배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문재인이 역량을 제대로 펼 수 있는 기회를 당분간 좀 더 줘야 하지 않으냐는 주장도 나온다. 문재인 스스로도 이를 헤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를 희화화하는 표현이 많다. ‘문죄인’ ‘문제인’ 같은 말들이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정도의 비아냥은 늘 듣고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 그의 캐릭터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가 지금 19대 대선이라는 승부의 세계에 과연 몸을 담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라는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는 힘을 길러 이 승부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첫머리에서 성격을 지적받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력의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개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자 그것을 추구하는 성격적 강약, 장단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인 문재인은 더 냉철해져야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애매한 위버섹슈얼에 머물고 있는 듯 보인다. 2012년 대선 즈음에 드러낸 바로 그 캐릭터와 한 치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19대 대선에서 ‘통 큰 형님론’은 다시 등장하기 어렵다. 한번 실패한 구호인 데다 박원순 등 다른 야권 주자들에게 ‘내가 형님’ 하고 나설 만한 상황도 아니다. 당 대표 이후 받은 성적표도 답답하다. 이미 한 차례 중간고사(4·29 재보선)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전선에는 이탈하려는 자들이 수두룩하고 친노세력은 여전히 그에게만 기댄다. 진퇴양난 정도가 아니라 사면팔방이 꽉 막힌 상태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새정치’도 ‘민주’도 ‘연합’도 그렇다. 흔들리는 원인의 중심에 문재인이 쌓아온 이력이 누적돼 있다.

    문재인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중이다. ‘과연 나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나의 무엇이 변해야 이 불신의 벽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이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라면 이 질문에 맞서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정치인 문재인은 성숙해가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그에게 여유로운 기회를 보장해줄 것 같진 않다. 그와 친노세력의 시나리오 3단계에서, ‘문재인 당 대표’까지는 왔지만, 중간고사 실패로 인해 총선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문재인을 보는 것은 버거운 일이 될 듯싶다. 당장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지만, 2·8 전당대회 이후 줄곧 1위를 달려온 대선주자 후보 선호도에서도 새누리당 김무성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야권의 지리멸렬이 박근혜 정부와 여권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독배(毒杯)일 수도 있다. 여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가 아니라는 건 2012년 대선부터 2015년 4·29 재보선까지 다 마찬가지다. ‘도긴개긴’ 상황에서 현재 권력이건 미래 권력이건 국민에게 신뢰를 줄 만한 요소는 아직 없다. 정치가 불신을 받는 마당이라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도 대권주자들의 대(對)국민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그가 새롭게 거듭나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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