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9번째 권고사직이다. 업무에 바빠 상사 호출을 놓쳤다가, 하루 접속 안 해 ‘무단결근’으로, 진짜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망해서…. 제목부터 슬픈데 직접 해보면 더 슬픈 모바일게임, ‘내 꿈은 정규직’ 얘기다. 이 게임의 목표는 인턴으로 시작해 계약직, 정규직을 거쳐 사장이 되는 것.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만에 50만 다운로드를 돌파, 인디게임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게임 개발자 이진포 퀵터틀(Quick Turtle) 대표는 “엉금엉금 기었더니 생각외로 빨리 유명세를 타게 됐다”고 말한다.
# “TV에 내 게임이 나오네…?”
“지금도 이게 꿈이 아닐까, 잠에서 깨면 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걱정해요. 몇 억씩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은 게임도 성공하기 힘든 게 요즘이거든요.”
이씨는 자취방에서 여자친구와 둘이서 ‘내 꿈은 정규직’을 만들었다. 두 달간 이씨가 기획, 스토리, 디자인 등 모든 리소스를 준비했고, 한 달간 프로그래머인 여자친구가 코딩을 했다. 자영업 수준도 안 되니 마케팅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게임 정보 웹사이트에 “처음 게임을 만들어봤다”고 글을 올렸다. ‘응원한다’는 답글이 1시간 만에 60여 개 달렸다. 이후 다운로드 숫자가 쑥쑥 올라가고 사용자 문의가 쇄도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고, 2주차에 구글스토어 무료게임 인기순위 8위에 올랐다. 가장 황당한 경험은 자취방에서 저녁밥 먹으며 TV 뉴스를 보는데, “청년실업 세태를 다룬 게임이 나왔다”며 ‘내 꿈은 정규직’이 등장한 거다. “‘헉’ 했죠.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아직 게임 사업 시작했단 얘기도 안 했는데….”
# 시작은 ‘개복치’
2014년 12월 31일, 이씨는 회사 인근 횡단보도 앞에서 상자 하나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 권고사직을 받고 짐을 챙겨 나온 참이었다. 벌써 세 번째 권고사직. 그는 2010년부터 게임회사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부침(浮沈)이 심한 업계 특성상 회사가 폐업하거나 팀 자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반복해서 ‘짤리는’ 신세가 됐다.
“다른 업종도 그런가요? ‘애니팡’이 뜨니까 애니팡 같은 게임을 만들래요. ‘이게 뭔가’ 싶지만 어쩌겠어요. 주말도 없이 일해야죠. 그러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면 회사는 모질어지고 직원들은 괴로워져요. 누가 봐도 일 잘하는 직원을 불러다놓고 욕도 하고 화도 내다가 ‘너 나가!’ 하는 사장도 봤어요.”
# ‘슬로 터틀’ 인생
이진포 씨는 3개월 만에 게임을 완성했디. ‘버틸’ 돈이 딱 3개월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다. 인턴 경력도, 해외연수 경험도, 심지어 그 ‘흔한’ 대학졸업장도 없다. 어려서부터 게임이 좋아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탓에 남서울대 애니메이션학과를 1년 다니고 중퇴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입대했고, 전역 후 다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동시에 두세 개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벌이가 좋았던 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들어 나르는 일. 그렇게 제대 1년 만에 300만 원을 모았다.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집에 틀어박혀 1년간 그림만 그렸어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다섯 군데 면접을 본 끝에 회사에 처음 들어갔지요.”
이씨는 늘 직접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어깨너머로 게임 기획, 개발 등을 배웠고, 월급에서 매달 10만~20만 원을 떼 모은 돈으로 맥(Mac) 컴퓨터 본체, 모니터, 게임 개발용 소프트웨어 등을 하나씩 사 모았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 오니 그렇게 모아온 ‘장비’가 구색을 갖췄고, 통장 잔고는 300만 원이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살려면 알뜰하게 생활한다는 전제하에 방세 포함 월 1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는 딱 석 달 동안 미친 듯이 게임을 개발해보고, 안 되면 다시 취직하든 고향에 내려가든 하자고 맘먹었다. 이때까진 ‘퀵 터틀’이 아니라 ‘슬로 터틀’이었다.
기자는 직장생활 14년차다. 그런데 ‘내 꿈은 정규직’ 게임에선 수도 없이 권고사직 당하며 ‘인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성실한 직장인의 표본은 이런 것 아니겠나’ 하며 상사들이 일을 주면 재빨리 받아왔다. 그런데 밀린 업무가 많아 더는 일을 받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호출이 쏟아졌다. ‘나 보고 어쩌라고…’를 되뇌다가 권고사직 당했다. 사유는 ‘근무태만’.
# 비타500은 건들지 말아요
“일을 재빨리 받아오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상대가 간절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받아와야죠. 성실하면 다인가요, 눈치가 있어야지.”
이 게임은 현실 세계의 문법을 녹여 갖가지 퇴직 사유를 만들었다. 서류에 0 하나 잘못 기입하면(업무미숙), 졸고 있는 부하직원을 방치하면(관리소홀), ‘알바’ 하다 걸리면(겸업금지), 정규직 전환에 두 번 미끄러지면(‘최장 2년’의 비정규직법에서 영감 받은 설정)…‘짤린다’. 회사 임원이 주말에 다 같이 등산 가자는데, 부하직원이 ‘등산 가기 싫으니 빼달라’고 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내가 책임지겠다’며 빼주면 승진확률이 떨어진다. ‘네 책임이다’ 혹은 ‘체력 기르는 셈 치자’고 하면 승진 확률이 올라간다.
상사로부터 ‘돼지를 한번에 굽는 방법이 뭔지 아나? 돼지코에 플러그를 꽂으면 된다네, 하하하’ 류의 ‘핵노잼’ 농담을 들었다면? 정색은 금물.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사장이 ‘땅콩 좀 가져오라’고 할 땐 접시에 담아가는 게 좋다. 봉지째 가져가면 ‘이게 어느 나라 매뉴얼인가!’ 하는 호통을 듣고 짐을 싸야 한다.
이씨는 얼마 전 TV 뉴스가 ‘비타500’ 상자 얘기로 도배가 된 날, 비타500 패치를 추가했다. 사무실에 비타500 한 상자가 놓인 것을 봤다. 마침 목마르던 참이라며 상자를 열어도 될까. 열면 퇴사당한다. 이씨는 “뉴스만 틀면 매번 새로운 얘기가 나오니까 추가 소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갖가지 사유로 수도 없이 권고사직 당해야만 인턴에서 계약직, 정규직 순으로 승진할 수 있다.
# “도대체 왜?!”가 듣고 싶다
이씨는 이 게임을 기획하면서 또래 직장인 10여 명을 찾아가 회사 생활에 대해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게임에 녹였다. 게임 플레이어는 사표 낼 자유가 없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에 대해 이씨는 “내가 그랬으니까”라고 했다.
“게임 주인공이 ‘더 이상 면접 보러가기 싫은데 학자금 대출 보면 의지가 생긴다’란 말을 해요. 제 또래들이 딱 그렇거든요. 회사를 관두고 싶어서 관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학자금 대출은 없었지만, 처음 서울 올라올 때 신협에서 500만 원을 대출해 월세 보증금을 마련했어요. 초봉이 월 150만 원이었거든요. ‘1년 안에 500만 원 갚으려면 절대 짤려선 안 된다’ 싶었죠.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다들 “회사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하는 걸까.
“‘원래 그렇다’는 말이 무서웠어요. 다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타의로 회사를 나가게 돼도 체념하더라고요. 아무런 의심 없이 불합리함을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게임에 각종 황당한 퇴직 사유를 집어넣고 숱하게 권고사직 당하도록 설계한 의도에 대해 이씨는 “‘도대체 왜 또 짤린 건데?!’라는 플레이어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게임 유저가 세 부류더라고요. 직장인, 취업준비생, 그리고 그 부모들. 여러 세대가 이 게임을 하면서 청년 실업과 직장 생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 여전한 ‘未生’…그래도 天職 찾았다
세계 모바일게임 시장은 올해 303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매년 성장세는 가파르지만 경쟁이 치열한 탓에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개 게임이 새롭게 쏟아지고, 거의 대부분이 빛도 못 보고 사라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다운로드한 게임을 한 달 이상 즐기는 국내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 중 5.5%에 불과하다. 이제 겨우 한 달. 다른 무료 게임처럼 광고 노출과 아이템 판매로 매출을 올리는 ‘내 꿈은 정규직’은 이씨에게 지속 가능한 밥줄이 돼줄까. 그는 “처음 목표가 ‘다음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벌자’였는데, 다행히 한 달 만에 그만큼은 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저들로부터 ‘내 꿈은 결혼’ ‘내 꿈은 육아’ 등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며 “조만간 ‘내 꿈은 정규직’을 아시아 국가들에 론칭하고, 여름에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 막 독립 게임개발자로 나선 이씨의 ‘직급’은 인턴과 사장 사이 어디쯤일까.
“아직 인턴이고 미생(未生)이죠. 요즘엔 3개월만 인기를 유지해도 롱런했다고 할 정도거든요. 제 꿈은 계속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서 사는 건데, 앞으로 잘 안 되면 다시 알바 뛰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번에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게임 개발이야말로 제 천직(天職)이란 걸 알게 됐죠. 이 정도면 꽤 많이 남은 거 아닐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