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호

“靑에 민정수석 없는 게 낫다” “檢이 임명권자 이렇게 욕보여?”

‘김진태 검찰’ vs ‘우병우 청와대’, ‘成의 전쟁’

  • 최우열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입력2015-05-21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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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이 ‘정국의 뇌관’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수사 대상이다. 검찰 수장인 김진태 검찰총장, 청와대 사정(司正) 사령탑인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두 사람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靑에 민정수석 없는 게 낫다” “檢이 임명권자 이렇게 욕보여?”

    김진태 검찰총장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엔 홍준표 경남지사를 빼면 모두 친박(親박근혜)계 핵심 인사만 적혔다. 박근혜 정부가 천명한 ‘부패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의 칼끝이 현 정권 핵심부를 겨냥하는 꼴이 됐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재빨리 움직였다. 4월 10일 오후 대검찰청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해 “부정부패 척결은 검찰의 사명이자 존립 근거”라며 “자원개발비리 등 현재 진행 중인 수사를 한 점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계속해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혀라”고 지시했다. ‘리스트’에 등장한 8명이 금품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할 때였다.

    김 총장은 이 지시를 내릴 때 이미 머릿속에 특별수사팀을 구상했다고 한다. 다만 현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까지 연루된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고민이었다.

    먼저 치고 나간 총장

    반면 청와대는 ‘멘붕’이었다. 법무부 장관을 지휘하는 이완구 당시 총리는 연일 ‘거짓말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과 업무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또한 의혹의 당사자가 됐다.



    청와대에선 “이 수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검찰의 진짜 의중은 뭐냐” “핵심 공여자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수사가 가능하겠냐”라는 이야기만 반복해 나왔다. 수사의 방법과 방향조차 잡지 못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방향을 잡아줘야 할 사람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인데, 40대인 자신을 비서관에서 수석으로 수직 상승시켜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피의자가 될 판이어서 정신이 있겠느냐”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적어도 며칠간 청와대는 두 손 두 발 다 든 아노미 상태였다.

    김 총장이 먼저 치고 나갔다. 대검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일요일인 4월 12일 특별수사팀을 꾸려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수사부 경험이 있는 실력파 검사들을 전국에서 끌어모았다.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해 사안을 조기 종결하기로 정리했다.

    김 총장의 특별수사팀 인선도 관심을 끈다.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문무일 대전지검장(54·사법연수원 18기·사진)은 광주 출신으로 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낸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대검은 대구·경북(TK) 출신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 칼을 겨눠야 하는 사건의 특성상 팀장 인선에서 출신 지역을 가장 먼저 고려했다고 한다. 문 팀장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팀에 파견됐고, 2008년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이끌었다. 지난해 서울서부지검장으로 있을 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지휘했다.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인천 출신인 구본선 대구지검 서부지청장(47·23기)은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대구 출신인 김석우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43·27기)은 광주지검 특수부장 때인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 납품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수사팀 지휘 라인을 광주-수도권-대구로 안배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과 3차장 등 기존 지휘 라인의 지휘를 받지 않고 검찰총장과 윤갑근 대검 반부패부장 등 대검 수뇌부의 지휘를 직접 받도록 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김진태 총장의 뚜렷한 의지가 읽힌다.

    “靑, 검찰 보고 끊겼다” 푸념

    “靑에 민정수석 없는 게 낫다” “檢이 임명권자 이렇게 욕보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청와대 관계자들은 “검찰이 과연 뇌물 공여자가 없는 사건에서 누구를 기소할 수 있다고 저러느냐”면서 검찰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했다. 수사가 진행된 뒤 청와대에선 “검찰이 우리에게 기초적인 소환 통보 정도도 보고하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완종 사건 이후 우 수석의 검찰 장악력이 떨어진 것으로 비치는 대목이다. 청와대와 검찰 간 신경전은 치열해졌다.

    이런 가운데 우병우 수석 본인도 논란의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정치권에선 “우 수석이 이명박 정권 자원외교 ‘기획사정’을 주도하다가 오히려 친박계가 되치기당하는 이런 사달이 났다”는 말이 나온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우병우 수석의 경우 ‘기획사정 수사의 담당자’라는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 민정수석실은 뒤에 숨어 있지만 민정수석 교체 등 민정 라인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도 “검찰의 완벽한 독립 수사를 위해선 우 수석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검찰 관계자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민정수석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2005, 2007년)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은 더욱 첨예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임관혁)는 성 전 회장이 포함된 노무현 정부 마지막 특별사면 대상자가 결정되기 직전인 2007년 12월 경남기업 관련 계좌에서 5000만~1억 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원래 성 전 회장을 구속한 뒤 사면 로비 의혹을 수사할 계획이었다.

    특별수사팀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정치권과 언론은 잇따라 특별사면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두 번째 사면 당시 청와대는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과 함께 성 회장을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해 법무부에 보냈다. 당시 법무부 논의 과정에서 “성 회장은 불과 2년 전 사면을 받고 또 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인사인데 다시 사면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 의견이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 과정에 관여한 당시 여권 핵심 관계자는 “그때 법무부는 여러 정치인과 김대업 씨, 성 회장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제시했지만 김 씨만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2007년 11월 서울고법의 유죄 판결 직후 상고를 포기했고 한 달여 만에 사면 수혜자가 됐다. 법무부는 결국 청와대의 뜻에 따라 성 회장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별수사팀도 이런 부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朴 대통령 발언에 불만

    그런데 4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사건 관련 대국민 메시지에서 이 같은 두 번의 특별사면에 대해 “법치가 훼손됐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사를 지시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지난해 정윤회 사건에 이어 불필요한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또 불거졌다. 검찰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일정대로 차분히 수사할 뿐”이라며 “수사 범위는 ‘성완종 리스트’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을 수사팀 출범 당시부터 밝혔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말을 안 해도 (수사를) 하고 있었는데, 굳이 이를 ‘밝히라’고 언급하는 바람에 이제 뭘 내놔도 수사의 중립성이 의심받게 돼버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성 회장의 메모 한 장도 없는 사면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검찰이 성과를 내면 야당으로부터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맞췄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성과를 못 내면 여권의 압박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여권에선 “리스트에 거명된 8인에 국한된 결과만 나온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에 치명적이다. 검찰이 ‘물 타기’ 욕을 먹더라도 야권 인사를 찾아내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연장선에서 새누리당은 재·보궐선거 전 사면 로비 의혹을 쟁점화했다. 그러나 김 총장과 대검 간부들은 청와대의 계속된 수사 사안 언급에 대해 불편해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수사 초기부터 특별검사로 가자는 주장이 여권에서 나왔다. 법무부 장관의 상관인 국무총리, 검찰 인사를 주무르는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들이 의혹의 당사자이므로 검찰 수사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국민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박 대통령이 4월 1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나 “특검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검찰 내부에선 의견이 갈렸다. 특별수사팀을 꾸렸지만 검찰에 이번 사건은 ‘독이 든 사과’나 마찬가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검에 던져버리자는 게 더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 검사장급 간부도 “일반 뇌물 사건이나 정치자금 사건에선 공여자가 사망하면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접는다. 이 사건은 정치적 비난 가능성 때문에 끌어안았다. 손을 떼면 조직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재경 지검 부장검사는 “공여자가 죽었더라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을 직접 수사하는 게 좋다. 검찰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검찰은 복잡한 심경이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자기네 수사가 정치 논리에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여당은 바로 특검을 하자고 했다. 야당은 선(先) 검찰수사, 후(後) 특검을 주장했다. 야당이 먼저 특검을 하자고 해야 정상일 텐데 여야의 태도가 정반대였다.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를 마친 뒤 특검을 하면 성완종 이슈가 내년 4월 총선 국면까지 이어져 불리하다고 봤다. 서둘러 끝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이슈를 길게 끌고 갈 요량으로 검찰수사+특검을 요구하는 셈이다. 이런 구도라면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못 믿겠다고 할 것이고, 처음부터 특검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김 총장으로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4월 28일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밝힌 메시지에서 선(先) 검찰수사를 천명했다. 이어 4·29 재보선에서 야당은 완패를 당했다. 특검 관련 이슈는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검찰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으면 검찰 수사만으로 사안이 종결될 길이 열린 셈이다.

    “靑에 민정수석 없는 게 낫다” “檢이 임명권자 이렇게 욕보여?”

    새정치민주연합관계자들이 4월 28일 성완종 리스트 8인의 사진을 놓고 회의하고 있다.

    영화 ‘부당거래’ 같은…

    청와대 측은 김 총장과 검찰에 대한 불만이 크다. 어찌됐건 성완종 사건은 멀쩡한 피의자가 수사를 받다 자살한 사건이다. ‘수사를 어떻게 했기에…’라며 의문을 제기할 빌미는 된다. 친박계에선 이런 의문도 나온다.

    ‘기획 사정이든 정의로운 자원외교 수사든,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든 주역이 우 수석인가, 아니면 김진태 검찰총장인가’

    ‘채동욱 반란’에 놀란 청와대로선, ‘이번엔 잘 좀 하겠지’ 하며 김 총장에게 중책을 맡겼는데 또 한 번 검찰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우 수석 책임론뿐 아니라 김 총장 책임론도 나온다. “수사 관리 능력이 있느냐” “임명권자를 이렇게 욕보이느냐” 하는 이야기다. 지금 청와대엔 “수사 결과를 보고 평가하고 책임을 묻자”는 기류가 흐른다. 재·보선 승리에 따른 여유도 약간 묻어난다.

    다른 한편으론,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이 리스트에 올랐고 ‘박근혜 대선자금’으로 번질지 모르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2억 원 수수 의혹도 나온 만큼 청와대가 내심 수사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건지 모른다. 청와대에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우 수석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검찰은 리스트 수사 결과를 곧 내놔야 한다.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건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특히 김 총장과 특별수사팀은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른다. 검찰 조직 전체가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자기 코가 석 자인 김 총장과 특별수사팀으로선 청와대든 리스트에 거명된 당사자든 누구를 봐주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닌 듯하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한 검사가 “남의 사정 다 봐주면 우리가 수사를 못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 총장과 특별수사팀이 바로 이 상황에 처한 듯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같은 정부 한 지붕 아래 민정수석과 검찰총장이 이렇게 상반된 처지에 놓인 것도 참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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