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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대한민국 국무총리실

  • 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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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서 일하고 陰地를 지향”

총리실 조직도를 보면 ‘당장 내각제를 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체계적으로 꾸려져 있다. 재정, 산업, 환경, 고용, 문화 등 정부의 주요 업무를 관할하는 실·국을 두루 갖췄을뿐더러 그 밑에 개별 부처를 담당하는 국·과장들이 포진했다. 세월호 피해자 지원 및 희생자 추모사업부터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은 물론 주한미군 재배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등 굵직굵직한 국정사업 상당수도 총리실이 실무를 도맡고 있다. 각 부처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정부업무평가도 총리실 소관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늘 바쁘게 돌아가는 조직”이라며 “우리끼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음지를 지향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총리실의 이 같은 내부 평가에 대한 각 부처의 생각은 어떨까. 총리실에서 수년간 근무한 바 있는 한 경제부처 관료는 “하는 것도 없고, 안 하는 것도 없는 조직”이라는 말로 총리실을 꼬집었다. 담당하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총리실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업무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각 부처에서 만들어온 보고서를 정리하고 부처 간에 부딪치는 부분을 조율하는 게 주 업무인 만큼, 일선 부처의 시각에선 총리실 특유의 업무 스타일을 이해하기 힘들다.

18년 동안 총리실에서 근무하며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저서를 펴낸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총리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정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총리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총리실은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은 춥고 배고픈 기관이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 아무런 이권도 없고 그 흔한 산하기관도 없다. 청와대와 달리 실제 권한은 별로 없어 각 부처가 무서워하기보다는 귀찮아하는 상급기관이다. 일도 바쁘지 않아 일과 중에도 온갖 신문을 다 통독할 수 있을 정도다.



원래 싫증을 잘 내고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편인 나는 이런 총리실 근무가 무료하기만 했다. 때문에 퇴근 후면 노상 지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 덕에 젊은 날 내 나름의 인적 네트워크는 엄청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정치를 하게 되면서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기재부 등 경제부처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총리실에서 관료생활을 마친 전직 고위간부는 총리실로 옮긴 뒤 뚝 떨어진 ‘언론 관심도’에서 총리실의 실상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회고했다.

“재정경제부 국장 시절, 많게는 하루에 100통 가까이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별생각 없이 한 마디 툭 던진 게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해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런데 총리실로 가니 그 잦던 전화가 딱 끊겼다. 옮긴 지 1년이 지나도록 같이 밥을 먹은 기자가 5명도 채 안 됐다.”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조정업무’의 두 얼굴

실제로 언론사들은 국무총리의 동정이나 정치적 행보에는 관심을 둬도 총리실의 업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열심히 취재해도 쓸 만한 기삿거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리실을 드나드는 일간지 출입기자 대부분은 국회, 감사원, 일선 부처 등을 맡으면서 총리실 취재를 ‘가욋일’로 맡는다. 검찰, 기재부 등에 여러 명의 전담 출입기자를 두고 매일 사건과 정책을 취재하는 것과 대비된다. 총리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전직 장관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료로 일하면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는 신경을 써도, 국무총리와 총리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일한 적은 없다. 중요하다 싶은 업무를 하면 협의, 조정을 이유로 자꾸 보고서를 보내라고 부탁하는 게 귀찮았던 생각이 난다.”

일선 부처 직원들 중엔 총리실의 주업무인 ‘국무조정’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다. 총리실 업무조정을 경험해본 한 사회부처 관료는 총리실의 조정업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총리실 조정업무요? 의견을 달리하는 부처 관계자들한테 전화해서 불러 모으는 게 전부 아닌가요? 회의장 빌려주고 서로에게 말하라고 하죠. 그러고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총리실이 하는 일이에요.”

이러한 냉소적 반응을 총리실이라고 모르는 건 아니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유 업무가 많지 않은 조직이 겪어야 하는 숙명”이라고 표현했다.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 안 풀리고 누구도 나서기 싫어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잘 풀리면 해당 부처들이 서로 자신의 공(功)이라고 주장하니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총리실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박근혜 정부 총리실도 해결한 과제가 적지 않다. 15년간 갈등을 빚던 울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합의한 것이나 밀양 송전탑 사태를 비교적 원만하게 해결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총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주민과 부처를 설득하고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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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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