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6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 안을 놓고 부칙의 별첨 서류로 합의문을 넣는 수준에선 타협이 가능하다고 보고 의원총회 표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청와대와의 충돌을 의식해 표결을 막았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린 까닭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의중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읽을 수 있는 발언이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지연될수록 국민의 부담과 나라 살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이다. 어휴… 이것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박 대통령)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하면 참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 (김 대표)
김 대표는 원래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의 박근혜’를 지향했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 때 정치적 고비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미래 권력’의 위상을 굳힌 행보를 벤치마킹하려 했다. 그의 측근은 “사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 ‘차별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산 권력과의 충돌은 자해행위’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봇물론’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박 대통령은 그 직전 “개헌 논의는 국정의 블랙홀”이라며 정치권에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개헌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뭉갰다. 작심한 선 긋기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청와대의 반격을 받았다. 당시 윤두현 홍보수석은 “김 대표의 발언은 실수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당내 친박계 핵심 의원들도 잇따라 모임을 갖고 김 대표를 압박했다.
그 시점에 김 대표는 ‘살아 있는 권력과의 충돌은 자해행위’임을 자각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야 살아 있는 권력(이명박 당시 대통령)과도 맞설 수 있는 국민적 지지가 있었지만 자신은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대권 전략을 바꿨다. 자세를 바짝 낮추면서 말과 행동으로 박 대통령의 정책과 심기에 보조를 맞췄다.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귀국한 당일 “대통령께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취임 초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겠다”고 한 호기를 접었다. 대신 박 대통령이 역점 국정과제로 제시한 공무원연금 개혁에 총대를 멨다. 자신이 앞장서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했고 소속 의원 158명(당시) 전원의 서명을 받아내는 열성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박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이틀 동안 감기에 걸렸다고 칭병(稱病)한 뒤 다시 청와대 코드 맞추기 행보에 들어갔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청와대 헛기침에 감기몸살 앓는 새누리당을 우리는 보았다”고 비아냥댔다. 김 대표로선 박 대통령과 같이 호흡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차기가 보장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인 권오을 인재영입위원장은 “지금은 박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협조와 긴장관계를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 지지층이 곧 김무성 지지층이니 윈-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김 대표의 미래가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기댈 곳
김 대표의 이런 스탠스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김무성이 대세’라는 흐름이 형성된다고 보는 측은 “여권 내에 달리 대안이 없으며 김 대표가 나름대로 유효적절하게 박 대통령과 ‘밀당’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4·29 재보선에서 완승한 뒤 김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제치고 1위를 달린다.
‘무대(무성 대장) 대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직 대통령이 ‘차기 후보’를 낙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꼽는다. 살아 있는 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대권을 쟁취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해석이다.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입법권력이 강화된 점이다. 3김 시대까지 현직 대통령은 집권당 총재로서 행정권과 입법권을 사실상 함께 장악했다. 대통령은 당(黨)·정(政)·청(靑)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다. 특히 집권당이 다수당이 되면 집권당 총재인 대통령은 국회를 지배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은 차기 여당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였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새로운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총재직을 내려놓았다. 대통령이 집권당을 장악할 수 있는 큰 수단을 양보한 셈이다. 이후 대통령이 당 총재를 맡지 않는 게 관행이 됐다. 후임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당에 대한 통제력을 확연하게 줄였다. 더욱이 2012년 18대 국회 말에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은 소수 야당의 동의 없인 어떠한 법안도 통과되지 못하게 했다. 현직 대통령의 권한은 더 위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