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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인 이유

  • 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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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김세영이 4월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요즘 LPGA 투어에선 한국 기업 이름을 내건 대회가 자주 열린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 성공에 대한 의지는 골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진다. 한국 여성 골퍼들은 강인한 정신력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좀처럼 스코어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좋은 성적으로 직결된다.

여성 골퍼의 부모와 코치도 평소 정신교육을 중시한다. 이를 가리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그릇된 풍조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이런 트레이닝에 힘입어 LPGA 챔피언 조에서 세계적인 강호들과 붙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다. 올 시즌 몇 차례 한국 선수들과 벌인 우승 경쟁에서 패한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는 “한국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고 정신력이 강하다. 기복 없이 치는 모습에 놀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다시 박세리로 돌아가보자. 그의 성공 뒤엔 대기업의 후원이 있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오직 부모의 재력으로만 이뤄지던 골프선수 육성에 기업이 가세하면서 상황이 훨씬 호전됐다. 주니어 시절 대회에서 6승을 거둔 박세리는 급(級)이 다른 자원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삼성은 박세리를 전폭 지원했다. 전담 팀을 만들었고 박세리의 부모와 언니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삼성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키운 것처럼 ‘골프 여왕’ 박세리를 탄생시킨 산파 노릇을 한 셈이다.

정환식 당시 삼성물산 세리팀 팀장은 “국내 말고 세계에 내세울 대형 선수를 발굴하라는 윗분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공주 금성여고 3학년이던 박세리는 프로 전향과 함께 일본에 진출하려 했다. 부친 박씨는 처음엔 삼성의 제안을 거절했다. 일본 진출 후원사까지 나선 마당이라 이를 번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삼성 ‘윗분’의 지시



1996년 삼성 로고를 단 박세리는 하반기에만 4승을 거두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평정했다. 그는 이듬해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갔다. 그해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공동수석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신인 시즌인 1998년 초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언론은 삼성에 대해 ‘무모한 투자’라고 비판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까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잠정 철수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코너에 몰린 박세리는 신들린 듯 괴력을 발휘하며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그는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연속 석권하며 세계 골프계에 충격을 줬다. 이후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과 자이언트 이글 클래식에서 우승을 추가했다. 시즌 4승을 거둬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박세리가 유일했다. 나이도 20세에 불과했다. 올 시즌 17세의 나이에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를 능가하는 신데렐라의 탄생이었다.

10년 뒤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45명으로 늘었다. 2008년 미국 골프전문지 ‘골프월드’의 에릭 아델손 기자는 박세리를 ‘개척자’로 부르며 “타이거 우즈 못지않게 골프의 얼굴을 바꾼 인물”로 기록했다.

삼성의 박세리 후원은 선수에게도, 기업에도 대성공이었다. 이후 대기업의 여성 골퍼 후원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올해 LPGA에서 뛰는 한국 여성 골퍼 중 상당수는 하나금융그룹, 미래에셋, SK텔레콤, 롯데, CJ오쇼핑, 비씨카드, KB금융그룹 같은 대기업 후원사의 로고가 새겨진 골프복이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적 지원이 선수의 기량 향상과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국 여성 골퍼가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하면서 이들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광고효과가 높아지니 이들에게 대기업 후원이 쉽게 붙는다. 이러한 후원으로 이들의 경기력이 유지되고 있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대기업은 특정 선수 후원과 별도로 자사 이름을 내건 LPGA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돈을 썼다. 삼성은 LPGA투어의 프리미엄 이벤트인 삼성월드챔피언십을 오랜 기간 개최했다. 올해 LPGA 투어를 후원하는 한국 기업은 4개다. KIA 클래식, 롯데 챔피언십, JTBC 파운더스컵, 하나외환 챔피언십이 한국 기업이 후원하는 대회다. 국산 골프공 업체인 볼빅은 2부 투어인 시메트라투어 볼빅 챔피언십의 타이틀 스폰서다.

이런 점은 한국 선수들의 자신감 고취에 직결된다. 한국 기업들의 후원은 한국 선수들을 투어 내에서 이방인이 아닌 ‘주인’으로 격상시켰다. 정신력 게임인 골프에서 이런 뒷받침은 경쟁 상대인 외국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들을 괄시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한국 선수들은 골프 기계이며 돈만 벌어간다”는 조롱은 더 이상 LPGA 투어에서 들을 수 없다.

한국의 자연환경과 기후도 한국 여자 골퍼의 경쟁력을 높였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엔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난코스 골프장이 많다. 페어웨이의 폭이 대체로 좁다. 티샷이 조금만 빗나가면 아웃 오브 바운스(OB) 구역에 떨어져 그날 게임을 망친다. 두 번째 샷이 OB 구역으로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다보니 우리 선수들은 ‘똑바로 멀리 치기’에 능하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신지애는 ‘분필선(Chalk line)’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올해 우승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박인비, 김효주, 김세영 같은 주요 선수들의 페어웨이 적중률은 75%를 상회한다.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올해 LPGA 투어 1승을 올린 최나연(왼쪽)과 LPGA에서 신인으로 뛰는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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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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